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04

여여로에서 찾은 쉼의 행복

디저트와 차로 나를 보듬어줄 시간!
업무, 학업, 육아 등 한 가지 일에 몰두하다 보면 어느 순간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기 싫어질 때가 있다. 이렇듯 신체적, 정신적인 피로감을 느껴 무기력증, 자기혐오 등에 빠지는 상태를 ‘번아웃증후군’이라 칭한다. 현대인의 고질병이라고도 불리는 해당 증후군은 무한한 경쟁을 유도하는 사회에 지친 이들이 많다는 반증인 셈이다. 영상, 사운드, 설치, 그림 등 다양한 작업 활동을 꾸준히 이어온 미술작가 ‘료니’와 ‘이베르’ 부부는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도피처를 제공하고 싶어 ‘여여로(如如路)’를 오픈했다.

 

이들 부부가 연을 맺기 전 공통점으로 느낀 부분이 있었는데, 지인들이 바쁜 일상에 지치고 힘들 때면 이들의 작업실이나 집에 방문해 담소를 나누며 쉬다 갔다고 한다. 점차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본인들의 강점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고 이것이 카페 오픈으로 이어졌다고. 유니크함, 힙함이 아닌 철저하게 편안함, 휴식에 초점을 맞춰 설계된 공간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운영자 부부에게 여여로의 이야기를 들었다.

 

 

Interview with 여여로

 

 

‘여여로(如如路)’라는 카페 이름은 어떤 의미인가요?

‘여여’란 산스크리트어로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말합니다. 여여에 길 ‘로(路)‘ 자를 더해 ‘본연의 모습’, ‘가장 평온한 상태로 가는 길’이라는 의미의 합성어입니다. 의미가 곧 공간의 콘셉트이길 바라며 지었지만, 사업을 시작하고 저희가 가진 삶의 철학이 흔들리지 않고 공간에 책임감을 느끼고 끊임없이 노력하고자 하는 마음도 담았습니다.

 

미술작가 ‘료니’와 ‘이베르’ 부부

 

동서양의 문화와 철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디저트와 음료를 선보인다고요.

저희는 각 나라의 차와 디저트 문화, 그리고 그들만의 철학을 존중하고 존경하며, 특정 문화와 철학에 국한하지 않고 여여로에서만 느끼고 즐길 수 있는 메뉴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사실 수년간 작업 활동만 해온 터라 메뉴 구성에 두려운 부분이 많았어요. 메뉴를 단순히 음료와 디저트로 생각하지 않고, 작업의 연장선이라 생각하고 메뉴를 개발했죠. 보고 느끼는 것이 작품의 중심이라면, 특히 음식은 시식을 통한 직접 경험이기 때문에 좋은 재료에 정성을 담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새 작품을 전시에서 선보이듯 계속해서 여여로만의 메뉴를 개발할 예정입니다.

 

자정의 강

 

여여로의 대표 메뉴를 소개해 주세요.

‘자정의 강’은 오가닉 로즈마리와 히말라야 솔트를 베이스로 만들어진 수제 아이스크림으로, 자정의 강 형상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디저트를 먹다 보면 아이스크림이 녹아 그림을 그리듯 본인 만의 자정의 강이 만들어지는데요. 디저트 디쉬가 곧 각자의 캔버스가 될 수 있도록 개발하였습니다.

 

여섯 계절의 브라우니

 

‘여섯 계절의 브라우니’는 여섯 피스의 브라우니로 여섯 개의 계절을 표현한 디저트입니다. 계절을 단순히 4개로 나누기엔 더욱더 세세한 계절이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메뉴죠. 브라우니는 저희가 느낀 고객님의 성향에 따라 디쉬를 고르고 가니쉬 스타일도 매번 다르게 선보이고 있습니다.

 

(좌) 양 세는 소년, (우) 별 가까이 사는 밤

 

‘아름다운 통로’, ‘양지의 씨앗’, ‘인디언의 활’ 등 메뉴 이름도 독특해요.

카페에서 판매되는 티는 저희가 직접 블렌딩한 것으로 오직 여여로에서만 맛볼 수 있으며 주요 성분에 따른 효능을 바탕으로 이름을 붙여 판매 중입니다. 이를테면 ‘양 세는 소년’은 정신을 안정시키는 라벤더와 캐모마일로 마음에 안정감과 숙면, 피로회복, 소화에 좋은 펜넬을 더해 블렌딩한 차입니다. 일상에 지치고, 많은 생각으로 쉽게 잠들지 못하는 현대인에게 아무 걱정 없이 양을 세는 소년처럼 편안한 숙면을 선물하는 마음에 ‘양 세는 소년’으로 이름을 정했습니다.

