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07

손 안에서 보는 1500편의 영화 포스터

프로파간다의 <영화카드대전집> 3권 완간!
사상의 선전을 의미하는 ‘프로파간다(propaganda)’를 이름 삼은 디자인 스튜디오가 있다. <부산행>, <신세계>, <최악의 하루>, <시네마 천국> 등 수없이 많은 포스터를 작업한 곳. 획일화 되었던 국내 영화 포스터 디자인의 수준을 한층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이들은 결성한 지 10년이 넘은 지금까지 그 명맥을 잇고 있다. ‘프로파간다’는 블루레이 제작사 ‘플레인아카이브’와 합심하여 설립한 영화 음악 레이블 ‘PPR’과, 영화 및 디자인과 관련된 자료를 책으로 만드는 출판 브랜드 ‘프로파간다 시네마 그래픽스’를 론칭하기도 했다. 이러한 행보로 하여금 ‘영화에 진심이다’를 넘어 ‘영화밖에 난 몰라’하는 말이 잘 어울리는 이들은 최근 ‘프로파간다 시네마 그래픽스’에서 출간한 <영화카드대전집> 3권을 완간했다. 1970년대부터 약 20여 년 동안 수집해 온 영화 카드를 한 데 모은 책의 기획 의도와 감상 요령을 물었다.

 

Interview with 프로파간다 최지웅 실장

 

프로파간다 시네마 그래픽스, ⓒ프로파간다

 

<영화카드대전집>을 기획한 계기는?

‘프로파간다 시네마 그래픽스’는 5년 전 1950~60년대 국내 개봉한 외국 영화의 선전물을 모은 <영화선전도감>을 출간했다. 이 책의 연장 선상에서 내가 1970년대부터 약 20년 동안 수집해 온 영화 카드도 책으로 묶고 싶었다. 영화 카드는 앞장에 포스터가, 뒷장에는 극장 소개와 함께 달력이나 가로세로 게임, 지하철 노선도 등이 인쇄된 홍보물이다. 어린이 영화의 경우 학습시간표가 들어가 있기도 했다. 영화 카드는 인터넷이 상용화되기 전 영화 상영 정보를 알려주는 주요 수단이었다. 90년대 후반에는 단관극장이 줄어들고, 멀티플렉스가 개관하며 영화카드 대신 포스터나 엽서 등을 비치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추억 저편으로 사라진 문화를 책으로 남기고 싶었다.

 

프로파간다 시네마 그래픽스, 에 수록된 '태양은 가득히' 영화카드 모습 ⓒ프로파간다
프로파간다 시네마 그래픽스, 에 수록된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의 칼럼 ⓒ프로파간다

 

<영화카드대전집>의 구성은?

연도별, 배우별, 감독별로 분류한 영화 카드를 국내 극장 개봉 순서에 따라 수록했다. 지갑에 넣을 수 있는 명함 크기의 영화 카드를 실물 크기로 감상할 수 있다. 1편은 1957년부터 1980년 사이 개봉한 영화 484편, 2편에는 1981년부터 1988년까지 개봉한 영화 473편, 마지막 3편에는 1989년부터 1997년까지 개봉한 영화 415편의 카드를 실었다. 해외 영화는 원제와 국내 제목이 다른 경우가 있기에 일일이 조사해 정확한 정보를 표기했다.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와 전 씨네21 편집장인 주성철, 씨네21 기자인 이다혜의 칼럼을 실어 보는 재미뿐만 아닌 읽는 재미를 더했다.

 

프로파간다 시네마 그래픽스, <영화카드대전집 2>에 수록된 ‘빽투더퓨처’ 대한극장 버전의 영화카드 ⓒ프로파간다

 

방대한 양의 영화카드를 수집할 수 있던 이유는?

<영화카드대전집>에는 실물로 남아있는 영화카드 대부분이 수록되어 있다. 이는 오랜 시간 애정을 갖고 영화카드를 수집해 온 결과다. 1970년대 생인 내가 태어나기 이전의 자료는 영화카드 수집 동호회 회원의 도움을 받았다. 도움을 주신 분은 또 있다. 언젠가 동묘 벼룩시장에 갔다가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가 한가득 모아둔 옛날 잡지와 영화카드를 발견했다. 희귀한 자료에 눈이 커진 내가 “나한테 파시라”고 여러 번 말했지만 할아버지는 요지부동이었다. 이후 약 2년 동안 그 가게에 들러 눈도장을 찍었더니 마음을 산 건지 “이걸 잘 보관해 줄 사람은 너밖에 없을 것 같다”며 소유권을 넘겨주셨다. (웃음)

 

프로파간다 시네마 그래픽스, <영화카드대전집 2>에 수록된 (전) 씨네21 편집장 주성철의 칼럼 ⓒ프로파간다

 

영화카드로 알 수 있는 과거와 현대 디자인의 차이가 있다면.

