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27

차茶와 예술, 어떻게 만났을까? 오설록 티하우스 한남점

지역과 예술, 차의 향기가 한데 어울리는 곳
차(茶)는 예술을 더욱 천천히 바라보게 한다. 예술은 차의 향을 낯설게 느끼도록 한다. 차와 예술, 이 두 가지 요소를 자연스럽게 누리는 공간이 탄생했다. 티 브랜드 오설록과 페이스 갤러리가 협업한 ‘오설록 티하우스 한남점’이 지난 3일 오픈한 것. 차와 예술을 따로 또 같이 즐기는 이 공간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 페이스 갤러리 1층에 자리 잡았다.
오설록 티하우스 한남점 | 사진 제공: 오설록

오설록은 차와 예술을 접목하는 시도를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일상을 더 다채롭게 하는 예술처럼, 차 역시 삶에 향기를 더한다고 믿기 때문. 세계 아트신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페이스 갤러리와의 협업은 이 시도의 연장선이다. 차와 예술이라는 두 키워드를 아름답게 엮기 위해 한남점의 브랜딩과 인테리어 등에 각별히 정성을 들였다.

외부에서 바라본 모습 | 사진 제공: 오설록

현재 티하우스 한남점에는 코헤이 나와(Kohei Nawa)와 이건용의 작품이 전시 중이다. 앞으로 페이스 퍼블리싱(Pace publishing)의 출판물과 더불어 갤러리 소속 작가의 판화 및 사진, 조각 작품 등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오설록의 크리에이티브팀 유정주 팀장에게 ‘극적이되 부담스럽지 않은’ 공간을 만든 배경과 과정에 대해 들었다.

Interview with

유정주 오설록 크리에이티브팀 팀장

페이스 갤러리 X 오설록

사진 제공: 오설록

페이스 갤러리와 함께 한남점을 오픈했습니다. 이 협업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페이스 갤러리는 고객을 위한 신규 공간을 기획하고 있었습니다. 카페 등 고객이 머무르면서 여유를 즐기는 식음 공간을 염두에 두었던 것으로 압니다. 페이스 갤러리가 자리한 서울 한남동에는 커피를 메인으로 하는 유명 카페가 이미 많습니다. 차(茶) 브랜드 오설록과 협업하여 티하우스를 열어 보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오설록과 페이스 갤러리는 어떤 방식으로 협업했는지 궁금합니다. 각자 맡은 분야가 있다면요.

공간 기획이나 공간 성격에 대한 정의는 페이스 갤러리가 잡아둔 상태였습니다. 오설록이 합류하면서 구획 각각에 필요한 요건, 고객에게 제공할 경험 요소를 정리했습니다. 레이아웃을 함께 짜나간 셈이죠. 이 일은 매스 스터디스(MASS STUDIES)라는 건축 인테리어 파트너와 같이했는데요, 매스 스터디스는 오설록은 물론 페이스 갤러리와도 오랜 파트너였기에 여러 방향으로 소통하기가 수월했습니다.

 

페이스 갤러리는 갤러리 고객을 위한 휴게공간을 원했습니다. 좌석에서 음료를 즐기면서 아트북을 열람, 구매하거나 갤러리의 에디션을 구매하려는 고객을 위한 카운슬링도 필요했고요. 오설록은 ‘티하우스’라는 공간 성격을 아트와 접목하는 한편, 갤러리에 왔다가 이곳에 들른 고객과 티하우스만을 찾아온 고객 모두를 만족할 메뉴와 서비스를 준비해야 했습니다.

현무암이 떠오르는 한쪽 벽면 | 사진 제공: 오설록

오설록 티하우스는 국내 곳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한남점을 꾸리면서 중요하게 생각한 포인트는 무엇인가요?

