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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30

데스커 라운지를 창작자들의 아지트로 만든 건 누구일까?

하티핸디가 만든 선례 없는 기획과 다정한 협업

일잘러들의 작업실로 사랑받는 데스커 라운지 홍대. 데스커 라운지 내에 있는 워커스 룸이 지난가을, 그간의 무드와는 확연히 다른 결로 꾸며졌다. 말 그대로 오색찬란. 영감을 줄 만한 작업물이 곳곳에 배치되었고, 일하는 방식이 담긴 열 가지 매니페스토가 선언문처럼 벽에 붙었다. 나부끼는 깃발에는 이렇게 적혔다. 하티핸디 워크룸 HEARTY HANDY WORKROOM

선배들의 책상을 콘셉트로 꾸며지던 데스커 라운지 워커스 룸은 지난 4개월 동안 하티핸디의 위성 오피스로 구현됐다. 하티핸디? 그 이름이 낯선 사람도 많겠다. 하티핸디는 29CM, 컬리 등 다양한 브랜드의 파트너로 프로젝트를 진행해 온 부티크 에이전시다. 대표 손꼽힌은 맹그로브, 인생학교 서울, JOH 등의 인하우스 마케터/큐레이터를 거쳐 2022년에 하티핸디를 설립했다. 

 

하티핸디의 미션은 데스커 라운지 홍대를 일하는 사람들의 커넥팅 공간을 넘어 창작자들의 아지트로 영역을 넓혀보는 것. 자판을 두들기는 소리만 퍼지던 데스커 라운지 홍대는 하티핸디가 기획한 행사에 따라 디제이의 음악이 흐르기도 하고, 발명의 현장이 되기도 했다. 데스커 라운지 홍대를 배경으로 재밌는 실험을 지속했던 손꼽힌과 대화를 나눴다. 그는 어떤 방식으로 데스커와 일했을까?

Interview with 손꼽힌 하티핸디 대표

— 반가워요 꼽힌 님. 먼저 ‘하티핸디’라는 이름은 어떤 의미로 지은 건지 궁금해요. 

회사명으로 JOH나 김앤장 법률사무소처럼 대표의 성을 쓰는 경우가 있잖아요. 제 성을 따서 ‘손’으로 지으려니까 왠지 멋없게 느껴지는 거예요(웃음). 그때 친구가 ‘핸디(handy)’라는 단어를 추천했어요. 손재주가 좋고 유용하다는 뜻과 함께 이용하기 편한 곳에 있는 것을 이르기도 했죠. 그런데 쉽고 빠르다는 것만으로 저를 소개하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신뢰할 수 있고, 따뜻한 마음으로 고민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전달하고 싶어서 ‘하티(hearty)’라는 형용사를 더했어요.

하티핸디와 데스커의 만남

— 그간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이번 인터뷰는 데스커와 협업한 이야기를 중점으로 나눠보고 싶어요. 데스커 라운지 홍대에 하티핸디만의 공간을 만들고 프로그램 등을 진행했죠.

지난 9월부터 데스커 라운지 홍대에 있는 워커스 룸을 하티핸디의 위성 오피스 콘셉트로 꾸미고 발명, 미디어, 음악 등을 키워드로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프로그램이 열리지 않는 날에도 데스커 라운지 홍대를 방문한 사람들은 저희 공간을 둘러보고 자리에 앉아 직접 작업을 할  수도 있었죠. 

 

— 데스커와 처음 연이 닿았던 일화가 재밌었어요. 먼저 데스커 측에 콜드메일을 했다고요.

2022년쯤이었을 거예요. 그때 퇴사를 하고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친구들과 서촌에 작업실을 구했어요. 우경국 건축가가 지은 ‘여운헌’에 있었는데, 그 공간에 반해 계약을 했죠. 그런데 공간을 채울 가구가 생각보다 비싸더라고요. 그때 데스커를 봤어요. 뉴닉 등의 사무실을 바꿔주는 ‘오피스 체인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드라마 〈스타트업〉 PPL도 하고 있었어요.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곳인가  싶어서 무작정 기획서를 보냈어요.

