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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07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수목원, 화담숲 ②

: file no.2 : 시간의 품격이 쌓이는 숲의 이야기

LG상록재단이 시민들에게 ‘화담숲’을 공개한 건 2013년. 화담숲 운영에 나석종 팀장이 합류한 건 그보다 앞선 2007년이다. 이제 갓 수목원 조성을 승인받은 시점이었다. 조경학과를 졸업한 나석종 팀장은 당시 화담숲 부지를 보며 생각했다. ‘과연 이곳에 수목원을 조성할 수 있을까?’

나석종 화담숲 운영 팀장

결과는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입소문으로 충분하다. 오늘날 화담숲은 계절마다 자연을 찾는 이들로 북적이는, 유례없이 뜨거운 수목원이 됐다. 단풍 축제가 열릴 때면 주말만이 아니라 평일 입장권을 구하는 것조차 힘들다. 아티스트 공연처럼 티켓팅을 해야 하는 수준이다. 단풍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을 보며 나석종 팀장은 이만큼 보람된 일이 없다고 말한다. 화담숲 구석구석에는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나석종 팀장에게 화담숲의 일대기를 들었다.

Interview with

나석종 화담숲 운영 팀장

ㅡ 화담숲이 수목원 조성 승인을 받은 게 2006년이에요. 처음에는 수목원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이 들 정도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었다고 하던데요.

수목원 조성 승인을 받기 전에 전문가에게 수목원을 만들어도 괜찮을지, 적정성 검토 자문을 받았어요. 당시에는 나무들이 숲처럼 우거진 상태였고, 경사가 심한 지대라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았죠. 그런 악조건이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해요. 평평한 공간은 한눈에 담기지만, 여기는 모퉁이를 돌면 새로운 경관이 나타나거든요. 그런 부분이 사람들에게 흥미를 주지 않았을까 싶어요.

 

ㅡ 악조건을 장점으로 만들기 위해 들인 노력도 있겠어요. 급한 경사를 어떤 식으로 보완했나요?

기존의 땅을 깎거나 메우지 않고, 등고선을 따라 완만하게 길을 조성했어요. 계단을 이용하지 않아도 데크길을 따라 수목원 전체를 돌아볼 수 있어요. 덕분에 유아차나 휠체어 동반 고객도 큰 어려움 없이 수목원을 관람할 수 있죠.

배리어 프리로 조성된 화담숲 산책로

ㅡ 모노레일도 같은 이유로 만든 시설이라고 들었습니다.

화담숲 전체를 도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두 시간이에요. 길이 완만하다고 하더라도, 체력이 약하거나 몸이 불편한 분들에겐 고되죠. 그런 분들이 모노레일을 타고라도 자연을 둘러볼 수 있도록 설계했는데, 처음 의도와 다르게 건강한 분들도 많이 타고 있어요(웃음). 공들여서 만든 정원이니, 숲을 산책하듯 천천히 걸으면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ㅡ 정식 개관 전에 곤지암 리조트 투숙객에게만 공간을 개방했어요. 그때는 취재도 거절했다고요.

2010년까지 일차적으로 수목원 조성을 완공하고, 다음 해 봄에 리조트 투숙객을 대상으로 임시 개방을 했어요. 우리 수목원을 방문했을 때 불편한 점은 무엇인지, 방문객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보완하는 시기였죠. 바로 대중에게 공개하지 않은 건 지금은 돌아가신 故구본무 회장님의 의견이기도 했어요. 식물들이 제대로 자리를 잡고 자기 모습을 나타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빨리 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니 천천히 가더라도 식물들에 시간을 주자, 말씀하셨거든요.

 

ㅡ 나무들이 적응하는 데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일까요? 

물론입니다. 사람도 새로운 곳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나무도 마찬가지예요. 게다가 옮겨 심는 과정에 아무리 조심을 더해도 뿌리가 조금은 잘리게 돼요. 나무 입장에서 뿌리가 잘렸다는 건 사람으로 치면 다리가 다친 거나 마찬가지예요. 충분히 회복할 시간을 줘야죠. 식물도 자기 모습을 갖추려면 몇 개월이 걸리고, 작은 과목들도 1~2년은 필요해요.

