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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05

날아다니며 향을 내뿜는 기계?

아니카 이의 은밀하고 대담한 예술 세계
얼마 전 재개관한 리움 미술관에서는 새로운 소장품이 눈에 띈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아티스트 아니카 이(Anicka Yi)의 설치 작품이다. 천연 해초를 이용하여 만든 거대한 고치 형태의 쉘. 은은한 빛을 뿜는 그 노란색 랜턴 안에서 기계 나방이 작은 소리를 내고 있다. 이것을 바라보는 관객의 마음속에는 연약한 생명체에서 느낄 법한 연민이 인다. 과연 이것은 모순된 감정일까, 자연스레 받아들여야 할 현실일까? 변화하는 인간과 과학 기술의 관계. 아니카 이의 예술 세계를 들여다 본다.
Anicka Yi, “Biologizing The Machine (tentacular trouble),” 2019, Kelp, acrylic, animatronic moths, concrete, water dimensions variable.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Gladstone Gallery, New York and Brussels, and 47 Canal, New York. Photo: Renato Ghiazza
Anicka Yi, Installation view, “We Have Never Been Individual,” at Gladstone Gallery, Brussels, 2019. Courtesy the artist and Gladstone Gallery, New York and Brussels
Anicka Yi. Photo credit David Heald

 

아니카 이. 다소 낯선 이 이름의 주인공은 현재 런던 테이트 모던에서 개인전이 한창인 아티스트다. 그녀는 현대 커미션(Hyundai Commission) 시리즈 최신 전시의 주인공으로 자신의 업데이트된 ‘생명활동을 하는 기계(biologized machine)들로 그 유명한 테이트 모던의 터바인 홀(Turbine Hall)을 점령했다.

 

(좌) Installation view of Hyundai Commission Anicka Yi at Tate Modern. Photo courtesy Tate (Joe Humphrys)
(우) Installation view of Hyundai Commission Anicka Yi at Tate Modern. Photo courtesy Tate (Joe Humphrys)

 

에어로브(Aerobe)라고 이름 지어진 두 가지 종의 기계들이 터바인 홀의 허공을 마치 자신들의 서식지인 양 가르며 날아다닌다. 난데없이 스타워즈의 한 풍경 같은 현실을 마주한 관객들. 반투명한 몸통의 ‘제노젤리스(Xenojellies)가 머리 부분과 촉수를 지녀 해파리 같은 인상을 준다면, ‘플래눌래(Planulae)는 고동을 닮은 동글납작한 형태이며 노란색 털로 덮여있다. 이들은 헬륨으로 채워져 있으며 회전자(rotor)에 의해 앞으로 나아간다. 배터리팩으로 작동되는 인공지능 로봇들이다.

 

Installation view of Hyundai Commission/ Anicka Yi. Photography by Will Burrard-Lucas © Tate 2021
Installation view of Hyundai Commission/ Anicka Yi. Photography by Will Burrard-Lucas © Tate 2021

 

이들의 특별함은 역시 섬세한 감각의 영역에 도전한다는 데에 있다. 미술관을 찾은 관객들의 온기에 반응하여 꽁무니를 뒤쫓는가 하면 주기적으로 새로운 향을 내뿜기도 한다. 작가는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진다. 살아 있는 생명체 같은 로봇과의 공존을 유쾌하게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날선 경각심을 키워야 할 때인가.

예술에 과학을 접목시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낸 아니카 이. 그녀의 작품 세계에 대한 관심은 최근 <뉴욕 타임즈>와 <가디언> 등에서 집중 조명될 정도로 뜨겁다. 이쯤 되면 그녀의 독특한 작품 세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녀는 가족들과 두 살 때 미국 알라배마주, 이어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아버지는 개신교의 성직자였으며, 어머니는 생물의학 회사에서 일했다고 한다. 뉴욕의 헌터 컬리지에서 공부하던 그녀는 1990년대 영국으로 거처를 옮겨 패션 스타일리스트로 일했다. 이 시간을 그녀는 이방인으로서의 시간으로 기억하는데, 대학에서 미술을 배운 바 없는 그녀가 예술계의 아웃사이더적 관점을 형성한 배경이기도 하다. 작가는 30대 중반부터 향수와 과학에 대한 관심을 발판 삼아 자신만의 유니크한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Anicka Yi Installation view, “7,070,430K of Digital Spit,” Kunsthalle Basel, 2015