손꼽힌 대표가 있었던 뉴오피스(new0ffice) 출처: 뉴오피스 인스타그램

— 정말 진취적인 행동 아니에요?(웃음) 기획서에는 어떤 내용을 적었어요?

친구들과 뉴오피스라는 이름으로 작업실을 구했는데 책상이 없다, 우리가 인플루언서는 아니지만 각자 계정에 업로드하고 오프닝 파티에서 친구들에게 적극적으로 소개하겠다, 만약 필요하다면 우리의 콘텐츠도 쓸 수 있게 해주겠다… 인지도가 낮아서 큰 메리트가 없었을 텐데 몇백만 원 상당의 가구를 사무실에 보내줬어요.

 

— 그때의 인연이 이번 협업으로 이어진 건가요?

다른 매체에서 했던 인터뷰를 보고 데스커에서 먼저 연락을 줬어요. 데스커 라운지 홍대의 콘텐츠 파트너로 일해보고 싶다고요. 당시 새로운 일을 준비 중이었는데, 은혜 갚는 마음으로 흔쾌히 수락했어요. 공간을 기반으로 하는 브랜드에서 마케팅했던 경험과 실제로 작업실을 운영하고 있는 점 등을 눈여겨본 것 같아요.

— 그러고 보니 서대문구에서 하티핸디라는 동명의 이름으로 공유 작업실도 운영하고 있죠.

네, 원래는 건축 스튜디오 ‘사사건건’이 작업실로 쓰던 곳이었어요. 사사건건에서 새로운 입주자를 찾는다는 게시글을 올렸는데, 그 소식을 스토리에 공유했다가 10초 만에 삭제하고 제가 계약했어요(웃음). 이전에 작업실을 했던 경험이 있고, 또 친구들을 모을 수 있을 거라는 자신도 있었거든요. 처음에는 임시로 문을 열어 어떤 사람들이 관심을 두는지 살폈고, 현재는 고정 멤버로 사계절을 보내고 있어요.

 

— 확실히 이전에 비해 공유 작업실의 수가 많아진 것 같아요. 

회사 업무 외에 다른 일을 병행하는 사람도, 프리랜서도 많아졌잖아요. 막상 회사에서 벗어나면 외롭고, 두려울 때가 있거든요. 공유 작업실에서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 작업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고, 그 안에서 새로운 협업이 생기기도 해요. 서로에게 이슈가 생겼을 때는 응원하는 동료가 되기도 하고요. 그런 점들이 독립 작업자들에게 평안과 활력을 주는 것 같아요.

하티핸디가 시도한 실험들
데스커 라운지 홍대에서 진행한 하티핸디의 프로그램

— 작년에 오픈한 데스커 라운지도 ‘일잘러’들의 공유 작업실로 사랑받는 곳이에요. 이미 좋은 결과를 만들고 있는 공간일 텐데, 데스커에서 하티핸디에게 기대하는 역할이 있었을까요? 

기존의 데스커 라운지가 워커들이 찾는 오피스 성격이 짙었다면, 홍대라는 지역적 특성을 살려 창작자들의 아지트로 영역을 넓히는 것이 목표였어요. 책상에 앉아 노트북으로 일하는 것을 넘어 음악을 만들거나 무언가를 발명하는 등의 장면으로 확대했죠. 사실 데스커 라운지가 아직 1년이 채 되지 않았어요. 잘하고 있는 건 그대로 두고, 하티핸디라는 이름으로 여러 실험을 한 거죠. 일방적인 강연보다는 상호적인 워크숍이었으면 좋겠다, 검증되지 않았더라도 또래 작업자와 프로그램을 해보자, 등등 의견을 내면서 새로운 것을 많이 시도했어요. 이 공간에서 디제잉을 한 것도 처음일 거예요(웃음).

