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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6

충돌·폭발·분출! 라파 실바레스의 《AIRBAG》

페레스 프로젝트에서 열리는 라파 실바레스의 국내 첫 개인전
라파 실바레스, A sonâmbula, 2022, 린넨에 오일, 140 x 120 cm | ©PERES PROJECTS

묵직한 농도의 액체가 흘러내리고 있으며, 흘러내리는 형상의 중심에는 사물이 있다. 라파 실바레스(Rafa Silvares, b. 1984)의 작품에 공통적인 형상이 포착된다. 사물은 모두 산업적인 주제로 엮인 대상들이다. 대상은 기계적이면서도 메탈릭한 질감을 갖추고 있다. 이들은 실제로 움직임이 없는 정지된 대상이지만 마치 움직임을 부여받은 듯 주체성을 지니고 있는 모습이다.

젊은 작가, 라파 실바레스는 예술뿐만 아니라 언어와 문학을 전공했다.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주변부의 사물이 작품 속 주연을 담당하게 된 데에는 문학적인 사고가 큰 역할을 했다. 실바레스는 비유, 병치, 의인화 등 문학적인 도구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정지된 사물은 흘러내리는 액체와 만나 방출의 형상을 부여받는다. 이는 의인화된 사물의 정서적 해방을 암시한다. 공장에서 쉽게 찍어내는 산업 사물은 실바레스의 캔버스 안에서 폭발, 분출한다. 특별할 것 없는 대상은 관람자의 시각을 자극하고, 감각하게 하는 촉매제가 된다.

활력과 생기의 대상: 에어백
라파 실바레스, Love fever, 2022, 린넨에 오일, 210 x 210 cm | ©PERES PROJECTS

전시 제목은 에어백(AIRBAG). 충돌 시에 해제돼 인간의 치사율을 최소화하는 도구이다. 에어백을 용도적 측면에서만 봤을 때 단순한 존재로 치부하기 쉽지만, 에어백이라는 대상에 집중한다면 그것이 어떤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는지에 방점이 찍히게 된다. 에어백은 결정적 순간에 활력과 생기로 가득 차는 존재다.

전시의 제목과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 <Love Fever>. 이 작품의 중심에는 자동차가 등장한다. 여기에 자동차를 움직이게 하는 사람은 없다. 작가는 자동차의 용도적 속성에서 벗어난다. 충돌과 폭발, 그리고 분출이라는 현상과 절정의 순간이 주제가 된다.

라파 실바레스, Love fever, 2022, 린넨에 오일, 210 x 210 cm | 사진: 하도경

자동차에서 물질이 새어 나오고 있는 것일까? 자동차가 어떤 세계로 들어가고 있는 것일까? 작품을 보는 관람자에게 이 형상은 매우 난해하다. 그럼에도 작품 속의 자동차는 현실 세계가 아닌 회화 속 세계로 우리를 이끄는 대상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핵심은 일상에서 통용되는 용도에 입각한 대상이 아닌 주체화가 가능한 대상 그리고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무대, 회화라는 또 다른 세상이다.

라파 실바레스, Três marias, 2022, 린넨에 오일, 140 x 120 cm | ©PERES PROJECTS

<Tres marias>에서도 사물의 주체적인 면모를 찾아볼 수 있다. 잔디에 물을 주는 용도로 사용되는 물뿌리개는 잔디를 정복한 기세다. 대상을 둘러싼 배경은 후광을 표현한 듯 보이며, 아래에서 위로 잡은 구도 역시 물뿌리개의 기세를 살리는 데 일조한다. 구도와 연출뿐만 아니라 흥미로운 지점이 또 있다. 그것은 물뿌리개와 잔디를 매개하는 푸른색 액체가 중력의 영향을 벗어났다는 점이다. 물뿌리개에서 물이 발산되는 것이 아닌, 잔디에 있던 액체를 물뿌리개가 거둬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라파 실바레스가 수놓은 병치의 미학
라파 실바레스, Naked cake, 2022, 린넨에 오일, 120 x 100 cm | ©PERES PROJECTS
라파 실바레스, Naked cake, 2022. 확대 사진 | 사진: 하도경

라파 실바레스의 작품은 미래적이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을 풍긴다. 그 이유는 라파 실바레스가 병치의 언어를 매우 세련되게 쓰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기계적이면서도 산업적인 대상에 주목하지만, 그것을 전통적인 기법으로 매우 정성스럽게 그려낸다. 그는 겹겹이 유화 층을 쌓고, 메탈 특유의 광택과 그림자를 매우 정밀하게 잡아낸다. 멀리서 봤을 때 그래픽 작업으로 오해할 정도다.

라파 실바레스, Troca de calor, 2022, 린넨에 오일, 200 x 155 cm | ©PERES PROJECTS

기법적인 특성이 부각될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작품의 요소를 이루는 대상이 극단적인 대비의 구도를 취하고 있다는 데 있다. 부동성과 유동성, 딱딱함과 유연함, 단조로운 색과 경쾌한 색 등 실바레스는 양극단 요소들의 경계를 벌려 놓기도 하지만, 그 사이를 변주하며 병치 특유의 경쾌함을 선사한다.

라파 실바레스, Troca de calor, 2022. 확대 사진 | 사진: 하도경

평범한 대상과 작가의 상상력, 언어가 만나 또 다른 세계로 관람자를 초대한다. 페레스 프로젝트의 창립자, 하비에르 페레스는 이 시대에 회화가 갖는 가치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것은 모든 것들이 편리해지고 다양해지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빛나는 회화의 면모이다. 동시대 미술의 영역에서 상대적으로 등한시 되고 있는 손맛과 전통적인 매체의 가능성, 거기에 현시대를 예리하게 관찰하는 라파 실바레스만의 시선이 만나 또 다른 가능성을 창조한다.

페레스 프로젝트 창립자 하비에르 페레스 | 사진: 하도경

하비에르 페레스는 “라파의 작업을 온라인으로만 보면 이해를 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라며, 무엇보다 실물이 흥미로운 작업이라 평했다. 신작 5점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라파 실바레스 개인전인 만큼 귀추가 주목된다.

작가가 만들어내는 충돌·폭발·분출의 언어, 작품들이 발산하는 에너지에 압도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전시는 오는 7월 1일까지.

라파 실바레스

브라질 출생 | 런던 베를린 거주 및 작업

라파 실바레스는 상파울루의 FAAP(Fundacao Armando Alvares Penteado)대학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으며, 상파울루 대학교에서 언어 및 문학 학위를 받았다. 그는 미술사와 문학, 디자인, 대중문화까지 다양한 자료를 작품의 재료로 활용한다. 특히 일반 가정집 어디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상징성 없는 평범한 사물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팝아트와 다다이즘 그리고 브라질 모더니즘에 영향을 받았다. 상파울루의 AM갤러리, 피보 아트 앤 리서치, 그리고 뉴욕의 페이퍼박스, 상파울루 현대미술관 등에서 다수의 전시에 참여했다. 지난해 가을, 페레스프로젝트 베를린에서 데뷔 개인전을 열었다.

하도경 객원 기자

자료 제공 페레스프로젝트 서울

장소
페레스프로젝트 서울
주소
서울 중구 동호로 249 서울신라호텔 B1층
일자
2022.05.20 - 2022.07.01
헤이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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