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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19

한국 패션 브랜드가 90년대 애니메이션과 콜라보하는 이유

‘노이스×공각기동대’부터 ‘나이스고스트클럽×카우보이 비밥’까지

패션은 ‘속도’의 비즈니스다. 그동안 많은 IP 협업 역시 속도 싸움에 가까웠다. 지금 가장 많이 검색되는 캐릭터, 가장 화제인 작품, 가장 반응이 빠른 팬덤을 잡는 식이었다. 스파오는 2025년 8월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 개봉에 맞춰 협업 컬렉션을 선보였고, 지난 6월 11일에는 〈토이 스토리 5〉 제품을 출시했다. 한마디로 시의성이 중요했다. 당연하다. 지금 가장 뜨거운 IP를 다뤄야 화제성을 만들 수 있고, 이는 빠르게 매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다른 움직임이 보인다. 동시대 인기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1990년대 방영된 고전 애니메이션과의 협업이 늘고 있다. 지난 5월 나이스고스트클럽이 출시한 〈카우보이 비밥〉 협업 컬렉션이 대표적이다. 〈카우보이 비밥〉은 1998년 방영된 작품이다. 방영된 지 28년이 지났으니, 일반적인 의미의 시의성과는 거리가 멀다.

 

왜 한국 패션 브랜드는 1990년대 애니메이션에 러브콜을 보내기 시작했을까? 고전 애니메이션과 협업한 브랜드에 직접 물었다.

1. 나이스고스트클럽 X 카우보이 비밥

출처: 나이스고스트클럽

2026년 5월 나이스고스트클럽과 〈카우보이 비밥〉의 협업 컬렉션이 발매됐다. 나이스고스트클럽은 2021년 시작된 스트리트 캐주얼 브랜드다. 핵심 타깃이 10~20대인 만큼 애니메이션 협업이 처음은 아니다. 다만 지금까지는 〈귀멸의 칼날〉(2019년 TVA 첫 방영), 〈데드데드 데몬즈 디디디디 디스트럭션〉(2025년 개봉) 등 비교적 최근 화제작과 주로 협업했다. 그런 점에서 1998년 방영된 우주 SF 애니메이션 〈카우보이 비밥〉과의 협업은 이례적이다.

“〈카우보이 비밥〉은 작품성에 비해 국내 패션 시장에서 브랜드 협업이 많지 않았던 IP입니다. 오랫동안 작품을 사랑해 온 팬들에게는 반가운 만남이고, 새로운 세대에게는 신선한 발견이 될 수 있죠.”

― 김다솜 나이스고스트클럽 디자인 파트장

패션 브랜드의 협업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에게, 고전 애니메이션은 신선함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선택지다.이 선택은 실제 반응으로 이어졌다. 김다솜 나이스고스트클럽 디자인 파트장에 따르면 지난 5월 26일부터 오는 6월 30일까지 진행되는 성수 플래그십 스토어의 〈카우보이 비밥〉 팝업을 통해 전월 동기 대비 신규 방문객은 80%, 매출은 40% 증가했다.

김 파트장은 문화 소비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도 이유로 들었다. 소비자들이 단순히 ‘화제작’보다 ‘오래 살아남은 작품’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번 협업은 단순한 향수 마케팅이 아닙니다. ‘시간이 지나도 유지되는 콘텐츠’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됐죠. OTT와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해 과거 작품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클래식 애니메이션 IP의 영향력이 그 시대를 살았던 기성세대뿐 아니라 10대~20대 소비자에게까지 퍼지고 있어요. 단순히 과거 콘텐츠를 다시 소비하는 현상이 아닙니다. 문화가 바뀐 거예요. 요즘 소비자들에겐 고전 작품을 지금의 관점으로 재해석하는 일이 익숙합니다.”

