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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30

우리는 한국에서 위스키를 만든다, 쓰리소사이어티스 ②

: file no.2 : 사업 키워드는 의미, 열정, 사람

경영인이 조직을 운영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쓰리소사이어티스를 설립한 도정한 대표는 사람을 모으는 일부터 시작한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영역과 또 다른 전문가가 필요한 영역을 명료하게 구분하고, 적임자를 찾아 손을 내미는 것. 이것이 도정한 대표의 방식이었다. 그렇게 그는 유능한 마스터 디스틸러인 앤드류 샌드와 동료가 됐고, 함께 팀을 키워 나가는 중이다.

 

한국, 미국, 스코틀랜드라는 세 곳의 사회를 의미하는 이름만큼, 쓰리소사이어티스에는 제각기 다른 개성과 이야기를 품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다양한 구성원을 아우르며 목표를 향해 달리는 도정한 대표를 만났다.

도정한 대표

Interview with 

도정한 쓰리소사이어티스 대표∙창립자

 

주류 산업에 뛰어들기 전 도정한 대표는 CNN, 마이크로소프트 등 유명 기업에서 근무했다. ‘즐거운 주류 문화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꿈이 점차 커지자, 있던 자리를 벗어나 사업에 도전한다. 그리고 2014년 수제맥주 브랜드 핸드앤몰트 브루잉 컴퍼니를 설립해 성공을 거뒀다. 당시 업무차 해외를 찾을 때마다 듣곤 했던 “한국에는 왜 위스키가 없느냐”라는 질문은 그의 마음에 오래 남았고, 이는 쓰리소사이어티스라는 새로운 도전으로 이어졌다.

수제맥주 브랜드 핸드앤몰트를 설립하고 키워낸 후 위스키 업계에 도전했습니다. 쓰리소사이어티스는 한국 최초의 싱글몰트 위스키 증류소이기도 합니다. 참고할 사례가 많지 않았을 듯한데요. 무엇부터 시작했나요?

주변에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을 두자는 것이 제 사업 철학입니다. 저는 경영자, 리더 역할에 자신이 있으니 그 외 분야의 전문가를 모으는 일이 첫 단계였어요. 마스터 디스틸러와 블렌더를 영입하기 위해 수소문하다가 앤드류 샌드를 알게 됐습니다. 당시 해외에 있던 그에게 비행기 티켓부터 사서 보냈어요. 한국에 한번 와달라고요. 실제로 만나 보니 우리에겐 통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어떤 부분이 통하던가요.

우리 둘 다 일개미예요. 그리고 일하는 철학이 비슷해요. 말하자면 앤드류와 저는 무작정 머리부터 들이밀고 일단 해 보는 스타일이죠. 그 점이 좋았습니다. 앤드류의 실력에 대해선 이미 익히 알고 있었으니까요.

두 사람은 미더운 동료이자 친구가 되었다.

쓰리소사이어티스를 ‘크래프트 싱글몰트 증류소’라고 소개하더군요. 수작업, 수공예 등을 뜻하는 ‘크래프트(craft)’라는 수식을 붙인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해하기 쉽게 숫자로 설명해 볼게요. 맥캘란(Macallan)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죠?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코틀랜드 위스키 증류소예요. 우리가 1년 동안 생산하는 양의 위스키를 맥캘란은 4일 안에 만듭니다. 물론 증류소 규모와 역사가 너무 다르기는 하지만, 지금 우리는 작은 요소 하나하나까지 사람의 손을 거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배럴을 하나씩 다 꺼내서 테이스팅하고 케어하죠. 물론 언젠가 맥캘란처럼 성장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요. (웃음)

사람의 손을 거치는 일을 왜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나요?

이전 맥주 회사 이름도 핸드앤몰트(The Hand and Malt Brewing)로 지었잖아요. 저는 손맛을 각별하게 여겨요. 어릴 적 할머니가 만들어 주셨던 비빔국수의 맛을 잊지 못하는데요. 할머니께서 손으로 비빈 후 맛을 보시고 필요한 재료를 더 넣던 모습을 기억해요. 그렇게 만든 국수는 가게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맛있었어요. 손맛, 사람의 감각이 주는 힘이 있다고 믿어요.

