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04

아이폰 13pro로 찍은 박찬욱의 <일장춘몽>

전작 <파란만장>에 이어 애플과 협업한 두 번째 영화!
2011년, 박찬욱은 동생 박찬경 감독과 함께 연출한 단편 영화 <파란만장(2011)>으로 베를린 국제영화제(Berli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단편 부문 황금곰상을 수상했다. 아이폰 4로 촬영했던 전작에 이어 지난 2월 18일, 박찬욱 감독은 애플(Apple)과의 두 번째 협업이자 아이폰 13pro로 촬영한 <일장춘몽(2022)>을 공개했다. 이는 애플이 세계 각국의 영화감독을 초청해 진행하는 단편영화 프로젝트 ‘샷 온 아이폰(Shot on iPhone)’의 일환으로, 박찬욱 감독이 처음으로 시도한 무협 장르의 단편 영화다. 그러나 이를 무협으로 한정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박찬욱은 메이킹필름을 공개하며 ‘호러 영화처럼 시작해 점차 판타지, 무협, 로맨틱 코미디, 뮤지컬까지 다양한 장르로 발전하는 영화’라고 설명했다.

 

전문가용 카메라 방불케 하는 기술

놀랄 만큼 정교한 시네마틱 모드

 

박찬욱, 촬영 현장 ⓒ 애플 코리아

 

해당 영화에서는 고도로 발전한 아이폰 13pro 카메라의 기능이 눈에 띈다. 낮은 심도에서도 풍성한 색감을 구현하는 렌즈는 DSLR 전용 렌즈를 별도 부착해 전작을 촬영했던 박찬욱 감독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어떤 전문가용 카메라와 비교했을 때도 뒤지지 않는 성능을 자랑한다”고 말했을 정도. 무엇보다 해당 영화에서 자주 사용한 시네마틱 모드(Cinematic Mode)는 특기할 만하다. 인물에 초점을 맞추고 배경을 흐릿하게 처리하는 해당 기능은 주변 잡다한 배경을 없애고 인물의 표정에 집중하며 섬세한 감정 표현을 포착한다. 본래 수동으로 조절해야 하는 아웃포커스(out of focus)와 달리 선택한 피사체를 따라 초점이 자동으로 이동한다는 점도 놀랍다. 앞서 언급한 시네마틱 모드 외 아이폰 13pro의 다양한 기능을 적극 활용한 해당 영화에서는 방수 기능으로 촬영한 수중 장면을 삽입했다. 그뿐만 아니라 어지러움을 느끼는 인물을 광각 모드로 촬영해 인물의 상태 및 심리를 극대화하는 등 진보한 기술의 면면을 보여줬다.

 

 

유해진, 김옥빈, 박정민… 화려한 라인업

장르 경계 없이 신명나는 영화 한 판

 

ⓒ 애플 코리아

 

영화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아이폰의 기술력 뿐만 아니다. 유해진, 김옥빈, 박정민과 같은 화려한 배우가 등장해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특히 유해진 특유의 넉살 연기는 배우들 중 단연 발군이다. 박찬욱 감독은 이번 영화에 등장하는 장의사 역할을 구상하는 단계에서부터 유해진을 점 찍었음을 밝혔다. 영화의 도입부에서는 장의사 역할의 유해진이 무덤을 파며 관을 훔친다. 죽은 사람의 관을 훔치다니 천벌받을 짓 아닌가 싶지만 그에게는 명분이 있다. 죽은 검객 흰담비 역할의 김옥빈을 넣어둘 관을 구하기 위함이었던 것. 장의사가 실수로 관을 떨어뜨리자 박정민이 돌연 깨어나며 B급 공포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우스꽝스러운 효과음이 귀를 때린다. 박정민은 “왜 남의 관을 훔치느냐?”며 불호령을 내린다. 유해진이 관을 훔친 이유를 설명하고 죽은 검객이 맞장구를 치며 이날치의 판소리가 곁든다. 마침 잠들어 있던 혼담비도 깨어난다. 두 혼령의 결투가 시작된다. 별안간 로맨틱 코미디에서나 보일 법한 연인 간의 대립으로 미묘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판소리의 구성진 가락을 대사로 표현하기 위해 박자와 리듬을 타며 연기했다는 유해진도 이 장면의 묘미이니 유심히 볼 것.

