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6월 2일 버킹엄 궁에서 스물다섯 살의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메리(Elizabeth Alexandra Mary)는 대관식을 치른 이후, 70년 동안 영국의 여왕으로서 자리를 지켰다. 영국의 최장수 재위 군주로서 지난 6월 여왕의 즉위 70주년(플래티넘 주빌리) 행사가 성대히 치러지기도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어도 꿋꿋이 이겨내고 일정을 소화하는 여왕의 정정한 모습에 모두들 감탄을 금치 못했다.
심지어 그녀가 너무 오래 왕좌를 지킨 나머지, 왕세자인 찰스 3세가 왕이 되어 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뜰 것이라는 농담조차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도 시간의 흐름에는 장사가 없었다. 결국 1년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 필립 공을 따라, 그녀도 무거운 짐을 벗어던지고 세상과 작별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오랜 시간 동안 왕좌를 지킨 덕에 그녀는 현대사의 굵직한 일들을 겪어내며 ‘살아있는 현대사’ 그 자체로 불렸다. 13살이었던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것이 시발점이었다. 캐나다로 피신하라는 총리의 제안을 거절한 그녀는 영국을 지키며 군인들에게 희망을 선사했다. 18살이었던 1945년에는 군에 입대하여 운전병으로 복무하며 다른 왕실의 여성과는 남다른 행보를 보였다. 이후 영국 및 영연방 국가의 여왕이 되었던 그녀는 독일 베를린 장벽 붕괴, 소련 해체와 더불어 냉전 시대 종결, 유럽연합 창설, 영국의 홍콩 반환, 미국 세계무역센터 테러 공격, 세계 금융위기, 브렉시트 결정 등과 같이 세계사의 역사적인 순간과 함께 하며 영국인들의 ‘마음의 여왕’으로 군림하게 된다.
여왕은 영국 총리 14명, 미국 대통령 14명이 바뀌는 것을 봐왔으며, 2차 세계대전부터 브렉시트까지 모두 겪었다.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유명했던 영국이었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세계가 변화하면서 영연방 국가에 대한 영향력이 약해져가고 있었다. 그 끝자락에서 여왕이 되었던 그녀는 영국 왕실이 현대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라는 왕실의 전통을 지켜나가는 동시에 외교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다른 나라와의 우호를 쌓았다. 통치 기간 동안 110개국 이상을 방문하며 세계에서 가장 많이 여행한 군주가 되었다. 여왕의 사망 후에 영국 왕실의 입지가 예전만 못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것도 그녀가 70년 동안 활발한 활동을 벌여왔기 때문이다.
영국 왕실의 일원으로서, 영연방 국가의 여왕으로서 엘리자베스 2세는 영국을 대표해왔다. 덕분에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 소설, 게임,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여왕의 모습에 영감을 받은 창작물이 꾸준히 만들어졌다. 여왕으로 즉위하면서부터 사진, 예술 분야에서 여왕의 모습을 담은 작품들이 계속해서 선보이기 시작했고 그 분야가 점차 넓어졌다. 선보이는 콘텐츠마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는 점에서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은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1953년 세실 비튼(Cecil Beaton)이 대관식을 치른 여왕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시작으로 점차 여왕의 모습은 시대에 걸맞게 다양한 모습으로 창작되어왔다. 여왕의 모습을 가장 파격적으로 다룬 이들은 아마도 펑크 시대를 대표하는 그래픽 디자이너 제이미 리드(Jamie Reid)와 세계적인 아티스트 앤디 워홀(Andy Warhol), 그리고 화가 루시안 프로이트(Lucian Freud)가 아닐까 싶다.
제이미 리드는 펑크 록 장르를 대표하는 섹스 피스톨스의 <God Save the Queen> 싱글 앨범에 어울릴 수 있도록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사진을 차용하여 만든 커버를 제작해 화제를 모았다. 왕실 사진작가 피터 그루젠(Peter Grugeon)이 촬영한 여왕의 흑백 사진의 눈과 입에 신문에서 오려낸 듯한 글자들로 싱글 제목과 밴드 이름을 붙인 것이 인상적이다. 그 당시 섹스 피스톨스가 기득권과 사회 지도층에 분노하며 만든 노래에 걸맞은 아트워크였다. 이후에도 그는 정부를 비판하는 의미를 담은 여러 작품들을 선보였지만, 여왕의 이미지를 변형시킨 작품만큼 강렬한 작품은 없었던 듯하다.
