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계획을 세울 때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근사한 로컬 카페를 물색하는 것. 걷다 지쳤을 때 쉬어갈 쾌적한 공간과 눈을 번쩍 뜨게 해줄 진한 커피가 없다면 금세 집이 그리워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카페는 먹고, 대화하고, 일하고, 휴식하는 도시의 일상을 가장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장소다. 스페셜티 커피나 공간 디자인 따위에 큰 흥미가 없더라도 ‘이 도시에서 가봐야 할 카페’ 한 곳쯤 알아 두면 후회할 일은 없을 것이다.
여름휴가를 앞두고 출국 날만 기다리는 이들을 위해, 그보다 한발 앞서 여행을 다녀온 7인에게 물었다. “이번 여행 때 어떤 카페가 제일 좋았어요?”
Kyoto 교토
Cafe: Nijo-koya
정재석 공간 및 이벤트 기획자
이 카페를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교토로 떠나기 일주일 전 성수동 ‘메쉬커피’의 김기훈 대표가 알려줬다. 특이한 카페를 가보고 싶으면 추천한다고. 열심히 검색해서 찾아낸 카페들과 함께 여행 동선에 넣게 되었다.
어떤 분위기에 매료됐는가?
일본 여행이 처음이었던 나는 ‘퉁명스럽고 불친절하지만 자기 일에 진심인 일본 가게’에 대한 이상한 환상 같은 게 있었다. 니조성 근처 골목 안에 숨겨진 니조코야는 정확히 그 환상 속의 가게다. 주소를 찍고 찾아가도 바로 보이지 않고, 건물 주차장 뒤쪽으로 돌아가야 외딴섬처럼 생긴 작은 카페 건물이 나온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협소한 공간에 비해 쓸데없이 커 보이는 스피커에서 재즈가 흘러나오며, MBTI 앞자리가 극 ‘I’일 것 같은 사장님은 손님이 들어와도 큰 환대 없이 커다란 주전자에 물을 끓이는 일에 더 열심이다. 딱히 친절하지 않다. 추천도 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손님이 싫은 게 아니고 본인 성격이 그런 거다. 메뉴판도 커피 맛도 그런 사장님을 닮아서 군더더기 없이 부드럽고 깔끔하다. 태클 걸 게 없다.
맛있었던 메뉴는?
호또-샌드위치(핫-샌드위치). 샌드위치를 주문하면 물을 팔팔 끓이고 있는 주전자 옆 가스 불 위에 핫 샌드위치 메이커를 올려서 앞뒤로 천천히 데운다. 발뮤다 토스터를 하나 선물해 드리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기다리면, 샌드위치가 완성된다. 그 자체로 일본이다. 엄청 맛있는 걸 찾기는 어려울 순 있어도, 실패하지 않는 맛은 어딜 가나 보장되어 있다.
교토 여행을 앞둔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게 있다면?
일본 여행에서 제일 중요한 건 역시 대욕장이 있는 숙소에서 지내는 거라고 생각한다. 대욕장이 있는 숙소는 보통 밤새도록 목욕을 할 수 있도록 열어둔다. 특히 볼거리가 많은 교토에서는 종일 열심히 돌아다니는 편이므로, 밤에 숙소로 돌아와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 동안 뜨끈한 물에 들어갔다가 나오면 피로가 풀려 잠도 잘 오고 다음 날 일정을 위한 재충전이 된다. 한창 해가 떠 있는 오후에 동선에 따라 바쁘게 이동하다가도 ‘아, 이따가 숙소 들어가면 또 탕에 들어가야지’ 생각하면 안심이 된다.
뉴욕 여행의 첫 숙소가 롱아일랜드시티에 있었다. 중심가인 맨해튼에서 지하철로 한 정거장인 동네. 맨해튼이 보이는 공원에서 일주일 가까이 아침 조깅을 했는데, 그 공원의 중간쯤에서 작고 귀여운 커피 트럭을 만났다. 조깅을 마치고 한 잔 테이크아웃해서 공원에 앉아 마셨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매일 오는 트럭이 아니라서 운이 좋아야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어떤 분위기에 매료됐는가?