ㅡ 화담숲에 대한 故구본무 회장의 애정이 각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故구본무 회장이 화담숲에 유독 애정을 준 이유가 무엇일까요?

화담숲은 故구본무 회장님의 아호 화담(和談)으로 지어진 이름이에요. 사람들이 정답게 이야기 나누면서 숲을 산책하길 바라는 뜻이 담겼죠. 회장님이 자연을 참 좋아했어요. 우리 산과 하천, 생물을 소중히 하고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갖고 계셨어요. 생전에 화담숲에 방문하면 모노레일도 타지 않으셨어요. 손에 익은 전지가위 하나 들고 산책로를 걸어 다니면서 나뭇가지를 다듬었죠. 손수 공사를 하신 건 아니지만, 직접 화담숲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故구본무 회장의 전지가위

ㅡ 워낙 소탈한 모습으로 화담숲을 돌아다닌 탓에 생긴 일화도 유명합니다. 

여름에 수목원 벤치에 앉아 있으면 쓱, 생수를 건네는 할아버지가 있다는 일화가 많이 알려져 있죠. 물뿐 아니라 서울 장충동 빵집 태극당에서 모나카 아이스크림을 사 와서 나눠주시기도 했어요. 전지가위를 들고 점퍼를 입은 할아버지가 기업 회장님이라고 알아보는 분은 거의 없었죠. 간혹 직원분들이 알아보고 “회장님 아니십니까?” 하면 “아닙니다, 관리인입니다” 얘기하고 그러셨어요.

 

ㅡ 겨울에 화담숲을 휴장하는 것도 회장님의 의견이었다고요. 

사람도 밤이 되면 잠을 자잖아요. 나무도 휴식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어요. 쉬지 않고 일하면 사람도 번아웃이 오는 것처럼, 식물에도 쉬는 시간을 주는 거죠. 그 시기에 저희는 고객이 남긴 의견을 취합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거나 공사를 진행하고, 다음 해 계획을 세워요.

화담숲의 겨울 풍경 제공: 화담숲

ㅡ 여러모로 자연과 공존하는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방침 하나하나에서 자연에 대한 배려가 느껴진다고 할까요.

자연의 주인공은 식물이고, 곤충이고, 동물이잖아요. 자연을 해치지 않고 인간과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도록 보호하는 것이 저희 공간의 목적이에요. 설계 단계부터 기존 나무들을 하나하나 조사하며 자생 식물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을 택했어요. 그 나무들과 교란을 일으키지 않고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수종을 들여 공간을 조성했고요. 간혹 길을 내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자연을 훼손하는 경우도 보는데요. 저희는 그런 방식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구불구불한 길이 많은 것도 그런 이유일 거예요.

ㅡ 화담숲에는 16개의 테마원이 있어요. 어떤 테마원들이 있나요?

먼저 주요 식물종을 대상으로 테마원을 만들었어요. 철쭉·진달래길이나 수국원이 해당하죠. 그 이후로 공간을 보완하면서 ‘소나무 정원’ 등을 조성했고, 우리의 문화를 알리기 위해 만든 테마원도 있어요. 궁궐, 사대부, 서민이 살던 집의 담장을 재현한 ‘전통담장길’이나 옛날 풍경을 도자기 인형으로 구현한 ‘추억의 정원’, 2,500여 그루의 무궁화를 감상할 수 있는 ‘무궁화동산’ 등이죠. 무궁화동산은 자라나는 미래 세대에게는 나라의 꽃을 알리고, 진드기와 벌레가 많이 낀다는 기성세대의 부정적인 인식까지 해소하려는 목적이 있었어요. LG상록재단 측에서 산림청과 함께 전국에 있는 학교에 무궁화 묘목을 보급하는 사업도 진행했고요.

ㅡ 테마원을 조성하면서 유독 애를 썼던 장소가 있다면요.

