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알아두면 좋은 공간, 팝업, 전시 소식을 가장 쉽게 받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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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9

한글과 헬베티카의 만남

<한글 헬베티카 서밋(hangul helvetica summit)>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폰트, 헬베티카(Helvetica). 헬베티카는 1957년 스위스 디자이너 막스 미딩거(Max Miedinger)와 에두아르트 호프만(Eduard Hoffmann)이 공동 개발한 서체이다. 보편적이고 중립적인 스타일 덕분에 글로벌 기업의 C.I.부터 뉴욕의 지하철 노선 및 안내도까지 다양한 환경 속에서 활용되어 왔다. 이러한 헬베티카의 탄생 배경과 제작 과정 그리고 상징적 의미와 형식적 특질을 조명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헬베티카로 제작한 포스터와 견본집, 책과 잡지 등 다채로운 아카이브 자료를 통해 헬베티카의 의미를 되짚어 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헬베티카 서체만을 이야기하는 자리가 아니다. 한국과 스위스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열린 전시의 제목은 <한글 헬베티카 서밋>. 헬베티카 뿐만 아니라 그로부터 영감을 받아 개발한 한글 폰트 ‘쓔이써60’의 제작 과정을 대중에게 최초로 공개한다. 지난 3월 헤이팝은 이용제 디자이너와 박경식 디자이너가 진행한 쓔이써60’ 폰트 디자인 프로세스에 관한 소식을 앞서 전한 바 있다. 전시장을 찾기 전에 해당 기사를 미리 읽어보고 가기를 추천한다. 헬베티카와 쓔이써60에 대한 이해가 훨씬 높아질 것이다.

헬베티카라는 서체(Helvetica, the typeface)

이번 전시는 총 다섯 개의 섹션으로 구분된다. 전시의 시작점인 첫 번째 섹션은 한 가지 물음으로 시작한다. “헬베티카라는 서체는 과연 무엇일까?” 전시장 벽면과 중앙에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품은 사료가 나열되어 있다. 헬베티카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한다면 시대의 유행을 타지 않는 보편성과 모던함을 꼽을 수 있다. 어디 하나 모난 곳 없는 중성적인 성격 덕분에 시대를 막론하고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이는 헬베티카라는 이름의 기원에서도 알 수 있다. 라틴어로 스위스를 뜻하는 ‘헬베티아(Helvetia)’가 그 시작인데, 서체의 이름을 국가명과 동일하게 지을 수 없을뿐더러 서체가 특정 국가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경계한 디자이너가 ‘헬베티카(Helvetica)’라고 이름을 변경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즉, 태생부터 중립적이며 독립적인 성격을 지닌 서체인 셈이다.

서체 헬베티카는 특히 1960~70년대 미국에서 인기가 많았다. 광고, 인쇄물, 정기간행물 등에서 헬베티카 서체가 주로 사용되었는데 전시장에서는 미국의 시사 화보 잡지 〈LIFE〉  커버에 적용된 헬베티카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아울러 <1988년 서울 올림픽>의 포스터도 눈길을 끈다. 고(故) 조영제 서울대 명예교수가 이끈 디자인팀에서 헬베티카 서체를 활용해 디자인했다. 헬베티카가 지닌 글로벌 보편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헬베티카 같은 한글, 슈이써60

앞서 헬베티카에 대한 전반적인 배경을 살펴봤다면 이어지는 두 번째 장에서는 헬베티카로부터 영감을 받아 개발한 한글 폰트 ‘쓔이써60’을 소개한다. ‘쓔이써’는 스위스를 서사국(상서로운 선비의 나라)이라 불렀던 우리나라의 고유 표현과 발음을 참고했다. 쓔이써 뒤에 붙은 숫자 ‘60’은 한국과 스위스의 수교 60주년을 기념하며 활발한 문화적 교류를 염원하는 마음을 담았다. 스위스의 서체를 현대 한글로 재해석한 서체를 ‘쓔이써60’이라고 부르게 된 배경이다.

‘헬베티카 같은 한글 폰트 개발’의 진행 내용도 전시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시간순으로 기록해 둔 개발 과정을 따라가며 새로운 폰트를 개발하기 위한 디자이너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예컨대 ‘쓔이써60’이라는 이름에 붙은 숫자는 국가 간의 수교 60주년이라는 배경도 있지만 디자이너의 시선에서는 폰트의 기준 크기를 60으로 정했음을 말한다. ‘쓔이써60’이 제목용 또는 디스플레이용으로 많이 사용될 것으로 디자이너가 예측했기 때문이다. 또한, 미디엄, 레귤러, 볼드, 울트라-라이트가 차례로 발표된 헬베티카처럼 ‘쓔이써60’은 헬베티카 미디엄을 기준으로 레귤러와 볼드 그리고 울트라-라이트 버전과 다양한 굵기로 적용할 수 있는 베리어블 폰트까지도 제작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디자이너들의 가장 큰 고민은 한글과 알파벳의 다른 문자 구조였다고. “서로 다른 크기로 보이는 한글과 알파벳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조화로워 보이는가?”, “헬베티카의 표현을 한글에 그대로 반영할 수 있는가?” 등 헬베티카에 어울리는 한글을 상상하며 디자이너들이 스스로 던진 질문과 두 문자의 구조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디자인 방향 설정에 관한 내용도 읽어볼 수 있다.

