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nt preview
❶ 도쿄 오모테산도 한 층에 펼쳐놓은 ‘요즘 서울’
❷ 더현대 서울에서 시작된 브랜드 발굴 실험
❸ 팝업에서 플래그십까지, 일본 시장을 두드린 2년
➍ 오픈 한 달, 일본 소비자 반응은?
낯익은 얼굴도 타지에서 마주치면 괜히 더 반갑다. 횡단보도가 널찍한 도쿄 오모테산도 거리에서 ‘THE HYUNDAI’라는 이름을 발견했을 때도 그랬다. 건물 중앙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가자 익숙한 브랜드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코이세이오038의 옷과 스탠드오일의 가방, 더블러버스의 선글라스를 지나면 카멜커피가 나타나고, 다른 한쪽에서는 K팝 아티스트들이 전하는 매장 오픈 축하 메시지가 연이어 재생됐다.
지난 7월 10일 도큐 플라자 오모테산도 ‘오모카도’에 문을 연 더현대(THE HYUNDAI)다. 현대백화점이 운영하는 ‘더현대 글로벌’의 첫 해외 플래그십으로, 약 620㎡ 규모의 한 층에 한국의 패션과 F&B, K팝 콘텐츠를 함께 담았다. 슬로건은 ‘Meet Your Seoul’. 도쿄 한복판에서 어떻게 서울의 분위기를 전할 수 있을까. 더현대는 그 답을 브랜드와 콘텐츠에서 찾았다.
도쿄 한복판에 펼쳐 놓은 서울의 취향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패션이다. 코이세이오038, 로라로라, 더블러버스, 히에타, 스탠드오일 등 다섯 개 브랜드가 입점했다. 스탠드오일을 제외한 네 곳은 이곳이 일본 첫 상설 매장이다. 흥미로운 점은 여러 브랜드의 상품을 한데 모아 진열하는 편집숍 형태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각 브랜드가 자신의 이름을 내건 독립 매장을 꾸렸고, 인테리어부터 상품 구성까지 고유한 분위기를 드러냈다. 한국 브랜드를 일본에서도 하나의 완성된 매장 형태로 경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패션 매장 사이를 걷다 보면 서울 도산공원 인근에서 시작한 카멜커피와 K팝 앨범·공식 MD를 판매하는 위드뮤도 만날 수 있다. 옷과 가방, 선글라스를 구경하다 잠시 커피를 마시고, 몇 걸음 옮겨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굿즈를 구매하는 식이다. 서로 다른 장르를 나란히 배치한 덕분에 한 층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지금 서울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입고, 듣고, 마시고, 좋아하는지 어렴풋이 그려진다.
공간의 일부는 계속 다른 얼굴로 바뀐다. 상설 매장 사이에 마련한 팝업 공간 POP-UP ICONIC과 POP-UP SQUARE다. 개점 당시에는 배우 변우석의 아시아 팬미팅을 기념한 콘텐츠와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떠그클럽의 일본 첫 오프라인 팝업이 각각 들어섰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콘텐츠는 약 2주 간격으로 교체될 예정이다. 일곱 개의 상설 매장이 공간의 중심을 잡고, 두 개의 팝업이 그때그때 새로운 브랜드와 이슈를 끌어들이는 구조다.
더현대 서울 지하에서 시작된 실험
이러한 방식은 더현대 서울을 경험한 사람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다. 특히 지하 2층 ‘크리에이티브 그라운드’를 떠올리면 더현대 오모테산도가 어떤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는지 조금 더 선명해진다. 더현대 서울을 준비하던 당시, 지하 2층을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로 채우라는 미션이 주어졌다. 이미 시장에서 충분히 검증된 브랜드를 유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성장 가능성이 있는 이들을 위한 무대를 마련해보자는 시도였다. 실제로 쿠어, 디스이즈네버댓처럼 젊은 소비자를 중심으로 팬층을 쌓고 있었지만 기존 백화점에서는 만나기 어려웠던 국내 패션 브랜드가 여럿 입점했다. 같은 층에는 서점 스틸북스, 문구점 포인트오브뷰, 라이프스타일 숍 나이스웨더, 빈티지 가구 숍 컬렉트서울 등도 자리했다. 패션은 패션대로, 리빙은 리빙대로 나누는 대신 서로 다른 취향과 장르를 한 공간 안에 섞어놓은 것이다. 무엇을 사러 왔는지보다, 무엇을 새롭게 발견하는지가 중요해지는 구성이다.
