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16

여름의 경주 산책 코스: 오아르미술관부터 안압지까지

이상한 도시, 경주를 걷는 법

취향에는 두 갈래가 있다. 부산파와 경주파. 부산은 도파민의 도시다. 바다가 있고, 세계적인 영화제가 열린다. ‘부산이즈굿’이라는 슬로건처럼,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다. 넘치는 에너지를 즐기고 싶다면 부산을 찾으면 된다. 나는 부산의 그런 에너지가 좋다. 경주는 다르다. 신라 천 년의 수도, 유네스코 세계유산, 불국사… 경주를 수식하는 단어는 엄숙하다. 서울에도 경복궁과 광화문이 있지만, 경주가 풍기는 고즈넉함은 조금 다르다. 그 이유는 어디에도 없는 풍경, 바로 능 때문이다.

 

영화 ‘경주’를 만든 장률 감독도 이 풍경에 대해 말한 적 있다. 사람들은 보통 무덤을 싫어하지만, 경주는 사람과 무덤이 자연스럽게 공존한다고. 경주는 그런 곳이었다. 삶과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풍경이 도시 곳곳에 있었다. 동산처럼 보이는 거대한 무덤과 그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웃는 사람들이 보였다. 비현실적이었다. 삶과 죽음을 사유할 수 있는 도시, 경주를 걸어보자.

오아르미술관

출처: 오아르미술관

경주를 새롭게 즐기고 싶다면, 먼저 들릴 곳은 오아르 미술관이다. 이곳은 ‘3개의 고분을 담은 미술관’이라는 콘셉트로 대릉원 고분군 인근에 2025년 4월 문을 열었다. 유현준 건축가의 설계로 지어진 이 건물은 외벽에 통유리를 사용해, 미술관 안팎 어디서든 경주의 풍경을 볼 수 있다. 루프탑에서는 황리단길과 시내까지 이어지는 지붕이 펼쳐지고, 아래로는 대릉원 일대의 고분이 내려다보여 익숙한 경주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마주할 수 있다.

 

전시는 김문호 관장이 2005년부터 수집한 국내외 현대미술 작품 600점을 중심으로 구성했다. 소장품 일부를 상설전으로 소개하며, 미술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편하게 둘러볼 수 있는 분위기다. 계절마다 새로운 기획전도 열린다. 2025년 9월 29일까지 오아르미술관 1층에서 일본 현대미술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의 대표작 해피플라워 전시가 열린다. 밝고 반복적인 꽃 모티프를 통해 유쾌함 속에 숨겨진 불안과 위안을 함께 전하는 팝아트 기획전이다. 전시를 보고 나서면, 경주의 풍경이 조금 달라 보일 것이다.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금성로 260-6

현대밀면

차가운 국물이 생각나는 여름, 밀면 한 그릇은 어떨까. 밀면은 6·25 전쟁 이후 부산에 정착한 피란민들이 메밀 대신 밀가루를 사용해 만들어낸 음식이다. 오늘날엔 부산의 향토 음식으로 알려졌지만, 그 뿌리는 경상도 전역과도 깊게 닿아 있다. 피란민들이 부산과 경남 일대에 흩어지며 밀가루로 냉면을 만들어 ‘밀냉면’ 또는 ‘경상도 냉면’이라 불렀고, 시간이 지나며 ‘밀면’이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경주에서 밀면을 먹는 일은 경상도 식문화를 경험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있다. 바로 ‘현대밀면’이다. 1988년부터 중앙시장 인근에서 자리를 지켜오며, 현지인은 물론 여행자들에게도 꾸준히 사랑받았다. 국내 대표 맛집 가이드북인 ‘블루리본 서베이’에도 2014년부터 10년 연속 이름을 올릴 만큼 오랜 시간 신뢰를 쌓아왔다. 

