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15

[Destination Stay] 2. 쉼이 필요할 때, 스테이 느릇

메밀 밭과 삼나무로 둘러싸인 고요한 안식처
널리 알려진 관광지가 없는 낯선 마을까지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더 나아가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는 숙소에는 어떤 힘이 있을까. 헤이팝은 ‘데스티네이션 스테이(Destination Stay)’ 시리즈를 통해 숙박을 넘어 여행의 목적지가 되는 스테이 공간을 둘러본다.
ⓒ이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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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질 무렵이 되어서야 도착한 스테이 느릇은 귀가 멍멍할 정도로 조용했다. 쉴 새 없이 고막을 채우는 도시의 소음에 점점 지치던 때에 마주한 고요함이 마음의 평화를 선사한다. 스테이 느릇은 제주 공항에서 차로 약 50분 소요되는 서귀포시 표선면에 자리한다. 농업 회사인 보롬왓에서 운영하는 이곳은 2023년 10월에 오픈한 독채형 스테이다. 네 가지 타입으로 구성된 독채 10채와 체크인 및 조식 서비스가 이뤄지는 리셉션으로 구성된 스테이 느릇은 자연으로 비로소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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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면 청보리와 보라색 유채꽃이, 여름이면 수국과 라벤더로 가득한 보롬왓은 농장이자 대형 카페로 꽃과 함께 사진을 찍으려는 여행객으로 매년 북적인다. 보롬왓에서부터 스테이 느릇까지 15분가량 이어지는 산책길을 걷다 보면 숨겨진 연못과 수국길을 만날 수 있다. 저녁 6시까지 운영하는 보롬왓이 문을 닫으면 스테이 느릇의 투숙객들은 조용한 평원을 거닐 수 있는 특혜를 누린다. 고요하고 드넓은 제주의 자연 속에서 사색에 잠겨 보자.

VIEW

에디터와 함께 살펴보는 스테이 느릇

ⓒ이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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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스테이를 다수 설계한 디자인그룹 지랩이 건축 및 브랜딩을 담당한 곳으로, 공간 구석구석에서 발견할 수 있는 섬세함이 돋보인다. 하룻밤 동안 머물렀던 ‘억새’ 타입은 퀸 침대 두 개, 욕실 두 개로 구성된 최대 4인까지 수용 가능한 객실이다. 내부로 들어서자 은은한 조도와 베이지 톤, 목재로 이루어진 공간이 따스하고 아늑한 분위기로 맞이했다.

 

와인잔부터 다양한 커트러리가 충분히 갖춰진 주방과 바깥 풍경을 마주하는 소파 자리가 감동을 더한다.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도록 외부와 차단한 설계임에도 불구하고, 실내 어디서든 넓은 통창을 통해 탁 트인 메밀 밭과 우뚝 솟은 삼나무를 감상할 수 있어 답답하지 않았다. TV가 두 대나 마련되어 있지만, 이곳에서 머무는 시간만큼은 창 밖의 자연을 두 눈에 한가득 담길.

ⓒ헤이팝
투숙객의 입장에서 배려한 동선

실내에서부터 야외 노천탕과 테라스로 이어지는 동선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점도 인상적이다. 특히, 투숙했던 객실은 야외 노천탕에서 욕실로 바로 이동할 수 있도록 공간을 배치하여 편리하게 이용했다. 메밀 밭 위로 뜨는 아침 해를 바라보며 따뜻한 물에 몸을 담궈 피로를 녹여 내리자. 객실에 마련된 뱅앤울룹슨 블루투스 스피커와 함께 음악을 감상해도 좋을 테다.

