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29

2025년 왜 지금일까, 글로벌 F&B가 한국을 찾는 이유

헤이티·인텔리젠시아·치폴레까지 한국 진출

지난 9월 우연히 가게 된 베를린. 여행지에 가면 늘 그 도시의 대표 로스터리를 방문하곤 한다. 이번에는 ‘베를린 3대 로스터리’라 불리는 보난자·더반·디스트릭트가 목표였다. 그런데 정보를 찾다 보니 뜻밖의 사실을 마주했다. 독일까지 가지 않아도 서울에서 이미 이 브랜드들을 만날 수 있던 것이다. 보난자와 더반커피는 2022년 국내에 문을 열었고 지점도 제법 있었다. 잠시 김이 빠지기도 했지만, 곧 고개가 끄덕여졌다. 글로벌 유명 F&B 브랜드의 한국행은 이제 너무도 익숙한 일이기 때문이다.

베를린 3대 로스터리라 불리는 보난자·더반·디스트릭트 ©기묘한

이처럼 우리가 멀리 북미나 유럽에 갈 때마다 들르는 ‘3대, 5대 ○○ 맛집’, 혹은 유학 시절 추억의 식당들. 그중 상당수는 이제 마음만 먹으면 서울에서 갈 수 있는 곳이 된 지 오래다. 특히 코로나 엔데믹 이후 최근 3년간 이 흐름은 훨씬 가팔라지고 있다. 카테고리도 더 넓어졌다. 초반엔 카페와 버거 브랜드가 많았지만, 요즘은 밀크티(헤이티)부터 디저트(아임도넛), 빵(보앤미), 멕시칸(치폴레)까지 끝도 없이 영역이 확장되는 중이다.

더욱 흥미로운 건 아예 아시아 1호점, 혹은 첫 해외 진출지로 한국을 택하는 경우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동아시아만 보더라도 이제 일본이나 중국이 아니라 한국을 첫 거점으로 선택한다. 대체 왜 글로벌 F&B 브랜드는 한국에 주목하는 걸까.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알 수 있을까?

 

우선, 시장이 열리고 있다. 커피 브랜드가 유독 많이 들어오는 건 한국 커피 시장이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다. 커피리브레, 테라로사, 프릳츠 같은 로컬 로스터와 수많은 동네 카페가 스페셜티 문화를 빠르게 키운 덕이었다. 10년 전만 해도 전체 커피 시장의 5% 안팎에 그치던 국내 스페셜티 커피 시장의 규모가 20% 수준까지 늘어났다. 해외 브랜드는 여기서 기회를 봤다. 해외여행 때 한국인들이 즐겨 찾는 매장일수록 “서울에 내도 되겠다”라는 확신이 생겼을 거고.

2025년 기준 국내 스페셜티 시장은 약 1조 원 규모에 이른다. 프릳츠와 테라로사는 스페셜티 커피 확산에 앞장선 대표적인 카페다. 출처: 프릳츠, 테라로사

국내 소비의 다변화도 한몫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고객이 빵을 살 때 ‘맛과 품질’을 우선 고려한다는 응답이 67.3%로, ‘가격’(3.5%)을 압도한다. 그래서 시장에선 1,000원대 편의점·지하철 빵이 불티나게 팔리는 동시에, 1만 원대 프리미엄 빵도 자주 품절된다. 최근 ‘빵플레이션’ 논란은 빵값이 오른 현실을 보여주지만, 역설적으로 소비자가 맛과 품질을 선택해온 결과이기도 하다. 지금 국내 F&B 시장은 그만큼 스펙트럼이 넓어졌고, 해외 브랜드는 바로 이 열린 틈을 노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경제성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문화적 상징성이 있다. K-팝, K-드라마, K-푸드로 전 세계의 시선이 한국에 머물고, 방한 외국인도 빠르게 늘고 있다. 서울에 매장을 열면 현지인뿐 아니라 다양한 국적의 고객들에게도 자연스레 노출되며, 어쩌면 K-콘텐츠에 간접 등장할 수도 있다. 브랜드에게 입점 도시는 매출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울리는 이미지를 만들어 주는 무대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지금 한국은 ‘가장 주목받는 쇼케이스’에 가깝다.

