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이 브랜드 경험에 더욱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에서 더 나아가 하업트는 전에 없던 브랜드 팝업 쇼룸, 틀을 깨는 브랜드 경험을 만들고자 모든 신경을 집중한다. 부산의 전포동에서 로컬의 젊은 세대와 브랜드 사이의 연결 고리, 브랜드를 더욱 브랜드답게 만드는 공간이 되기 위한 첫발을 뗀 정광호 디렉터를 만나 더 많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Interview with 정광호 디렉터
하업트는 어떤 공간인가요?
하업트는 브랜드 팝업 쇼룸입니다. 브랜드를 더욱 브랜드답게 만들어주는 오프라인 브랜드 대행사라고 풀어 설명할 수 있겠네요. 일반적인 팝업 쇼룸은 브랜드가 공간을 대관해서 입점하고 빠지는 형태죠. 일종의 단기 임대 구조에요. 하업트는 그 지점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갑니다. 대관이 아닌 대행을 지향해요. 저희는 브랜드 이미지와 인지도 제고를 위해 클라이언트와 함께 연구하고 기획하며 전략을 세웁니다. 브랜드의 문제점과 니즈를 정확히 파악한 후 공간을 통해 최적의 브랜드 경험을 고객에게 제안하죠.
네이밍에 담겨 있는 의미도 궁금합니다.
하업트는 독일어 하업트달스텔러(Hauptdarsteller)라는 단어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습니다. 주연배우라는 뜻이죠. 하업트(Haupt) 자체만 보면 머리, 정신력, 사고 이런 뜻이지만, 저희는 그보다 주연배우라는 의미에 더욱 무게를 둡니다. 고객이 주연이 되고, 공간인 하업트는 조연이 되죠. 하업트 로고를 보면 U의 앞뒤로 괄호가 처져 있어요. HA(U)PT라고 표기하죠. 괄호 안의 U는 입점 브랜드를 상징해요. 하업트는 U, 즉 당신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라는 아이덴티티를 로고에서 더욱 굳건하게 드러내고 싶었어요. 건물의 유리 파사드에선 현재 입점 중인 브랜드명을 괄호와 함께 슈퍼 그래픽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입점 브랜드가 바뀔 때마다 괄호 안의 브랜드도 바뀌며 연속성을 가져가죠. 중요한 것은 하업트는 어디까지나 대행사이기 때문에 브랜드 컬러를 비롯해 하업트를 상징하는 시각적 요소를 최소한으로 드러내고 있어요.
디렉터님을 포함해 강찬, 김강민, 이호연 총 네 분이 함께 하업트를 운영하고 계시죠. 각자 어떤 역할을 맡고 있나요?
저는 입점 브랜드의 계약부터 브랜드 이미지를 정확히 분석하고 이를 공간에서 어떻게 풀어낼지 기획합니다. VMD 강찬 님은 입점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공간에서 섬세하게 구현하죠. 시각적 요소 외에도 청각, 후각 등 오감을 통해 브랜드 이미지를 그려내는 역할을 맡고 있어요. 강민 님은 고객 경험 매니저입니다. 각기 다른 브랜드의 서비스 톤 앤 매너를 고객에게 온전하게 전하기 위해 연구하고 이를 하업트에 녹여내 일관성 있는 고객 서비스를 제공하죠. 호연 님은 Head of Player라는 바의 총괄 책임자로서, 음료와 디저트를 개발하고 고객의 미각적 경험과 바의 전반적인 운영을 책임집니다. 하업트는 브랜드 팝업 쇼룸 외에도 카페 식음료 개발에 많은 신경을 쏟고 있어요. 첫 메뉴를 구성하는 데 4개월이 걸렸으니까요.
광고 회사의 마케터, 럭셔리 브랜드의 세일즈로서 직장 생활을 정리하고 하업트를 창업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브랜드 가치는 어떻게 하면 고객에게 더욱 인상 깊게 기억될 수 있을까, 인상 깊은 브랜드 경험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에서 하업트가 시작됐어요. 저는 학부 시절 광고학을 공부했어요. 졸업 후에는 자연스럽게 광고 대행사에 입사해 퍼포먼스 마케터로 커리어를 쌓았습니다. 마케터로서 다양한 브랜드에 솔루션을 제안하던 중 좀 더 직접적으로 고객에게 브랜드 가치를 전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어요. 디지털 상의 데이터가 아닌, 현장에서 직접 부딪혀보고 싶었죠. 이를 위해 결국 퇴사까지 했고요. 이후, 유럽 여행을 떠나 럭셔리 브랜드는 어떻게 그들의 가치를 전하는지 직접 살펴봤습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한 달간 템플스테이를 했죠.
