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14

카페 위 호스텔, 호스텔 아래 카페?

오래될수록 빛나는, 파치드 서울 & 파치드 맨숀
녹사평 언덕배기를 열심히 오르다 보면 낡은 포스터로 도배된 붉은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이는 ‘목마른’이란 뜻의 ‘파치드(Pached)’를 이름으로 한 카페와 호스텔 자리. 갈증 난 사막 한가운데 오아시스처럼, 도심 속 휴식을 선사하는 두 곳은 하나의 건물을 함께 공유하며 공간의 동일한 가치를 서사하고 있다.
© T-FP
© Parched Seoul

 

강민표 대표를 매료시킨 건 다름 아닌 인공적인 힘으론 흉내 낼 수 없는 시간의 흐름. 그는 세월이 흐를수록 오히려 더욱 견고하고 묵직해지는 흔적들에 주목했다. 공간 곳곳 녹아든 빈티지스러움도 이 때문. 좌석, 집기, 소품 무엇 하나 허투루 놓인 게 없는 파치드의 두 공간엔 오늘도 ‘쉼’을 위해 찾아온 이들이 가득하다.

 

파치드 서울의 로고와 포스터 © Parched Seoul

 

파치드 서울을 알린 건 타이포그래피 포스터가 아닐까 합니다. 간판의 역할도 대신하고 있고요.

브랜딩 의뢰 당시, 제일 중요하게 요구했던 사항이 ‘에이징(Aging)’이었어요.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 사이에서도 굳건히 중심을 잃지 않길 원했죠. 포스터 역시 ‘에이징’의 가치를 염두에 둔 거예요. 신문을 인쇄하는 데 주로 쓰이는 윤전기* 종이를 사용했어요. 시간이 지나며 빛, 온도, 습기에 따라 변화하는 종이 질감이 포인트입니다. 또, 매장이 조금은 갸우뚱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어 포스터로 확실한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파치드 서울’을 반복해 적어 직관성을 강조했습니다.

* 윤전기 원통으로 가압해 피인쇄체에 인쇄하는 방식의 기계

 

© T-FP

 

한 인터뷰에서 도쿄의 카페, ‘리틀냅 커피 스탠드’에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했습니다. 공간 구상에 영감을 준 또 다른 아이디어가 있다면요?

첫 디자인 미팅 당시 오래된 코토반 구두, 가죽 의류, 빈티지 시계 등의 사진을 두고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납니다. 이처럼 파치드도 시간이 지날수록 멋스러워지는 공간이 되길 바랐어요. 긴자 뒷골목의 오래된 지하 재즈클럽처럼 한국, 일본 스타일로 변형된 미국 문화에도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 Parched Seoul

 

인테리어엔 붉은색과 청록색이 조화롭게 어우러져요. 키 컬러로 설정한 이유가 있나요?

우선 한창 유행하던 올 화이트나 비비드한 컬러는 배제했습니다. 애매한 실내 채광을 살려줄 색이 필요했어요. 낮엔 본연의 색 자체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저녁엔 공간을 더욱 진하고 따뜻하게 만들어 줄 컬러가 두 가지 색이라고 생각했지요. 트렌드를 타지도 않을 것 같았고요.

 

© Parched Seoul
© T-FP

 

반지하임에도 불구하고 채광이 훌륭하네요.

내부 디자인에 관한 고민을 거듭하던 중 커피바의 천장, 즉 지상 1층 바닥을 과감하게 없애기로 결정했어요. 건물 연면적이 줄어든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커피바의 층고가 높아짐으로써 얻게 되는 이득이 더 컸습니다. 여기에 글라스블록을 사용해 들어오는 빛을 살리고 커피바 겸 카운터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줬어요. 덕분에 ‘반지하’라는 공간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죠.

 

© T-FP

 

좌석 배치 역시 신선해요. 마주 보는 자리가 없어요.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입니다. (웃음) 마주 보는 것보단 나란히 앉아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해요. 대화가 더욱 편해지고 진실해지는 느낌이거든요. 손님들 사이에서도 이런 대화들이 많이 오고 갔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마주 보는 것을 선호하는 분이나 작업하러 방문해 주시는 분을 위해 대형 테이블 좌석도 따로 구비해 뒀답니다.

 

© Parched Seoul
파치드 서울의 매장 음악은 항상 ’공간'을 최우선으로 한다. 음반을 교체할 때 찾아오는 고요한 정적도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이색 경험. © T-FP

 

매장 음악은 LP와 CD로 직접 선곡해요. 한 편엔 빈티지 오디오도 놓여있고요.

