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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19

에스 데블린 전시는 혼자 보지 마세요

푸투라서울 〈세 번째 시: 에스 데블린, 다시 집으로〉
세계적인 시각예술가 에스 데블린(Es Devlin)의 국내 첫 개인전 〈세 번째 시: 에스 데블린, 다시 집으로〉가 8월 20일부터 2027년 1월 17일까지 서울 북촌 푸투라서울에서 열린다. 공연과 시각예술, 건축과 문학을 넘나들며 30여 년간 작업해온 에스 데블린의 작품 세계를 소개하는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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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만 명의 무대에서, 한 사람의 얼굴까지

거울 미로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

에스 데블린이 바라본 서울 시민

이번 전시는 혼자 감상하지 마세요

세계적인 무대 디자이너이자 아티스트인 에스 데블린(Es Devlin)의 국내 첫 개인전 〈세 번째 시: 에스 데블린, 다시 집으로(3rd Poem: Es Devlin, Come Home Again)〉가 8월 20일 푸투라서울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의 중심에는 화려한 무대 장치 대신 거울 앞에서 마주치는 낯선 얼굴, 함께 살아가는 다양한 종(種)의 모습, 그리고 전시장에 흔적을 남기는 다른 관객이 있다. 1만 권의 책으로 시작해 거울과 빛, 드로잉과 초상으로 이어지는 공간을 걷다 보면 시선은 자연스럽게 ‘나’에서 타인으로, 다시 우리가 함께 속한 세계로 넓어진다.

출처: 푸투라 서울

수만 명의 무대에서, 한 사람의 얼굴까지

U2 - The Sphere

에스 데블린은 오페라와 연극 무대를 통해 작업을 시작했다. 이후 비욘세와 아델, U2, 더 위켄드 등 세계적인 뮤지션의 공연은 물론 2012년 런던 올림픽 폐막식과 2022년 슈퍼볼 하프타임 쇼까지, 수많은 사람이 집중하는 장면을 만들어왔다. 빛과 영상, 움직이는 구조물로 거대한 무대를 설계해왔지만, 그의 관심은 그 앞에 모이는 관객에게로 향했다. 공연 규모나 장르가 달라져도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무엇에 반응하며, 무엇을 마음에 남기는지가 늘 작업의 중요한 출발점이었다.

Adele – Live in New York
Lady Gaga Coachella

2016년 이후에는 공연에서 다져온 공간 언어를 미술관과 공공장소로 본격적으로 확장했다. 〈Congregation〉에서는 이주와 상실을 경험한 뒤 런던에 정착한 시민 50명의 모습을 분필과 목탄으로 그렸고, 2021년 세계박람회 영국관에서는 수백만 명의 방문객이 남긴 단어로 전세계인이 함께 쓰는 공동의 시를 완성했다. 2022년 테이트 모던 앞에 설치한 〈Come Home Again〉은 런던의 멸종 위기 생물 243종을 그린 드로잉에 디아스포라 합창단의 목소리를 더했다. 완성된 장면을 일방적으로 보여주기보다 사람들이 직접 말을 보태거나 다른 존재를 바라보며 작품에 개입할 자리를 만들어온 것이다.

Come Home Again - Tate modern

이러한 작업의 바탕에는 데블린이 말하는 ‘일시적 사회(Temporary Society)’가 있다. 서로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같은 시공간에 모여 하나의 경험을 공유하는 동안 잠시 공동체가 형성된다는 개념이다. 콘서트장에서 수만 명이 같은 무대를 바라볼 때도, 전시장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 하나의 작품에 머물 때도 각자는 고립된 개인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데블린에게 예술은 그렇게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고 관계를 맺게 만드는 연결의 장치이기도 하다.