― 김다솜 나이스고스트클럽 디자인 파트장

2. 노이스(NOICE) X 공각기동대

출처: 노이스

2021년 출발한 컨템포러리 브랜드 노이스(NOICE)도 고전 애니메이션 협업에 뛰어들었다. 노이스는 2026년 1월부터 4월까지 도쿄에서 열린 전시 〈 GHOST IN THE SHELL : 2026 The Exhibition in Tokyo 〉의 유일한 한국 공식 협업 파트너로 나섰다. 1989년 코단샤의 〈 영 매거진 파이레이트 에디션 〉에서 SF 만화로 처음 연재되고, 1995년 동명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영상화된 작품 〈 공각기동대 〉를 다룬 전시다.

노이스 서기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이번 협업을 두고 “메시지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다’라는 노이스의 슬로건이 〈 공각기동대 〉의 세계관과 잘 맞물린다는 것이다.〈 공각기동대 〉는 고도화된 사이버 시대를 배경으로, 사이보그 주인공 쿠사나기 모토코가 자신의 특수부대를 이끌며 사이버 범죄에 맞서는 내용이다. 원작은 37년 전에 나왔음에도 인간과 기술, 과거와 미래의 융합 등 지금 시대에도 적합한 질문을 던진다.

“단순한 애니메이션 굿즈나 캐릭터 그래픽의 재현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저희가 주목한 건 〈 공각기동대 〉의 메시지와 세계관이에요.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시대를 반영하고, 작품이 수십 년 전부터 던져온 기술, 인간, 정체성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노이스의 메시지로 재해석해 던지고 싶었습니다.”

― 서기원 노이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출처: 노이스

노이스는 이미 ‘명작’으로 평가받는 고전 작품과의 협업은 브랜드의 깊이를 채운다고도 말했다.

“지금의 소비자는 단순히 예쁜 디자인을 넘어 제품 이면에 담긴 깊이, 그리고 레트로한 신선함을 갈망합니다. 고전 애니메이션과 협업으로 브랜드는 고전 명작의 헤리티지를 빌려 브랜드에 깊이를 더할 수 있죠.”

― 서기원 노이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3. 시리즈(series;) × GTO

출처: 시리즈

세 번째 이유는 브랜드 리프레시다. 오래된 시간은 자산이지만, 동시에 브랜드의 숙제이기도 하다. 브랜드가 오래 지속될수록 안정적인 고객층이 생기지만, 새로움을 만들기는 어려워진다. 2007년부터 코오롱FnC가 전개해 온 남성 캐주얼 브랜드 시리즈(series;)는 이 과제를 돌파하기 위해 2026년 4월 〈 GTO 반항하지마 〉(1999년~2000년 방영)와의 협업을 꺼내 들었다.

〈 GTO 반항하지마 〉는 폭주족 출신의 주인공 오니즈카 에이키치가 교사로 부임해 학교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해결해 나가는 작품이다. 특히 시리즈의 주 타깃인 지금의 3040 남성 고객에게 익숙하다. 어린 시절 혹은 청소년기에 작품을 접했던 소비자들의 향수를 자극한 것이다.

2026년 4월 30일부터 5월 10일까지 성수동 RSG 성수에서 열린 팝업스토어는 성공적이었다. 매장 내에는 칠판과 책상을, 매장 밖에는 클래식 바이크 전시와 일본식 푸드트럭을 배치했다. 펀치 게임, 레이싱 게임 등 3040 소비자들의 향수를 자극할 만한 콘텐츠가 돋보였다. 해당 팝업은 11일 동안 누적 방문객 1만 명을 돌파했다. 

©김은빈

나이스고스트클럽은 희소성을, 노이스는 메시지를, 시리즈는 새로움을 위해 고전 애니메이션을 택했다. 이유는 다르지만, 공통된 게 있다면 ‘유행의 속도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 고전 애니메이션 IP가 팬들의 마음에 간직되어 있는 것처럼, 패션 브랜드 역시 가장 트렌디한 협업보다 아카이빙으로 남을 만한 협업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업계 전체의 흐름이라고 판단하기엔 섣부르지만, 무언가가 변하고 있는 건 분명하다. 

김은빈 객원기자

취재협조 및 자료제공 나이스고스트클럽, 노이스, 시리즈

김은빈
서울과 로컬의 브랜드를 인터뷰하고, 글을 씁니다. 규모와 상관 없이 가치 있는 메시지를 전하는 브랜드가 오래 살아남는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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