달리는 와중에 발견한 놀이터 옆 파란 커피 트럭을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간식을 내놓으라며 펄쩍 뛰는 대형견과 익숙하다는 듯 평온하기만 한 견주, 서울의 출근길처럼 스마트폰 화면에 빠져 있는 사람들까지. 주변 풍경에 완벽하게 스며든 작은 트럭이라 바로 줄을 섰다. 원래 이 동네에서 매일 뛰는 사람인 것마냥.
맛있었던 메뉴는?
첫날에는 플랫 화이트를 오트 밀크로 주문했다. 우유 대신 귀리로 라테를 만들면 조금 비릴 수 있는데, 작은 트럭에서 뚝딱 만들어낸 플랫 화이트가 웬만한 프랜차이즈 커피보다 고소하고 부드러웠다. 튀는 부분 하나 없이 편안한 맛. 두 번째 방문 때 마신 오늘의 커피도 밸런스가 훌륭해서 다음에 가면 모든 메뉴를 다 맛보고 싶다.
뉴욕 여행을 앞둔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게 있다면?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뉴욕의 가게들이 지닌 편안함이다. 유명 스페셜티 커피 로스터리에도 오늘의 커피가 준비돼 있어서 누구나 쉽게 주문할 수 있고, 지나가다 부담 없이 한 잔 사 마실 수 있던 이 커피 트럭도 알고 보니 대회 우승까지 차지했던 실력 있는 카페다. 그 모든 걸 고민 없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도시가 뉴욕인 것 같다. 뉴욕은 내가 가본 도시 중 거의 유일하게 서울보다 콘텐츠가 많은 곳인데, 그건 그냥 걸어 다니기만 해도 성수동 한복판보다 많은 이벤트를 겪을 수 있다는 뜻이다. 뉴욕에서만큼은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경험들을 즐겨보면 어떨까.
코펜하겐 여행 브이로그를 찾아보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다. 인스타그램을 찾아보니 사진만으로도 아늑하고 친절한 분위기가 느껴져서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미식에 일가견이 있는 지인이 해당 계정을 팔로우하고 있는 걸 보고 기대감과 신뢰를 갖게 되었다.
어떤 분위기에 매료됐는가?
창가 바 좌석에는 아침 햇빛이 듬뿍 쏟아지고, 창 너머로는 건너편 건물의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아침을 맞이하는 풍경이 펼쳐졌다. 노신사와 그의 귀여운 반려견, 아빠의 손을 잡고 까르르 웃으며 들어온 어린아이, 그리고 그들을 스위티(sweetie)라고 익숙하게 부르며 안부를 묻는 여자 사장님. 사람과 풍경과 가구와 음식과 냄새까지 그 공간에 들어찬 모든 것들이 사랑스럽고 다정했다. 커피를 내리면서 여유롭게 흥얼거리는 사장님의 콧노래를 들으며 언젠가 나 역시 이런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하기도 했다.
맛있었던 메뉴는?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참깨 포카치아가 올라간 오믈렛. 코펜하겐 사람들은 필터 커피를 주로 마시기 때문일까. 어느 카페를 가도 지나치게 시거나 쓴 커피를 맛보게 되어 아쉬운 마음이었는데, 여기 커피는 적당한 산미가 기분 좋게 올라왔다. 치즈와 버터의 풍미가 느껴지는 푹신한 오믈렛과 참깨 포카치아는 하루를 든든하게 채워주는 맛.
코펜하겐 여행을 앞둔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게 있다면?
내가 만난 코펜하겐 사람들은 자신만의 내밀한 삶의 방식에 집중하고, 자기 삶의 방식이 중요한 만큼 다른 이의 삶 역시 존중하며 살고 있다. 길목마다 등장하는 공원을 느긋하게 산책하며 모두가 자신만의 속도로 걷고 있는 이 도시만의 풍경에 섞여보기를 추천한다. 오래된 아름다움이 가득한 미술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다. 글립토테크 미술관의 환상적인 중앙 정원이나 커다란 창 자체가 하나의 그림 같은 SMK(덴마크국립미술관)의 테라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이라 불리는 루이지애나 미술관의 바다 풍경은 꼭 눈에 담고 와야 하는 장면들이다.