에깔(ÉCAL), 시 포스터

한편 스위스 로잔에 자리한 로잔 예술 대학교 E´cole Cantonale d’Art de Lausanne, E´CAL(이하 에깔) 의 Master Type Design에 재학 중인 학생들도 이번 전시에 참여했다. 13명의 학생은 지난 2월부터 6월까지 진행한 두 번째 학기의 수업 〈Non Legitur〉에서 한글을 그렸다. 해당 수업은 매년 다른 문자를 선택하는데 학생들에게는 대체로 읽을 수 없는 문자가 주어진다. 문자의 구조와 시스템을 분석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지닌 편견을 재고하는 훈련을 거듭한다. 나아가 생소한 문자를 하나씩 익혀가며 이를 바탕으로 한 서체를 개발한다. 지난 학기에는 새로운 문자로 ‘한글’이 선택됐다.

한글을 요리조리 뜯어보며 자신만의 서체를 만든 학생들에게는 윤동주의 <별헤는 밤>, 김소월의 <초월>, 김명순의 <석류>, 박장호의 <외로운 사람은 사물이 된다> 등 4편의 시를 줬다. 이들은 각자가 제작한 한글 글자를 활용해 시 한 편의 그래픽 포스터 1종, 서체견본 포스터 1종을 제시했는데 같은 한글이라도 달리 보이는 점이 인상적이다.

한글-헬베티카 포스터 20

이번 전시의 마지막 섹션에는 국내 디자이너 10명과 해외 디자이너 10명의 포스터를 선보인다. 포스터 제작에 한 가지 조건이 있다면 바로 서체 ‘쓔이써60’과 ‘헬베티카’를 사용해야 할 것. 그렇다고 단순히 서체를 홍보하는 포스터를 제작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국과 스위스 두 국가의 디자인이 지닌 유사점과 차이점에 대한 각 디자이너의 관점과 견해를 담아낸 것이 <한글-헬베티카 포스터 20> 섹션의 특징이다. 특히 일본 도쿄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 유이치 니시무라가 제안한 포스터는 한글과 알파벳 구조의 조합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포스터의 주제로 ‘훈민정음’을 선택했는데 한글과 알파벳을 조합해 표음문자인 한글의 특성을 강조했다. ‘ㅎ’, ‘u’, ‘n’으로 ‘훈’을, ‘ㅁ’, ‘i’, ‘n’으로는 ‘민’을, ‘ㅈ’, ‘u’, ‘n’, ‘g’로는 ‘정’ 그리고 ‘음’으로 구성된 포스터를 선보였다. 문자는 달라도 소리가 전달되며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각기 다른 문자로 이룬 조화로움이 돋보인다.

이처럼 <한글 헬베티카 서밋>전은 한글과 헬베티카의 관계를 다양한 각도로 조명한다.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이 생소한 관객이라도 시각적으로 보이는 즐거움이 가득해 무리 없이 전시를 즐길 수 있다. 평소 글자에 관심이 많았다면 디자이너에게 만병통치약 같은 ‘헬베티카’의 탄생 배경과 활용된 사례들, 그리고 ‘쓔이써60’ 서체의 흥미로운 개발 과정도 분명 큰 즐거움으로 다가올 것이다. 전시는 10월 27일까지.

큐레이터 박경식, 이용제, 메기 춤스타인

쓔이써60 디자인 프로젝트 디렉팅 및 디자인 이용재

쓔이써60 디자인 김민기, 김지연, 박수린, 신유림, 정근호

포스터 디자이너

(해외) 앤지 알리, 이리 오플라텍, 크리스찬 슈왈츠 + 그레그 가즈도위츠, 메기 춤스타인, 메튜 코르탓, 발머헬렌, 릭 브라쵸, 더윈 구달, 유이치 니시무라

(국내) 채병록, 일상의 실천, 이경수, 슬기와 민, 박우혁, 박지훈, 김선혜, 정재완, 문장현, 김기창, 이용제

로잔 예술 대학교

(학생) 넬 메이, 안나 소피아 폴만, 가브리엘라 제이미, 앙트완 파시, 에란 벤 바락, 미렐라 벨치바, 막스밀리언 인징거, 맥 왕, 폴린 헤플러, 홈피오르 베네딕스도토르, 토르기어 블론달, 루크레치아 노로, 시몬 메멜

(인스트럭터&스태프) 매튜 코르탓, 이노을, 라파엘라 헤플링거, 니콜라스 베른클라우

주최 한국국제교류재단, 주한스위스대사관

후원 Swiss Fund Korea, ECAL, Basler Papiermühle, Herb Lubalin Study Center, 문학과지성사

이정훈 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주한스위스대사관, 한국국제교류재단

프로젝트
<한글 헬베티카 서밋(hangul helvetica summit)>
장소
KF갤러리
주소
서울 중구 을지로5길 26
일자
2023.09.04 - 2023.10.27
시간
10:00 - 19:00
(일요일, 공휴일 휴관)
이정훈
독일 베를린에서 20대를 보냈다. 낯선 것에 강한 호기심을 느끼며 쉽게 감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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