ⓒ헤이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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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땀으로 완성하다

어매니티는 보롬왓에서 직접 기르고 재배한 원료가 함유된 제품을 사용하고 있어 공간을 꾸린 이들의 진심 어린 마음과 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따뜻한 목욕을 마친 뒤, 객실에 준비된 차를 우려 마셨다. 이 또한 보롬왓에서 재배한 메밀을 활용해 홍차 또는 허브와 블렌딩한 차로, 깔끔하고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옻칠로 잘 알려진 허명욱 작가의 작품과 기물로 채워진 리셉션에서는 매일 아침 조식이 준비된다. 마치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의 마음으로 하나하나 정성스레 차려지는 한 상이다. 보롬왓에서 재배한 식재료를 사용한다는 점, 전문 식당 못지 않은 메뉴 구성도 인상적이다. 든든한 한 끼 식사로 아침을 시작하며 스테이 느릇에서의 지난 밤을 마무리한다.

MADE BY

스테이 느릇을 만든 사람들

Interview with 이종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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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테이 느릇이 자리한 대지는 원래 어떤 용도로 사용되던 땅이었나요?

사실 이 땅은 방치된 황무지였어요. 느릇은 제주 방언으로 ‘내리막길’과 ‘내려다 보다’라는 뜻이 있어요. 보롬왓에서부터 스테이 느릇까지 걷는 길에는 내리막이 형성돼 있거든요. 기존의 대지도 지금과 같이 생겼었어요. 그리고 제주의 삼나무를 보존하고 자연과 잘 어우러지게 하기 위해서 블랙 콘크리트를 건물 외관에 사용했죠. 제주도에서는 시공하기 어려운 건축자재인데, 지랩 노경록 대표가 노력해 주셨습니다.

 

— 풍경을 훼손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인 건축 디자인이 돋보입니다.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요?

건축 설계가 세 번이나 바뀌었어요. 스테이 느릇의 뒤쪽으로는 오름이 자리하고, 여러모로 자연이 훌륭한 지대이기 때문에 자연과 일체감을 느낄 수 있는 최선의 디자인을 선택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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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롬왓을 먼저 시작하신 후 만든 스테이죠. 어떤 점에서 연결 지점이 있을까요?

보롬왓은 작물을 재배하는 것에서 끝나는 농사가 아닌 부가가치 산업을 이끌어내는 농업을 지향하고 있죠. 농사의 비중이 30%, 나머지 70%는 문화 콘텐츠를 접목시켜 디자인과 마케팅을 입힌 제품에 주력해요. 무엇을 하든 농사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전직원이 기초적인 농사 교육부터 받아요. 요리를 담당하는 주방 직원도 농사를 할 줄 알죠. 농사를 지어보면 요리하는 식재료 하나하나가 얼마나 귀한지 알거든요. 저희의 방향성은 직접 생산하는 원료를 바탕으로 제품을 제작해서 부가가치를 10배, 20배 향상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 스테이 느릇의 입구에 조성된 푸른 수국 밭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스테이 느릇과 보롬왓에서는 어떤 식물을 볼 수 있나요?

그 수국은 별수국으로 제주도에서도 흔하지 않은 수종이에요. 그리고 보라색 유채꽃과 삼색 버드나무가 유명해요. 보롬왓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튤립 축제가 열리고 있어요. 지자체에서 벤치마킹하기 위해 많이 찾아오고 있어요. 몇 분 전만 해도 전남도청 교육청에서 손님이 왔어요. 청년 인구의 유출 문제를 고민하면서 농업에서 해결책을 물색하고 있죠.

ⓒ헤이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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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년 개최되는 메밀 축제로도 유명한 곳이죠.

2010년에 보롬왓이 시작할 당시에 이곳은 외진 황무지였어요. 이곳으로 들어오는 도로도 없었던 상태였죠. 몇 년 동안 계속 일궈서 2016년에 제주도에서 처음으로 메밀 축제를 열었어요. 수도도, 전기도 없는 상태에서 발전기를 끌어와서 공연을 열고, 행정의 지원 없이 자발적으로 행사를 개최했어요. 목표는 200명이었는데 2만 명이 온 거예요. 지금은 매년 45만 명이 찾는 행사가 되었습니다. 간판도 없고, 홈페이지도 없던 이곳에서요.

