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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3

미술가 최하늘의 퀴어 아트

벌키, 조각과 성소수자.
젊은 조각가 최하늘HaNeyl Choi의 다섯 번째 개인전 <벌키Bulky>가 흥미롭다. 이번 전시의 주제는 ‘퀴어’와 ‘조각’의 조화다. NFT 시대, 그는 조각의 미래를 고민하고 연구하는 미술가로서 조각의 입지가 계속 낮아지고 있다고 평한다. 퀴어도 성 소수자로서의 사회적 입지가 작다는 점에서 조각과 퀴어가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본 것.
전시 포스터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전시 제목 <벌키>는 부피가 커서 움직이기 어렵다는 의미다. 맨 처음 지었던 제목은 긴 문장이었는데, ‘벌크업Bulk up’을 함축한 ‘벌키’로 최종 결정되었다. 퀴어 전체를 다루기보다는 게이들이 몸을 가꾸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사실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리고 조각의 틀에 흙을 붙여서 키워나가는 과정이 벌크 업과 흡사하다고 생각했다. ‘벌키’는 메인 전시장에서 만나는 가장 첫 작품의 제목이기도 하다. 왜소한 몸 위에 근육 모양의 메탈 갑옷을 덧붙여 벌크 업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벌키> 전시는 9월 2일부터 2022년 3월 6일까지 서울 안국역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에서 만날 수 있다.

 

최하늘(Haneyl Choi, b.1991)

 

조각과 성 소수자의 공통점에 대한 이야기가 대단히 흥미롭다. 좀 더 설명해 줄 수 있는지?

이전에는 조각이라는 장르를 가운데 두고 이를 감싸고 있는 미술사, 현황과 같은 것들에 대해 연구했는데, 최근에는 ‘퀴어’에서 가치 치기를 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 전시의 주제가 퀴어와 조각이 된 것.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판화 전시를 종종 열지만 조각 전시는 대단히 드물다. 내가 보기에 우리나라 미술계는 미술관 위주로 돌아가는 상황인데, 조각 분야가 소외받고 있다는 점에서 조각과 성 소수자를 비교하게 되었다. 누군가는 내가 바라보는 조각의 현실에 대한 의견을 반대할 수도 있겠지만, 조각이 유독 판매와 보관이 어렵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간 커밍아웃을 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성 소수자임을 숨겨온 적은 없다. 조각 작품에 당연히 나의 성 정체성이 자연스럽게 가미되어 왔다. 2018년 개인전부터 내가 게이 미술가라는 것을 나타냈으며, 공식적으로는 2020년 P21 갤러리 전시에서부터 ‘퀴어’라는 주제를 본격적으로 선보였다. 서울대 미술대학을 다닐 때 매체 위주의 수업을 받았는데, 매체 미술로서 조각이 나름의 할 일이 있다고 여겨서 퀴어와 조각과 분리해왔다. 하지만 2018년부터 이 두 가지를 분리할 수 없고 나의 정체성이 작품에 묻어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지하게 됐다. 퀴어와 조각을 함께 표현하는 것이 더 재미있고 편하다.

 

씨름 Bulky_fusion 1, 2021,metal, thigh bands(satba), 90(h)x300(w)x22(d)㎝ ⓒ 2021 Haneyl Choi

 

전시 작품에 대해 설명해달라.

메인 공간에 나란히 놓여 있는 세 개의 조각 작품은 각각 도수 치료, 주짓수, 실내 자전거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 이 세 개의 행위는 모두 두 사람이 신체적 접촉을 하게 된다는 개인적 경험에서 시작된 것. 허리가 아팠을 때 도수 치료를 받았는데, 내가 나무토막처럼 누워 있으면 치료사와 이루어지는 신체 결합이 조각적이고 재미있게 느껴졌다. 덩어리 두 개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주짓수도 유난히 몸이 엉키는 운동이며, 유산소 운동을 하다 보면 사람이 기계에 의지하게 된다. ‘퀴어’는 ‘기이하다’는 의미 이외에 ‘성 소수자’라는 뜻도 있다. 일상에 있어서 이렇게 특별한 순간이 종종 있다.

씨름을 형상화한 작품 ‘씨름(벌키 퓨전 I)’은 만화 <드래곤 볼>에서 떠올렸다. <드래곤 볼>에서 남자 두 명의 힘이 합쳐져 더 강한 남자 한 명이 만들어지는 기술이 ‘퓨전Fusion’이다. 이러한 일본 대중문화를 한국의 전통 스포츠 씨름과 결합시켰다. 자세히 보면 좌우대칭 두 개의 형상이 각각 무광, 유광으로 미묘하게 다르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겁박의 순간을 기억하는 육면체 He can't forget those memories, 2021, chrome plated FRP, 120(h)x30(w)x30(d)cm ⓒ 2021 Haneyl Choi

 

‘겁박의 순간을 기억하는 육면체He can’t forget those memories’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작품이 흥미롭다.