푸투라서울이 준비한 세 번째 ‘시’

푸투라 서울 공간 외부 전경 출처: 푸투라서울

푸투라서울은 전시를 하나의 시로, 작가를 그 시를 쓰는 시인으로 바라보는 기획 전시 ‘백 개의 시(100 POEMS)’를 이어오고 있다. 쓸모의 잣대로 설명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에서 삶의 가치를 발견하는 ‘무용지용(無用之用)’의 철학을 담은 프로그램이다. 첫 번째 ‘시’에서는 레픽 아나돌이 데이터와 기계가 만들어내는 환각적 세계를 펼쳤고, 두 번째 안소니 맥콜의 ‘시’는 빛과 관객의 신체가 만나는 경험에 주목했다. 세 번째 작가로 참여한 에스 데블린은 거울을 매개로 자신을 바라보고, 그 안에서 타인을 발견하는 경험을 풀어낸다.

라인 오브 라이트 Line of Light, 2026

공간을 사용하는 방식도 이전과 달라졌다. 두 전시가 암전된 실내를 중심으로 펼쳐졌다면, 처음으로 자연광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창밖의 정원과 건물의 곡면, 직선으로 이어지는 구조도 작품과 함께 전시를 경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데블린은 기자간담회에서 앞선 두 작가가 남긴 흔적뿐 아니라, 이 건물 자체와 어떤 대화를 시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미 존재하는 건축과 빛, 이전 전시가 지나간 자리를 새로운 작업 안으로 끌어들이면서 푸투라서울이라는 장소 역시 이번 ‘세 번째 시’를 이루는 한 요소가 됐다.

거울 미로부터 무한한 도서관까지

인피니트 라이브러리에 거꾸로 꽂힌 1만권의 책들은 알라딘이 후원했다

전시는 1만 권의 중고 도서로 둘러싸인 〈인피니트 라이브러리〉에서 시작한다. 거꾸로 꽂힌 책들 위로 데블린의 드로잉과 영상이 투사되고, 서로 다른 시대와 언어를 살아온 이들의 목소리가 겹친다. 한 편의 영화를 보듯 서가를 바라보고 있으면 영상 속 책장이 열리고, 관객은 그 이미지를 통과해 다음 공간인 〈미러 메이즈〉로 들어선다.

미러 메이즈에서 길을 잃었을 때는 천장을 보면 도움이 된다

미로의 한쪽 출구는 완성된 전시장 뒤편을 엿보는 듯한 공간으로 이어진다. 전선과 붉은 조명이 드러난 통로 벽에는 데블린이 작업을 구상하며 남긴 드로잉과 여러 협업의 흔적이 놓였다. 전시 작품 대부분이 서울에서 제작된 만큼 과정에 참여한 이들의 흔적도 함께 남아 있다. 완성된 작품뿐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지는 순간과 그 안에 참여한 사람들까지 드러내는 공간이다.

다시 집으로 Come Home Again

이어지는 〈다시 집으로〉에서는 관심이 인간 바깥의 존재로 확장된다. 런던과 서울에서 마주한 250여 종의 생물을 그린 드로잉과 이들이 내는 소리, 여러 언어의 합창을 하나의 풍경 안에 엮었다. 데블린은 서울에 약 6천 종의 생물이 살아가고 있다고 소개하며, 그중 인간은 단 하나의 종에 불과하다는 점을 짚었다. 우리가 흔히 ‘서울 시민’이라고 부르는 대상을 인간에게만 한정하지 않고, 같은 도시를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으로 넓혀보자는 것이다. 그는 예술가가 할 수 있는 역할 가운데 하나로 인간의 상상 속에 비인간 종이 계속 존재할 자리를 남기는 일을 이야기했다. 그 첫걸음은 함께 살아가는 생명의 이름을 배우고 기억하는 데서 시작한다. 거울 속 낯선 얼굴에서 시작된 타자에 대한 시선은 그렇게 같은 도시를 살아가는 다른 생명에게까지 닿는다.

