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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말에이
을지로는 세월과 삶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곳에서 트렌디한 의미와 비주얼을 발견해내려는 움직임이 주목을 받으면서 급부상한 동네다. 일명 ‘힙지로’라는 명칭까지 붙으며 어느덧 젊은 세대들의 핫플레이스로 자리잡은 이곳은 생활의 장면이 녹아 있는 골목의 숨은 풍경과 투박하고 과감한 디자인의 간판들로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모으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힙지로’라는 정체성 하에 일관적이고 단편적인 이미지만을 생산하려는 맥락 없는 움직임에 의해 소비되는 현상도 목격된다. 을지로는 ‘힙지로’이기 이전에 오랜 세월 무언가를 만드는 일에 몰두하며 생업을 지켜 온 사람들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장소다.
이번 기획전에서는 힙지로로만 규정되지 않는 을지로의 또 다른 모습을 조명하고 공유하기 위해 을지로에 대한 자신만의 이야기를 들려줄 창작자들이 모였다. 인쇄, 금속, 전기 등 서울 도시 제조업의 중심지로서의 을지로부터 창작자의 영감이 현실화되는 곳까지 폭넓게 조명한다. 그러한 을지로의 모습을 담아낸 창작자들의 작업노트와 서적, 상품들을 소개한다.
1. 세 창작자의 ‘을지로 포스터’
김푸른, 솜프레스, 오이웍스 세 크리에이터가 ‘을지로 인스피레이션’을 위한 미니 포스터를 제작했다. 각자 을지로에 대해 생각하는 바와 자신만의 영감들을 하나의 대지 위에 자유롭게 표현해냈다.
일러스트레이터 김푸른은 ‘알록달록하고 정신 없게 돌아가는’ 을지로의 모습을 담았다. 막 인쇄를 마친 작업물을 싣고 이동하는 삼발이, 오토바이 등의 이동수단과 강렬한 글씨체의 간판, 인쇄소의 소음과 잉크 냄새 등 창작자로서의 그의 시간에 배어있는 을지로의 다양한 감각들에 주목했다.
1인 출판사이자 그림 스튜디오 솜프레스는 을지로를 기반으로 책을 제작해 왔다. 책을 기다리는 동안 덩굴처럼 얽힌 을지로 골목 사이의 한 인쇄소에서 책이 열매처럼 열리는 상상을 하곤 했던 경험을 담아냈다. 더불어 인쇄 장인들의 손길과 시간을 거쳐 탄생한 책들을 단단하게 맺힌 열매로 표현했다.
그래픽 디자이너그룹 오이웍스는 을지로에서 생산되는 섬세하고 정밀한 작업물들에 영감을 받았다. 인쇄, 제본, 후가공 등이 서로 정확히 맞물려야 좋은 작업물이 탄생한다. 오차가 없는 정확한 이미지로서의 을지로를 바라보며, 인쇄 골목의 건물과 간판, 인쇄 기계와 이동 수단 등을 포착했다.
2. 을지로의 모습을 기록한 책
노말에이는 이번 기획전에서 을지로를 주제로 한 책들도 함께 소개한다. 을지로의 다양한 상점을 아카이빙한 디오브젝트의 ‘euljiro’, 철거가 진행 중인 을지로의 모습을 포착한 설동주의 ‘을지로 수집’, 메이커시티로서의 세운의 미래를 조망한 ‘만드는 사람들의 도시’를 큐레이션했다.
3. 을지로 장인과 협업해 제작한 상품
금속 거리로 불리는 을지로4가를 기반으로 스튜디오 학을 운영하는 이학민 디자이너는 금속 선반 가공 장인과 협력하여 황동봉으로 만든 ‘성냥 문진’을 선보인다.
세운상가 부근에 위치한 디자인 스튜디오 m t o가 선보인 ‘별똥꽃’은 모빌과 화병 중 선택하여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조립형 오브제로, 화사한 컬러와 단정한 모양새가 특징이다. 세운협업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아 인쇄 장인들과 협업해 제작된 제품이다.
4. 다시세운프로젝트 ‘OO은대학’의 세운기념품 프로젝트
서울시 다시세운프로젝트 소속 단체 ‘OO은대학’이 주최, 주관한 <세운은대학 : 세운에서 만들자_세운기념품>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된 상품과 서적도 알차게 평대를 채웠다. 청년 디자이너 13팀이 6개 팀으로 나뉘어 충무로 소재 인쇄기획사 6곳과 파트너가 되어 세운기념품을 제작한 프로그램이다.
먼저 이음의 ‘굴러가는 인쇄골목’은 을지로에서 꾸준히 생계를 이어가며 산업 생태계를 지켜나가는 인쇄 산업의 운송업자 분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책이다. 그와 함께 운송문화를 보다 입체감 있게 경험할 수 있도록 직접 조립한 삼발이와 지게차 모형을 함께 전시했다.
그래픽 디자이너 그룹 팔스리는 사라져가는 을지로의 제조업 현장 모습과 골목의 풍경을 기억하기 위해 촬영한 사진과 수집한 이야기를 모아 엽서집 ‘골목’을 제작했다. 또한 골목 탐방용 필름 카메라를 함께 제공해 사람들에게 직접 새로운 골목을 발견하는 탐방 활동을 제안한다. 또한 디자이너 그룹 아임은 을지로와 세운상가의 물성과 소리를 그래픽으로 시각화 하여 숨겨진 조각들을 모아 만든 모음집 ‘조각모음’을 제작했다.
크리에이터 듀오 하하호호그룹이 선보인 것은 ‘inket x plant kit’. 충무로 인쇄골목에서 옵셋인쇄 후버려진 폐잉크통을 가드닝 키트로 탄생시켰다. ‘작은 부품을 통한 재발견’을 콘셉트로, 도시의 분업화를 포착하고 재미있는 활용성을 부여했다.
마지막으로 을지로에서 꾸준히 서점과 출판 일을 지속해 온 노말에이에게 그가 생각하는 을지로를 물었다. “제가 생각하는 을지로는 시간이 오래 축적되어 있는 곳이에요. 골목에서 오래 일해오신 분들의 기술력이 축적되어 우리가 이렇게 책도 만들 수 있는 것이지요. 젊은 사람들이 한 번 왔다가는 관광지로 비춰지기보다 오래 터전을 일궈 온 분들의 장인 정신이 보여질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어요.” -노말에이 서지애 대표
글 소원
자료 협조 노말에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