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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2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병풍 전시를 연 이유

<조선, 병풍의 나라 2>, 편지혜 큐레이터 인터뷰
지난달 26일에 막을 연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병풍 전시, <조선, 병풍의 나라 2>(~04.30)를 향해 많은 이들이 찬사를 보내고 있다. 이번 전시는 2018년에 열린 <조선, 병풍의 나라 1>에 이은 두 번째 병풍 전시라는 점에서 괄목할 만하다. 전시 1탄에서는 병풍 자체에 초점을 맞췄다면 2탄에서는 병풍이 지닌 미술사적 가치와 의의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미감에 주목한다.

<조선, 병풍의 나라 2>는 병풍에 담긴 ‘내용’인 그림뿐만 아니라 병풍이라는 ‘형식’ 자체를 재해석하고 있다. 병풍을 받치고 있는 전시 디자인 역시 신선하면서도 현대적인데, 이는 ESG 경영이라는 아모레퍼시픽의 방향성과도 상통한다.
《조선, 병풍의 나라 1》 전시 전경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일반적으로, 같은 제목으로 전시를 연이어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병풍을 향한 미술관의 관심은 어디에서 오는가? 또한, 현대 미술 전시로 꾸준히 인기를 얻어온 미술관이 고미술 전시에 지속적으로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병풍 전시를 향한 뜨거운 관심만큼 궁금한 점도 많을 터. 전시를 기획한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편지혜 큐레이터와 이야기 나눠 봤다.

Interview with 

아모레퍼시픽미술관 편지혜 큐레이터

채용신, 〈장생도10폭병풍〉, 1921년, 비단에 채색,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소장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고미술 전시를 꾸준히 여는 이유가 궁금해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미술관의 출발점부터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아요. 현재 저희 미술관의 명칭은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지만 79년도에 ‘태평양박물관’으로 출발을 했어요. 약 4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죠. 미술관의 출발은 선대 회장님께서 수집해온 컬렉션이 기반이 됐어요. 화장품 사업을 하는 회사의 방향성도 녹아 있지만 지금의 ‘오설록’의 모태가 되는 녹차 사업도 70년대부터 했기 때문에 사업과 관련된 화장용구나 도자기 분합, 장신구부터 전통 차 문화 유물까지 방대한 한국의 전통 미술품을 수집해왔죠. 작품들이 어느 정도 모인 시기가 79년도이고, 이때 화장품·장신구 박물관인 태평양박물관이 문을 열었어요. 본격적으로 박물관의 성격을 갖게 된 것이죠.

〈백수도10폭병풍〉, 19세기, 종이에 채색, 가나문화재단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병풍 전시를 연이어 열면서, 염두에 둔 점은 무엇인지.

2018년도에 처음 병풍 전시를 열었을 때는 병풍에 대해서 많이 보여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1탄 전시는 병풍을 최대한으로 소개하기 위해 노력을 했지요. 작품 수도 훨씬 많았어요. 70점이 넘었죠. 이번에는 ‘조선, 병풍의 나라’라는 같은 이름으로 두 번째 전시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1탄과 어떻게 다르게 진행할지 고민을 정말 많이 했어요. 전시와 전시 사이에 5년이라는 시간 차이가 있기 때문에 1탄을 보지 못하신 분들 혹은 기억을 잘 못하시는 분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1탄과 너무 다르게 보여드릴 수도 없다고 판단했기에 공통점과 차이점을 어떻게 둬야 할 지 중간 지점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굉장히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일월반도도12폭병풍〉, 19세기, 비단에 채색, 개인소장 ©아모레퍼시픽미술관

—각각의 섹션마다 전시 디자인이 상이하게 적용한 점이 눈에 띄더라고요. 

민간 병풍, 궁중 병풍, 근대 병풍이라는 큰 카테고리를 전시를 구성했어요. 전시장 입구에는 민간 병풍을 보여드리고 있어요. 민간 병풍은 유머와 해학이 깃들어 있는 것들이 많아요. 제작 과정에 있어서 뚜렷한 규칙이나 법칙이 없기 때문이에요. 궁중 병풍의 경우,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 혹은 왕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활용됐어요. 왕실에서 제작하고, 왕실에서 사용했기 때문에 뚜렷한 법칙에 의거해 도화서 화원들이 제작해야 했죠.

 

궁중 병풍은 일종의 시각적 장치라고 할까요? 단순히 장식의 용도만이 아니라 병풍을 사용하는 사람의 지위를 높여주는 역할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왕의 권위, 권력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제작 법칙 초본도 도화서 내에서 굉장히 비밀스럽게 공유하면서 물려줬어요. 철저히 법칙 안에서 제작되기 때문에 크기는 컸지만 정형화된 스타일로 그려지곤 했죠. 그래서 궁중 병풍과 민간 병풍을 따로 전시한 것이고요. 아마 직접 전시를 보시면 궁중 병풍의 품격을 체감할 수 있으실 거예요. 

