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 인류학자는 인간이 태어나 사회 안에서 기능하기 위한 기본 조건으로 이 세 가지를 제시했다. 사람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이 속할 장소가 있고, 그 장소에 모인 집단으로부터 환대받을 때 비로소 사회적 의미의 ‘사람’이 된다.
벨로주의 폐업 소식을 듣고 많은 이들이 아쉬움을 표한다. ‘추억이 담긴 곳’, ‘인디 아티스트들이 설 무대’, ‘젠트리피케이션’ 같은 말들이 곧바로 뒤따른다. 동시에 어쩐지 기시감이 든다. 2020년 DGBD(구 드럭)을 비롯해, 홍대 상권을 중심으로 개인이 운영하던 공연장이 문을 닫는 일은 이미 여러 차례 반복됐다. 한 개인이 월 몇백의 임대료를 감당하며 공간을 유지했고, 그 과정에서 대중음악 씬에 의미 있는 궤적을 남겼다. 그리고 그 끝에 남는 것은 소모된 개인이다. 벨로주도 다르지 않다.
벨로주가 남긴 것들
벨로주는 2008년 서교동 2층 카페에서 시작했다. 주중에는 카페로, 일요일에는 어쿠스틱 공연장으로 운영되던 이 공간은 이후 여러 번의 이사를 거치며 18년을 이어왔다. 그 긴 시간 동안 벨로주가 홍대 인디신에서 특별한 위치를 가질 수 있었던 건 대관 공간 이상의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운영자 박정용은 십센치, 선우정아 같은 유명 아티스트의 장기 공연과 신인 밴드의 첫 앨범 발매 콘서트가 같은 무대에서 공존하는 공간을 지향했다. 실용음악이나 취미 밴드 대관을 받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인기가 많든 적든 자신의 음악을 하는 음악가가 같은 장소에서 공연하는 게 자연스러워져야 대중도 다양한 음악가를 만날 수 있다”는 원칙이었다. 벨로주의 가치는 장르와 규모를 가리지 않고 새로운 음악을 무대에 올려온 기획 방식에 있다. 소규모 라이브 음악들이 실제 공연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를 오랜 시간 유지해 왔다. 벨로주는 그래서 대관장이라기보다 뮤지션 인큐베이터에 가까웠다.
그 감각은 공간 밖으로도 이어졌다. 박정용은 2010년 네이버 온스테이지를 처음 기획하고 제작을 맡아 프로그램을 안착시켰다. ‘숨은 음악, 세상과 만나다’를 모토로 매주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을 완성도 높은 라이브 영상으로 소개한 온스테이지는 이후 13년간 650여 팀을 발굴하고 2,700여 편의 영상을 남기며 한국 인디음악의 성지로 자리잡았다. 벨로주 시즌2의 지하 공간은 온스테이지 초창기 촬영 무대가 되기도 했다. 강아솔, 잠비나이, 이날치, 혁오, 새소년 등 지금의 인디신을 대표하는 많은 아티스트들이 이 두 공간을 거쳐 세상과 처음 만났다.
온스테이지는 2023년 서비스를 종료했다. 박정용은 당시 인터뷰에서 “한국 인디 음악 신의 다양성을 지원해오던 많은 프로젝트들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중”이라며, “지금 같은 분위기에서 온스테이지처럼 10년 이상 숨은 음악을 알리는 역할을 해온 플랫폼이 생기는 건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2026년 3월, 벨로주도 문을 닫는다. 공간은 다른 사업주가 다른 이름으로 공연장을 이어갈 예정이다. 장소는 남지만, 벨로주라는 이름과 그 안에 쌓인 정체성은 사라진다.
인디, 재즈, 포크가 한 공간에서 공존할 수 있었던 이 공연장의 폐업은 그 안에서 오랜 시간 이어져온 ‘환대’가 사라지는 일이다. 어떤 음악이어도 좋으니 “좋아하는 사람에게 음악 테이프를 선물하는 마음으로” 공간을 운영해 왔다는 2017년 인터뷰 속 박정용의 말처럼.