 

대표 메뉴는 물밀면과 비빔밀면이다. 물밀면은 시원하고 깔끔한 육수가 특징인데, 육수에는 단맛과 은은한 한약재 향이 배어 있다. 비빔밀면은 매콤달콤한 양념에 고소한 땅콩 가루와 배 고명이 어우러져 조화로운 맛을 낸다. 무더위를 식혀줄 음식을 찾는다면, 냉면 대신 밀면을 맛보는 건 어떨까.

 

 

주소: 경북 경주시 화랑로 61 (황리단길에서 약 800m, 경주 중앙시장 인근)

향미사

경주 황리단길 인근, ‘경주체육관’이라는 간판이 달려 있다. 어떻게 체육관인가 싶은데, 들어가면 원두 향이 난다. 로스터리 카페다. 내부로 들어서면 카페와 함께 한옥을 개조해 만든 공간이 숨어있다. 높은 천장과 넓은 창, 탁 트인 구조가 그대로 살아 있어 시원한 개방감이 느껴진다. 햇살이 드는 자리에 앉아 있으면 바깥의 고즈넉한 풍경과 함께 여유로운 쉼을 느낄 수 있다.

이곳은 ‘향미사’라는 이름처럼 향과 맛에 집중한다. 에티오피아, 코스타리카 등 산지별 원두를 사용해 핸드드립과 에스프레소를 내고, 계절마다 바뀌는 싱글오리진도 준비돼 있다. 커피뿐 아니라 드립백과 원두도 구매할 수 있어, 여행 중 선물을 사거나 잠시 쉬어가기에도 좋다. 대릉원 근처, 조용히 머물다 가기 좋은 공간이다.

 

주소: 경북 경주시 태종로 734

대릉원과 안압지

대릉원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경주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소다. 이곳에선 경주가 왜 ‘능의 도시’로 불리는지 체감할 수 있다. 신라 시대 왕과 왕비, 귀족들의 무덤 23기가 모여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봉황대, 천마총 등 이름만 들어도 신라의 천 년 역사가 스쳐 간다. 이곳에서 경주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껴보자. 

 

그 길을 따라 조금 더 걸으면 안압지가 나온다. 이곳은 신라 문무왕 때 조성된 인공 연못으로, 왕족과 귀빈이 궁중의 풍류를 즐기던 공간이다. 지금은 경주의 밤을 대표하는 장소로, 해가 지고 조명이 켜지면 물 위로 비치는 누각과 달빛이 어우러져 몽환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그 모습을 보기 위해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는다.

연못 둘레를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신라 왕실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면적은 약 1만 5천 제곱미터로, 한 바퀴 도는 데 30분이면 충분하다. 걷는 동안 천 년 전 신라를 상상해 보자. 대릉원에서 안압지까지, 길 위에 경주의 시간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대릉원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계림로 9 

안압지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원화로 102

일상차반사

여행 끝에 들르기 좋은 찻집이 있다. 경주에서 기대하는 분위기를 이상적으로 담아낸 ‘일상차반사’다. 전통 한옥의 고즈넉함에 요즘 감성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고, 마당을 바라보며 계절 따라 달라지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차와 함께 나오는 다식도 인상적이다. ‘경주의 차와 경주에서 만들어지는 것들을 소개한다’라는 문구처럼, 이곳에서 내놓는 모든 것에는 경주의 정서가 담겨 있다. 감잎차, 쑥차처럼 지역 재료로 만든 전통차와 감말랭이·호두 같은 건강한 재료로 만든 다식을 함께 제공한다. 맛보는 것만으로도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조용한 공간에서 차 한잔 마시며, 생각을 정리해 보자.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쪽샘길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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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지오 기자

프로젝트
오아르 컬렉션전 무라카미 다카시〈해피플라워〉
장소
오아르미술관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금성로 260-6
일자
2025.07.04 - 2025.09.29
시간
11:00 - 20:00 (매주 화요일 휴관)
참여작가
무라카미 다카시
링크
홈페이지
김지오
자기만의 길을 걷는 브랜드와 사람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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