템플스테이를 하며 매일 세일즈에 관한 책만 읽었어요. (웃음) 그리고 정말 운이 좋게 럭셔리 브랜드의 세일즈로서 다시 일하기 시작했죠. 익히 알려진 럭셔리 브랜드 대부분이 풍부한 브랜드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데요. 브랜드가 지속하는 데 스토리텔링의 힘이 정말 중요해요. 반면에 좋은 스토리를 가지고 있음에도 이를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브랜드도 정말 많습니다. 이러한 브랜드와 고객을 이어줄 매개체가 될 사업 군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팝업 스토어가 눈에 들어왔어요. 최근 서울의 성수동이나 연남동을 가보면 정말 쉽게 팝업 스토어를 볼 수 있잖아요. 그렇지만 각양각색 팝업을 경험하며 근사한 제품 전시 이상의 무언가를 발견하기는 어려웠어요. 앞서 말씀드린 단순 대관의 키워드가 여기 있죠.
그렇게 단순 공간 대관이 아닌, 기획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대행을 생각하신 건가요?
네, 그래서 브랜드 팝업 쇼룸을 만들어야겠다는 결심 끝에 2년 동안 사업 모델을 빌드업했습니다. 지금의 공간은 그렇게 탄생했고요. 하업트가 지향하는 핵심 가치는 경험의 자율성입니다. 직원의 안내 없이도 고객 스스로 입점 브랜드의 스토리에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백화점에 가면 판매 직원이 제품에 담긴 이야기를 계속해서 전달하는 것과는 다른 정반대의 경험을 선사합니다.
브랜드 팝업을 대행하는 것 외에도 하업트를 일반적인 팝업 스토어와 구분 짓는 차별점은 무엇인가요?
하업트를 소개할 때 매력적인 공간을 빼놓을 수 없어요. 공간 구조, 공간의 매력도라고 이야기하죠. 하업트의 공간 경험은 2층의 브랜드 쇼룸에서 시작합니다. 2층에서 자연스럽게 팝업을 살펴본 후, 1층의 카페로 내려가는 한 방향 구조로 되어있어요. 브랜드 소비의 목적이 아닌, 경험에 최적화된 구조입니다. 가구 역시 1950, 1960년대의 오리지널 미드 센트리(Mid-centry) 가구로만 채워 놓았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바우하우스 디자이너들이 디자인한 미드 센트리 가구의 매력은 전통이라고 생각해요. 그 말인즉슨 시대가 변해도 사랑받는 과하지 않은 세련됨을 뜻해요. 제가 접한 어떤 브랜드든 이러한 세련됨을 지향했죠. 하업트와 함께 하는 브랜드의 특별함이 더욱 특별해질 수 있도록 공간 구조와 내부 인테리어를 신경 썼습니다.
이용객이 많은 상공간에 저렴하지 않은 미드-센트리 모던 가구로 가득 채운 건 정말 과감한 결정이라 생각됩니다. 유지 보수에도 큰 비용이 들 것 같고요.
그래서 하업트 공간의 매력을 단어로 표현하자면 디테일이에요. 저희는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손이 닿는 부분에는 오히려 더 투자했어요. 예를 들어, 화장실의 손잡이는 독일 바우하우스에서 파생된 테크노라인이라는 브랜드 제품입니다. 손잡이를 받는 데만 4주가 걸렸어요. 금액도 상당하죠.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닐 수 있지만, 저희는 손잡이를 잡았을 때 느껴지는 기분 좋은 그립감처럼 작은 요소 하나하나가 모여 매력 있는 공간을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전포동에 터를 잡은 것도 차별성으로 볼 수 있을까요?
