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다른 12개의 서체로 디자인한 캘린더는 12가지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실제로 에디터 본인은 이들이 디자인 한 캘린더를 빠짐없이 구매하는 1등 소비자이다. 이들의 달력을 구매하며 늘 생각한다. ‘새해맞이 달력을 사야 한다면 이왕이면 디자인 감각이 뛰어난 것으로 사자!’라고. 고백컨대 사실 돈 워리 베이비는 나만 알고 싶은 디자인 스튜디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건 서체의 기쁨은 함께 누릴수록 커진다는 이들의 철학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매달 새로운 서체의 맛과 멋을 만드는 이들을 만나보자.
Interview with 돈 워리 베이비 스튜디오
김상현, 정원영 디자이너
— 매 연말이면 돈 워리 베이비 스튜디오의 서체 캘린더를 주문하는 게 제 나름의 새해맞이 루틴인데요. 그 루틴을 만든 이들이 누굴까 늘 궁금했어요. 드디어 만나 뵙네요.(웃음) 열두 가지 서체의 매력을 보여주는 캘린더 디자인 작업을 시작하신 계기가 항상 궁금했습니다.
원영 저희가 타이포그래피 기반의 디자인 작업을 좋아해서 다양한 서체를 활용한 작업을 시도하곤 하는데요. 재밌는 서체를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때마침 클라이언트 잡이 아닌 우리만의 제품을 만들어 보는 것을 고민할 때라 일상 속에서 가깝게 서체의 즐거움을 만날 수 있는 캘린더는 어떨까 싶었죠.
2022년 3월에 쓰인 Or Type의 ‘Boogie School Serif’와 7월에 쓰인 Grilli Type의 ‘GT Maru Mega’, 2023년 9월에 쓰인 Power Type Foundry의 ‘OffBit’은 봄, 여름, 가을의 계절의 특징을 생각했어요. 그리고 식목일처럼 특정 날이 있는 달은 나뭇가지가 연상되는 서체를 사용했어요. 2022년 4월 Our Polite Society의 ‘Restructionnal Text Cranked’가 그래요.
— 물론, 지금까지 달력에 사용한 모든 서체가 소중하겠지만, 그중에서도 돈 워리 베이비 스튜디오가 가장 아끼는 서체가 있다면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상현 2022년 표지 디자인에서 보여준 디나모 타입페이스(Dinamo Typefaces)의 서체 ‘카메라(Camera)’. 신기하게도 질문을 받고서 저희 둘 다 두 말없이 바로 이 서체를 꼽았어요. 카메라라는 이름처럼 서체 곳곳에는 동그란 구멍이 뚫려 있는데, 꼭 렌즈처럼 보이는데 시각적으로 매우 직관적이라 인상적이더라고요. 아울러 완성도도 뛰어나고, 저 해상도 환경을 고려한 잉크 트랩 효과도 있어서 가장 먼저 생각났어요.
—캘린더 디자인이 아닌 평상시에 디자인 작업할 때 자주 사용하는 서체도 있을까요? 작업하면서 자연스럽게 손이 자주 가는 서체 말이죠.
원영 평소에는 굵고, 선명하고, 가독성 좋은 산세리프 그리고 한글 서체로는 고딕체를 자주 사용하고 있어요.
— 서체 캘린더의 디자인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매해 12개의 서체를 구매하는 비용부터 작업 시간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아요.
상현 아무래도 서체가 가장 중요하니까 디자이너에게 저희의 캘린더 프로젝트를 소개하면서 문의를 해보죠. 물론, 구매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디자이너가 프로젝트의 취지에 공감해서 사용하도록 허락해 주는 경우도 더러 있어요. 또, 어떤 서체는 무료로 배포하는 것도 있고, 모금 혹은 기부에 참여하는 서체도 있어요. 올해 11월에 사용된 RYM 서체는 ‘SoliType’이라는 EU 난민을 지원하는 프로젝트에서 알게 된 서체입니다.
— 서체 캘린더를 디자인하면서 유의하거나 신경 쓰는 지점이 있다면요?
원영 우선 전년도 캘린더에 사용한 같은 색을 사용하는 건 최대한 피하고 있어요. 또, 캘린더에 서체를 크게 적용하기 때문에 애초에 와이드 한 서체는 피하는 편이에요. 옆으로 넓은 서체를 사용하면 전체 지면에 여유가 없어지더라고요. 그러면 결국 글자를 줄여야 하는데, 돈 워리 베이비의 캘린더는 서체가 커야 더 아름답거든요. 처음에는 그 부분을 고려하지 않고 작업해서 몇 번을 고쳤어요. 그래도 해마다 몇 번 하다 보니까 이제는 서체를 보면 달력 디자인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겠다는 게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 돈 워리 베이비의 서체 캘린더에 대한 주변 반응도 궁금한데요. 피드백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게 있었을까요?
상현 캘린더가 나오면 서체 디자이너들에게도 저희가 만든 캘린더를 보내줘요. 그때마다 다들 너무 좋아해 주더라고요.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반응이 무척 좋아요.(웃음) 돈 워리 베이비의 캘린더가 서체와 디자이너 그리고 디자인 스튜디오를 소개할 수 있는 하나의 채널이 되는 것이죠.
원영 한 고객분은 저희 캘린더를 유럽에서도 판매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현재는 100~150부 정도 소량으로 제작 중이라 당장은 어렵겠지만, 해외 판매도 고민해 볼 생각이에요.
— 돈 워리 베이비 스튜디오가 디자인한 서체 캘린더를 보다 재밌게 즐길 수 있는 팁을 주시자면?
상현 캘린더가 A3 사이즈인데 여유 있게 만든 만큼 사람들이 자신의 일정을 손으로 직접 적으면서 캘린더를 자주 활용했으면 좋겠어요. 내 일상을 기록하는 방법이기도 하니까요.
원영 물론, 캘린더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하나의 인테리어 소품이 되기 때문에, 실내 공간을 꾸미는 소품으로 활용해 보는 것도 추천해요. 또, 저희 아이가 그려준 그림도 저희가 캘린더 디자인할 때 포함했는데 나름의 귀여운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매달 새로운 서체의 즐거움, DON’T WORRY BABY ②
▼ 2편에서 계속됩니다.
글 이정훈 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돈 워리 베이비 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