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카페 숫자만 10만 개. 수많은 카페가 생기고 사라진다. 특히 ‘에스프레소 바’는 여전히 어렵다는 평가도 많다. 이런 시장에서 통념을 깨고 10년을 넘게 생존한 브랜드가 있다. 현재 12개 매장을 운영 중인 리사르다. 내년 봄에는 일본 나고야 지점 오픈을 앞두고 있다. 그 시간이 순탄하기만 했던 건 아니다. 코로나 때 문을 연 매장의 매출이 반 토막 나는 위기도 겪었다. 하지만 그때 리사르가 택한 건 도전이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신규 지점을 오픈했다. 지점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지금도 리사르 에스프레소 평균 가격은 2천 원. 시장의 주류를 따르기보다 ‘좋은 커피’에 대한 자신만의 기준을 지켜온 이민섭 대표를 만났다.
Interview with
리사르 이민섭 대표
커피를 하려면, 답은 창업뿐이었다
— 처음 창업은 어떻게 했나요.
원래 전공은 영상인데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재미를 느꼈어요. 그렇지만 미래를 그리기는 쉽지 않았죠. 주 6일을 일했는데, 당시 급여가 150이 안 됐으니까요. 미래가 불투명했기 때문에, 커피를 계속하고 싶다면 도전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낮에는 카페에서 매니저로 일하고, 퇴근 후에는 원두 로스팅을 했죠. 2평쯤 되는 공간이었는데 임대료가 저렴하니까 해볼 만하겠다 싶었어요. 그게 창업의 시작이었어요.
그렇게 시작했는데, 잘 되진 않았어요. 혼자 커피 공부하고 로스팅은 했지만, 홍보나 마케팅은 잘 몰랐고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퇴사를 하고 전업으로 운영했어요. 미련을 남기지 않으려고요. 홍보도 하고, 영업 전화도 돌렸는데 크게 효과는 없었어요. 결심을 했죠. 카페를 열어야겠다. 원두만 팔아서는 커피를 알리기가 어렵더라고요.
— 어땠나요.
원두 주문은 어느 정도 들어왔지만, 손님이 많진 않았어요. 10만 원도 못 파는 날도 많았고요. 월세가 저렴한 곳을 찾다 보니 위치가 좋지 않았거든요. 열심히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손님들이 어떻게 알고 찾아오시겠어요. 6개월쯤 됐을 때, 친구에게 투자금 돌려주고 혼자 하는 걸로 매듭을 지었어요.
그런데 그때부터 손님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어요. 당시 매장에 옛날 TV나 직접 수집한 자개장을 두고 거실처럼 꾸며뒀는데, 분위기가 마음에 드셨나 봐요. 입소문을 타고, 가게가 잘 되기 시작했죠. 그게 첫 번째 매장인 왕십리점이었고요. 그러다 어쩔 수 없이 건물에서 나가야 하는 상황이 생겨, 약수점으로 옮기게 됐어요. 예상치 못한 불운이었는데, 오히려 제가 생각한 에스프레소 바를 보여줄 기회가 됐죠. 마음속에 그런 생각은 늘 있었거든요.
‘제대로 에스프레소 전문점을 해보고 싶다.’
에스프레소 바에 대한 집념, 없으면 만든다
— 우리나라에서 ‘에스프레소 바’는 쉽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안타까워요. 리사르는 우리가 좋다고 생각하는 걸 소개해 왔어요. 고객들이 원하는 걸 단정하면,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이 좁아지겠죠. 1,000명 중 1명이라도 이런 커피를 원하는 분들이 있잖아요. 다른 곳에서 경험할 수 없는 걸 여기서 할 수 있다면, 그 만족감이 크다고 생각해요.
스페셜티 커피가 한국에 들어오기 시작한 게 10년 전쯤인데요. 그때 지금 우리가 아는 곳들이 많이 생겼거든요. 저도 시도해 봤는데, 저랑은 안 맞더라고요. 그러면 시장 흐름을 따라가기보다 나만의 영역을 만드는 게 맞겠다 싶었죠. 아무도 안 가면, 내가 가야겠다(웃음).