 

— 데스커 라운지와 하티핸디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색이 다르게 느껴졌던 게 그래서군요. 개인적으로 꼽힌 님이 기획한 프로그램들은 삐끗하는 포인트들이 있어서 더욱 흥미로웠어요. 획일적이지 않았다고 할까요?

모든 프로그램에 적용되는 건 아니지만 조금씩 뼈를 심었어요. 첫 번째 프로그램으로 발명가 람솔과 함께 다 먹은 와인병이나 포크 등을 이용해 조명을 만드는 워크숍을 진행했는데요. 요즘은 무언가를 주문하면 하루도 걸리지 않아 집으로 받아 보는 세상이잖아요. 단순히 조명 제작을 떠나 돈으로 모든 이슈를 해결하는 소비주의에 대해 고심하는 시간을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 분리된 워크룸 공간을 살려 뮤지션 재규어중사와 라이브 공개 방송을 진행하거나, 오프닝 파티에서 초상화를 그려주는 장면에서는 위트가 느껴졌어요. 의도적으로 고민한 요소인가요, 아니면 꼽힌 님의 성격이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건가요? 

고민해요. 고민의 포인트는 ‘내가 가고 싶은 행사인가?’예요. 가서 그냥 사진만 찍고 나오는 게 아니라, 왜 재밌었는지 주변에 말하고 싶은 포인트가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마음이 동하는 요소는 사람마다 다르겠죠. 누군가에게는 그게 초상화일 수도 있고, 케이터링일 수도 있고, 좋아하는 뮤지션일 수도 있어요. 유명하지 않더라도 소개할 가치가 충분하다 싶으면 과감하게 넣는 편이에요.

— 꼽힌 님은 굳이 선례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안정성이 떨어지더라도 새로운 과정이나 결과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처럼 보여요. 

저는 제가 좋다고 느끼는 것을 사람들에게 빨리 알려주고 싶어서 안달난 사람이에요(웃음). 프로그램이든, 팝업이든 결국 사람들의 시간을 뺐는 거잖아요. 실험적인 디자인으로 재미를 주거나, 촘촘한 설계로 인사이트를 주거나, 아니면 정말 실용적이거나. 어떤 방식으로든 만족감을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 이전 회사에서 여러 프로그램을 기획했던 것이 지금의 일에도 도움이 되었나요?

그럼요. 사운즈 한남에 있던 서점 스틸북스에서 일할 때는 매주 두 개씩, 70회가 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모객했어요. 제가 기획한 프로그램의 정원 70명이 1분 만에 매진될 때 떨리기도 하고 자부심이 들더라고요.

 

— 맹그로브, 인생학교 서울, 스틸북스, 이번에 진행한 데스커 라운지까지. 프로그램 기획의 경험치가 쌓였다고 해도 매번 주체가 달랐어요. 주체가 변하면 기획의 시작점도 달라지나요?

주로 공간을 운영하는 브랜드와 함께했는데요. 기획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를 태그하는 소비자의 계정을 전부 들어가서 살폈어요. 이 사람은 평소에 무엇을 좋아하는지 특성을 파악하고 페르소나를 수집하는 거예요. 그럼 기획의 결과물이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한남동에 있던 스틸북스는 문화, 예술 관련 토크가 다수라면 주거 공간인 맹그로브에서는 삶의 안정감을 줄 수 있는 명상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식이죠.

1인 기획자가 좋은 협업을 만드는 법

— 이전에는 회사의 구성원으로 움직였다면, 현재는 브랜드 에이전시 대표로 일하고 있어요. 1인 대표는 일당백을 하는 외로운 직업이 아닐까 싶었는데, 꼽힌 님을 보면 생각이 달라져요. 매번 다양한 사람과 협업하고 있어요. 그것도 즐겁게.