반짝반짝 빛나는 육면체 기둥에 밧줄로 묶은 자국이 음각으로 새겨 있다. 게이 컬처Gay Culture에서의 SM플레이Sadomasochism를 조각의 입장에서 다룬 작품이다. SM 플레이를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며, 인간으로서 문제가 없는 행위를 이야기하는 것뿐이다. 남녀 사이의 성별 위계가 게이 사이에는 없으니 말이다. 이 작품은 미니멀리즘 조각의 재미있는 역설이기도 하다. 미니멀리즘 조각은 장식이 없는데 더 제작이 힘들고, 비용이 많이 든다. 반짝인다는 것은 부유함의 상징이기에 이러한 상업적 면모를 강조하기 위해 광을 낸 것. 하지만 미니멀리즘 풍자보다는 매체 연구에 가까운 작품이다.

 

Welcome to my page!, 2021 ⓒ 2021 Haneyl Choi

 

유일한 사진 작품 ‘웰컴 투 마이 페이지Welcome to my page!’는 관람객이 작품이 아니라고 착각하곤 한다. 이를 의도한 것인지 궁금하다.

사진 작품의 주인공 조각 이름은 ‘메튜Matthew’다. 사진의 QR 코드를 찍어보면 메튜의 SNS에서 다양한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그가 우리를 자신의 SNS로 초대하는 것이다. 조각의 의인화인 셈이다. 나의 키와 같은 180cm 높이의 조각을 만들다 보면 친구처럼,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불 꺼진 작업실에 들어서다 보면 작품이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느껴져서 놀랄 때도 있다. 예전에는 사진과 조각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재미있게 느껴져서 이번에 이렇게 사진 작품도 만들게 되었다. 사진에 쓰여 있는 ‘온리 팬즈OnlyFans’는 영국의 SNS 플랫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게이들이 유독 즐겨 사용하는 플랫폼이다.

 

훈련 또 훈련, 정진 또 정진 Rigorous self-discipline, 2021, single channel video, color, sound, 1 min 49 sec (loop) (still cut) ⓒ 2021 Haneyl Choi
이차돈과 혁거세 Two eggs(not balls), 2021 (detail) ⓒ 2021 Haneyl Choi

 

전시장 안쪽에 숨겨진 작은 공간에서는 영상과 작품을 볼 수 있다. 바닥에 놓인 영상 작품과 조각의 조화가 신비롭게 느껴진다.

영상 작품 ‘훈련 또 훈련, 정진 또 정진’은 난을 그리는 과정과 남성의 사정을 연상시키는 여러 물건들이 교차 편집되어 있다. 사군자를 그리는 것은 조선 시대 사대부 선비의 고고한 행위인데, 이를 게이 컬처로 오염시키려는 전략이다. 두 개의 좌대 위 조각 ‘이차돈과 혁거세’는 각각 목이 잘린 이차돈의 얼굴과 알에서 태어난 박혁거세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상에서 퀴어의 지점을 찾고 있기에, 이전에는 김종영 작가의 조각을 퀴어로 오염시킨 적도 있다. 이번에는 한국 설화 중에서 퀴어를 떠올리게 하는 소재를 찾은 것. 목이 잘렸을 때 흰색 피가 솟구쳤다는 이차돈의 설화와 알에서 태어났다는 혁거세의 이야기가 말도 안 되게 퀴어하게 느껴졌다.

 

합신 용자합체(最強合体) Bulky_fusion 2, 2021, eco board, colored sponge, metal and etc., 190(h)x120(w)x140(d)㎝ ⓒ 2021 Haneyl Choi

 

지하 전시장 입구의 조각 작품 ‘합신 용자합체Bulky fusion 2’에 새겨진 QR 코드들도 OnlyFans 사이트로 연결된다. 총 두 개의 작품에서 QR 코드를 이용했는데, 이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달라.

이 작품은 세 개의 조각이 하나로 결합된 형식인데, SNS에서는 원래의 조각 세 개를 각각 볼 수 있다. 일본 만화에 등장하는 로봇 캐릭터는 대부분 ‘남성’인데, 그들이 합체하면 더 강한 로봇이 되는 방식에서 작품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흰색, 핑크색, 노랑색 등 3개의 조각을 만들고 해체하고 분해해서 하나로 합체한 것.

합신 용자합체(最強合体) Bulky_fusion 2, 2021 (before fusion) ⓒ 2021 Haneyl Choi

 

개별 작품 세 점의 합체는 즉흥적으로 작업했다. 이를 분해하면 원래의 작품으로 다시 돌아간다. 계획적으로 작업하는 편인데, 최근에는 즉흥적 시도를 즐긴다. 예전에는 철저한 드로잉에 의거해 제작 시간을 절약했는데, 그러다 보니 흥미가 떨어지는 것 같아서 올해부터 즉각적 작업을 하기도 한다.

 

도수치료 Bulky_sex(combine) 1, 2021 (detail) ⓒ 2021 Haneyl Choi ​

 

이번 전시는 사진, SNS와의 같은 다른 장르와의 결합이 돋보인다.

조각과 다른 장르의 결합에 대해 고민해왔는데, 온라인 플랫폼을 사용하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특히 우리는 QR 코드에 익숙한 세대들이기에 OnlyFans와 결합하게 되었다. 가시화할 것을 가시화해서 퀴어 컬처와 조각의 만남을 보여주고 싶다.