팝아트의 아버지로 불리며 유명인들의 초상화를 비롯한 여러 작품을 선보였던 앤디 워홀 또한 엘리자베스 2세의 사진을 변형시킨 작품을 선보여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Reigning Queens'(1985)라 이름 붙은 이 작품은 1985년에 세상에 선을 보였으며, 앤디 워홀의 스타일을 바로 느낄 수 있는 요소들로 꾸며져 눈길을 끈다. 유명세를 연구하며 유명인을 동경했던 아티스트의 집착이 엿보이는 동시에 대중 문화에 중심이 된 여왕의 위상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보통 왕족의 초상화는 일반적인 작품보다 크게 만들어져 그 권위를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된다. 하지만 루시안 프로이트가 제작한 여왕의 초상화는 너무나 작아서 문제가 되었다. 높이 23.5cm, 너비 15.2cm 크기의 이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자그마치 6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는 점이 놀라울 뿐이다. 심지어 작가는 이 보다 더 작게 작품을 만들려고 했다. 여왕조차 좋아하지 않았던 이 초상화는 여왕보다는 작가의 얼굴과 더 닮았다는 것이 특징이다. 자신의 모습을 그리기 좋아했던 작가의 고약한 농담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렇듯 전 세계, 전분야에 영향을 미쳤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예술 분야에서 활발한 지원 활동을 해온 것에 대한 사실은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여왕은 전쟁, 화재 등으로 인해 파괴되었던 성과 궁전을 복원했고, 갤러리를 지었으며, 재단을 통해 영국의 문화 예술을 지원해왔다.
2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던 1940년부터 1941년까지 런던에 집중되었던 공중 폭격 작전으로 4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사망하고 110만 채의 가옥이 손상되거나 파괴되었다. 이런 가운데 버킹엄 궁전의 내부 또한 폭격으로 심각하게 손상되는 참사를 겪었다.
특히 왕실 예배당은 수리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파괴되었다고 한다. 여왕은 왕위에 오른지 거의 10년이 지난 후인 1962년에 폐허가 되었던 왕실 예배당 자리에 ‘퀸스 갤러리(The Queen’s Gallery)’를 설립하며 전쟁의 아픔을 승화시키고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문화 예술을 관람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후 퀸스 갤러리는 여왕의 즉위 50주년 행사인 골든 주빌리(Golden Jubilee)를 기념하여 리모델링에 들어갔고, 2천만 파운드(약 322억 원)가 투자되어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3개의 전시공간으로 이루어진 갤러리에서는 영국 왕실 거처와 미술품 등을 관리하는 왕실 재단인 로열 컬렉션 트러스트(Royal Collection Trust)가 소유하고 있는 보물, 예술 컬렉션인 로열 컬렉션(Royal Collection)이 정기적으로 주제를 바꿔가며 전시 중이다. 재단은 컬렉션의 작품이 오랫동안 외부에 노출되지 않도록 섬세한 조율을 하며 관리하고 있다. 이 밖에도 퀸스 갤러리는 윈저 성과 에든버러의 홀리루드하우스 궁전(The Palace of Holyroodhouse)에 각각 별관을 두고 있다.
윈저 왕조의 제 4대 국왕으로서 여왕에게 윈저 성은 매우 중요한 장소였다. 11세기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었기에,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자리를 지킨 성으로 꼽히는 이 성은 버킹엄 궁전, 홀리루드하우스 궁전과 더불어 왕실의 공식 주거지다. 특히 여왕이 주말 동안 머무르는 공간으로, 여왕의 애정이 담긴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여왕은 세계대전 이후에, 그리고 1992년 일어난 화재로 파손된 윈저 성을 복구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1992년 11월 20일 누전으로 인해 일어난 화재는 성의 많은 부분을 파괴했다. 장장 15시간 동안 이어진 화재로 왕실 구성원이 이용하는 스테이트 룸 9곳을 포함하여 115개의 방이 파괴되었다. 여왕은 ‘윈저의 부활’ 프로젝트를 위해 아낌없는 지원을 쏟았고, 5년에 걸친 복원 과정을 통해 다시 완벽한 모습을 되찾았다. 이는 성공적인 복원 사업 중 하나로 꼽히며, 2019년 화재로 인해 노트르담 대성당이 피해를 입었을 때 마크롱 대통령이 참고할 정도였다. 또한 여왕은 수채화 화가 알렉산더 크레스웰(Alexander Creswell)에게 화재로 인해 폐허가 된 모습에서 복원되는 과정을 그림으로 남기도록 지시하여 그 비극적인 사건을 예술로 기록했다.
왕실 재단 로열 컬렉션 트러스트는 1992년 일어난 윈저 성 화재로 인해 여왕이 나서서 설립한 재단이다. 그전까지 로열 컬렉션은 영국 왕실 사무를 관장하는 로열 하우스홀드(Royal Household)가 운영하고 있었다. 예술 작품을 보다 안전하게 보존하는 동시에 예술에 대한 대중의 감상과 이해를 향상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새로운 재단이 필요해졌고, 덕분에 현재까지 이 재단을 통해 왕실이 보유하고 있는 작품들의 정보가 공유되고 있다. 이를 통해 로열 컬렉션을 왕실 사유재산이 아닌, 공공재로서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인다.
이 재단이 소유하고 있는 로열 컬렉션은 100억 파운드(약 16조 원) 이상의 가치를 지니며,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예술 집합체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컬렉션은 7,000점의 회화 작품, 30,000점의 수채화 및 드로잉, 450,000점의 사진, 수백 점의 보석, 도자기, 조각, 필사본, 무기, 가구 등을 포함하여 100만 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국을 대표하던 여왕은 이제 이 세상에 없지만, 이 컬렉션은 여전히 그 가치를 빛내며 영국 문화유산의 위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세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이 올바른 생각으로 지켜낸 문화 유산들은 그렇게 시간의 흐름에 상관없이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글 박민정 객원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