 

그렇다면 성과는 어떨까. 냉정하게 보면, 들어오는 브랜드가 늘수록 ‘계속 잘 되는’ 곳은 줄어들고 있다. ‘힙함’과 화제성으로 오픈 초 줄 세우기까진 가능하지만, 그다음을 버티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때 웨이팅을 해야 들어갈 수 있던 블루보틀은 이익 급감으로 자본 잠식 위기까지 겪고 있고, 화려하게 등장한 파이브가이즈도 2년 만에 매물로 나왔다. 이제는 ‘해외 인기’를 들여오는 수준을 넘어선 설계가 필요하다.

진출 이후 생존 전략은? 희소하거나 선점하거나

앞으로 전략은 크게 두 갈래로 갈릴 가능성이 크다. 첫째, 희소성을 무기로 삼는 길. 매장 수를 제한하고 고급화·차별화에 집중한다. 이렇게 매장을 늘리지 않는 대신에 수익 구조 안정을 위해 백화점 같은 파트너와 손잡는 그림이 유력하다. 작년 바샤 커피(롯데), 올해 보앤미(신세계)가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현지에서도 점포를 많이 운영하던 곳이 아니었던 만큼, 국내에서도 매장을 제한하고 차별화에 집중하는 건 합리적인 선택이라 볼 수 있다. 

보앤미는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된 수제 베이커리로 2025년 국내 진출했다. 출처: 신세계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 이탈리아 그로서란트 ‘이탈리(EATTALY)’다. 그로서란트란 식료품점과 레스토랑을 결합한 모델로 많은 곳이 국내에 진출했지만, 현재 남은 곳은 이탈리뿐이다. 2015년 진출한 이래 이들이 10년 동안 사랑받을 수 있었던 건, 현대백화점과 손잡고 판교점과 더현대서울, 중동점 딱 세 군데 매장만 내고 집중한 덕분이다. 매장 수를 보수적으로 늘린 대신, 대형 매장에서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했다. 덕분에 10년 전 1억 원을 조금 웃돌던 월평균 매출이 올해 들어 6억 원을 넘어섰다고 한다.

2015년 국내 진출한 이탈리. 현대백화점과 손잡고 3군데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출처: 이탈리

둘째, 초기에 속도를 내 카테고리를 선점하는 길이다. 과거 스타벅스(커피)와 공차(버블티)가 보여준 방식이다. 올해와 내년 상반기 최대어로 꼽히는 치폴레는 이쪽에 가까워 보인다. 던킨·쉐이크쉑 등 미국 브랜드를 안착시킨 경험이 있는 SPC를 파트너로 고른 점만 봐도 방향이 읽힌다. 다만 주의할 점도 있다. 2023년 들어온 팀홀튼 역시 빠른 확장을 택했지만, 프리미엄 전략 탓에 가격과 입점 조건이 높아 애를 먹고 있다. 이 노선을 택한다면 ‘고객이 느끼는 가격’과 ‘점주의 진입 장벽’ 두 축을 동시에 낮추는 설계가 필수일 거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플레이어는 중국의 밀크티 브랜드들이다. 차백도, 헤이티 등은 지난해 한국에 진출해 빠르게 매장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차백도는 9월 기준 매장 수가 벌써 18개, 이 중 15개는 가맹점이다. 1년 안에 50호점을 달성해 시장을 선점할 계획이라 하니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하나 더. 해외 브랜드의 잇따른 상륙은 기회일까, 위기일까? 단기적으로는 분명 부담이다. 하지만 버텨내고 이겨내면 곧 더 큰 기회가 된다. 한국이 글로벌로 향하는 ‘브랜딩 무대’로 매력적이라는 사실은, 곧 한국 브랜드 역시 해외에서 통할 잠재력이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올해 4월 LA에 첫 매장을 연 노티드가 그 증거다. 이제는 한국에서 통하는 브랜드가 세계에서도 통하는 시대다. 그래서 이들의 진출을 단순한 시장 잠식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국경을 넘나드는 F&B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그 사이에서 로컬 브랜드가 도약할 기회가 주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기묘한 객원기자

기묘한
뉴스레터 <트렌드라이트> 발행인. ‘사고파는 모든 것’에 대해 다룹니다. 매주 수요일 인사이트를 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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