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황스러운 상황 속에서 약간의 좌절감을 머금고 있을 때 우리는 ‘띠로리’라는 의성어를 사용한다. 의성어 ‘띠로리’에 회사를 뜻하는 ‘소프트’를 합치니 실없는 웃음을 주는 인형들까지 모두 품을 수 있는 ‘띠로리소프트’가 됐다. 띠로리소프트의 인형은 어딘가 허술하면서도 엉성한 형태가 만들어내는 당황스러움과 특유의 유머러스함이 귀여움으로 귀결되는 형태다. ‘한입거리 쥐방울’, ‘생쥐를 위한 치즈대백과’, ‘강쥐 한 잔의 여유’ 등 말맛을 살린 인형들의 이름도 참신하다. 이곳에서 나오는 인형 특유의 매력 원천이 궁금하다. 이에 대해 띠로리소프트의 대표 띠로리(백지원)와 이야기 나눠 봤다.
Interview with 띠로리소프트
띠로리(백지원 대표)
—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현재 띠로리소프트를 운영하고 있는 띠로리라고 합니다. 작가명인 ‘띠로리’는 당황스러운 순간에 주로 쓰이는 멜로디인 바흐의 오르간 연주곡 ‘토카타와 푸가’의 도입부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띠로리소프트는 제가 운영하는 오리지널 굿즈숍으로, 주로 인형, 스티커 등의 물건들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 대표님은 조소를 전공했어요. 전공이 일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아마 많은 대졸자분들이 공감하실 테지만, 학교 내에서 실질적으로 배우는 것은 많지 않아요. 하지만 학교를 다니면서 스스로 터득한 ‘작업하는 메커니즘’이 현재까지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조각을 할 때 저는 먼저 무언가를 만들기 위한 구상 및 스케치를 해요. 그리고 재료와 크기를 정하고, 레퍼런스들을 찾아보고, 그것을 만들면서 다양한 시점에서 조망을 하는 과정을 거쳐요. 이는 지금 제가 행하고 있는 인형 만드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또한 대학시절의 큰 수확 중 하나는 손맛의 중요성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는 점이에요. 무엇이든 손으로 만든 것에 대한 맹목적인 애정이 생겼어요. 조금 못생기고 흠집이 있어도 사람이 직접 만든, 손맛이 있는 게 좋아요. 그래서 지금의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고요.
— 띠로리소프트의 인형들은 동물부터 사물까지 다양해요. 이들의 특징 중 하나는 모두 이목구비가 있다는 겁니다. 인형에 이목구비를 부여하는 이유가 있다면요?
저는 주로 인형에 ‘특이한’ 이목구비를 붙이려고 하는 편인데요. 평범하면서도 귀여운 이목구비보다는 어느 정도 허를 찌르는 표정이 있는 이목구비가 좋아요. 그런 이목구비를 부여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인형의 정형화된 생김새를 깨고 싶어서 인 것 같아요. 이를테면, 누구나 좋아할 만한 정석의 테디베어 얼굴보다 어딘가 이상하고 깜짝 놀라게 만드는 그런 얼굴을 만들고 싶은 거예요.
— 브랜드가 정체성을 가지기 위해서 로고를 포함해 약간의 디자인 통일성을 부여하기도 하는데요. 대표님은 인형들에 브랜드 정체성을 어떻게 녹여 내고 있나요? 소비자들이 띠로리소프트의 인형을 단번에 알아보게 하기 위해 들인 노력이 있는지 궁금해요.
최근에 띠로리소프트 브랜드 로고를 상표 출원했어요. 그 로고로 라벨이나 패키지 등에 활용하고 있긴 합니다. 다만, 브랜드 정체성 측면에서 한 노력이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인형과 상품들의 통일적인 미감을 만들어 상품만 보아도 ‘띠로리소프트의 것이다’라고 소비자들이 인식할 수 있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헛웃음을 자아내는, 묘하게 어리바리한 귀여움이 제가 지향하는 미감인데요. 특유의 이목구비나 독특한 생김새, 재미있는 인형의 이름 등으로 띠로리소프트의 아이덴티티를 만들어가고자 하고 있습니다.
— 로고도 직접 디자인한 건지.