위스키를 만드는 사람의 손이 부지런히 움직인다.

마스터 디스틸러 앤드류와 식사를 하다가 제육볶음을 보고 위스키 맛의 방향성을 떠올렸다는 일화가 재미있었어요.

한국 최초의 싱글몰트 위스키 증류소라는 사실이 주는 무게가 있었어요. 이 위스키는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상징성을 띠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맛의 지향점에 대해 아주 깊이 고민했어요. 제육볶음을 먹는데 한순간에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 순간이 우리의 ‘아하!’ 모먼트였어요. 앤드류는 오랜 경험과 연구를 통해 원주에 스파이시한 풍미를 더하는 방법을 알아요. 그런 풍미를 효과적으로 구현할 수 있도록 앤드류가 증류기를 직접 디자인했습니다. 증류기 제작 업체 중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스코틀랜드 브랜드 포사이스(Forsyths)에 제작을 의뢰했고요.

증류기에 포사이스라는 이름이 각인돼 있다.

경기도 가평 3000여 평의 땅에서 보리를 키우고 있죠? 한국은 위스키 양조용 보리 재배가 아직 흔하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보리를 기르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현재 우리 증류소에서 쓰는 맥아(싹을 틔운 보리, 위스키 양조의 주원료)는 대부분 영국에서 수입합니다. 영국은 위스키 양조용 보리를 연구하고 재배한 역사가 매우 깊어요. 아직은 그 보리로 우리 증류소의 술 대부분을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직접 보리를 재배하는 건, 당장 양조에 사용할 수 있어서가 아니에요. 일단 도전해 보는 겁니다. 또 정부에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한국에서 수확한 보리로 한국산 위스키를 만들 수 있다는 걸요. 국내 주류 시장이 다양해지고 성장하려면 주세 관련 규정이 바뀌어야 해요. 우선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은 전부 해보려고 합니다.

위스키의 재료가 되는 맥아들. 투어에서 약간 맛볼 수 있었다. 고소하고 씹을수록 달콤했다.
수입한 맥아들

라벨과 패키지 디자인의 개성이 확실해요. 단정하고 우아하면서도 한국의 위스키임이 드러나는 듯합니다. 디자인 면에서 추구하는 바에 대해 듣고 싶어요.

저는 항상 제 취향보다는 오디언스(audience)*에 집중해요. 바로 우리 앞에 있는 오디언스와 더불어 미래에 닿고 싶은 오디언스를 봅니다. 지금 저는 여성 소비자를 관심 있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막연히 위스키는 남자들이 선호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저는 여성 소비자의 잠재력이 크다고 확신해요. 타깃 오디언스에게 호감을 얻을 만한 디자인을 하려 했습니다. 여성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화장품 디자인에 잔뼈가 굵은 디자이너 켈리 한에게 부탁했어요. 물론 한국의 요소들도 녹아 있는 디자인이길 원했고요.

* 그는 소비자를 오디언스라 표현했다.
라벨과 패키지. 사진 제공: 쓰리소사이어티스

사람이 직접 하는 작업이 많아서인지, 팀을 이루는 이들을 소중하게 대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사업을 구상하고 처음 한 일이 사람을 모으는 것이었다는 이야기도 인상적이었고요. 어떤 동료와 함께하려 하나요.

열정이 있는 사람들이요. 그 사람이 열정을 쏟는 분야는 별로 상관없어요. 물론 위스키에 열정이 있다면 제일 좋겠지만, 스키나 스케이트보드에 쏟는 사람이어도 괜찮아요. 적어도 그 열정이라는 감정을 아는 사람일 테니까요. 그 열정의 방향을 조금만 우리 일 쪽으로 돌려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 열정이 있느냐 없느냐, 그게 늘 첫 번째 조건이에요.

열정이 있는지 아닌지는 어떻게 알아요?

대화하면 느껴져요. 그래서 쓰리소사이어티스의 첫 면접은 다른 직원이 아니라 제가 봐요. 제가 가장 먼저 면접자를 만나는 거죠.

그렇게 모은 사람들과 어떤 조직을 꾸리고 싶나요?

함께하고 싶은 조직. 같이 일하고 싶은 조직이요.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이 행복하기만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팀원들이 종종 ‘되게 즐겁다’라고 느낄 수 있는 팀을 만들고 싶어요.

