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유난히 아쉬운 공간들이 있다. 동네를 찾을 때마다 사랑방처럼 드나들던 서점, 유난히 마음을 쏟게 되는 카페, 다른 곳에서 보지 못한 물건들이 가득한 편집숍. 그런 공간은 익숙한 자리를 떠났다가도, 다른 보금자리를 찾아 다시 불을 밝힌다. 쉽게 대체되지 않는 이유는 그곳을 오간 사람들이 쌓아온 시간에 있다. 새로운 주소를 향해 재차 발걸음을 옮기게 하는 힘 역시 그 경험에서 비롯된다. 잠시 자리를 비웠던 시간을 지나, 다시 불을 밝힌 약속의 공간들을 소개한다.
유어마인드
연희동 골목 안쪽, 주택을 개조한 건물의 철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책방이 있었다. 유어마인드는 2009년에 시작한 독립서점으로, 2017년 봄부터 연희동 한자리를 지켜왔다. 상업적인 큐레이션보다는 개인의 취향과 시선을 밀도 있게 드러내는 책을 소개해왔으며 전시와 출판, 그래픽 작업을 넘나드는 기획이 함께 놓이는 곳이었다. 연희동을 찾는 이들에게는 목적지가 되기도, 아무 이유 없이 들리게 되는 경유지가 되기도 했다.
유어마인드가 2026년 2월 15일, 약 9년의 시간을 끝으로 기존 공간에서의 영업을 마무리했다. 폐점 소식은 비교적 담담하게 전해졌지만, 그 안에 쌓인 시간만큼 아쉬움도 길게 뒤따랐다. 유어마인드는 책방 사진을 무료로 배포하고, 의자나 선반 등 집기를 판매하는 벼룩시장을 열며 그 마음을 달랬다. 그리고 약 두 달 뒤, 연희동의 새로운 곳에서 다시 문을 열었다. 이전보다 넓은 길가에 자리한 경교빌딩 3층.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된 임시 개장이지만, 천천히 다듬어가겠다는 태도는 유어마인드가 걸어온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훨씬 넉넉해진 공간 속에서도 목재 소재로 구성한 인테리어와 창 너머로 보이는 나무 한 그루가 이전의 소담한 분위기를 떠올리게 한다. 재오픈을 기념해 김주영 작가의 ‘긴 강아지’ 드로잉을 담은 선불 카드를 새로 선보였고, 모든 구매 고객에게 트레싱지 책갈피를 증정하는 이벤트도 진행 중이다.
주소: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 122 302호
플롯룸
유어마인드가 문을 연 날, 같은 층에 또 하나의 공간이 불을 밝혔다. 플롯룸(plot room)이다. 효창공원 인근에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전시를 만들고, 사람을 만나고, 머무는 시간을 쌓아온 곳으로 2025년 12월을 끝으로 문을 닫았다. 플롯룸은 작가 개인의 작업을 가까이에서 보여주는 소규모 전시를 꾸준히 이어왔다. 경제적인 효율보다는 밀도 있는 체류의 시간을 만드는 데 주력했던 한갓진 태도는 연희동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공간 이전과 함께 준비한 전시는 문예진 작가(Oth,)의 사진전 〈뿌리의 방〉이다. 보이지 않는 기반에 관한 질문에서 출발한 작업으로, 식물이 땅속의 뿌리를 통해 서로 연결되고 삶을 지탱하듯, 우리의 삶을 이루는 관계와 감정, 시간의 층위를 이미지로 풀어낸다. 빛과 시간, 화학적 변화를 거쳐 만들어진 사진은 같은 출발점에서도 서로 다른 흔적을 남기고, 그 차이는 각자가 딛고 선 ‘뿌리’가 다르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전시를 기념해 이웃 상점 유어마인드가 제작한 사진 엽서책 〈Room of Fragments〉도 플롯에서 만날 수 있다.
주소: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 122 301호
33 apartment
2017년부터 약 9년간 한남동 조용한 골목을 지켜왔던 33아파트먼트(33apartment)가 올해 3월 영업을 마무리했다. 33아파트먼트는 아트디렉터 차인철, 바리스타 이기훈을 비롯해 서로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던 친구들이 함께 만든 공간으로, 커피를 중심으로 인테리어, 그래픽, 굿즈 등을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왔다. 다양한 브랜드 협업과 팝업, 전시 등 외부 프로젝트를 통해 그 방식을 확장해왔고, 매장 역시 그 연장선에서 끊임없이 변주되어 왔다.
익숙한 동네를 떠나 새로 찾은 보금자리는 서촌이다. 기와 지붕과 목조 골조가 만들어내는 고즈넉한 정취에 파스텔 컬러와 유쾌한 그래픽 요소, 그리고 리빙 브랜드 2UC의 가구들이 더해지자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결을 낸다. 중정을 중심으로 내부와 외부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구조로 공간이 한층 여유롭게 느껴진다. 시그니처 메뉴인 시나몬 번과 다양한 커피 메뉴 역시 그대로 옮겨왔다. 서촌 한옥의 형태를 본뜬 키링과 굿즈 등을 만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됐으니, 주변을 산책할 일이 있다면 들려보는 것을 추천한다.
주소: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11길 21-16
LIFE-PRACTICE-PROJECT
공간에 이국적인 분위기를 더하고 싶을 때,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라이프 프랙티스 프로젝트(LIFE-PRACTICE PROJECT)를 찾게 된다. ‘I do what I do’라는 슬로건 아래, 하루를 충실히 살아가기 위한 도구를 제안하는 이들은 한국과 태국을 오가며 발견한 물건과 장면을 바탕으로 제품을 셀렉하고 개발해 왔다. 그동안은 온라인을 중심으로 운영하며, 오프라인에서는 마포구 숍에서 열리던 간헐적인 팝업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었다. 이번에 홍제천 인근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작업실과 창고, 쇼룸의 기능을 한 공간에 담았다. 평일에는 작업이 이루어지는 테이블이 주말에는 손님을 맞이하는 매대로 바뀌는 식이다. 방문객을 위한 프리 드링크도 제공된다고 하니 봄기운이 완연한 홍제천을 따라 걷다, 잠시 시간을 보내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