그럼요. 지역성 역시 무시할 수 없습니다. 서울이 레드오션이라면 부산은 여전히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해요. 부산의 20, 30대 인구가 82만 명 정도 됩니다. 서울과 비교하면 3분의 1도 안 되는 숫자이긴 하지만, 결코 적은 숫자도 아니죠. 하업트는 부산의 82만 젊은 세대와 브랜드 사이의 연결고리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 전포동은 저희의 주 타깃 고객인 20, 30대가 가장 주목하는 지역입니다. 이곳으로 오지 않을 이유가 없었어요.
‘도전’은 전포동을 설명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키워드입니다. 사실 이 거리 자체가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어르신분들만 계시는 조용하고 한적한 지역이었어요. 기존 서면 상권을 중심으로 이곳 부산진구에는 유능한 카페, 바, 레스토랑의 사장님이 많이 계십니다. 그들이 사업 영역을 확장하며 지금의 전포동 상권이 형성되었고요. 자기만의 상공간을 운영하는 분들이 계속해서 도전하며 여기까지 영역을 넓혀온 거예요. 저 역시 이렇게 뛰어난 사람들이 모인 상권에 속하고 싶은 열망이 굉장히 강했죠.
하업트의 클라이언트는 주로 서울을 기반으로 하는 브랜드라고 들었습니다. 그들에게 전포동은 조금 낯설지 않을까요?
서울에 있는 클라이언트분들이 보기엔 당연히 너무나도 유명한 해운대, 광안리가 브랜드를 알리기에 더욱 적합한 지역이라 생각하기 쉽죠. 전포동은 부산하면 떠오르는 바다에서도 멀잖아요. 그렇지만 저희는 자신 있게 전포동의 매력을 입점 브랜드에 소개하고 있어요. 사실 백 마디 말보다 브랜드 관계자분들과 전포 거리를 같이 한 번 걸으면 곧바로 지역의 매력을 체감하시죠. 한 걸음 더 들어가면 해운대나 광안리 같은 관광지는 부산 지역민 보다 오히려 타지역분들이 더 많으세요. 하업트의 주요 타깃층은 로컬의 젊은 세대인데 관광지 주변 지역에서는 타깃층의 본질이 흐려지는 거죠. 전포동의 매력은 SNS의 게시물 태그 수치로도 드러납니다. 부산의 대표적인 상권 광안리, 해리단길보다 전포동, 전포카페거리의 게시물 수가 압도적인 비율로 증가하고 있어요.
하업트만의 팝업 브랜드 선정 기준이 있나요?
먼저 해당 브랜드가 매력적인 스토리를 가졌는지, 온 오프라인에서 어떻게 채널을 구축하는지 살펴봅니다. 더 나아가 자발적인 고객 경험을 끌어낼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고려합니다. 자발적인 고객 경험은 직원이 먼저 고객에게 제품 소개를 하며 구매를 유도하는 것과는 분명 다르죠. 브랜드로 인해 고객 스스로 공간을 찾고, 제품을 경험하며 본인의 취향을 탐색하는 것이 자발적 고객 경험의 시작입니다. 경험이 만족스러웠다면 자발적으로 제품 구매도 하고요. 적극적인 경험을 통해 새겨진 브랜드에 대한 기억은 훨씬 더 긍정적인 이미지로 남기 마련이죠.
하업트를 단순히 브랜드 팝업 쇼룸으로 정의하기엔 카페 공간과 메뉴 역시 정말 매력적으로 느껴지더라고요. 자신 있게 소개하는 메뉴는 어떤 게 있나요?
호연 님이 메뉴 연구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그리디(Greedy)라고 부르는 아이스 뱅쇼를 추천해 드려요. 레드와 화이트 와인을 베이스로 두 종류가 있습니다. 각각 다른 매력이 있어요. 그리디 레드 뱅쇼는 달콤한 과일 향이 베여있는 레드와인의 풍부한 바디감과 차분하고 부드러운 우디향이 조화롭게 어우러지죠. 화이트 뱅쇼는 시트러스 향이 어우러진 오렌지 필의 달콤함 뒤로 옅게 베이는 화이트 와인의 쌉쌀함과 함께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꽃향기, 나직한 우디향의 섬세한 맛을 느낄 수 있답니다.
