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24

‘여름 향수’ 유목민에게 권하는 감각적인 조향 공간 5

르라보 북촌부터 조기석 디렉터가 론칭한 향수 브랜드 CGS의 첫 쇼룸까지

여름은 향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계절이다. 뜨거운 공기 속에서 어떤 향이든 존재감을 강하게 남기기에, 내가 선택한 향은 곧 나의 인상으로 이어진다. 그래서일까. 여름마다 자신에게 맞는 향을 찾아 헤매는 ‘여름 향수 유목민’들이 있다. 만약 올여름 새로운 향을 찾고 있다면, 아래 다섯 곳의 조향 브랜드 쇼룸에 들러보자. 단순 시향에 그치지 않고, 브랜드의 철학과 미학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들로 선정했다.

페사드 한남

페사드 한남 출처: 페사드 인스타그램

페사드(Pesade)는 말이 땅에서 45도 각도로 앞발과 몸을 들어 올리는 마장마술 기술에서 이름을 가져왔다. 힘과 균형의 완벽한 조화와 우아한 여정을 추구하는 브랜드의 철학이 담겼다. 향수 컬렉터이기도 했던 페사드 창업자 목영교는 그래픽 아티스트로써 조형과 색의 조화를 추구하며 작업을 전개한다. 베이지 톤 외관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한남동 쇼룸 역시 단순한 판매 공간을 넘어 향에 대한 해석과 취향을 반영했다. 1층은 제품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이광호 작가의 꼬인 매듭 형태 테이블이 독특한 분위기를 만든다. 2층에서는 세 가지 향으로 구성된 하나의 챕터를 매번 새로운 전시 공간으로 구현해 방문할 때마다 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Lay Figure Eau de parfum
태양이 내리쬐는 해변에서
 
Lay Figure 이미지 출처: 페사드 인스타그램

동시대를 살아가는 친구, 연인, 그리고 예술가들을 향한 존경과 사랑을 드러낸 페사드 챕터 쓰리의 오 드 퍼퓸. 태양이 내리쬐는 해변에서 서로의 온기를 느끼는 시간을 향으로 표현했다. 상쾌하고 싱그러운 숨을 내쉬는 오렌지꽃과 깨끗하고 고요한 머스크가 만나 투명하면서도 선명한 감촉을 드러낸다. 성별의 경계가 느껴지지 않는 향으로 연인이나 친구 사이에 함께 사용해도 자연스럽다.

디스틸 로프트

디스틸 로프트 출처: 디스틸 인스타그램

지난 7월 5일, 고요한 장충동 주택가에 디스틸(DSTL)의 첫 플래그십 스토어, 디스틸 로프트(DSTL LOFT)가 문을 열었다. 디스틸은 자연에서 얻은 영감을 향으로 풀어내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다. 이들에게 향은 단지 후각적 자극이 아닌 인물의 기억, 경험, 감정을 동반하는 경험의 하나다. 하여 일상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향을 추구하며, 개인의 이야기를 환기하는 데 집중한다. 이러한 철학은 공간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바쁜 도심 속에서 자연을 감각하고 향에 집중할 수 있도록 불필요한 장식을 덜어냈다. 여유가 된다면 안쪽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향을 맡으며 숨을 고르는 시간을 가져봐도 좋겠다.

Green leaves Diffuser
비가 그친 숲에 남은 여운
 
Green leaves 이미지 출처: 디스틸 인스타그램

디스틸은 자연의 사계절에서 영감을 받은 네 가지 향을 선보인다. 하지만 특정 계절을 한정하지 않기에 본인의 경험에 기대어 해석해도 좋다. 장마철에 어울리는 향을 찾는다면 그린 리브즈(Green leaves)를 추천한다. 비가 그친 뒤 숲에 스민 물기와 짙은 풀내음, 흙에서 피어오르는 쌉싸름한 여운이 뒤섞여 잠들어 있던 여름의 장면을 자연스럽게 불러낸다.

포인트투파이브세컨드 성수 하우스

포인트투파이브세컨드 성수 하우스 출처: 포인트투파이브세컨드 인스타그램

사람의 뇌가 향을 인지하는 데에 소요되는 시간은 단 0.25초, 그 찰나의 순간에도 우리는 본능적으로 기억과 감정을 떠올린다. 포인트투파이브세컨드(025S)는 향을 통해 마주하는 ‘나의 시간’을 이야기하는 토털 센트 브랜드다. 성수에서 운영하던 기존 쇼룸을 지난 5월, 티 하우스와 결합해 소란한 일상에서 벗어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확장했다. 독특한 나선형 구조로 설계된 내부는 마치 꿈의 세계로 발을 들이는 듯한 몰입감을 준다. 3층에서는 브랜드의 모든 향을 직접 시향할 수 있으며, 4층 티솔로지(TEA-THOLOGY)에서는 시간이라는 테마를 차와 이야기로 형상화한 티 페어링을 경험하게 된다.