— 왜 에스프레소였나요.
기본이 에스프레소거든요. 에스프레소가 맛있어야 다른 커피를 만들어도 맛있어요.
혼자 공부를 많이 했어요. 이탈리아에서는 왜 에스프레소를 마시기 시작했는지 찾아보기도 하고, 빈티지 머신도 6대쯤 구매했죠. 커피를 내려보면서 뭐가 다른지 보고요. 사실 무모하죠. 수리비도 비싼데 수리하는 사람도 드물고,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일이니까요. 그런 시간이 쌓여서 커피에 대한 저만의 기준이 생겼어요. 제 기준은 항상 에스프레소였어요.
카푸치노를 6온스(116ml)로 드리는 것도 그 때문이에요. 중요한 건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느낌을 주는 것이거든요.
— 큰 잔에 주는 게 좀 더 일반적이죠.
처음 작은 잔에 드렸을 때, 싫어하는 손님도 있었어요. 그런데 고집한 거죠. 그게 커피를 마시는 더 좋은 방식이라 믿었거든요. 카페인이 적으니, 속도 더 편하고요. 싱글 샷을 기준으로 잡았어요. 가격은 2천 원으로 통일했죠.
지금은 더블샷을 기본으로 생각하지만, 제가 커피를 시작할 때만 해도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더블샷을 주는 곳이 늘어났어요. 일종의 마케팅이기도 하죠. 저는 그게 건강하게 커피를 즐기는 데 왜곡된 방식이라 생각해요. 과식하면 탈이 나잖아요. 커피도 마찬가지죠.
해보니 양이 적어서 좋아하는 분들도 있고요. 무엇보다 이탈리아에서 마시던 커피를 느낄 수 있다면서 지인을 데려오는 분들이 많았어요. 손님끼리 서로 한 잔씩 사주기도 하고요.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로컬 문화가 구현된 것도, 손님이 만족하시는 것도 좋았어요. 운영을 하면서 이런 커피를 찾는 분들이 3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됐죠.
— 금액이 2천 원대 였습니다. 매출에 대해 고민은 없었나요.
처음에는 매출이 줄었어요. 5천 원씩 팔던 걸 2천 원에 팔았으니까요. 그런데 찾아주시는 분들이 늘어서 나중에는 상쇄가 됐죠. 하루에 1,000잔쯤 나간 것 같아요. 혼자 운영하니까 계산을 편하게 하려고 에스프레소, 카푸치노, 피에노 등등 전부 2천 원에 팔았거든요. 에스프레소를 드시는 분들을 위해 오히려 가격을 낮췄어요. 1,500원으로요.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었죠. 그런데 좋아하는 손님들을 보니, ‘아, 이건 돈을 벌기 위한 커피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행복을 주는 커피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도 저는 에스프레소를 마시면서 정말 행복하거든요(웃음).
최대 매출과 반 토막을 오가다
— 지금은 운영 중인 매장이 10개가 넘습니다. 본격적인 확장은 언제부터였나요.
브랜드를 성장시키고 싶었어요. 돈 보다 도전이 필요하다 생각했죠. 약수점 다음 매장인 청담점을 연 게 제가 서른셋인가 서른넷쯤이었어요. 오픈하자마자 어마어마하게 잘됐어요. 주말에는 1,200잔 넘게 나가고요. 제가 상상했던, 이탈리아 바의 풍경도 재현했어요. 그 기세로 명동점도 연이어 오픈했어요. 코로나로 임대 조건이 좋았던 시기였거든요. 그런데 높은 매출을 찍으니 떨어지는 폭도 가파르더라고요.
— 무슨 일이 있었나요.