로고는 집을 형상화한 건데요. 집의 지붕에 해당하는 부분은 고양이 귀, 집의 공간에 해당하는 아랫부분은 네모난 고양이 얼굴 형태로 제가 직접 드로잉 해서 만들었습니다. 특정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고 원래 로고의 원형이 되는 인형이 있었는데, 인형의 전체적인 형태가 네모난 리모컨처럼 생긴 고양이 모습이었어요. 그 인형의 얼굴을 따와서 계속 쓰게 된 경우랍니다. 로고를 만들 때에는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제 인형들이 모여 있는 집 같은 느낌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 같아요.
— 제품 화보 촬영도 직접 하고 있나요? 인형을 돋보이게 하는 노하우가 있다면요?
대부분의 인형들은 제가 직접 촬영해요. 그런데, 2022년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친한 사진작가님께 의뢰해 진행했습니다. 인형을 돋보이게 하는 노하우는 인형의 콘셉트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사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크리스마스 시즌에 만들었던 ‘뽀실뽀실 눈사람’은 말 그대로 눈사람 모양의 인형인데요. 그래서 촬영할 때 솜이나 폼폼이 등으로 주변을 눈 내리는 상황인 것처럼 표현한다든지, 동그란 눈사람의 뒷모습을 강조한다든지 등 인형의 포인트들을 모두 살려서 찍고자 했어요.
— 띠로리소프트 홈페이지를 보면 다수의 인형들이 품절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요. 품절된 인형을 다시 출시하기도 하는지 궁금해요.
띠로리소프트 인형들 가운데 미국에서 수입한 원단으로 제작하는 것들이 있는데요. 지난해에 미국으로 여행을 갔을 때 한국에서 찾기 어려운 독특하고 과감한 원단들을 발견했어요. 그것들을 직접 구입해서 가져왔습니다. 수입 원단이다 보니 자주 수급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해당 원단으로 제작한 인형 역시 품절이 될 때가 많아요. 원단 재입고가 가능한 상황이면 인형을 다시 출시할 때도 있어요. 그 외의 경우는 기간 및 재고 한정 상품일 때 품절 처리되는 경우이고, 다시 출시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인형을 디자인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지’라는 생각으로 하루 종일 말만 반복하면서 새로운 걸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을 거예요. 새로운 것은 늘 오래되거나 이미 주변에 있는 것에 기대어 있어요. 저는 주로 중고 판매점이나 오래된 빈티지 인형들 혹은 인형이 아닌 공예품이나 그림들, 도서관에서 빌려 본 그림책들, 길에서 본 간판 마스코트, 친구와 나눈 대화 등에서 이미지의 조각과 영감을 찾아요.
— 보통 새로운 인형은 어떻게 탄생하나요? 인형을 구상하고 제작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들려주세요.
저는 늘 한 번에 열 가지 생각을 해요. ‘이렇게 생긴 인형 만들면 좋겠다.’ ‘이런 기획을 하면 좋겠다.’ 등 늘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오르곤 합니다. 그런데 생각이 많아도 그것을 가만히 두면 흘러가버리거든요. 그래서 아이디어를 항목별로 메모장에 적어요. 그리고 새로운 인형을 만들어야 할 때가 되면 메모장을 다시 열어서 보고, 사용할 만한 아이디어가 있으면 쓰는 거죠. 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스케치를 하고, 머릿속에서 전개도를 그려요. ‘한 면과 다른 면을 이어 어떻게 재봉하면 되겠다’라는 그림이죠. 그걸 바탕으로 패턴을 제작하는 거예요. 직접 원단을 가지고 재봉해가면서 스케치 이미지와 가장 흡사할 때까지 패턴을 계속 수정해요. 무수한 수정 작업을 거친 후 이제 세상에 선보일 준비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면, 완성인 거예요.
— 새롭고 참신한 형태의 인형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양한 형태의 재료들을 탐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아요. 대표님이 재료 탐색을 위해 자주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저는 많은 것들을 버리지 않고 모아요. 학부 시절에도 전통적인 조각 재료를 깎거나 빚는 것보다 여러 재료로 아상블라주* 하는 것을 더 좋아했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옷의 단추나 작은 주머니, 맞지 않게 된 옷이나 우연히 주운 물건들 등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꼭 인형 부자재가 아니더라도 다른 의류나 여러 소품의 부자재들도 눈여겨보고 연구하죠. 당장 활용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도, 나중에 제 주인을 찾은 것처럼 적합한 인형을 만날 때가 있거든요. 바로, 이 순간이 인형 만들면서 가장 재미있는 때예요.
