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간기획사 담장너머와 디자인 스튜디오 시리얼넘버를 운영하며, 도시의 공간이 어떻게 사람의 경험을 바꾸는지 관찰해 왔다. 동아일보에서 ‘정훈구의 인터스페이스’ 연재를 통해 도시와 브랜드, 건축의 관계를 기록하기도 했다.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한 가지 질문이 생겼다. ‘왜 지금, 브랜드는 다시 오프라인 공간을 이야기할까?’ 그 답을 찾는 과정에서 나는 성수동과 북촌이라는 서울의 두 공간을 마주하게 됐다.
가끔 낮의 성수동 골목을 걷다 보면, 철 냄새가 사라진 자리에 커피 향이 흐른다. 익숙한 공장 지붕은 어느새 투명한 유리 벽으로 바뀌어 있고, 그 안에서는 브랜드가 잠시 머물다 가는 ‘팝업 스테이지’가 켜진다. 사람들은 그것을 ‘체험’ 혹은 ‘경험’이라 부른다.
이제 팝업은 일시적인 이벤트가 아니다. 온라인에서 존재감을 키우던 브랜드가 공간을 통해 이야기한다. 공간은 곧 메시지이고, 사람들은 그 안에서 브랜드의 세계를 체험한다. 8평 남짓한 공간이 하루 임대료 200만 원을 넘기고, 100평 규모 대형 팝업은 수천에서 억 단위로 거래되는 이곳, 성수동.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공장과 창고 작업실로 가득 찬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 성수는 서울에서 가장 빠르게 변신한 상권이다. 연무장길 일대의 하루 임대료는 이제 ‘평당’이 아니라 ‘브랜드’를 기준으로 매겨진다.
이곳의 공간은 단순한 임대가 아니다. ‘성수에 있다’라는 사실 자체가 브랜드 보증서가 된다. 그들은 단순한 노출이 아니라 ‘의미 있는 존재감’을 사고 있다. “성수동에 팝업을 열었다”라는 SNS 한 장의 피드가 곧 브랜드 이미지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결국 그 높은 임대료는 일종의 ‘스토리 비용’이다.
하지만, 이 열기에는 그림자도 있다. 단기 임대는 상가 임대차보호법의 사각지대에 있고, 건물주가 공실을 ‘팝업용’으로 비워두는 일도 많아졌다. 젠트리피케이션과 브랜드 피로도 그리고 지역 정체성의 붕괴가 서서히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성수를 떠나 북촌으로 향하는 브랜드
이제 수많은 브랜드는 새로운 공간으로 향하고 있다. “성수는 우리의 실험실이었다. 이제 다음 무대를 찾아야 한다.” 브랜드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북촌’이다. 한옥과 골목, 문화재와 일상이 뒤섞인 이곳은 소비자에게 ‘여행 같은 일상’을 선물한다. 북촌은 더 이상 고요한 역사 공간이 아니다. 외국인 관광객, K-라이프스타일을 즐기는 세대, ‘느린 소비를’ 지향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향하는 곳이다. 그리고 브랜드는 이를 새로운 기회로 본다.
성수동이 ‘도시의 실험실’이었다면, 북촌은 ‘서울의 기억’을 품은 무대다. 이곳에서는 브랜드가 새로움을 증명하기보다, 오래된 시간과 조용히 대화한다. 전통은 더 이상 과거가 아니라, 요즘 브랜드들이 가장 탐내는 미래의 질감이다.
2025년 여름, 오늘의집은 북촌에 상설 쇼룸 ‘오프하우스(Offhouse)’를 열었다. 지하 1층에서 지상 3층까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잇는 ‘경험형 플랫폼’이 완성됐다. 오늘의집 어플을 통해 바로 제품 정보를 볼 수 있고, 공간에 머무는 순간이 곧 콘텐츠가 된다.
이곳은 브랜드가 팝업을 넘어 ‘지속 가능한 대화’를 시작한 상징적 장소다. 순간을 팔던 브랜드가 이제는 시간을 머물게 하는 법을 배우는 셈이다.
뉴발란스 역시 북촌의 한옥을 리모델링해 러너들의 감성을 담은 전시형 공간 ‘런 허브(Run Hub)‘를 선보였다. 전통의 담장을 사이에 두고 현대 브랜드가 숨 쉬는 모습은, 도시의 시간이 한순간 교차하는 장면 같다.
결말은 아직 모른다, 하지만 질문은 남는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북촌의 어느 골목에서 브랜드가 조용히 손을 흔드는 장면을 떠올린다. 그곳은 브랜드가 머무를 수도, 혹은 더 깊이 스며들 수도 있는 자리다. 성수동 팝업이 하나의 시대를 지나갔다면, 북촌은 이제 새로운 문장을 써 내려가고 있다.
그 문장 앞에서 나는 몇 가지 질문을 떠올린다.
브랜드가 공간을 차지하는 순간, 그곳의 이야기는 누구의 것이 될까?
북촌의 맥락을 살리는 브랜드의 태도란 어떤 것일까?
팝업은 자율적인 문화일까, 아니면 소비의 눈속임일까?
이제 당신이 그 거리를 걸을 차례다. 유리창 너머로 스쳐가는 브랜드들이 어떤 이야기를 건네는지,
잠시 멈춰 귀 기울여보길 바란다. “그 유리창에 비친 건 브랜드의 얼굴일까, 아니면 지금 시대의 얼굴일까.”
글 헤이팝 서포터즈 정훈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