 

인디언의 활

 

‘인디언의 활’은 항암물질 포다르코 성분으로 항생·항균에 탁월한 효과가 있어 염증과 알레르기 완화에 좋습니다. 포다르코 나무는 인디언 시대에 여러 부족이 활을 만드는 데 사용됐다고 해요. 저희는 그 이야기가 무척 마음에 들어 인디언의 활이라고 이름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커피가 아닌, 차 중심의 카페를 고수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오픈 당시 전통찻집이 아닌, 다양한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길 바라며 커피도 함께 판매했습니다. 하지만 저희의 생각과는 다르게 커피, 아인슈페터너와 같이 익숙한 메뉴를 더 자주 찾으셨어요.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는 공간이기보다, 단순 카페라는 이미지가 짙어지는 것 같아 과감히 커피를 메뉴에서 제외하였습니다. 이에 한동안 손님도 뜸해지고 커피가 없어 다시 돌아가시는 분들도 있었어요. 하지만 조금씩 여여로에서 차를 경험하고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아져 손님이 늘고 있습니다. 저희 또한 그랬던 것처럼 처음에는 다소 어렵고 생소할 수 있으나, 차와 문화를 조금씩 알게 되면 차만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친 일상에서 잠시나마 쉼터의 도피처가 되기를 원합니다’라는 말처럼 카페를 들어서면 마치 휴양지에 온 듯한 기분이 들어요.

저희가 원하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직접 건축을 하는 등 오랜 시간에 걸쳐 여여로를 완성했어요. 동남아시아, 제주도 등 휴양지 같다고 많이들 말씀해 주시지만, 특정 나라나 공간에 영감을 받았다기보단, 개인적인 경험과 성향을 토대로 만들어진 공간입니다. 건축물부터 오브제, 정원의 작은 식물들까지 직접 선정했기 때문에 저희의 세세한 손길을 하나하나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카페 내 풀장을 설치한 이유도 궁금해요.

저희는 자연스러움을 추구합니다. 예를 들어, 잔디를 심는 것보다 산에서 좋은 흙을 가져와 흙 속에 섞인 씨앗이 그대로 자라나는 야생화로 정원을 꾸민 것처럼요. 계절의 변화에 따라 선물처럼 피어나는 다양한 야생화와 이름 모를 풀을 보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었죠. 또한 조명을 많이 설치하지 않고 시간대와 계절마다 햇볕이 들어오는 모양과 위치를 최대한 관찰할 수 있도록 설계하였습니다. 풀장은 여유롭게 움직이는 하늘의 모습과 흐르는 물, 그리고 흔들리는 나무 모습에 집중하게끔 만드는 장치 중 하나입니다.

 

여여로를 찾는 분들에게 미각뿐만 아니라 시각, 청각의 즐거움을 드리기 위해 노력하신다고.

그날 날씨에 어울리는 음악을 선정하고, 그날 분위기에 맞는 향을 선택하여 피웁니다. 비가 오는 날엔 빗소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음악은 최대한 작게 틀죠. 가끔은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음악보다 좋게 드릴 때면 음악을 잠시 끄기도 해요.

 

여여로에서 직접 키운 유기농 블루베리. 디제트 메뉴 가니쉬로 사용되곤 한다.

 

카페 운영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은 무엇인가요?

여여로를 찾는 고객님이 지친 일상에 잠시나마 도피처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희 부부는 한 공간에 오래 머물 수 있는 성향이 아니었어요. 반복적인 생활에 답답함을 느낄 때쯤 모든 걸 정리하고 어디로 떠나곤 했죠. 그 공간도 결국 익숙해질 때면 그전과 다를 바 없다는 경험을 반복하며 살아왔던 것 같아요. 그러다 자신의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한 것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어요. 장소의 변화보다 마음이 깨끗한 상태면 어디를 가든 평화로우니까요. 단순히 분위기나 실내 장식에 지나지 않고, 지친 마음을 천천히 여유롭게 달랠 수 있는 쉼터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 느림과 정성을 제시하는 공간이 되고자 합니다.

 

 

앞으로의 카페 운영 계획이나 목표가 궁금합니다.

많은 분들이 여여로를 찾아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희는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해서 시도하고 변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처음 그 마음 그대로, 아무리 바쁘더라도 돈과 시간에 쫓겨 우려낸 차를 드리는 공간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서현숙 기자

자료 제공 여여로

장소
여여로
주소
경기 이천시 신둔면 둔터로162번길 3
헤이팝
공간 큐레이션 플랫폼, 헤이팝은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과 그 공간을 채우는 콘텐츠와 브랜드에 주목합니다.

콘텐츠가 유용하셨나요?

0.0

Discover More
여여로에서 찾은 쉼의 행복

SHARE

공유 창 닫기
주소 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