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단색화의 대가 하종현과 발베니, 글렌피딕으로 이름을 알린 세계적인 위스키 명가 윌리엄그랜트앤선즈(William Grant & Sons, Ltd.)가 만나 레이디번 증류소 원액을 모은 네 번째 에디션 ‘레이디 번 하종현 에디션’ 싱글 보틀을 선보인다. 작가 하종현은 캔버스 뒷면에서 앞면으로 물감을 밀어내는 ‘배압법(背押法)’과 같은 노동집약적인 기법으로 사물과 물질성, 공간성에 대한 실험을 해오며 ‘회화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꾸준히 던져왔다. 한 자리에 가만히 안주하는 것을 경계하며 현재까지 아흔이 넘도록 끊임없이 새로운 화풍을 시도하고 있다.
1966년 스코틀랜드 에어셔주(Ayrshire)의 거번(Girvan) 지역에 문을 연 레이디번 증류소는 탁월한 전문성과 최첨단 기술을 활용해 당시 급변하던 사회와 산업 혁신의 상징으로 빠르게 자리매김했다. 설립 이후 1975년까지 9년간 운영되다 폐쇄되어 ‘잊힌 보석’ 또는 ‘유령 증류소(ghost distillery)’라고도 불린다. 그곳에서 숙성되었던 극소량의 원액으로 만들어진 레이디번 위스키는 희소성이 높아 전 세계 위스키 컬렉터의 많은 관심을 불러 모았다. 폐쇄된 후에도 레이디번 증류소가 위스키 증류 산업에 영향을 끼쳐 윌리엄그랜트앤선즈 산하의 다른 증류소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듯 한국적 모더니즘의 개척자로서 단색화와 실험미술을 이끌었던 하종현 작가 역시 한국의 근현대미술사에 한 획을 긋고 그 틀을 다졌다.
레이디번 하종현 에디션 「접합 78-7」, 캐스크 3216
이번 협업은 ‘시대를 초월한 가치와 유산’이라는 싱글몰트 위스키와 현대미술 세계의 공통점으로 연결된다. ‘레이디번 하종현 에디션’은 1970년대에 숙성이 시작된 캐스크의 원액을 모은 첫 번째 에디션으로, 당시 사회적 변화와 예술적 혁신을 담아낸 하종현의「접합」연작 작품과 조화를 이룬다. 꾸준한 실험정신과 재해석으로 고정관념을 탈피했던 하종현 작품세계의 정수를 보여주는 이번 에디션은 1973년 증류된 두 개의 싱글 캐스크로 구성된다. 캐스크 3219는 하종현의 주요 작업이 담긴 10개 보틀로 이루어진 컬렉션으로 지난해 프리즈 런던이 열리던 기간에 맞춰 전 세계적으로 단 10개 세트만 출시되었다. 글로벌 출시되는 캐스크 3216은 전 세계에 총 85병 발매되는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개별 판매되며 작가가 선택한 작품「접합 78-7」(1978)이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