Floating Spirit Eau de parfum
충동적으로 떠난 바다에서 유영하듯
 
Floating Spirit 이미지 출처: 포인트투파이브세컨드 인스타그램

충동적으로 떠난 바다가 주는 해방감을 향으로 옮긴다면 이렇지 않을까. 소금기 머금은 수련과 씁쓸한 유자가 바닷바람처럼 상기된 뺨을 스치고, 이어지는 오크모스와 인센스의 부드러운 그늘이 들뜬 마음을 가라앉힌다. 맑은 시트러스 노트에 포근한 우디 잔향이 겹쳐져, 덥고 축축한 계절의 공기를 한층 가볍고 투명하게 만든다.

르 라보 북촌 한옥

르 라보 북촌 한옥 출처: 르라보 인스타그램

서울 북촌 고즈넉한 골목을 걷다 보면 돌담과 기와 지붕 사이로 낯익은 로고가 고개를 내민다.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니치 향수 브랜드 르 라보(LE LABO)다. 르 라보는 브랜드 핵심 철학인 슬로우 퍼퓨머리(Slow Perfumery)를 구현할 한국의 첫 플래그십 장소로 북촌 한옥을 택했다. 경복궁과 북촌 곳곳의 전통 건축에서 영감을 받아 본래 석조를 보존하고 정교하게 짜인 나무 바닥으로 깊이를 더했다. 르 라보 북촌은 두 채의 한옥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료를 중심으로 향을 온전히 마주할 수 있는 체험 공간 ‘프래그런스 오르간 룸(Fragrance Organ Room)’과 전 세계에서 네 번째로 선보이는 ‘르 라보 카페’도 있다. 전통 미닫이문을 통해 중정과 맞닿은 카페에서 르 라보가 선사하는 고요한 쉼을 누려보자.

BERGAMOTE 22 Eau de parfum
무더위를 이기는 정화
 
Bergamote 22 이미지 출처: 르 라보 홈페이지

모든 향수를 수작업으로 완성하는 르 라보는 주요 원료와 노트 개수를 적는 방식으로 이름을 짓는다. 베르가못 22(Bergamote 22)는 신선한 감귤류인 베르가못을 중심으로 엠버, 머스크, 자몽, 바닐라 등 총 22개 노트를 조합해 만든 시트러스 프레쉬 계열 향수다. 페티그레인의 섬세한 플로럴 톤과 자몽의 쌉싸래한 산미가 어우러지고, 앰버와 머스크가 풍성한 깊이를 더해 독특한 개성을 완성한다. 무더운 계절에도 공기를 정화한 듯 깔끔한 인상을 남긴다.

씨지에스 더 스튜디오 역삼

씨지에스 더 스튜디오 역삼 출처: 씨지에스 인스타그램

빌리 아일리시, 카일리 제너, 제니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와 협업하면서도 고유한 감각을 잃지 않았던 조기석 포토그래퍼의 손길이 이번엔 후각에 닿았다. 자신의 이니셜을 딴 ‘CGS(씨지에스)’라는 향수 브랜드를 론칭한 것. 특유의 초현실적인 분위기가 보틀 디자인과 캠페인 이미지 등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서울 역삼동에 자리한 첫 번째 쇼룸은 브랜드의 첫 컬렉션을 조기석 특유의 과감한 비주얼과 서사로 확장한 공간이다. 예약제 도슨트로 운영되어 마치 프라이빗 전시를 감상하듯 몰입하게 된다. 그의 예술 세계를 진하게 체감하고 싶은 이라면 CGS 쇼룸에 방문해보자.

LOVE AND HATE Extrait de parfum
여름밤을 닮은 너와 나의 대비감
 
LOVE AND HATE 이미지 출처: 씨지에스 인스타그램

조기석 디렉터는 자신의 작업을 관통해 온 상징들 ㅡ 꽃과 나비, 천사와 악마 ㅡ을 향으로 풀어내며 첫 번째 컬렉션 ‘공존(Coexistence)’을 완성했다. ‘플라워 스터디(Flower study)’와 ‘배드 드림(Bad dream)’이 각각 꽃과 나비를 형상화했다면, ‘러브 앤드 해이트(Love and Hate)’는 천사와 악마의 대비를 담았다. 이름처럼 극과 극의 감정이 교차하는 향이다. 티트리와 파인의 차갑고도 순수한 그린 노트가 한여름의 열기를 식히고, 카다멈과 코리앤더의 스파이시한 온기가 다시 심장을 두드린다. 뜨겁지만 서늘하고, 순수하지만 욕망 가득한 향은 마치 여름밤의 공기를 닮았다. 한 번 맡으면 오래 기억되는 잔향을 남긴다.

김기수 기자

김기수
아름다운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믿는 음주가무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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