해외는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해외는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롤링 스톤스와 섹스 피스톨즈가 거쳐 간 라이브 음악 클럽 100 Club은 2020년 임대료와 재산세 급등으로 폐업 위기에 놓였다. 이에 영국 사회는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큰 소규모 라이브 하우스를 어떻게 구조적으로 보호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웨스트민스터 시의회는 이 공간을 ‘지역 음악 공연장’으로 특례 지정하고, 세제 개편을 통해 사업장 재산세를 전액 감면했다. 그 결과 클럽은 연간 수만 파운드 규모의 세금 부담을 덜고 운영을 이어갈 수 있는 조건을 확보했다.
영국에서는 이 공간을 사적 사업장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지역 문화 인프라로 볼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먼저 이뤄졌다. 웨스트민스터 지자체는 후자를 택했고, 그 순간부터 이 문제는 경영 실패가 아니라 공공이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전환됐다. 반면 한국에는 이 합의가 없다. 공연장은 끝까지 ‘개인 사업’으로 남고, 그 문화적 의미는 사후적으로만 인정된다.
더 중요한 점은, 영국의 100 Club이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미 라이브 음악 공간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과 제도가 마련돼 있었고, 공공이 구조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통로가 존재했다. 한 장소의 존속은 개인의 희생이 아니라 사회가 분담해야 할 비용으로 다뤄졌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의 CBGB는 폐업했다. 우리나라의 학전 역시 다르지 않다. 역사적으로 ‘장소’가 특정 문화의 발원지가 되어왔다는 사실은 잘 알려졌지만, 정작 그 장소를 지탱해 온 이들이 고충을 말하면 사회는 이렇게 되묻는다. ‘당신이 좋아서 한 일이 아니냐’라고. 문화에 기대어 유지되어 온 사회가 결정적인 순간에는 개인에게 잔인한 책임을 묻고 있다.
소모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누구의 책임일까. 한국 대중음악 씬에서 이 공연장이 갖는 의미를 알고 있으면서도, 각종 리스크를 이유로 문화 지원의 바깥에 두어온 기업들인가. ‘홍대’라는 문화예술 집결지를 소비하며 그 운영의 부담은 오롯이 개인에게 맡겨온 사회인가. 아니면, 이 모든 구조를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결국 상황을 애도로만 받아들이는 우리 자신인가.
운영자가 말하는 언어와 대중의 반응에 담긴 언어에는 온도차가 존재한다. 전자는 실패와 지속 가능성, 책임과 불확실성을, 후자는 꿈과 첫 무대, 성장과 추억을 말한다. 같은 공간을 두고 오간 이 언어의 간극만큼, 운영자의 고충과 감정 노동이 구조적으로 보이지 않게 쌓여왔음을 알 수 있다. 공연장의 폐업을 ‘추억의 상실’로만 받아들이는 태도는 어쩌면 그 공간을 지탱해 온 개인의 소모를 낭만화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 낭만화의 구조는 산업 전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국의 K팝 산업에는 막대한 자본이 집중돼 있다. 한편, 그 자본이 기대어 서있는 기초 생태계, 다시 말해 인디 공연장과 소규모 라이브 공간에 대한 사회적 환대는 점점 말라가고 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한국의 K팝과 팬 문화 산업은 같은 ‘사람 사업’을 이어가는 자영업자들을 시스템의 보호 밖에 남겨두고 있다. 우리는 이 반복되는 소모적인 구조 속에서 한 장의 티켓을 구매하고 공연을 보며 추억을 쌓아왔다. 추억은 버티는 개인에 의지하며 형성돼 왔다.
‘스트레스가 재미를 압박하는 단계’에 진입했다는 운영자의 말은 2017년 스트리트 H 인터뷰에 이미 나왔다. 그로부터 9년의 세월 동안 팬데믹을 포함한 여러 위기를 통과해 왔다. 그 긴 시간의 끝에 운영자는 ‘늘 그만두고 싶었다’라고 토로했다. 구조를 지탱해 온 개인에게 남겨진 씁쓸한 결과다. 벨로주는 끝났지만, 진심을 제도로 전환하지 못한 채 문화를 소비하는 관성은 현재진행형이다. 다음 세대의 박정용은 어떤 시간을 감내하게 될까.
글 이예진 음악 칼럼니스트(대중음악웹진 오버톤 에디터, 월간 진지 발행인)
자료 출처 스트리트 H(2017), 뉴시스(2023), 한겨레21(20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