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10

국립중앙박물관 2층, 그냥 지나치기 아까운 전시실 3

서화실부터 외규장각 의궤실까지 제대로 보는 법
국립중앙박물관은 2025년 12월 31일 기준으로 연간 누적 관람객수 650만 명을 기록했다. 미술 전문 매체 <아트 뉴스페이퍼Art Newspaper>가 발표한 2024년 세계 박물관 관람객 조사에 따르면 연간 500만 명을 넘은 박물관은 루브르박물관, 바티칸박물관, 영국박물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순이다. 이 기록으로 따지면, 국립중앙박물관은 세계 5위권에 드는 박물관이 된 셈이다. 사실, 이렇게 수치를 따지지 않아도 학생과 관광객이 몰리는 방학·휴가 시즌에 오픈런을 해야 한다는 현실만으로도 국립중앙박물관의 높은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서화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의 인기 요인으로는 K-컬처에 대한 관심을 빼놓을 수 없다. K-Pop은 물론, 지난해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흥행으로 우리 전통문화에 흥미를 느낀 외국인이 많아졌다. 하지만 더 눈에 띄는 변화는 내국인 관람객의 증가다. 2024년 대비 내국인 관람객 수는 81% 이상 늘었다. 이는 MZ세대가 전통문화를 더 이상 어렵고 낯선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유행처럼 즐기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문화유산 관람 목적은 물론, 국립중앙박물관의 굿즈인 ‘뮷즈’를 사기 위해 방문하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주목할 또 다른 변화는 전시 방식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과거 유물을 시대순으로 나열하던 평면적 전시에서 나아가, 정보보다 경험을, 설명보다 여운을 남기는 방향으로 전시실을 재단장했다. 덕분에 관람객은 유물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공간의 분위기와 감각까지 함께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2층 상설전시실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서화실, 외규장각 의궤실, 기증실, 사유의 방이 그 대표적인 공간이다.

먹빛의 고요함을 품은 서화실

비석에 새겨진 글씨를 3D 기술로 벽면에 구현한 ‘옛 비석의 벽’ ©국립중앙박물관

2월 26일, 최근 새로운 모습을 공개한 서화실은 글과 그림의 근원이 같다는 ‘서화동원(書畫同源)’의 정신을 전달한다. 우리 선조들은 글씨에는 인격이 묻어나고, 그림에는 사물과 자연에 대한 뜻이 담긴다고 생각했다. 이 말을 이해하고 전시관을 둘러보면 작은 획 하나에, 쓱 그은 붓터치에서 선조들의 생각과 감정이 보인다.

확대한 추사 김정희의 서체는 한편의 추상화 같기도 하다. 무거운 분위기의 서화실은 먹의 빛에서 영감을 얻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추사 김정희의 거친 붓질을 확대한 타이틀 벽을 시작으로, 서화실은 고요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전시가 끝날 때까지 이어간다. 짙은 먹빛과 수묵에서 영감받은 전시 공간은 집중력을 높여줘 잡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다. 1관은 서예 작품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서예의 다채로운 매력을 느낄 수 있게 전보다 작품 수를 늘렸다고 한다. 조선시대 명필로 꼽히는 안평대군, 추사 김정희, 한호 석봉(한석봉) 등의 글씨를 실제로 볼 수 있는 점도 흥미롭다. 때로는 간결하고 때로는 힘찬 서체를 보고 있으면, 글씨 너머로 작가의 성격까지 보이는 듯하다.

 

한편, 서예 작품이 낯설게 느껴졌던 이유 중 하나는 한자로 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서화실에서는 주요 작품에 해석 캡션을 더해, 내용을 이해하며 필체를 감상할 수 있다.

서화 3관에서는 개관전으로 겸재 정선에게 초점을 맞춘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서화를 시각, 청각, 촉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다감각 테이블 ©국립중앙박물관

2관부터 4관까지는 회화가 전시되어 있다. 기존 서화실이 연대기 순으로 진열되어 있었다면 새로 바뀐 서화실에서는 그림의 기능에 초점을 맞춰 전시돼 있다. 지금은 개관전으로 겸재 정선의 작품들이 집중적으로 전시되어 있는데, 먹으로 금강산의 거칠고 날카로운 산세를 표현한 부분이 인상 깊다. 4관에는 궁궐의 어좌 뒤편에 걸려 있던 <일월오봉도>와 포상화 등 조선시대의 구도와 색채, 표현법을 볼 수 있는 작품들이 걸려 있다. 전시관의 단아하면서 현대적인 공간은 교과서에서만 봤던 서화들을 실물로 보는 경험을 더 신비롭게 만든다.