밀라노에 간다면 프라다 미술관(Fondazione Prada)을 무조건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찾아보니 미술관 안에 있는 카페 역시 유명한 게 아닌가. 무려 웨스 앤더슨이 디렉팅한 카페라고. 서늘하고 시크한 매력의 프라다 미술관에 웨스 앤더슨이 왜, 어떻게 맞닿게 된 건지 매우 궁금해졌다.
어떤 분위기에 매료됐는가?
웨스 앤더슨의 손길이 닿은 이 카페는 그로테스크한 컬렉션, 언캐니한 전시, 시크하고 매끈한 공간과 작품들로 이루어진 프라다 미술관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민트 체이블, 옐로우 체어, 핑크 벽으로 이루어진 알록달록한 색채감에 아날로그 시계, 아케이드 게임기, 주크박스와 유니폼의 웨이터 등 1960년대 밀라노의 북적거리는 카페 속 한 장면을 그대로 오려온 듯했던. 잔혹한 스토리를 동화적 연출로 표현하는 웨스 앤더슨의 연출에 매료된 프라다가 직접 이 카페의 디렉팅을 의뢰했다고 한다. 차가운 실버와 블랙, 골드 사이에 자리 잡은 이 통통 튀는 컬러들이 얼마나 묘한 낯섦을 자아내는지, 직접 꼭 느껴봐야 한다.
맛있었던 메뉴는?
컬러감이 돋보였던 젤라토. 라즈베리 젤라토를 시켰는데 이렇게 진하고 매혹적인 검붉은 빛의 젤라토는 처음이었다. 먹기 전부터 이미 내가 라즈베리가 되어버린 느낌.
밀라노 여행을 앞둔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게 있다면?
밀라노는 아시다시피 디자인의 도시다. 꼭 카페에 가지 않아도 길 가다 그냥 들어간 숍, 가구 쇼룸, 서점 모두 다 ‘디자인’스럽다! 그냥 걷자. 일단 걸어 다니며 들어가 보자. 지하철역 앞 맥도날드에서 파는 커피도 맛있으니 커피 맛은 안심하고, 자유롭게 걸으며 어디든 들어가 보시라. 눈이 엄청 즐거울 것이다.
타이베이의 성수동이라고 할 수 있는 중산 카페 거리 곳곳을 돌아다니다 마주친 곳이다. 작은 카페 안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신나게 음악을 즐기고 있는 장면을 보고 이끌리듯 들어갔다.
어떤 분위기에 매료됐는가?
알고 보니 이날 카페 사장님 친구의 신곡이 나왔다고 하더라. 친구의 노래를 크게 틀어 놓고 오가는 사람들과 함께 커피를 마시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대화를 나누고 음악을 즐기며 한데 어울리는 사람들의 표정이 여기가 어떤 공간인지 이야기해 주고 있었다. 관광객보다는 단골손님들이 주를 이루는 힙한 로컬 카페인 듯하다. 매장 안쪽에서 다양한 굿즈도 판매한다.
맛있었던 메뉴는?
4월이었음에도 너무 더워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한 잔 테이크아웃 해서 걸어 다니면 무더운 날씨도 견뎌낼 수 있는 맛! 적당한 산미와 상큼한 열대과일 향이 훌륭하다. 다음 날 라테로 마셔보고 싶었는데 일정이 맞지 않아 가지 못한 게 아쉽다.
타이베이 여행을 앞둔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게 있다면?
중산 카페 거리는 볼거리, 즐길거리가 풍성한 지역이다. ‘타이베이 당대 예술관’에서 전시를 보거나 편집숍 ‘PAR STORE’에 들러 쇼핑을 해도 좋겠지. 필름 카메라 유저라면 ‘SNAPPP’를 찾아가 필름을 구매하거나 현상해 보는 것도 추천한다. 참고로 대만관광청에서 여행 지원금 추첨 행사도 진행하고 있다. 잘 알아보고 신청해서 당첨되기를 바란다.