소나무 정원이 생각나네요. 경기도 광주가 원래 조선시대 왕실자기를 생산하던 지역이에요. 도자기를 빚는 흙은 점토질이 많거든요. 흙이 질고, 물이 차는 곳에서는 소나무가 제대로 성장하기 어려워요. 소나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배수 시설을 철저히 하고, 흙을 치환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덕분에 1,300그루가 넘는 소나무가 병들지 않고 잘 살아있죠. 요즘 아파트 단지 화단이나 공원을 보면 수목이 살 수 있는 조건을 조성하지 않은 채로 무턱대고 심는 경우가 보여요. 제대로 되지 않은 환경에서 죽어가는 나무를 보면 안타까운 맘이 듭니다.

멸종위기종 2급, 천연기념물 453호인 남생이

ㅡ 화담숲은 다양한 멸종 위기 동물의 보금자리 역할도 하고 있어요. 대표적으로 남생이가 있죠.

남생이(멸종위기종 2급, 천연기념물 453호)는 환경 오염과 남획으로 개체 수가 줄어들어 현재는 천연기념물이자 멸종 위기종으로 등록된 우리나라 대표 민물 거북이예요. 사라져가는 우리의 남생이를 지키자는 마음으로 국립공원연구원과 함께 토종 남생이를 증식하고 복원하는 연구를 진행했어요. 수목원을 찾아오는 어린아이들에게 한국의 토종 생물을 소개하고, 이것들이 왜 사라지고, 어떻게 보존하는지 교육의 역할도 겸하고 있습니다.

ㅡ 화담숲은 계절별로 축제를 하고 있어요. 봄에는 수선화 축제, 여름에는 수국 축제, 겨울에는 단풍 축제가 열리죠. 축제를 준비하는 데에 어떤 과정이 필요한지 궁금해요.

수선화를 예로 들어볼게요. 수선화는 보통 네덜란드에서 수입하고 있어요. 축제가 끝나고 5, 6월이 되면 수선화 구근을 원활하게 구할 수 있을지 조사하고, 7월 정도에 주문을 해요. 10월 말에 수선화가 국내로 들어오면 11월에 수선화를 심고, 다음 해 4월에 활짝 피면 만개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죠.

화담숲에서 열리는 수선화 축제, 수국 축제 제공: 화담숲

ㅡ 다음 봄을 위해서는 여름이 오기 전부터 준비해야 하군요. 지금은 단풍 축제가 한창이에요. 화담숲은 다양한 단풍나무 품종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해요. 단풍나무 품종의 차이를 육안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요?

화담숲에는 약 400여 종의 단풍나무종이 있어요. 모두 구별하기는 어렵겠지만, 여러 가지 요소로 구분할 수 있어요. 먼저 잎으로 구분해요. 단풍나무 잎은 손바닥 모양처럼 갈라졌다고 해서, 장상엽이라고 부르는데요. 잎의 갈라진 개수가 달라요. 어떤 것들은 5개에서 7개, 어떤 것들은 9개에서 11개, 울릉도에서 자라는 섬단풍은 13개까지도 갈라져요. 신나무는 오리발처럼 세 갈래로 갈라져 있고, 강원도에 주로 사는 산겨릅나무는 잎의 갈라짐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고, 줄기가 녹색이에요. 녹색 줄기에 흰 무늬가 들어가 있어서 일반적인 나무와는 구분이 되죠. 도입종이긴 하지만, 줄기 색이 붉은 적피 단풍도 있고요. 단풍으로 유명한 내장산의 내장단풍이나 아기 단풍은 잎 크기가 다른 나무에 비해 작아요. 줄기에서 고로쇠 수액이 나는 고로쇠나무도 단풍나무의 일종이에요. 종류가 아주 다양해요.

ㅡ 수령이 200년으로 추정되는 단풍나무도 있다고 들었어요. 그 나무를 옮겨오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고 하던데요. 