오설록은 최근 명동점, 인사동점 등 주요 매장을 폐점하고 새로운 고객 경험을 위한 공간 브랜딩을 구현해 나가고 있어요. 첫 발걸음으로 작년 11월 북촌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했죠. 페이스 갤러리는 그다음 단계를 보여줄 수 있는 매장으로 기획했습니다. 북촌은 1960년대 생활 가옥의 특징을 살리면서 차와 함께하는 일상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두었습니다. 이때 바 설록이란 공간을 만들며 티 칵테일을 처음 소개하였고요. 다관에 정성스럽게 나가는 침출차를 즐기면서, 티 칵테일 같은 변주 또한 즐기는 공간을 선보이는 일은 오설록이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행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남점에서는 침출차와 티 칵테일, 두 가지 요소를 좀 더 명확하게 보여주려 했습니다. 북촌에서 시도하지 못했던 알코올이 가미된 티 칵테일로 더 심화한 경험을 제공하며, 침출차와 티 칵테일이 조화롭되 대조되면서 공존하도록 했죠.

 

한남동이라는 지역 특성, 페이스 갤러리와 함께 한다는 특성을 자연스레 녹인 공간이라고 느꼈어요. 공간 브랜딩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인테리어는 기존 티하우스의 평온하고 자연주의적인 느낌보다는 좀 더 어둡고 컨템포러리하게 마감하여 메뉴 콘셉트와 일관성을 갖도록 했습니다. ‘한남동’이라는 지역이 주는 느낌을 염두에 두며 작지만 주변과 어우러지는 공간으로 구성하려 했고요. 이는 오설록 북촌 플래그십 스토어를 기획하며 세운 ‘주변 지역과 조화되는 공간’이라는 기조를 반영한 것입니다. 다음 고민은 ‘브랜드를 얼마나 드러내느냐?’의 문제인데요, 체인점 형태의 매장이 다른 매장과 차별화하려면 식음료 메뉴뿐 아니라 공간 브랜딩도 중요하다고 판단했기에 무척 신경 썼습니다.

‘눈에 보이는’ 아이덴티티

칵테일을 주문하면 칵테일에 쓰인 차가 함께 제공된다. 메뉴를 설명하는 카드, 칵테일 장식으로 쓰인 티켓 모두 섬세히 디자인한 것이다. | 사진 제공: 오설록

그래픽 아이덴티티 이야기를 더 해볼까요? 앞뒤를 따로 구분하지 않고 양면으로 읽을 수 있는 메뉴판, 메뉴와 함께 서브되는 티 카드, 칵테일 장식으로 나오는 티켓 등이 독특했습니다. 이러한 요소를 어떻게 떠올리고, 구체화했나요?

새로운 공간을 준비할 때 그래픽 아이덴티티를 가장 먼저 구상합니다. 공간에 부여하고 싶은 캐릭터를 잡는 첫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영업에 필요한 메뉴판과 티 카드 등 표현해야 할 대상이 정해진 상황에서, 어떤 아이덴티티를 만들어 나갈지 내부에서 깊게 고민합니다.

메뉴판을 차 메뉴가 보이도록 펼친 모습
메뉴판을 칵테일 메뉴가 보이도록 펼친 모습 | 사진 제공: 오설록

침출차와 티 칵테일의 대조가 중요한 공간이라고 앞서 말씀드렸죠. 그래서 한남점에서는 침출차용 티 카드와 티 칵테일용 티 카드를 완전히 이원화했습니다. 침출차 카드에는 자연 요소인 흙, 바람, 물, 안개 등을 판화 기법을 사용해 표현했고, 티 칵테일 카드에는 칵테일의 키 컬러를 반영한 디지털 패턴을 표현했습니다.

티 칵테일 메뉴판 비주얼 일부 | 제공: 오설록

이 두 그래픽 방향을 가시화하기 위해 앞뒤를 구분하지 않고 어느 방향으로 펼쳐도 읽을 수 있는 듀얼(dual) 메뉴판을 만들었어요. 한쪽에서는 침출차, 다른 한쪽에서는 티 칵테일 메뉴를 확인할 수 있죠. 요즘 마케팅에서 ‘멀티 페르소나’가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죠. 한남점 역시 상반된 아이덴티티를 하나의 브랜드로서 완성도 높고 조화롭게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모든 그래픽은 디자인 스튜디오 MYKC와 함께 구현했습니다.