달빛이 스며드는 외규장각 의궤실

실제 외규장각 내부를 본따 디자인한 외규장각 의궤실 ©국립중앙박물관

서화실과 같은 라인에 있는 외규장각 의궤실은 개장 당시부터 아름답고 신비로운 분위기로 화제를 모았다. 의궤실의 킥은 수백 년의 세월을 견디며 낡고 헤진 232권의 책의(冊衣, 책의 옷이자 겉표지)가 좌우로 늘어선 전시장 입구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빼곡히 진열된 책의는 마치 조선시대 서고로 들어서는 듯한 기분을 자아낸다. 실제로 의궤실은 왕실의 중요 기록물을 보관하던 외규장각 내부와 비슷한 규모로 조성됐다고 한다.

의궤는 프랑스에게 반환받은 보물이다. 책의를 자세히 보면 프랑스에서 표시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책의 통로를 지나면 넓은 공간에 유일본 의궤와 어람용 의궤가 전시돼 있다. 한옥 창호문처럼 만든 벽 뒤편에서 들어오는 빛은 전시장을 한밤의 달빛이 스며드는 외규장각으로 만든다. 한 공간에 하나의 전시품만 놓은 구성 역시 의궤의 무게를 조용히 강조한다.

 

의궤실은 한 번에 8책씩, 1년에 네 차례 교체해 연간 32책을 공개한다. 현재는 숙종의 혼례와 장례 과정을 기록한 의궤가 전시 중이며, 그 절차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사극에서 봤던 과정은 전체 의례의 극히 일부이며, 실제로는 조선이 얼마나 예(禮)를 중시했는지 실감하게 된다. 

한문은 읽을 수 없지만, 디지털북으로 의궤의 내용을 알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다만 의궤 역시 한문으로 기록돼 있어 원문만으로는 내용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열람 방식을 마련했다. 디지털 북을 통해 한자로 된 원문을 한글과 영어로 함께 읽어볼 수 있다. 세세한 부분까지 빠짐없이 기록한 방식이 혀를 내두를 만큼 치밀하게 느껴진다. 그냥 지나치지 말고 꼭 한 번 들여다보길 권한다. 참고로 매일 오후 1시에는 무료 해설도 진행되니, 시간이 맞는다면 들어보자.

마음이 느껴지는 기증관

책가도가 연상되는 기증관의 나눔의 서재 ©국립중앙박물관

서화실과 외규장각을 마주 본 건너편에는 기증실이 있다. 기증실은 말 그대로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유물이 전시된 곳이다. 사실, 개편 전에는 방문객의 발길이 그다지 가지 않았던 곳이었다. 하지만 2024년 초, 전면 개편을 한 이후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꼭 가봐야 할 전시관 중 하나가 되었다.

 

기증관이 주목받게 된 이유에는 오랫동안 수집하고 아꼈던 유물을 공공의 정신에 따라 박물관에 보낸 기증자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 유물들이 조명받을 수 있게 큐레이션과 진열을 다시 한 연구원들의 노력이 있었다. 4개의 관으로 이뤄진 기증관은 문중에서 대대로 지킨 유물, 국외로 반출되었다가 되돌아온 유물, 예술가에게 창작의 원천이 된 유물로 구분되어 있는데 국내 유물 외에도 아시아 지역의 유물과 해외 현대 작가들의 회화도 포함되어 있어 보는 재미가 있다.

기증관 곳곳에는 이렇게 선반에 진열한 방식을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수많은 기증품을 최대한 보여주기 위한 연구원들의 고안한 방법이다. ©국립중앙박물관

기증관이 주목받게 된 이유에는 오랫동안 수집하고 아꼈던 유물을 공공의 정신에 따라 박물관에 보낸 기증자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 유물들이 조명받을 수 있게 큐레이션과 진열을 다시 한 연구원들의 노력이 있었다. 4개의 관으로 이뤄진 기증관은 문중에서 대대로 지킨 유물, 국외로 반출되었다가 되돌아온 유물, 예술가에게 창작의 원천이 된 유물로 구분되어 있는데 국내 유물 외에도 아시아 지역의 유물과 해외 현대 작가들의 회화도 포함되어 있어 보는 재미가 있다.

높이 6.7m 대동여지도

실제로 마주한 대동여지도는 전국을 직접 다니며 완성하고, 책으로 만들었다는 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규모다.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까지 포함해서 2층을 다 돌아봤다면 느낄 것이다. 내 몸이 지쳤다는 것을. 그럴 땐 욕심부리지 말고 1층으로 내려오자. 마침 지금 1층 ‘역사의 길’에서 높이 6.7m에 이르는 대동여지도를 전시하고 있다. 원래 접이식 지도인 대동여지도를 다 펼쳐서 전시한 것으로, 어마한 규모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될 것이다.

 

대동여지도까지 관람을 마쳤다면 마지막으로 뮷즈 샵을 들린 후, 집으로 발길을 향해보자. 물론 다 못 본 유물과 보물들이 눈에 밟히고, 아쉬울 수 있다. 하지만 몸이 지치면 그 아무리 훌륭한 국보라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국립중앙박물관의 유물들은 떠나지 않고 항상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려준다.

  허영은 객원 기자
사진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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