피부에 와닿는 것은 인쇄술의 발전이다. 출력 핀이 맞춰지지 않은 채 인쇄된 인물의 얼굴은 심하게 왜곡되곤 했다. 과거에는 흑백 사진을 에어브러쉬로 채색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독특한 색감은 현대 기술로도 재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또한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와 같은 디자인 프로그램이 없던 과거에는 디자이너가 로고 타이틀을 손수 도안했다. 각 디자이너의 개성과 창의성이 느껴지는 디자인은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다. 일본의 표기법을 따르던 과거에는 ‘블루(Blue)’를 ‘브루’로 적기도 했는데, 현재와 다른 과거의 말을 살펴보는 것도 묘미다.

 

 

<영화카드대전집> 1, 2, 3편의 놓치면 안될 감상 포인트

 

프로파간다 시네마 그래픽스, 에 수록된 '태양은 가득히' 문방구 버전의 영화 카드 ⓒ프로파간다

 

<영화카드대전집> 1편 과거 문방구는 영화카드 수집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에 따라 자체 제작한 일명 ‘짝퉁’ 영화카드를 판매했는데 그중 가장 유명했던 것이 <태양은 가득히(1973)>다. 수집가들 사이에서 원본과 짝퉁 모두를 구하려는 노력이 치열했던 기억이 난다.

 

프로파간다 시네마 그래픽스, 에 수록된 '빽투더퓨처' 온천극장 버전의 영화 카드 ⓒ프로파간다

 

<영화카드대전집> 2편 부산의 온천극장은 <빽투더퓨처> 상영을 기념해 별도의 영화카드를 제작하여 배부했다. 부산에서만 구할 수 있었기에 수집가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모았다.

 

프로파간다 시네마 그래픽스, <영화카드대전집 2>에 수록된 ‘배드 타이밍’ 영화 카드 ⓒ프로파간다

 

지금은 홍보대행사에서 영화에 걸맞은 카피를 쓰지만, 과거에는 극장 기획실 직원이 카피를 썼다. 당시 직원의 감수성이 궁금해지는 카피 몇 개를 소개한다. <배드 타이밍(1980)> 포스터에는 한 여자가 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진과 함께 “순간의 행복을 마셔요. 미래의 불행을 타선 안돼…”라는 의미심장한 글이 적혀 있다.

 

프로파간다 시네마 그래픽스, 에 수록된 '이티' 영화 카드 ⓒ프로파간다 ​

 

대구 극장에서 개봉한 <이티(1984)> 영화카드에 적힌 카피도 감동적이다. “언젠가 어린이였던 모든 어른에게, 언젠가 어른이 될 모든 어린이에게”

 

 

<영화카드대전집> 3편 1988년 일본에서 개봉한 오토모 가츠히로 おおともかつひろ, 大友克洋의 <아키라(Akira)>는 현재까지도 애니메이션의 교과서로 불린다. 하지만 1990년대 초 한국은 일본 상영물의 수입 및 상영을 금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아키라>를 수입한 영화사는 중국어로 더빙된 작품을 수입해 <폭풍소년>이라는 새로운 제목을 달고 홍콩 영화로 속여 개봉했다. 이 사실을 개봉 후에야 알게 된 공연윤리위원회는 상영 철회를 지시하고 벌금을 부과했는데 이에 희소성이 높아져 영화카드의 가치 역시 급부상했다.

 

프로파간다 시네마 그래픽스, 에 수록된 '탑건'영화카드와 이다혜 기자의 칼럼 ⓒ프로파간다

 

실제 책을 본 독자들의 반응은?

<영화카드대전집>을 기획 및 발간한 사람으로서 이 책이 한국 영화 홍보의 역사이자, 인쇄 기술과 그래픽 디자인의 발전을 느낄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길 바란다. 많은 이들이 영화카드를 모으기 위해 열심히 극장에 드나들던 시절이 있었다.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의 카드를 구하기 위해 극장 아저씨를 조르다 문전박대를 당한 기억, 탑스타 장국영이 나온 영화 카드를 구한 뒤 기뻐했던 기억 등… 하지만 아무리 많은 영화카드를 수집했더라도 보관을 잘 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영화카드대전집>에 더는 볼 수 없다고 생각했던 영화카드가 모두 있으니 단관극장의 향수가 있는 사람에게 반응이 좋을 수밖에. 한 번은 어느 할머니께서 “지금 하늘에 있는 영감이랑 데이트할 때 봤던 영화가 여기 다 있네”하며 좋아하셨다.

 

프로파간다 시네마 그래픽스, 에 수록된 '애마부인' 영화 카드 ⓒ프로파간다

 

<영화카드대전집>을 통한 앞으로의 계획?

영화카드가 사라질 때쯤, 극장 입구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손으로 그린 간판도 실사출력에 밀려 사라졌다. 이때의 그림을 모아 <영화간판도감>이라는 책을 준비 중이다. 이처럼 ‘프로파간다 시네마 그래픽스’는 단순한 아카이브 북이 아닌, 과거의 낭만에 젖어드는 책을 만들고자 한다.

 

 

 

신은별

자료 협조 프로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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