아버지께서 빈티지 오디오 기기를 수집하는 취미가 있으세요. 유년 시절, 각종 오디오 기기와 음반을 보고 들으며 자랐던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수집한 양이 꽤 많아 컨테이너 창고에 따로 보관 중인데, 그중 카페와 어울리는 것을 골라 비치하고 있어요.

 

© T-FP

 

재떨이, 구둣주걱, 배지 등 자체 제작 굿즈도 새로워요.

‘에이징’의 가치를 중시하다 보니 자연스레 한국의 오래된 관광호텔들이 떠올랐어요. 그곳의 굿즈나 어메니티 등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특별한 목적이 존재하는 물건보단 일상 속에서 오랫동안 활용될 수 있는 아이템을 만들고 싶었어요. 굿즈를 통해 카페 밖에서도 한 번씩 저희의 공간을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파치드 맨숀은 8~90년대 서울 중심지 관광호텔을 모티프로 한다. 이름이 박힌 빈티지한 러그, 샤워가운, 타월도 이 같은 콘셉트에서 착안한 것. 시기를 고려한 플레이리스트, 이태원 스폿을 정리해 둔 카탈로그도 함께 제공한다고. © Parched Mansion

 

같은 건물에 카페 ‘파치드 서울’과 호스텔 ‘파치드 맨숀’을 동시 운영 중입니다. 호스텔을 시작한 계기는요?

카페로서의 공간 확장이 꼭 체인점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위치는 동일하되 공간에 변주를 주고 싶었습니다. 건물 위에 호스텔이 생긴다면, 투숙객들에겐 카페가 호텔의 프런트이자 로비가 되는 거잖아요. 이러한 점이 꽤나 신선할 것 같았어요. 그러던 중 때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와 시작하게 됐지요.

 

 

301호와 302호, 두 방의 다른 점이 있나요?

두 방 모두 큰 틀은 비슷합니다. 다만 침대의 높낮이, 가구 배치, 공간 구획 등에 있어 조금의 차이를 두었어요. 높은 침대가 있는 301호는 조금 더 아늑한 느낌이고, 302호는 따뜻한 햇볕이 매력적입니다. 손님 개개인의 취향이나 목적에 따라 선택이 나뉘곤 해요.

 

모퉁이엔 서적에 관한 간단한 소개 글과 이를 읽으며 공간에서 느꼈으면 하는 바람들이 적혀 있다. © Parched Mansion

 

방 한 편엔 디자인 서적과 사진집을 배치했죠. 책마다 짧은 서평을 적어뒀네요.

서비스센터 배재희 디렉터 님과 함께 공간에 어울리는 서적을 선정했어요. 파치드 맨숀에서의 경험을 조금 더 풍성하게 만들어 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서울’에 관한 책들을 모아둔 파트도 있는데요. 서적을 읽으며 ‘서울’이란 도시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셨으면 해요.

 

© Parched Mansion

 

조명, 식기, 가구엔 모두 파치드의 손길이 닿아있어요. 숨겨진 에피소드가 담긴 물건이 있다면요?

대부분의 조명은 을지로 ‘에이스포하우스’에서 구매해요. 분위기에 맞는 아이템을 적절히 추천해 주셔서 자주 찾게 됩니다. 빈티지 조명이라 체크인을 앞두고 예기치 않게 곤란한 상황이 생기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대표님들의 도움으로 수월하게 해결하고 있어요. 이 기회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네요.

 

 

이태원 야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루프탑도 아름다워요. 연진영 작가의 오브제가 눈에 띕니다.

작가님 작품 특유의 아노다이징* 기법과 컬러 플레이에 매력을 느껴 수소문한 뒤 문의드리게 됐어요. 그렇게 계절을 초월해 싱그러움을 내뿜는 레몬색 테이블과 붉은색 계열의 평상 오브제가 탄생했습니다. 탁트인 남산 풍경과도 아주 잘 어우러져요. 오브제에 앉거나 누워 서울의 풍류를 즐겨보세요.

* 아노다이징 금속 표면 처리 방법 중 하나

 

© Parched Mansion

 

새해를 맞아 ‘파치드’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를 묻고 싶어요.

평양냉면을 매우 좋아합니다. 먹을 때마다 모든 면에 있어 평양냉면 같음을 추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파치드’도 마찬가지입니다. 있는 듯 없는 듯, 무심한 듯 아닌 듯. 느리고 싱거울 수도 있지만 오래도록 깊게 스며드는 공간이 되고 싶어요.

 

 

지선영 기자

자료 제공 파치드서울, 파치드맨숀

장소
파치드서울
주소
서울시 용산구 녹사평대로40다길 3-3
헤이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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