혼자 모든 것을 해내면 돈은 많이 벌겠죠(웃음). 하지만 금방 소진되고 말 거예요. 갈수록 뻔한 결과물을 내게 될 거고요. 사람들과 협업하면 내 머릿속에 없던 새로운 결과물이 나오는 게 재밌어요. 예를 들어 오프닝 파티를 할 때 제가 좋아하는 DJ로 라인업을 만들 수도 있었겠지만, 전주에 있는 편집숍 후로기 오피스의 작업이 흥미로워서 KTX를 타고 내려가 한 시간 미팅만 하고 올라오기도 했어요. 개인적으로 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일하면서 돈도 벌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싶어요.

후로기 오피스의 하티핸디 워크룸 오프닝 파티 포스터

— 콘텐츠 제작 그룹 ‘72초TV’의 멤버이자 작가이기도 했던 김지원 디렉터와 공간 구성을 함께했어요. 하티핸디를 모르고 찾아온 이들에게 첫인상으로 남는 곳이라 몹시 중요했을 텐데요. 디렉터와 어떻게 소통했는지 궁금해요.

먼저 하티핸디를 설명하는 열 가지 매니페스토를 썼어요. 하티핸디를 모르는 사람은, 그래서 너희가 뭐가 다른데, 궁금할 거라 생각했거든요. 내가 하티핸디라는 이름으로 일하는 철학을 세워둬야 협업자에게도, 방문하는 사람에게도 메시지가 전달될 거라 생각했죠. 또 제가 실제로 이용하는 작업실의 무드를 공유하고, 일할 때 유념하는 인물이나 문구, 좋아하는 밈이나 작품 등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전달했어요. 디렉터 님이 그 소스들을 알록달록한 작업물로 시각화했고, 정적인 느낌의 데스커 라운지와 상반되는 창작자의 공간이 완성됐어요. 개인적으로 김지원 디렉터님의 팬이었어요. 아임웹 성수동 팝업을 진행한 것을 보고 다재다능하다는 것도 알았고요. 제가 했다면 종일 걸렸을 텐데, 금세 구현하는 모습을 보고 프로는 다르다 싶었어요(웃음).

— 안 그래도 매니페스토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오늘 데스커 라운지에서 작업하기 전에 선언처럼 마음에 새겼더니 일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실제로 추구하는 가치를 담은 선언문이에요.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는 동시에 제가 생각하는 긍정적인 기운을 전달하고 싶었어요. ‘Better done than perfect(마감일 엄수)’를 메인으로 잡은 건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완벽을 추구하다 시작을 망설이는 것보다는 오늘 책상 앞에 앉아 첫발이라도 떼어보자는 메시지였죠. 하티핸디 워크룸이 목표한 것을 현실로 만들어주고, 해야 할 일을 해낼 수 있는 기운을 주는 공간이 되기를 바랐어요.

— 적재적소에 마땅한 사람을 찾는 것도 일일 텐데요. 평소에 공들이는 것이 있나요?

일단 전시나 콘텐츠를 많이 소비하고요. 뮤직비디오든, 팝업 행사든 크레딧을 꼭 확인해요. 인상적인 작업물이 있으면 어떤 사람의 손을 거쳤는지 확인하고 저장해둬요. 친분이 없는 사람과도 협업하면서 일로 우정을 다지는 걸 좋아해요.

 

— 마지막 질문이에요. 팝업을 기획하거나,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꼽힌 님이 유념하는 점이 있다면요?

브랜드 목표, 참여자 경험도 중요하지만 저는 함께하는 창작자들의 환경도 대수롭다고 생각해요. 그들의 콘텐츠와 행보가 저에게는 동력이고, 재충전 요소이기도 하거든요. 그들이 창작 과정에서 소모되거나 소진되지 않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계속해서 좋은 무대를 만들어주고 싶어요.

김기수 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하티핸디

김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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