그는 이번 전시 작품 대부분을 서울에서 그렸다 출처: 푸투라서울 인스타그램
작업 막바지에는 마감이 촉박해 하루에 18시간씩 그림을 그렸습니다. 잠이 많이 부족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깊이 집중하고 몰입하는 상태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점차 어떤 연속성을 강하게 느끼기 시작했죠. 제 손등 혈관은 박쥐 날개의 혈관과 닮아 있었고, 제 피부와 도마뱀의 비늘, 손가락 관절의 뼈와 새 날개의 뼈에서도 비슷한 형태를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종이 위에 손을 올리고 어린아이가 손 모양을 따라 그리듯 윤곽을 그렸습니다. 그것을 오려낸 뒤 그 위에 동물들의 이미지를 붙여, 제가 느낀 이 ‘연속성’을 표현했습니다. 저는 이 작은 드로잉이 제가 만든 작업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Potcast〈Tetragrammaton with Rick Rubin〉 ‘Es Devlin’ 中

이번 전시는 혼자 보지 마세요

〈스크린쉐어〉 영상이 끝난 후에는 스케치 한 장을 직접 뜯어갈 수 있도록 했다

전시 후반부에서는 관객의 참여가 보다 직접적으로 이어진다. 〈스크린쉐어〉는 데블린이 지난 30여 년 동안 기록해 온 수백 권의 스케치북을 하나의 대형 스크린으로 펼쳐 보이는 작업이다. 아이디어를 구상하며 남긴 메모와 드로잉, 협업 과정의 흔적이 무용수 담 반 후인(Dam Van Huynh)의 영상과 겹쳐지고, 상영이 끝나면 관객은 스케치 가운데 한 장을 직접 가져갈 수 있다. 작가의 작업실에서 시작된 한 장의 그림이 전시장을 떠나 또 다른 사람의 일상으로 옮겨가는 셈이다.

 

반대로 〈콜렉티브 포트레이트〉에서는 관객이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타인과 마주 앉아 서로의 얼굴을 그리는 작업이다. 그림을 얼마나 잘 그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잠시 상대의 얼굴과 눈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작품의 핵심이다. 데블린 역시 다른 사람의 눈을 약 15분간 바라보는 경험이 자신에게도 깊고 강렬하게 남았다고 이야기했다. 전시가 이어지는 동안 관객이 그린 초상이 하나둘 쌓이면서 작품 역시 계속해서 새로운 모습으로 변한다.

출처: 푸투라서울, 에스 데블린 인스타그램

이 작업의 출발점에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있다. 대화를 시작하면 정치적 견해와 종교, 취향처럼 서로의 차이를 드러내는 정보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러나 말을 멈추고 낯선 사람과 시선을 맞춘 채 얼굴을 그리는 동안에는 그런 구분보다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의 존재에 집중하게 된다. 생각이나 언어만으로 상대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통해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는 ‘체화된 현존’의 경험이다.

 

〈스크린쉐어〉에서는 작가가 남긴 흔적을 가져가고, 〈콜렉티브 포트레이트〉에서는 관객이 자신의 흔적을 보탠다. 그렇게 서로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같은 장소에 머물며 잠시 관계를 맺는 과정은 데블린이 오랫동안 이야기해온 ‘일시적 사회(Temporary Society)’와도 맞닿아 있다. 그는 이러한 경험을 우리가 앞으로 어떤 공동체가 될 수 있을지 미리 연습해 보는 일종의 ‘리허설’에 빗댔다. 푸투라서울에서 완성되는 것은 관객이 남긴 수많은 초상만이 아니라, 그 짧은 만남이 각자의 몸과 기억에 남긴 변화일지도 모른다.

글·사진 김기수 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푸투라서울

사진 출처 푸투라서울, 에스 데블린

일자
2026.08.20 - 2027.01.17
시간
10:00 - 20:00
참여작가
에스 데블린
김기수
아름다운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믿는 음주가무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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