숙성 창고로 향하는 길, 이웃 강아지 모찌가 두 사람을 따라갔다.

증류소의 문을 연 건 2020년이지만 준비는 2018년부터 시작했다고요. 쓰리소사이어티스를 운영하면서 잊지 않으려 되새기는 생각이 있다면요.

타협하지 말자. 돈 때문에, 시간 때문에 퀄리티를 타협하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해요. 브랜드 이미지는 한번 잘못되면 회복하기가 정말 어려워요. 천천히 가더라도 지금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걸 놓치지 말자고 생각해요. 앤드류와 제가 나눈 약속이죠.

기원이 어떤 술이 되기를 바라나요.

세계적인 수준의 위스키요. 위스키를 마시고 싶을 때 가장 먼저 기원이 떠오른다면 좋겠죠. 퀄리티 좋고 접근성도 높은 위스키가 되길 바랍니다.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 어떤 일에 집중하고 있어요?

지금 가장 몰두하고 있는 일은 주세 개정입니다. 현행 제도인 종가세* 아래에서는 위스키 관련 산업이 성장하기 어려워요. 규정에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 국회에도 가고 세종시에도 가고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그런데 저 혼자서 하는 일은 아니에요. 같은 업계에서 뜻을 함께하는 친구들 모두 노력 중이지요. 난관을 같이 잘 극복해서 업계 전반이 성장했으면 좋겠어요. 스코틀랜드 위스키 증류소들도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돕는다고 하죠. 위스키 일에 열정을 가진 분들이 힘을 모으면 산업도 커지고, 함께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 종가세 물품의 가격을 기준으로 부과하는 세금. 술 가격이 높을수록 세금 부담이 커진다.

한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는 듯 보입니다. 숨돌릴 새 없이 지낼 수 있는 원동력이 궁금해집니다. 위스키 만드는 삶의 기쁨은 무엇인가요?

한국 위스키를 만들고 있다는 자부심이랄까요…. 사실 요즘은 너무 바빠서 힘에 부치기도 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의 의미를 떠올리면 배터리가 충전되는 것 같아요. 나이가 적지는 않고, 돈도 벌어 봤고, 좀 더 의미 있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쏟고 싶어지더군요.

오크통
TPO

도정한 쓰리소사이어티스 대표가 영감을 쏟은 공간

쓰리소사이어티스를 준비하면서 자주 들르거나 영감을 얻은 공간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영감을 얻은 공간이라기보다 영감을 쏟은 공간은 있어요. 우리가 오픈한 작은 바인데요, 청담동의 기원 위스키 연구소라는 곳이에요. (웃음) 쓰리소사이어티스의 여러 제품을 좀 더 쉽게 만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바(bar)의 요소를 반영한 곳이죠. 사람들이 와서 우리가 만든 위스키를 다양하게 맛보고 편안하게 대화하기를 바랐어요. 술 얘기도 좋고, 스포츠 얘기든 영화 얘기든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꾸렸어요. 취하기보다는 즐기려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장소가 됐죠.

기원 위스키 연구소. 사진 제공: 쓰리소사이어티스
*3편에서 계속됩니다. 

글 김유영 기자

사진 표기식

 

프로젝트 캐비닛은 참신한 기획과 브랜딩, 디자인으로 트렌드를 이끄는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헤이팝 오리지널 시리즈 입니다. 격주 목요일, 영감을 주는 프로젝트들을 꺼내 보세요.

 

[Project Cabinet] 우리는 한국에서 위스키를 만든다, 쓰리소사이어티스

▶ : file no.1 : 한국, 미국, 스코틀랜드라는 세 사회가 남양주에서 만난 까닭

▶ : file no.2 : 사업 키워드는 의미, 열정, 사람

▶ : file no.3 : 알고 마시면 더 맛있다, 쓰리소사이어티스 이모저모

장소
쓰리소사이어티스
주소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녹촌로 259-18
기획자/디렉터
기획·운영 | 쓰리소사이어티스
크리에이터
증류기 디자인 | 쓰리소사이어티스
김유영
에디터.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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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국에서 위스키를 만든다, 쓰리소사이어티스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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