* 다양한 사물을 한데 모아 작품을 만드는 기법 혹은 그 작품을 일컫는 말
— ‘한입거리 쥐방울’, ‘기기묘묘 선물 상자’, ‘저스트 오므라이스’ 등 인형들의 이름들도 너무 재미있어요. 인형 이름을 짓는 노하우나 원칙 같은 게 있나요?
말맛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말 자체가 웃긴 것보다 운율이 있게 재미있는 이름이 좋아요. 이름을 입으로 되뇌었을 때 말하는 사람을 피식 웃게 만드는 그런 이름이요. 보통 다른 브랜드들은 영문으로 이름을 짓는 편이에요. 그런데 저는 소비자들로 하여금 이름 자체의 신선함과 충격을 그대로 느꼈으면 해서 한글로 많이 짓는 편이에요.
— 소비자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인형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아무래도 미니 토이 램프 시리즈가 가장 인기가 많은데요. 인형과 인테리어 소품 사이에 걸쳐 있는 성격을 지녀서 그런 것 같아요. 불 켜지는 기능이 있는 인형이라는 점이 매력적이고 독특한 요소로 작용해서 그런지 실제로 소비자들이 선물하기 좋은 인테리어 소품처럼 받아들이고 있더라고요. 그다음으로 인기 있는 제품은 한입거리 쥐방울입니다. 띠로리소프트의 초창기부터 함께하고 있는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예요.
— 수작업으로 인형을 제작하다 보면 지치는 순간도 많이 찾아올 것 같아요. 힘이 부치는 순간에 대표님은 어떻게 극복하나요?
저도 사람인지라 지치는 순간이 어느 정도 있어요. 특히 인형을 수작업으로 만들기 때문에 발생하는 근본적인 문제들, 예를 들어 제작 기간이 오래 걸려 힘들다는 점도 있고, 공산품과 비교해 가치를 매기는 외부의 시선도 있어요.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쌓아 올린 인식의 지형도가 다르니 받아들이는 게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아직 방법을 찾지 못한 것일 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지금의 제가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묵묵히 좋은 작업을 하는 것이에요. 많이 힘들 때면 수영이나 재미있는 영화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털어버리곤 합니다.
— 대표님의 하루 일과는 어떤가요? 루틴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저는 주로 오전보다 오후에 집중력이 좋은 편이라, 오전에는 메일을 확인하거나 택배 포장 업무 등 간단한 일들을 해요. 그리고 오후에는 인형제작이나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구상 같은 중요한 일을 하죠. 저녁에 퇴근하면 같이 사는 고양이를 돌봐요. 그리고 나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캘린더 일정 정리를 하고, 투두리스트(To Do List)를 펼치며 오늘 한 일들을 체크해요. 밤에는 오후에 못했던 일들을 마저 하기도 하고, 주로 일기를 쓰고 잠에 듭니다.
— 요즘 가방에 인형을 달고 다니는 게 트렌드라고 해요. 대표님은 이런 트렌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제 주변 지인들은 대부분 인형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에요. 가방에 인형 하나쯤은 다 달고 있어요. (웃음) 그래서 가방에 인형을 다는 것이 요즘 유행인지 잘 몰랐어요. 다만 최근에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어, 저 사람 키링 굉장히 귀엽다.’라고 생각한 적은 종종 있어요. 그런 걸로 미루어 보아 가방에 인형을 달고 다니는 게 트렌드인 것 같긴 하네요.
—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가 무섭다는 분들이 많은데요. 대표님의 생각은 어때요? 빠른 트렌드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꼭 트렌드에 맞게 살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자신만의 리듬을 가지고 사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 제 개인적인 신조는 이렇습니다만, 마케팅적인 부분에서는 아무래도 어느 정도 시류를 읽을 줄 아는 게 필요하긴 하겠죠. 하지만 시류에 가장 민감하다는 사람들도 모든 걸 꿰고 있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누구나 관심 있는 영역의 트렌드를 수용할 따름이니 모르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죠. 그러므로 변화가 두렵다거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 멀거나 가까운 미래에 예정된 계획이나 기획이 있나요?
빈티지 의류를 활용한 업사이클링 인형 전시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는 아직 비밀입니다. (웃음)
— 띠로리소프트의 비전과 포부가 궁금해요.
저는 스스로를 꽤나 심각한 아티스트라고 생각합니다. 제 인형의 대부분을 심각하면서도 진지한 태도로 제작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균형을 잃지 않고 띠로리소프트를 운영해, 실없는 웃음도 줄 수 있는 인형 회사가 되고 싶어요.
글 하도경 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띠로리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