명동점을 오픈하고 반년쯤은 괜찮았어요. 그런데 갑자기 매출이 15% 이상 빠지기 시작하더니, 딱 절반이 깎이더라고요. 망했다 싶었죠. 그때가 인생의 고비였어요. 돈이 사라지는 속도가 정말 빠르더라고요. 한 3개월 후면 잔고가 0이 되겠다 싶었죠. 겪어본 적 없는 일이 한꺼번에 닥치니 스트레스가 컸어요. 함께 일하던 직원도 그만두고요. 그걸 복구하는 데만 2년이 걸렸어요.
일단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했어요. 명동점을 오픈할 때 테이블 서빙까지 하는 플로우 서비스를 운영했는데, 그런 것부터 정리했죠. 그리고 극적으로 대출을 받아서 종로점을 오픈했어요.
— 마이너스 상황에서 오히려 지점을 늘려야겠다는 결심은 어디서 나오나요.
마지막이라는 생각이었어요. 명동점에서 끝나는 게 고통스럽더라고요. 종로는 오래 살아서 잘 아는 곳이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의미가 컸거든요. 근데 사업을 하다 보면 부침은 겪을 수밖에 없잖아요. 오히려 힘든 시절을 지나면서 마인드가 바뀌었던 것 같아요. 돈이 없어도, 그 자체가 두렵지는 않은 거죠.
그리고 명동점을 오픈할 때, 이미 요단강을 건넜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부터는 전쟁이 시작되는 거잖아요. 매장을 혼자 운영할 때는 괜찮은데, 규모가 커지기 시작하면 ‘여기서 멈추면 수익 구조가 안 나온다’라는 걸 그때 깨달았어요. 그래서 확장을 할 수밖에 없었죠. 다행히 종로점이 잘 됐고, 이후 가맹점도 시작하면서 12개 매장까지 올 수 있었어요.
14주년을 맞이할 수 있던 동력
— 숨 가쁜 시간이네요. 파고를 겪으면서 깨달은 게 무엇인가요.
대표가 하나하나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죠. 침착맨이 기안84에게 비슷한 조언을 하는 걸 봤는데 공감이 갔어요. 직원과 합을 맞추려면 시간을 많이 들여야 한다고요.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가 중요하다는 걸 배웠어요.
명동점을 열던 시기에 첫째가 태어났는데, 직원들에게 충분히 관심을 갖지 못했던 게 돌이켜보면 미안해요. 지금은 제가 더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래서 가족들에게도 해외여행을 가거나 오래 휴가를 쓰는 건 할 수 없다고 얘기를 했어요. 직원들이 일하는데, 저는 휴가를 누리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 시간을 지나면서 마인드도 바뀌었어요. ‘리사르는 내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이요. 제가 대표지만, 브랜드에 필요한 걸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훨씬 편안해지더라고요. 기회도 더 많이 생기고요.
— 내년이면 14주년을 맞이합니다. 긴 시간 성장할 수 있던 동력이 뭘까요.
상투적인 얘기인데요, 결국 포기하지 않는 마음인 것 같아요(웃음). 제가 에스프레소를 마실 때 행복을 느끼니까, 손님들도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하거든요. 또 커피의 ‘맛’은 정말 중요해요. 2,000원에 맛있는 커피를 내놓을 수 있다는 게 저는 행복해요. 제가 돈을 조금 덜 벌어도요. 만 원짜리 커피는 맛있는 게 당연한 거고요.
또 회사가 성장하려면 투자를 멈추면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새로운 걸 계속해 보는 게 더 재미있어요. 대표가 욕심내서 돈을 많이 가져가는 건 회사에 도움이 안 되잖아요. 그보다는 투자하고, 회사가 조금씩 자라는 걸 직원들과 같이 보는 게 훨씬 보람 있어요. 지금은 내년에 오픈할 일본 나고야점 준비에 한창인데요. 이것도 안 해본 도전이라, 즐겁습니다.
리사르
장소 리사르 청담점
주소 서울 강남구 강남대로 350
*3편에서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