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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8

곁에 두고 싶은 사물을 만드는 브랜드 ‘공예가’

“비워서 채웁니다”
쓰임에 알맞은 꼴을 찾기 위해 뺄셈의 가치에 주목하는 ‘공예가(GONGYEGA)’. 이들의 제품 소개글에는 ‘비움의 미학’, ‘시간이 지나도 손이 가는’, ‘매일 사용할 수 있는’과 같은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유행에 편승하기보다 기본에 충실한 디자인을 선보이고자 하는 이들의 손끝에서 탄생한 사물들은 군더더기 없이 생활에 녹아든다.
© GONGYEGA

뿌리를 아는 것이 브랜드 아이덴티티 확립의 기준점이 되었다 말하는 김대홍, 권영미 대표의 마음 바닥엔 온고지신의 정신이 흐르고 있다. 전통과 현대, 지역성과 공예를 잇는 징검다리가 되고자 그들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두 청년의 모습은 우리에게 큰 영감을 준다. 들여다볼수록 옹골찬 브랜드, 공예가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Interview with 공예가

김대홍 대표
© GONGYEGA

브랜드명 ‘공예가(空藝家)’에 대해 먼저 소개해 주세요. ‘장인 공(工)’이 아닌 ‘빌 공(空)’을 사용한 데에는 두 분의 디자인관과 철학이 담겨 있다고요.

공예가는 ‘비어 있는 자리에 어울리는 예술의 조각을 채운다’는 문장에서 출발했어요. 패션디자인을 전공한 두 파트너가 쓰임에 집중한 공예의 가치에 감명을 받아 2017년 브랜드를 꾸리기 시작했죠. 사물의 용도에 알맞은 형태를 찾고, 때에 따라 여러 창작자들과의 협업을 통해 다양한 색을 채우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공예가 X 마도 ‘TEA-SHIRT’ & ‘TEA-BAG’ © GONGYEGA

어느덧 출범 5년 차 브랜드가 되었어요. 두 분은 브랜드 내에서 각각 어떤 역할을 전담하고 계신지, 또 2017년의 공예가와 현재의 공예가는 어떻게 같거나 다른지 궁금해요.

권영미 디자이너는 제품을 실물로 구현하는 패턴 작업과 시제품 제작을 맡고 있고, 저는 그 외 전반적인 브랜딩을 전담합니다. 기획 및 디자인은 함께 진행하죠. 2017년의 공예가는 막연히 하고 싶은 것이 많았기에 다양한 제품을 제작하고 소개했어요. 시작하는 단계인 만큼 이모저모로 실험하며 제품군을 늘려 나갔죠.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은 한 가지 제품을 출시하더라도 그 속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탐구하고 담아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런드리 백 © GONGYEGA
에어팟 케이스 © GONGYEGA

두 분께서는 20대 초반에 일본 패션 업계에서 일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그래서인지 패브릭 소재의 제품이 많이 보여요. 일본에서의 경험이 지금의 활동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또 창업을 결심한 계기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요.

저희는 같은 대학, 같은 전공으로 만난 선후배 사이였어요. 졸업 후 20대 초반부터 각자 회사 생활을 시작했고, 국내 패션 업계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하면서 값비싼 원부자재들과 신선한 디자인들을 접할 수 있었어요. 그러나 시즌이 지날 때마다 매번 기존의 것을 부정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이 달갑지만은 않더라고요. 무엇보다 실물을 다루는 과정과 점차 멀어지는 것이 아쉬웠죠. 그래서 직접 손으로 만드는 경험을 하기 위해 일본으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났고, 도쿄 근교에 있는 요시다 컴퍼니의 가방 공장에서 봉제사로 근무하기 시작했어요. 하루에 13시간 동안 봉제 일을 했죠. 이때 제품을 만들고 검수하는 ‘기준’을 배운 것 같아요. 값싸게 소비되고 버려지는 물건이 아닌, 오랫동안 곁에 두고 쓰일 수 있는 제품에 대해 고민하게 된 계기였달까요. 그때 정립한 기준이 현재 공예가의 제품에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어요.

일본 워킹 홀리데이 당시 권영미, 김대홍 대표의 모습 © GONGYEGA

또 일이 없는 주말이면 도쿄 시내에서 다양한 공간을 둘러보곤 했는데요, 그중에서도 카페 문화가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한국으로 돌아가면 이 경험을 토대로 다채로운 문화 활동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을 운영하겠다는 결심을 했고, 그래서 탄생한 것이 ‘파티션 WSC’랍니다.

© GONGYEGA

공예가의 대표 제품으로는 단연 북커버를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겠어요. ‘오롯이 책을 읽을 자유’라는 슬로건이 흥미로워요.

일본에서의 워킹 홀리데이 시절, 어느 날 지하철에서 책을 읽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날따라 집중이 잘 되는 거예요. ‘왜 이렇게 집중이 잘 되지?’ 생각을 해보니, ‘여긴 일본이고, 나는 외국인이구나!’라는 결론에 이르렀죠. 아무도 내가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오는 묘한 안도감이 있더라고요. 이때의 감정을 제품으로 녹여내고 싶었고,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북커버 작업에 착수했어요. 독서는 스스로를 위한 온전한 집중의 시간이잖아요. 외부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편안하게 책을 읽고 싶은 소비자를 위해 기획한 제품이에요.