 

이후 조선시대 병풍은 19세기에 폭발적으로 많이 제작되었고, 근대를 지나서 병풍의 형식은 유지되면서 여러 목적으로 쓰였어요. 화가들의 캔버스 역할까지 한 거예요. 청전靑田 이상범(1897~1972), 소정小亭 변관식(1899~1976), 심산心汕 노수현(1899~1978) 등 마지막 근대기 화단에 병풍이 어떻게 쓰였는지 제시하면서 마무리하는 구성으로 전시를 기획해 보았습니다. 

이상범, 〈귀로10폭병풍〉, 1937년, 종이에 수묵,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아모레퍼시픽미술관

—각각의 섹션을 구성하면서 특히 신경을 쓴 부분은 무엇인가요?

민간 병풍 섹션은 전시장 도입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자유로움과 재미 요소를 부여해야 했어요. 병풍을 어렵다고 느끼시는 분이 많기 때문에 흥미 요소도 넣어야 했고요. 그래서 빔 프로젝터를 활용했어요. 전시장 중앙에 빔 프로젝터를 쏴 원화 디테일을 보여주게 했습니다. 병풍의 세부 요소들을 큰 공간에서 재미있게 보셨으면 했어요. 궁중 병풍을 전시해 놓은 두 번째 섹션에서는 무게감을 주고자 했어요. 왕실의 병풍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분위기에 맞게 조도도 다르게 설정했습니다. 진중한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관람자들이 오래 머물며 관람하으면 좋겠다 싶어서 카펫을 깔고 쇼파를 두었죠. 마지막 섹션에는 근대 병풍을 전시했습니다. 병풍을 조금 더 현대적으로 보셨으면 하는 마음에 ‘ㅁ(미음)’자 형태의 실험적인 구조물을 두고 앞뒤, 양옆을 모두 활용해 병풍을 배치해 보았어요.

《조선, 병풍의 나라 2》, 민간 병풍 섹션 ©heyPOP
, 궁중 병풍 섹션 ©heyPOP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친환경과 지속가능성’을 위해 특히 심혈을 기울였다고.

일반적인 전시에서는 쇼케이스 장을 나무로 만들고 진열 유리도 실리콘으로 마감을 해요. 특히나 고미술 전시 같은 경우, 전시를 위해 쇼케이스를 한 번 만들고 이후에는 버리게 되거든요. 폐기물이 어마어마해요. 부피가 큰 몇 톤가량의 쓰레기가 나오는데 전시 준비하면서 항상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기획 초반부터 폐기물이 나오지 않는 방향으로 준비를 했어요.

 

일단, 가벽을 설치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조선, 병풍의 나라 1> 전시 때는 같은 공간에서 약 70점 이상의 병풍을 보여드려야 했기 때문에 가벽을 두었습니다. 가벽의 앞뒤를 모두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율적이었어요. 하지만 어마어마한 폐기물이 나왔고, 또 그 폐기물들이 친환경적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가벽 대신 건물의 벽을 활용하고, 쇼케이스만 재활용하는 방식으로 전환했어요. 쇼케이스 역시 재활용을 위해 나무가 아닌 금속 재질로 제작했습니다. 환경을 고려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어요. 일반적인 쇼케이스를 만들어서 병풍을 넣어버리는 것은 어렵지 않아요. 하지만 병풍 하나하나에 맞는 쇼케이스를 설계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맞춤 쇼케이스는 전시 이후 분리되고, 재조립해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속 가능성을 실현했다고 볼 수 있어요.

전시 전경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전시 전경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지난해에 열린 전시디자인트렌드 국제 포럼에서 전시 폐기물을 줄이기 위한 방안이 논의된 바 있어요. 전시 후 산더미처럼 쌓이는 폐기물 문제는 많은 이들이 우려해 왔지만, 실천이 어렵기 때문에 실현되는 경우가 드물죠.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지속가능성, 친환경이라는 주제를 실천하게 된 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일단 기업의 방향성과 분위기가 동력에 큰 몫을 했어요. 아모레퍼시픽의 모든 브랜드들이 초기 디자인 단계부터 ESG를 고민을 하고 있고요. 회사의 방향성은 강력하고 또 뚜렷한데, 미술관만 따로 갈 수는 없어요. 전시 폐기물이 많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고, 우리의 방향 역시 회사의 방향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노력을 한 것입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내부 전시로는 처음 시도한 거예요. 

전시 전경, 근대 병풍 섹션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전시가 실현되기까지 어느정도의 시간이 소요됐나요?

