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에 들어서면 괜히 걸음이 느려질 때가 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작품인지 모르겠고, 벽에 붙은 전시 서문은 몇 번을 읽어도 뜻이 잡히지 않는다. 영상 작품은 중간부터 봐도 괜찮은 건지, 언제 자리를 뜨면 어색하지 않을지. 주변 사람들은 모두 무언가를 이해한 듯 진지한 표정인데, 나만 길을 잃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전시를 보며 느낀 무력감과 혼란은 반드시 감상에 실패했다는 뜻일까. 작품을 많이 알고, 모든 글을 이해하고, 전시장 바닥에 주저앉을 만큼 감동해야만 제대로 본 것일까. 크리테리아 프레스의 첫 책 『전시 보는 즐거움: 그리고 혼란에 관하여』는 이러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전시는 작품과 관객이 벌이는 지식 대결도, 압도적인 감동을 찾아 떠나는 성지순례도 아니라고 말하면서.
전시를 취미로 삼고 싶은 당신에게
『전시 보는 즐거움: 그리고 혼란에 관하여』는 미술·사진 비평가 이기원이 설립한 1인 출판사 크리테리아 프레스의 첫 책이다. 시각예술과 미술비평을 다루는 크리테리아 프레스는 하나의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작품과 전시를 바라보는 여러 기준과 관점을 소개하기 위해 출발했다. 출판사 이름인 ‘크리테리아(criteria)’ 역시 기준을 뜻하는 단어다. 다만 이들이 말하는 기준은 옳고 그름을 가르는 잣대라기보다, 각자가 자신의 감상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돕는 여러 개의 이정표에 가깝다.
첫 책의 주제로 ‘전시 보기’를 택한 데에는 기존 미술 입문서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시중의 미술 교양서는 주로 작가 생애와 대표작, 미술사의 흐름을 해설하는 데 집중한다. 물론 이런 지식은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정작 지금 열리고 있는 동시대 전시에서 무엇을 보고, 낯선 작품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까지 알려주는 책은 드물었다. 『전시 보는 즐거움: 그리고 혼란에 관하여』는 전시 보기를 취미로 삼고 싶은 독자를 위한 입문서를 표방한다. 개인전과 단체전, 비엔날레와 아트페어가 어떻게 다른지, 전시 공간에 따라 입장료 차이가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처럼 관람객이 실제 전시 현장에서 마주하는 구체적인 질문부터 살핀다.
여섯 명이 건네는 전시 관람 이정표
책에는 미술 비평가와 편집자, 전시기획자, 독립 큐레이터 그리고 전시를 취미로 즐겨온 회사원까지 서로 다른 자리에서 미술을 만나온 여섯 명의 필자가 참여했다.
미술·사진 비평가 이기원은 ‘현대미술’의 개념을 정리하고, 전시 정보를 얻는 방법부터 전시를 둘러싼 기본적인 지형을 그린다. 전시와 근처 맛집을 소개하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해 온 우뚜기(@oottoogi)는 점심시간과 퇴근길에도 부담 없이 전시를 즐기는 방법을 나누고, 미술 비평가 권정현은 서문과 작가 노트, 작품 캡션처럼 전시장 안팎에 놓인 글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살피며 ‘작품을 보기 위해 글을 반드시 읽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한다.
이어 영상비평지 『마테리알』의 공동편집인 함연선은 영상 작품을 어디까지 봐야 하는지, 지루한 영상 앞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등 전시를 즐겨 보는 이들도 한 번쯤 고민했을 법한 문제를 다룬다. 독립 큐레이터 추성아는 전시에서 말하는 ‘기획자의 의도’가 완성된 정답이 아니라 작품과 공간, 협업의 조건을 조율하며 끊임없이 변해가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전시 기획자 정시우는 화이트 큐브를 벗어난 전시 공간, 레지던시 오픈스튜디오 등을 통해 표면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던 전시 이면의 요소들을 짚는다.
여섯 편의 글은 전시를 처음 보기 시작한 사람에게는 구체적인 관람의 실마리를, 이미 전시를 자주 찾는 사람에게는 익숙해진 관람 습관을 다시 돌아볼 계기를 건넨다. 무엇을 얼마나 보고, 어떤 글을 읽고, 어디에서 머물지는 결국 관객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여러 방향에서 일깨운다.
『전시 보는 즐거움: 그리고 혼란에 관하여』는 현재 텀블벅 펀딩을 진행 중이다. 후원자에게는 단행본과 함께 한정 책갈피와 스티커 2종을 증정한다. 크리테리아 프레스는 작은 출판사의 첫걸음을 가능하게 한 후원자들을 ‘창립 후원자(Founding Patron)’로 부르고, 책갈피와 스티커에도 이를 뜻하는 문구를 새겨 첫 책의 출간을 함께한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텀블벅 후원 프로젝트는 8월 24일까지 진행된다.
글 김기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