팝업은 여기에 속도를 더했다. 고정 매장 사이사이에 마련한 팝업 공간에서 새로운 브랜드와 콘텐츠를 빠르게 선보이며, 비교적 인지도가 낮은 브랜드 역시 자연스럽게 소개할 수 있었다. 동시에 소비자가 어떤 상품과 콘텐츠에 실제 반응하는지도 확인했다. 그렇게 쌓인 경험은 브랜드를 발굴하고, 큐레이션하는 기준으로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백화점의 역할도 조금씩 달라졌다. 이미 유명해진 브랜드를 한자리에 모으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직 성장 과정에 있는 브랜드를 먼저 발견하고 오프라인 무대를 제공하는 역할까지 맡기 시작한 것이다. 더현대 글로벌 역시 이러한 경험에서 출발했다. 서울에서 가능성을 확인한 브랜드를 이번에는 해외 소비자와 연결해보자는 다음 단계가 만들어진 셈이다.
팝업으로 두드린 일본 시장
해외 진출은 브랜드 의지만으로 밀어붙이기 어렵다. 현지에서 수요가 있는지 판단하는 일부터 유통사를 찾고, 매장을 구하고, 마케팅과 현장 운영까지 넘어야 할 단계가 적지 않다. 이름을 막 알리기 시작한 신진 브랜드라면 비용과 위험을 감수하며 상설 매장을 내는 건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다.
더현대 글로벌은 경쟁력 있는 국내 브랜드를 발굴해 해외 유통사와 연결하고, 상품 수출입과 판매에 필요한 실무부터 공간 확보와 현지 운영까지 지원한다. 브랜드는 단독으로 뚫기 어려운 해외 판로를 확보하고, 더현대는 국내에서 쌓아온 브랜드 발굴과 바잉, 공간 기획 역량을 해외로 확장해 새로운 유통망과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 한국 브랜드의 성장이 곧 더현대의 해외 사업 확장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일본 진출의 첫 단계는 팝업이었다. 2024년 5월 시부야 파르코에서 첫 팝업을 열고, 마뗑킴과 이미스 등 한국 패션 브랜드를 일주일 단위로 교체해 소개했다. 팝업은 도쿄를 넘어 오사카, 나고야 등 일본 주요 도시로 넓혀갔다. 한국에서의 인지도만 믿고 곧장 상설 매장을 내기보다, 여러 도시에서 팝업을 반복하며 일본 소비자의 반응을 차근차근 살핀 것이다.
2025년에는 시부야 파르코 4층에 첫 정규 리테일숍을 열었다. 한 브랜드가 1~2개월 동안 공간을 운영하는 방식으로 비교적 긴 호흡이었다. 그다음 단계가 더현대 오모테산도다. 팝업으로 반응을 살피고 정규 리테일숍에서 접점을 넓힌 뒤, 마침내 여러 브랜드가 함께 머무는 거점까지 마련한 것이다. 지난 2년간 일본 곳곳에서 쌓은 경험을 하나로 모았다는 점에서, 더현대 글로벌이 본격적인 확장 단계로 넘어갔음을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소비자 반응은 어땠을까?
초기 반응은 빠르게 나타났다. 현대백화점에 따르면 도큐 플라자 오모카도의 20·30대 방문객은 개점 전보다 5배 이상 늘었고, 매출도 당초 목표를 30% 넘게 웃돌았다고 한다. 주말에는 영업 시작 전부터 입장을 기다리는 줄이 생기기도 했다. 모두 개점 약 2주 만에 집계한 초기 수치지만, 적어도 현지 소비자의 관심을 끌어내는 데는 성공한 모습이다.
반응은 실제 구매로도 이어졌다. 더현대 오픈에 맞춰 새로운 컬러를 선보인 코이세이오038의 펌킨 스커트는 첫 주말 준비 물량이 모두 판매됐고, 더블러버스의 선글라스와 히에타, 스탠드오일의 일부 가방도 초기 물량이 빠르게 소진됐다. 한국에서 이미 인기를 얻은 상품이 일본에서도 수요를 확인했다는 점은 의미 있는 신호다.
다만 개점 효과만으로 일본 시장 안착을 이야기하기에는 이르다. 오모테산도라는 상권과 K패션에 대한 관심이 초기 방문을 이끌었다면, 앞으로는 그 관심을 반복 방문과 구매로 이어가는 일이 남았다. 약 2주마다 바뀌는 팝업이 계속 새로운 방문 이유를 만들 수 있을지, 일본에 첫 상설 매장을 낸 브랜드들이 현지 고객과 얼마나 오래 관계를 이어갈지도 지켜볼 지점이다.
현대백화점은 일본을 시작으로 대만, 홍콩 등 아시아 시장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2030년까지 주요 거점에 10여 개의 플래그십 매장을 구축할 계획이다. 서울에서 가능성 있는 브랜드를 먼저 발견하고 무대를 내주던 경험이 이제는 그 브랜드를 해외 소비자와 연결하는 일로 확장되고 있다. 더현대 오모테산도는 이 전략이 해외에서도 통할지 확인하는 첫 시험대다.
글·사진 김기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