고미술 전시의 준비 기간이 긴 것은 사실입니다. 작품 하나하나를 연구하고 조사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리기 때문이예요. 이번 전시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모든 기관에 있는 병풍들을 다 조사했어요. 병풍을 조사한 자료들이 엄청난데, 그중에서도 기관들이 가지고 있는 ‘핵심’ 병풍들을 선정하면서 좁혀 나갔어요. 저희 전시의 방향성과 결이 맞는지도 따져야 했어요. 이번 전시를 통해 직접 접하기 어려운 병풍을 묶어서 함께 소개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 선정했습니다.

 

또한, 작품 대여를 해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더 필요했죠. 특히 고미술품의 경우 상호 교류 원칙에 따라 무료로 대여를 해요. 그렇기 때문에 교류 전에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고요. 이번 전시를 위해서 15개의 기관을 돌아다니며 직접 검토하고 체크했어요. 그뿐만이 아니예요. 작품을 픽업하고 또 미술관으로 가지고 와 설치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전시를 집중적으로 준비한 기간은 1년 정도이지만, 그전부터 준비해야할 것들이 쌓여 있었기 때문에 그 기간까지 포함하면 약 3년 정도를 준비한 셈이죠.

장승업, 〈홍백매도10폭병풍〉, 19세기 후반, 종이에 수묵채색, 개인소장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전시에 시리즈를 부여하는 경우는 드물어요. 고미술품 전시는 더더욱 드물지 않나요?

사실 동일한 제목의 시리즈 전시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죠. 특히 고미술 전시는요. 2018년도 병풍전을 열었을 때 관람자들의 반응이 좋았어요. 무엇보다, 병풍이라는 매체 자체가 굉장히 가치 있다고 생각을 해서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소개하는 작품은 신수품*들이예요. 저희의 신수품들도 전시되고 있지만, 이외에도 대중들에게 처음 공개되는 다른 작품들도 있어요. 이를테면 다른 기관의 소장품이지만 그들의 미술관, 박물관에서는 소개된 적 없는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기도 합니다. 

*새롭게 수집한 작품
〈평양성도8폭병풍〉, 18세기 후반, 비단에 채색, 송암미술관, 보물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이번 전시를 통해 그림의 재료로서 병풍뿐만 아니라, 병풍의 기능과 용도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이유는 아무래도 병풍이 전시 공간에 다양한 형태로 설치돼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병풍의 접히는 부분을 돌쩌귀라고 불러요. 돌쩌귀는 접혀 들어가는 부분이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지 않지요. 그리하여 관람자와 병풍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는 병풍을 쫙 펼쳐서 보여드려야 효과적이거든요. 그런데, 병풍 연구를 하면서 왕실에서 병풍을 어떻게 썼는지 확인할 수 있었어요. 근대 엽서 사진이라든지 근대기 유리 건판 사진 속에 조선 말 대한제국기 궁궐 안에 있던 병풍 사진들이 있었습니다. 자료를 확인해 보면, 병풍을 어떻게 써야 한다는 용도적인 법칙은 없었던 것 같아요. 공간을 꾸미기 위한 용도로 사용할 때는 공간에 맞게 쫙 펴서 평평하게 쓰기도 했고 공간을 나눌 때에는 세우는 것이 중요하니까 접어서 사용하기도 했고요.

 

병풍을 보관할 때도 접으면 마치 책처럼 되잖아요. 보통 우리나라 병풍은 짝수로 이뤄져 있습니다. 8폭, 10폭이 많고, 6폭, 12폭도 있어요. 접으면 크기가 확 줄죠. 이동하기도 편리한데, 펼쳤을 때 효과는 약 4m~5m라는 말이죠? 4m나 5m의 그림을 떠올려 보세요. 그림을 가지고 이동을 하려면 그 옛날에는 벽을 떼야 해요. 그런데 병풍은 접으면 되니까 굉장히 간편했던 거죠. 사실, 병풍의 형식적인 측면에 집중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아요. 병풍에 담긴 그림이나 제작한 화가에 집중하는 편이죠. 가장 안타까운 점은 누군가를 받쳐 주는 역할에 대해 “병풍 같다”라고 표현하는 거예요. 이 표현이 한국의 소중한 유산을 틀에 가두는 것은 아닐까 우려하며, 병풍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

전시 전경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조선, 병풍의 나라 3>도 나올 예정인가요

실제로 많은 분들이 병풍 전시 3탄이 나올 예정인지를 물어봐요(웃음). 아쉽지만, 고미술 전시를 여는 것은 매우 험난한 과정이긴 합니다. 시간과 노력이 그만큼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에요. 그럼에도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양한 연령대가 고미술, 전통문화예술에 관심 가질 수 있도록 연구하고, 보여 드리고자 합니다. 기대해 주세요. 

 하도경 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아모레퍼시픽미술관

프로젝트
<조선, 병풍의 나라 2>
장소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주소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 100
일자
2023.01.26 - 2023.04.30
하도경
수집가이자 산책자. “감각만이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현실”이라는 페소아의 문장을 좋아하며, 눈에 들어온 빛나는 것들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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