 

ⓒ 애플 코리아

 

 

이승과 저승이 다를 바 없는

20분 남짓 영화에서 삶을 묻다

 

ⓒ 애플 코리아

 

공포 영화에서부터 로맨틱 코미디, 마당극을 넘나들며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것은 이번 영화를 기획한 박찬욱의 의도를 적극 반영한 결과다. “마음껏 노는 잔치판 즉, 마당극 형식의 영화를 구성하고자 했다”고 말하는 박찬욱은 설상가상 갑작스럽게 사랑에 빠진 둘의 영혼결혼식을 치르는 것으로 영화를 끝맺는다. 장의사와 함께 잔치를 벌이는 이승의 모습으로 시작해 나무에 기대 잠든 유해진의 꿈으로 오가며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넘나든다. 황량하고 초라하게 이루어지는 이승에서의 잔치와 달리, 꽃으로 만발한 곳에서 화려한 복장을 차려입은 사람으로 가득한 저승의 잔치는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이는 이번 영화의 제목인 <일장춘몽>의 뜻이기도 한 ‘덧없는 꿈을 한바탕 꾸는 것’을 나타낸다. 박찬욱 감독은 “그냥 ‘몽’이 아닌 ‘춘몽’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덧없지만 아름다운 꿈’, 혹은 그 반대를 의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산목숨이지만 죽은 자의 관을 도굴해야 하는 장의사와, 죽어서도 관을 찾기 위해 결투를 벌여야 하는 죽은 검객 두 명의 모습을 보며 죽고 사는 것이 한 끗 차이임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지나치게 진지한 서평을 하는 게 아닌가 싶지만 죽어서나, 살아서나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것 먹고 춤추며 하하 호호 하는 것에 의미가 있을 뿐 그다지 거창한 명분이 없는 것이 삶임을 말한 것이라면?

 

 

“아이폰으로 뭐라도 찍어보라”

전문가와 개인 크리에이터의 경계도 무화 하는

 

박찬욱, 촬영 현장 ⓒ 애플 코리아

 

아이폰 13pro로 촬영한 박찬욱의 <일장춘몽>은 기술의 발달을 몸소 증명했을 뿐만 아니라 개인의 창작 욕구 실현이 먼 데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박찬욱 감독은 “아직도 영화가 대단한 것이라 생각해 시작조차 못하는 분들이 있다면 아이폰을 들고나가 뭐라도 찍어보라”고 말했다. 영화를 찍는 데 필요한 것은 대단한 장비와 기술이 아니다. “전작을 촬영할 때는 부족한 기술력을 장점으로 보이게 하는 트릭(Trick)을 써야 했는데 이번에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고 말한 박찬욱의 말에서 알 수 있듯 아이폰이 이미 충분한 기술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지난 22일, 애플의 최고 경영자 팀 쿡(Tim Cook)은 자신의 트위터 채널에서 “박찬욱의 신작은 장르를 활용하고 촬영술에 통달한 모습을 보이는 동시에, 한국 문화의 아름다움과 힘을 보여줬다”고 평했다. 세계에서 주목하는 한국의 콘텐츠가 많아지며 날로 자부심이 높아지고 있다. 미셸 공드리(Michel Gondry)의 <우회(Détour)>, 데이미언 셔젤(Damien Chazelle)의 세로형 단편영화 <스턴트 더블(The Stunt Double)>등 아이폰으로 영화를 촬영한 전례가 있긴 했지만 <일장춘몽>과 같이 국가의 정서 및 특색을 신명 나게 담아낸 영화를 제작하기란 쉽지 않은 일일 테다. 유튜브 채널에서 무료로 감상할 수 있는 <일장춘몽>을 보며 한국인의 자부심에 또 한 번 심취해 보자.

 

 

신은별 기자

자료 제공 애플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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