오설록 티하우스 한남점 내부. 천장 장식은 끈(로프)을 엮어 만든 것이다. | 사진 제공: 오설록

인테리어 디테일이 눈에 들어와요. 끈을 엮어 만든 천장 장식과 조리대 벽면의 바위 표현, 흰색 대리석 느낌이 나는 바 등 곳곳에 공을 들였다고 느꼈어요.

공간을 어둡게 설정하되, 제조 공간인 바(bar)와 작품을 거는 정면의 벽은 화이트로 강조했습니다. 이는 마치 캔버스가 떠 있는(floating canvas) 듯한 느낌을 구현하려 한 매스 스터디스의 의도였어요. 다른 쪽 벽은 현무암을 모티프로 거칠게 표현했는데, 이는 제주라는 키워드를 드러내고 싶다는 생각을 반영한 부분이고요. 공간에서 다양하고 신선한 ‘질감’이 느껴지기를 바랐어요. 천장과 기둥에 끈(로프)을 사용하고, 테이블에 레진을, 천장의 일부분에 거울을 사용한 것은 이 때문이에요. 공간 컬러가 일정하다고 해도, 쓰인 소재가 다양하다면 풍부한 텍스처가 느껴질 테니까요.

다양한 식물이 놓여 있다. | 사진 제공: 오설록

한편 다양한 식물도 곳곳에 자리 잡고 있죠.

VMD의 일부로서 식재(植栽)는 공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제주를 연상하게 하는 돌과 식물을 섬세히 배치해 인테리어 무드를 끌어 올렸습니다. VMD 스타일링은 아라비 스튜디오 이혜원 대표와 함께했습니다. 공간이 완성된 후, 이 대표님과 이 공간에서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이 문득 떠오른다는 이야기를 나눴어요. 매스 스터디스가 사용한 볼드한 소재와 장치가 다소 강해 보이면 어쩌나 걱정하기도 했는데요, 다행히 박찬욱 감독 영화의 미장센처럼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극적인’ 공간이 탄생한 듯합니다.

 

 

이동식 가구는 스탠다드에이와 함께 준비했다고요. 나무로 된 테이블도 있고, 레진이 섞인 가구도 보였어요. 가구를 준비할 때 무엇을 고려했나요?

스탠다드에이는 사용성에 대해 깊게 고민하면서도 장인정신을 갖고 좋은 가구를 만드는 팀입니다. 식음료 업장의 의자와 테이블은 사용성이 매우 중요하기에 값비싼 수입 가구를 쓴다고 니즈를 완전히 충족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또 유지와 보수를 위해서는 높은 퀄리티의 가구를 제작할 파트너를 국내에서 찾을 수 있다면 가장 좋겠다고 생각했죠. 스탠다드에이가 알맞은 파트너였습니다. 목제 의자와 테이블은 심플한 형태를 갖추되 검은색으로 도장해 공간과 조화를 이루도록 했죠. 단체용 테이블의 상판은 레진으로 만들었습니다. 소재가 대조되며 생기는 효과를 얻기 위해서요.

공간을 채우는 ‘스토리’

디저트 메뉴 '제주녹차섬' | 사진 제공: 오설록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칵테일 ‘티켓 투 갤러리’, ‘블룸 인 한남’, ‘로키 포트레이트’ | 사진 제공: 오설록

한남점에서만 맛볼 수 있는 메뉴도 많죠. 티 커피는 물론 티 푸드, 칵테일까지 두루 신경 쓴 듯합니다. 오설록 한남점의 메뉴를 짤 때 염두에 두었던 생각을 들려주세요.