 

작가는 마흔 살이 되던 2011년에 첫 개인전을 열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2015년.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획기적 전시가 열렸으니. 뉴욕 키친 갤러리(The Kitchen)에서였다. 작가는 여성의 누드를 담는 회화나 조각의 전통적 개념에 대항하는 의미로 여성의 향을 탐험하는 독특한 작품을 고안했다. 주변 네트워크를 총동원하여 1백 명의 여성에게 개인적 표본을 부탁했는데, 그건 그들의 구강과 생식기에서 얻은 것이었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녀는 그렇게 모은 샘플을 용기에 담아 박테리아를 배양했고, 그 안의 향 분자를 분석한 데이터로 상업적 향수 같은 화학 물질을 생산했다. 혼합된 총천연색의 박테리아로 그림을 그리고 그 향을 디퓨저로 느끼게 한 것이 전시 ‘You Can Call Me F’였다. 이후 미국 MIT의 예술과학기술센터에 입주 작가로 선정되면서 생물학자, 화학자들과의 협업이 보다 수월해졌다.

한편, 작가를 세계적 반열에 올려 놓은 것은 2016년의 휴고보스 상과 이를 전시한 이듬해 뉴욕 구겐하임 뮤지엄의 전시 ‘The Hugo Boss Prize 2016: Anicka Yi, Life is Cheap’이었다. 당시의 인터뷰에서 작가는 반문한다. 모든 예술 작품이 영원히 남겨져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겠냐고.

 

(좌) Installation view of Hyundai Commission Anicka Yi at Tate Modern. Photo courtesy Tate (Joe Humphrys)
(우) Installation view of Hyundai Commission Anicka Yi at Tate Modern. Photo courtesy Tate (Joe Humphrys)

 

다시 테이트 모던의 터바인홀로 돌아오자. 그 외계 생물체 같은 기계들을 더욱 실감 나게 만드는 것은 시간이 흐르며 발전하는 행위나 상호작용뿐 아니라 그것이 뿜는 독특한 향이다. 작가는 템즈 강변에 자리 잡은 과거 화력 발전소이던 테이트 모던의 과거를 상상하며, 특정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냄새들을 창조했다. 매주 바뀌는 그 냄새들은 선캄브리아 시대의 바다 냄새에서부터 백악기의 초목 향, 14세기 흑사병에 대응한 향신료 냄새, 20세기 기계 문명을 대변하는 석탄과 오존까지 다양하다. 그야말로 향의 풍경을 재현하는 셈.

 

Installation view of Hyundai Commission Anicka Yi at Tate Modern. Photo courtesy Tate (Joe Humphrys)
Installation view of Hyundai Commission Anicka Yi at Tate Modern. Photo courtesy Tate (Joe Humphrys)

 

생각해 보자. 어떤 향은 우리에게 노스탤지어를 떠올리게 하는가 하면, 또 어떤 향은 그 존재만으로도 편안한 위안을, 또 어떤 향은 참을 수 없는 불안감을 조성하기도 하지 않던가. 그런 면에서 향만큼 은밀하고 파워풀한 것이 또 있을까. 같은 의미에서 여기 터바인홀에 서 있는 관객은 이 지역의 과거는 물론 그 장소를 공유하는 모든 생물체와 연결되는 듯한 느낌을 얻는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아니카 이의 후각적 재료는 물질적, 시각적 재료보다 훨씬 더 근원적이고 포괄적인 이야기를 담아내게 되는 것이다. 그녀를 공기를 조각하는 아티스트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테이트 모던의 전시 ‘In Love With The World’는 2월 6일까지 이어진다.

 

 

한예준 기자

자료 제공 테이트 모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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