세탁망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여름 가방 ‘런드리 백’ © GONGYEGA
녹음기 가방에서 영감을 얻은 세기말 감성의 ‘카세트 레코더 백’ © GONGYEGA

간결함과 실용성을 최우선시하지만, 그 속에 섬세한 캐릭터를 부여해 설득력 있는 디자인을 선보인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용도와 형태, 퍼스널리티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고 계시나요?

건축가 루이스 칸의 “무엇이 되고자 하는가? (What it wants to be?)”,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How it was done?)”라는 말을 참 좋아하는데요, 제품을 만들 때 그 말을 따져 보게 됩니다. 예쁘고 좋은 제품들은 이미 시중에 많이 나와 있잖아요. 그래서 공예가만의 장점과 그에 맞는 속도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물건을 구매할 때의 기준에 대해 생각해 보니 결국은 쓰임새와 품질, 그리고 차별성이 중요한 포인트더라고요. 공예가의 제품을 구매하시는 분들도 마찬가지겠죠. 그래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제품, 오래 써도 질리지 않을 형태와 우수한 품질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자면, 제품을 소개하는 방식을 다원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그래서 물건을 만들 때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마음으로 작업해요.

© GONGYEGA

북커버를 제작하고 남은 자투리 원단으로 만든 책갈피, 쓰임을 다한 찻잎을 수거해 염색한 티셔츠 등 환경을 생각한 제품들도 눈에 띄어요.

자투리 원단을 그저 버리게 되면 의미 없는 쓰레기가 되지만, 시간과 정성을 들이면 근사한 조각보로 재탄생되잖아요. 일상에서 쉽게 버려지는 것들도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면 얼마든지 새롭게 쓰일 수 있는 길이 많다고 생각해요. 단지 그 과정이 번거롭기에 실행되지 못할 뿐이죠. 리사이클·업사이클 제품은 한 단계의 생각을 더 거쳐야 하기에 출시까지 더 많은 시간이 소요돼요. 하지만 자투리 원단을 그냥 버리기엔 너무 아깝더라고요. 그래서 북커버 작업의 연장선으로 책갈피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했죠. 환경을 생각한다는 건 거창한 표현 같고, 생활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실천해 보자는 마음으로 기획하게 되었어요. 완벽하진 않더라도 한 걸음 내딛는 심정으로요. 그리고 이것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하는 것이 더 중요한 부분일 테죠.

‘파티션WSC’ 매장 전경 © GONGYEGA

쇼룸, 카페이자 두 분의 작업실이기도 한 ‘파티션 WSC’를 운영하고 계세요. 이곳을 채우는 콘텐츠의 특성과 전개 방식이 조금은 남달라요. 물건의 외형뿐만 아니라 그 이면의 가치와 이야기를 조명하고자 하는 진심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파티션 WSC의 W는 Workroom, S는 Showroom, C는 Café를 의미해요. 저희의 본업인 디자인 업무를 위한 일터이자, 다양한 창작자를 소개하는 매장이죠. 이 모든 현장에 방문하기 쉽도록 문턱을 낮춰주는 역할을 카페가 담당하고 있어요. 많은 분들이 자주 드나들며 사랑방처럼 자리 잡길 원했기 때문이에요. 앞서 공예가 제품을 제작할 때 이야기를 함께 만들고 다양한 방법으로 소개하고자 한다는 말씀을 드렸는데요, 그러한 성격이 이 공간에도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저는 백화점보다 제작자가 있는 곳을 직접 찾아가 물건을 구입하길 즐기는 편입니다. 제품을 만든 사람의 얘기를 듣고 나면 그 물건에 대한 애정이 더욱 샘솟거든요. 이처럼 파티션 WSC가 사물에 담긴 스토리를 색다른 방식으로 소개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 공간을 찾아오는 고객들께 어떤 경험과 감정을 선사하고 싶으신가요?

공간은 이동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어주는 존재잖아요. 유행이나 외부의 자극에도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싶어요. 사진을 찍기 위해 한번 거쳐가는 곳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문득 생각나는 곳, 그리고 머무는 동안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곳, 나아가 여운이 남는 곳이 되기를 바랍니다. 음악과 커피가 있는 곳에서 집과는 다른 종류의 편안함을 느끼다 가셨으면 좋겠어요.

프로젝트 © GONGYEGA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공예가 브랜드를 좀 더 알리려고 합니다. 그리고 팀 내에서 각자의 위치와 역할을 조금 더 견고히 하기 위해 공부를 할 계획이에요. 단기적인 반응과 성공 여부에 연연하지 않고 저희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올곧이 걸어가고 싶어요. 그래서 10년, 20년 뒤에 지금을 돌아보았을 때 후회 없는 선택을 했다고 생각할 수 있길 바랍니다. 이때까지의 작업들이 가지를 치는 일이었다면, 앞으로는 깊게 뿌리를 내리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윤이정 객원 기자

자료 제공 공예가

헤이팝
공간 큐레이션 플랫폼, 헤이팝은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과 그 공간을 채우는 콘텐츠와 브랜드에 주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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