전라도 도로 공사 현장에 있던 단풍나무였어요. 나무의 모양과 크기를 떠나 살아온 세월을 생각하면 베어버리는 게 너무 안타깝잖아요. 화담숲에서 보존하자는 의미로 옮겨 왔는데, 뿌리를 캐는 데에만 꼬박 이틀이 걸렸다고 해요. 체험학습관 주변에 있는 매화나무에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요. 이 나무는 전남 구례와 순천 사이 작은 마을에 있었는데, 매실이 열리면 할머니 집의 양철 지붕으로 낮이고, 밤이고 열매가 떨어졌대요. 잠을 이룰 수 없던 할머니가 참지 못하고 베려던 것을 저희가 옮겨 왔죠.

화담숲에 있는 매화 나무 제공: 화담숲

ㅡ 화담숲을 관리하는 가드너 분들이 몇 명이나 되나요? 어떤 활동을 하는지도 궁금합니다.

가드너는 저를 포함해 스물다섯 명 정도 됩니다. 업무가 많거나 인력이 필요한 경우에는 외부 전문가를 모시기도 하고요. 가드너는 기본적으로 나무들이 잘 자라기 위한 활동을 한다고 보시면 되는데요. 나무가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지 예찰 활동을 하고, 기후에 따라서 비가 오지 않을 때는 관수를, 비가 많이 오면 배수를 도와요. 나무가 쉬어가는 겨울에는 전정 작업에 신경 씁니다. 햇볕을 고루 받아야 건강한데, 속 가지가 지나치게 빽빽하면 볕을 받을 수 없거든요. 올해처럼 고온다습한 환경에는 병충해가 생기지 않도록 방제에도 신경 썼습니다.

ㅡ 화담숲 운영자로서 고민이나 걱정도 있을까요?

정식 개장을 한 지 이제 11년이 지났는데, 요즘 기후 변화가 급격히 체감됩니다. 봄, 가을이 짧아지면서 기존에 있던 식물들도 힘들어하는 게 느껴지고요. 올해 같은 경우에도 단풍이 한창 피크일 시기에 나뭇잎이 제대로 물들지 않았어요. 전국의 봄꽃 축제들이 시기를 맞추기 어려운 것도 비슷한 현상이겠죠. 인력으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보니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오히려 걱정이 많습니다.

TPO

나석종 팀장이 자연을 만나는 공간

매일 화담숲을 드나들지만, 힘들 때는 다른 수목원이나 식물원에도 방문합니다. 화담숲 말고도 공익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훌륭한 공간들이 많아요. 하지만 여러 이유로 어려움을 겪는 곳도 꽤 돼요. 그런 곳과 교류하면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은 없는지 고민도 해봅니다. 얼마 전에는 양평 두물머리에 있는 ‘세미원’이라는 곳에 다녀왔어요. 연꽃과 수련 등을 주로 심은 공원이에요. 집과 멀어서 자주 가지 못하지만, 해안가에 자리 잡은 ‘천리포수목원’도 좋죠. 한국으로 귀화한 민병갈 님이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수목원이에요. 아름답죠.

*3편에서 계속됩니다.

화담숲

 

장소 화담숲

주소 경기 광주시 도척면 도척윗로 278-1

 

주관 LG상록재단

시공 관리 감독 및 운영 (주)디앤오(D&O)

조경 설계 아르떼,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

조경 시공 백상엘엔씨(주) 

 김기수 기자

사진 황지현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화담숲

프로젝트 캐비닛은 참신한 기획과 브랜딩, 디자인으로 트렌드를 이끄는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헤이팝 오리지널 시리즈 입니다. 격주 목요일, 영감을 주는 프로젝트들을 꺼내 보세요.

 

[Project Cabinet]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수목원, 화담숲

      : file no.1 : 수목원은 숲이 될 수 있을까

▶ : file no.2 : 시간의 품격이 쌓이는 숲의 이야기

      : file no.3 : 화담숲 산책하기

프로젝트
[Post-It] 화담숲
장소
화담숲
주소
경기 광주시 도척면 도척윗로 278-1
김기수
아름다운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믿는 음주가무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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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수목원, 화담숲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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