베이커리 메뉴 중엔 대파크림 퀸아망을 권하고 싶어요. 저희가 직접 만든 브로콜리 퓨레와 대파크림을 퀸아망과 함께 즐길 수 있죠. 브로콜리 퓨레는 브로콜리를 삶아서 수프처럼 부드럽게 만들었어요. 대파크림은 대파를 냉침 해서 매운맛을 덜어낸 후 크림치즈를 올렸고요. 부드러운 단맛과 짠맛의 조화가 아주 좋습니다.
현재 공간에서 <시스올로지(sisology)>라는 브랜드의 팝업이 진행 중이죠. 어떤 매력을 가진 브랜드인가요?
시스올로지는 너와 나, 우리라는 뜻의 sister와 지혜, 이야기를 뜻하는 ology의 합성어입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향으로 담아내는 뷰티 프래그런스 브랜드죠. 시스올로지 브랜드 소개에 이런 말이 있어요. “소비자 중심인 브랜드를 고민했고, 오롯이 자신의 삶이 담겨 언제든지 꺼내 볼 수 있는 상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즉, 고객이 좋아하는 것을 깊이 탐구하며 고객 중심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목표가 시스올로지로 이어진 것이죠. 브랜드의 취지를 보며 제가 알게 모르게 많은 동질감을 느꼈어요. 그리고 조말론, 아쿠아디파르마 등 퍼퓸 브랜드의 조향을 맡아 온 조향사 조엘(Joëlle)은 시스올로지의 르 델라와 에뜨레 뚜아라는 향을 만들기도 했답니다. 치열한 코스메틱 업계에서 진심으로 제품을 만드는 브랜드죠.
새로운 브랜드를 찾는데 많은 시간을 들이시는 만큼 트렌드에도 상당히 민감할 것 같습니다.
“Break the mold”가 하업트의 슬로건입니다. ‘기존의 틀을 깨다’라는 뜻이에요. 하업트의 시선에서 틀을 깬다는 것은 공간 구조, 사업 모델, 그리고 클라이언트와의 관계까지 계속해서 새로움을 만들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새로운 트렌드와 브랜드를 디깅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죠. 지금 가장 주목받는 공간을 실제로 살펴보는 것부터 새로운 영상, 미디어 등 다각도로 트렌드를 탐구해요.
하업트의 등장은 전포동 상권에 굉장히 의미 있는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F&B 공간으로 가득한 거리의 풍경을 더욱 다채롭게 하는 동시에 젊은 세대에겐 트렌디하고 감도 높은 브랜드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일 테니까요. 하업트를 통해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바가 있다면요?
부산에서 다소 낯선 브랜드 팝업 쇼룸이라는 콘셉트를 안정적으로 정착시키는 게 첫 번째 목표입니다. 경제학 용어로 J커브라고 하죠. 이제 갓 첫발을 뗀 하업트는 단편적인 수익성 보다 더욱 중시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브랜드 팝업 쇼룸이라는 ‘키워드’를 부산에 정착시키고 업계 상위에 포지셔닝하고자 힘쓰고 있어요. 지금은 저희가 브랜드에 일일이 연락하고 우리의 포트폴리오를 보여주며 그들을 설득하지만, 하업트가 잘 자리 잡는다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브랜드에서 먼저 하업트에 연락하겠죠. 이 모습이 저희가 그리는 J 커브이자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입니다.
다음으로 하업트를 전포동을 찾는다면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요. 예를 들어,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할 때 개발자들이 유저에게는 돈을 안 받잖아요. 대신, 사용자들이 계속 몰리고 몰렸을 때 클라이언트로부터 광고 대행비를 받는 게 애플리케이션의 기본적인 수익 구조이죠. 마찬가지로 하업트를 전포동을 오면 무조건 거쳐 가야 하는 공간으로 성장시키는 게 저희가 가장 원하는 포지션입니다.
고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와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이 되고, 반드시 음료를 마시지 않더라도 하루에 하업트를 찾는 수많은 방문객이 브랜드의 강력한 무기이자 포트폴리오가 될 것이라는 게 제 사업 마인드이기도 해요. 마지막으로 하업트는 브랜드를 위한 공간인 만큼 입점 브랜드의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공간이 되는 게 가장 큰 포부입니다.
글 이건희 객원 필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하업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