앞으로도 다른 장르와의 결합을 긍정적으로 고려하려고 한다. 개인적 관심도 있지만 현실적인 부분도 영향이 크다. 대부분의 조각가는 작은 공간에서 작업을 하는데, 문이나 복도를 지나 작품을 운반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크기를 자유롭게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조각과 같은 전통 매체는 작업실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나는 큰 작품 제작을 좋아하는데, 작업실 문을 나가기 위해 결합과 해체라는 방법론을 사용하게 되었다. 주목받기 위해서 조각 작품의 규모도 중요하다. 젊은 작가가 큰 조각을 만드는 것에 대한 현실적 어려움을 자각하고 있으며, 이번 전시 조각도 과연 작품이 작업실 문을 나갈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한 결과다.

 

일립티컬 Bulky_sex(combine)3, 2021, elliptical machine, urethane and epoxy on sibatool, fluorescent pigment, lacquer paint, 150x120x130㎝ ⓒ 2021 Haneyl Choi

 

퀴어 아티스트로서의 궁극적 목적은 성 소수자의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고찰인가?

퀴어 아트가 얄팍하기에 벌크업 시키려는 의도도 있다. 퀴어 아트는 당연히 퀴어 해방과 연계되어 전개된다. 대부분의 퀴어 아트는 성 소수자의 인권 가시화를 위한 목적을 가지며, 나 역시 그 이상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뉴욕과 같은 해외에서는 훨씬 더 자유로운 작업을 할 수 있으나,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퀴어 아트 전개는 쉽지 않다.

작가로서 성 소수자임을 밝힌 계기가 있는지 궁금하다.

커밍아웃은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도 아니다. 어느 순간 주위에서 자연스럽게 나의 성 정체성을 알게 되었고, 커밍아웃 이후 더 편해지고 작업하는 것이 재미있어졌다. 성 소수자 분들께 커밍아웃을 추천하고 싶을 정도다. 게이 작가로서 힘든 부분도 있지만 수혜를 받은 부분도 있으니 어떻게 사회에 기여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기도 하다.

30대가 되면서 미혼모, 난민과 같은 사회의 소수자와 협업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이번 전시는 게이로 한정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여성의 입장을 모르기 때문에 미혼모, 레즈비언 등의 이야기는 자제하는 편이다. 언젠가는 우리나라에서도 성 정체성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를 기대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누군가 자연스럽게 커밍아웃을 하게 되는 상상도 해보았다.

 

주짓수 Bulky_sex(combine) 2, 2021, mat, uniform, coated styrofoam, acrylic, paint marker, talc on epoxy and etc., 183(h)x155(w)x120(d)㎝ ⓒ 2021 Haneyl Choi ​

 

우리나라 퀴어 문화만의 특징은 무엇이라고 보는지?

한국의 퀴어 컬처는 다른 나라에 비해 유교적이다. 한국인은 나이에 따른 존댓말을 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를 짐작할 수 있을 것. K-Pop 스타를 퀴어로 다룬 팬픽이 인기 있다는 것도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문화다. 미시적으로 기대하는 부분이 여러 형태이고, 거시적으로 보면 동성혼이 가능한 나라를 지향한다.

벌키(Bulky)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설치전경, 2021 ⓒ 2021 ARARIO MUSEUM

 

조각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가기 어렵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각의 미래 가능성은 어떻게 전망하는가?

모든 매체가 해체되었던 시기가 있었고, 모든 것을 조각이 될 수 있다는 시기가 이어졌다. 나는 이런 생각이 끝나는 시점에 태어났고, 지금 다시 조각의 새로운 가능성을 측정하고 연구하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본다.

조각의 희망찬 미래를 전망하기에, 한국 시장은 미약하지만 소외받던 회화와 조각 전시가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예를 들어서 3D 프린팅은 내가 대학 다니던 시절에는 옵션이었는데, 요즘은 필수로 배운다. 이런 첨단 기술과의 연계가 조각의 장밋빛 미래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서울대 미술대학에서는 조각의 카빙을 교육하는데, 그때는 잘 몰랐지만 이런 기본 기술이 조각가의 좋은 자양분이라고 느꼈다. 서울대 미술대학 선배 중에도 퀴어의 감성을 내용적 맥락에 넣는 분이 있지만, 나는 좀 더 형식적으로 접근한다.

벌키(Bulky)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설치전경, 2021 ⓒ 2021 ARARIO MUSEUM

 

미술가로서의 목표를 한마디로 설명한다면?

내 조각 중 게이스러운 과정을 찾는 것에 몰두하고 있으며, 노골적 방식은 지양한다. “타인의 인생에 신경 쓰지 말아라.”가 어쩌면 내 작업의 궁극적 목표일 수 있겠다. 우리나라는 남에게 너무 신경 쓰고 남의 시선을 의식해야 한다는 것이 안타깝다.

 

 

이소영

자료 협조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장소
아라리오 뮤지엄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83)
일자
2021.09.02 - 2022.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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