이범진 오설록 PD팀 팀장(이하 이범진)* 한남동이라는 지역적 특성과 예술과 함께한다는 공간적 특성에 어울리는 메뉴를 선보이려고 했습니다. 아트와 차가 결합한 이곳에서는 다른 매장에서 경험할 수 없는 새로움을 안겨드리고 싶었어요. 오설록 브랜드 본질인 차와 제주, 그리고 커피, 알코올 등을 독특하게 결합하는 방법을 택했죠.

* 메뉴 관련 내용은 이범진 팀장이 답변했다.
오설록 티하우스 한남점의 메뉴들 | 사진 제공: 오설록

칵테일은 물론 차와 증류주를 결합해 만든 티 스피리츠(tea spirits)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차와 술을 결합하는 시도를 이어가는 이유가 있나요?

이범진 차와 술은 공통점이 있어요. 농산물을 기반으로 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 오랜 시간을 들여 정체성을 구축해낸다는 점이죠. 이 부분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오설록의 다양한 차와 정상급 바텐더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차를 즐기는 새로운 방법을 제안하고 싶었어요. 특히 요즘 차에 관심을 갖는 젊은 인구가 늘고 있어요. 자연스레 차를 즐기는 시도가 다양해지고 있고요. 티와 술의 결합이 매력적으로 다가갈 거로 생각했어요. 이를테면 제주 화산암석층이 키워낸 반(半)발효차 ‘화산암차’의 로스팅 풍미는 스모키향이 특징인 스코틀랜드 싱글몰트 위스키 ‘탈리스커’와 매칭했습니다. 그 결과 칵테일 ‘로키 포트레이트’가 탄생했죠. 원료가 가지는 특성이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차와 주류의 조합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매력적인 스토리까지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노력 중이기도 하고요.

바깥 정원에도 작품이 전시된다. | 사진 제공: 오설록

예술을 자연스레 만나는 공간이에요. 차와 예술이 만나면 어떤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오설록은 차(茶)라는 정체성을 문화적이고 예술적인 바탕 위에 표현하고자 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매장을 운영한다거나, 용산 아모레퍼시픽 본사 1층 오설록도 아모레퍼시픽미술관(APMA)의 카페로 운영하는 건 그래서죠. 차와 함께 예술을 대중화하는 공간으로서 기여하기를 바라면서요. 젊은 층을 중심으로 아트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요. 예술이 대중화되는 기점에 서 있다고 생각하므로, 차와 예술을 접목하는 시도를 브랜드 차원에서 늘려가고자 합니다. 예술이 너무 어렵거나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듯, 차 역시 일상에 영감을 주고 삶을 풍부하게 하는 매개체로 자리 잡기를 바라요.

메뉴판을 펼치면 메뉴를 신선하게 시각화한 이미지를 만날 수 있다. | 사진 제공: 오설록

예정된 계획이나 미래의 소망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브랜드와 공간이 지속 가능하려면 매출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더 많은 고객이 이곳을 찾을 수 있도록 홍보하는 임무를 잊지 않으려 해요. 일례로 최근 프라이빗 행사로 티 칵테일 개발에 참여한 박성민 바텐더의 칵테일 세션을 진행했습니다. 더 많은 고객이 차와 예술 이야기를 듣고 나누는 공간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다양한 오프라인 행사를 기획해 나가려 합니다.

 

오설록이 앞으로 선사할 브랜드 경험에 대해 듣고 싶어요.

브랜드의 가치는 항상 고객과 함께 성장한다고 생각합니다. 트렌드에 따른다는 단편적인 표현보다는, 요즘 고객이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어떤 경험을 원하는지를 분석해서 고객과 함께 성장할 계기를 제공하는 브랜드가 되고 싶습니다. 최근 고객들은 브랜드를 통해 새로운 스토리를 발견하고, 이를 자기화하는 과정을 통해 성장하기를 원하는 모습입니다. 차(茶)는 이런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적합한 매개체예요. 질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성실히 준비하면서, 고객이 만나고 싶었던 스토리를 담은 콘텐츠 개발에도 힘을 쏟을 겁니다.

김유영 기자

장소
오설록 티하우스 한남점
주소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267
김유영
에디터.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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