 

— 성공적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방문객이 감동을 받지 못하고 돌아간다면, 마케팅을 아무리 잘해도 소용없다고 생각해요. 스테이 느릇도 같은 생각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잊지 못하는 경험을 선물하고 싶어요. 예를 들어, 스테이 느릇의 조식으로 나오는 감귤 주스는 보롬왓에서 직접 생산한 감귤로 만들고, 표고버섯 죽에 쓰이는 표고버섯은 한라산 자연산이죠. 식재료의 하나하나 비용을 따지자면 수익을 남길 수 없을 정도이지만, 투숙객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서 신경을 쓰고 있어요.

ⓒ헤이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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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객실의 어매니티 또한 보롬왓에서 생산한 농작물로 만든 제품들이더라고요.

특히, 메밀 배개는 많은 정성이 담긴 제품이에요. 껍질을 가마솥에 삶아서 세척하고 다시 건조하고 손으로 미는 전과정에 소요되는 시간과 노력이 어마어마하죠. 이 외에도 메밀차와 표고차, 튤립과 라벤더로 제작한 화장품 등을 객실에 준비했어요.

 

— 스테이 느릇에 방문하는 분들이 어떻게 공간을 즐기다가 돌아가길 바라나요?

이곳에서 만큼은 핸드폰을 보는 시간보다 자연을 보는 시간이 더 많았으면 좋겠어요. 저희가 운영하는 보롬왓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소개하는 검증된 맛집이나 보롬왓 소개를 먼저 보고 오신다면 숙소에서는 검색하느라 낭비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겠죠. 야외 자쿠지에서 온전히 자연을 감상하는 시간을 보내고, 밤에는 무수한 별을 감상하면 시간이 훌쩍 지나갈 거예요. 보롬왓 카페와 숙소를 깊이 느끼기 위해서는 여유로운 2박을 추천합니다.

MUST 3

스테이 느릇을 특별하게 만드는 세 가지

보롬왓

ⓒ헤이팝

‘바람부는 밭’이라는 뜻의 보롬왓은 농장 겸 카페로 운영 중이다. 실내 공간에는 식물원과 함께 메밀의 생산 과정을 구경할 수 있는 작은 공장이 마련되어, 스테이 느릇에서 사용한 어매니티의 경험을 확장할 수 있다. 최근 보름왓은 카카오 로스팅도 시작했다. 직접 재배한 메밀로 만든 메밀 빙수는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 중 별미.

웰컴 푸드 & 웰컴 기프트

ⓒ헤이팝

객실에 체크인하면 식탁에 놓인 한라봉 두 개를 발견할 수 있을 것. 스테이 느릇에서의 첫날을 기분 좋게 시작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준비한 배려가 돋보인다. 소파 자리 한 켠에 마련된 보롬왓 튤립 핸드크림은 웰컴 기프트로, 스테이 느릇에서의 추억을 향긋하게 기억할 수 있도록 돕는다.

조식

ⓒ헤이팝

흑돼지 페스츄리 몰이(‘말이’를 뜻하는 제주 방언)와 잠봉 샌드위치 중 선택 가능한 조식은 한 입 맛보는 순간, 입안 가득 풍미가 퍼진다. 한라산에서 자연재배한 표고버섯으로 만든 스프부터 그날 가장 신선한 돼지고기를 사용한 메인 요리, 보롬왓 메밀가루를 넣은 그래놀라 요거트, 고당도 귤을 착즙한 주스까지, 재료 하나하나를 까다롭게 엄선한 데 그 비결이 있다. 

글 성채은 기자

취재 협조 및 사진 제공 스테이 느릇, 지랩

장소
스테이 느릇
주소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3229-8
시간
체크인 16:00, 체크아웃 11:00
크리에이터
Principal Designer | 지랩 (노경록, 박중현, 강해천)
Space Designer | 지랩(서준혁, 윤재웅, 김벼리)
Brand Designer | 지랩(고나흔)
Construction | 해광종합건설, Flex interior+architecture
Landscape | Boromwat, Dewsong place
Furniture | Bybigtable, Huh Myoung Wook
Fabric | Cotone, Boromwat, Didor
Signage | Sangsang ID
성채은
희망과 다정함이 세상을 구할 거라고 믿는 낙천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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