꽤 오래전부터 몬머스 커피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워낙 유명하고 오래된 카페인 만큼 업계 종사자라면 한 번쯤은 스치듯 들어볼 수밖에 없는 곳이다. 구체적인 목적이 있어서 방문했다기보다는 ‘런던에서 여기는 꼭 가봐야지’ 정도의 마음이었다.
어떤 분위기에 매료됐는가?
첫 방문 때 “진짜다”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다른 공간을 흉내 내거나 의도적으로 특정한 바이브를 만들려는 게 아닌, 한 골목에 오랫동안 자리하며 자연스럽게 낡은 모습이었다. 우드 톤과 화이트 톤, 노란빛의 조명이 만드는 아늑한 인테리어와 친절하고 공손한 직원들의 태도는 몬머스 커피 하면 ‘따뜻함’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리게 만드는 요소다.
맛있었던 메뉴는?
커피 메뉴보다 몬머스 커피에서 직접 만드는 유기농 설탕이 더 기억에 남는다. 자유롭게 가져갈 수 있도록 테이블이나 바 곳곳에 배치했는데, 밀가루 같은 식감의 설탕을 플랫 화이트에 넣어 먹으면 생각보다 재밌고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었다. (플랫 화이트와 크루아상 조합을 추천한다.) 한 가지 인상 깊었던 것은, 모든 과정을 완벽하게 통제하지 않고 다소 프리하게(?) 핸드드립 커피를 제조한다는 점. 저울 없이 훅훅 만들어 주지만 정확한 추출보다는 당장 눈앞에서 기다리는 손님을 신경 쓴다는 점에서 오히려 좋아 보였다.
런던 여행을 앞둔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게 있다면?
여행하는 동안 “Sorry”와 “Cheers”라는 말을 자주 해보기를 바란다. 상호 예의를 중시하는 런던 사람들이 호의적으로 대해줄 확률이 높다. 괜히 런더너가 된 것 같은 기분은 덤. 만약 카페 위주의 여행을 하고 싶다면 우유가 들어간 커피 메뉴를 먹어볼 것을 추천한다. 라테, 플랫 화이트 등 화이트 커피 문화가 잘 되어 있는 도시라서 어느 카페에 가든 맛이 괜찮았다.
친분이 있는 카페 사장님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보고 너무 귀여워 보여서 저장해 뒀다. 여기저기서 추천을 받았는데 다른 데는 몰라도 패들러스 커피는 꼭 가봐야지 벼르고 있었다.
어떤 분위기에 매료됐는가?
시골 산장이나 오두막에 온 듯 투박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에 첫눈에 반했다. 맛있는 커피와 친절하면서도 유쾌함이 느껴지는 직원들의 태도, 다양한 손님 구성, 큰 나무들이 있는 평화로운 테라스, 귀여운 로고 이미지까지 공간을 이루는 요소 하나하나가 매력적이다. 카페가 자리한 ‘니시하라 스트리트’도 아기자기해서 산책하기 좋았다.
맛있었던 메뉴는?
핫도그. 별 기대 안 하고 아침 요기를 하려 주문했는데 생각보다 하이 퀄리티의 미국식 핫도그가 나왔다. 육즙을 가득 먹음은 두툼한 소시지와 담백한 번의 조합이 너무 탁월해서 혀를 데이는 것도 감수할 수 있었다. 미국의 스텀프타운커피로스터스 원두로 내린 아메리카노도 정말 맛있다.
도쿄 여행을 앞둔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게 있다면?
클래식한 것과 트렌디한 것, 어느 한쪽만 파기보다는 도쿄의 올드 앤 뉴를 두루두루 경험해 보면 좋지 않을까. 오래된 킷사텐과 힙한 에스프레소 바 모두 각자의 매력이 확실할 테니까. 근본을 잊지 않으면서도 유행을 선도하는 도시를 더 진하게 느끼기 위해, 다음엔 더 여유 있는 일정으로 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