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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20

토종 곡물의 매력을 전하다

공주 로컬 식문화 공간, 곡물집.
충청남도 공주시 봉황동. 고즈넉한 분위기의 한옥에서 로컬 지역의 고유한 맛을 알리는 사람들이 있다. 토종 곡물의 가능성을 탐구하고 균형 잡힌 식문화를 이끄는 브랜드 '곡물집'의 천재박, 김현정 대표다. 이들은 농부가 우리 사회의 중요한 자산이라고 여기며 지속 가능한 가치를 실천하는 중이다. 우리가 미처 잘 알지 못했던 토종 곡물의 다양성을 소개하고 지역의 문화와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지역 농부들로부터 공급받은 자원을 활용해 건강한 식문화를 퍼뜨린다. 로컬푸드와 사람들 간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는 일이다.
곡물집은 문학을 다루는 서점 '데시그램북스'와 공간을 공유하며 문학과 음식에 대한 접점을 찾고 있다. 지난 6월에는 소설가 김연수와 푸드 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8월에는 나태주 시인과 두 번째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곡물집

 

 

Interview 김현정 천재박

곡물집 CEO

 

 

두 분은 각자 기획자로, 디자이너로 일하셨다고 들었는데 창업을 결심한 계기가 궁금해요.

인생의 전환점에서 ‘스스로를 가꾸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라는 물음이 커질 때였어요. 저와 저를 둘러싼 이웃들의 일상생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면서, 지속 가능한 가치를 담을 수 있는 새로운 일이 필요했죠. 깊이 고민한 결과 자신의 손으로 삶을 주체적으로 일구는 농부, 그리고 그들이 생산하는 ‘토종土種 씨앗’에서 식문화의 다양성과 앞으로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모든 박자가 맞아떨어지면서 작년 8월, 공주시 원도심 봉황동에서 ㈜어콜렉티브그레인을 설립하게 됐어요. 운영한지 1년 남짓 된 현재는 4명의 동료와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문화예술과 농업’을 주제로 기획자, 때로는 디렉터로 일했습니다. 2018년 중반에는 농부가 우리 사회의 공유 자산이라는 관점으로 그들의 오리지널리티를 탐구하며 본질과 가치를 디자인하는 회사 ‘어프로젝트a project’를 창업했고요. 이후 ‘곡물집’이라는 브랜드 비즈니스 초기 모델을 김현정 대표에게 제안하여 농촌과 도시를 잇는 일을 하게 됐습니다.

 

©곡물집

 

곡물집은 어프로젝트a project가 전개하는 ‘어콜렉티브A Collective‘라는 브랜드 중 하나로 알고 있어요.

‘어콜렉티브’는 동등하게 협업하는 체계를 만드는 ‘식’ 브랜드입니다. 한 회사에 종속된 브랜드라기보단 농업과 음식문화를 대중적으로 알리기 위해 연합한 브랜드라고 볼 수 있어요. 글로벌 푸드 시스템에서 소외된 ‘농부’를 중심으로 각 분야를 탐구하기 위해 시작한 공동 브랜드 개념입니다. 이에 따라 전통 장류를 주제로 ‘어콜렉티브-장(장집)’을 추진 중이고, ‘어콜렉티브-그레인(곡물집)’은 토종 곡물을 주제로 충청남도 공주시 원도심에서 전개하고 있습니다. ‘어콜렉티브-치즈’, ‘어콜렉티브-토마토’ 등 모든 농산물이나 식품이 주제가 될 수 있기에 비슷한 비즈니스를 추구하는 분들과 협력해 나갈 계획입니다.

 

©곡물집

 

곡물집은 토종 곡물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곡물 경험 브랜드’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토종 곡물을 브랜딩할 생각을 하게 됐나요? 공주에 공간을 자리 잡은 이유도 궁금합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이주를 결심한 만큼, 오래된 도시들이 간직한 풍요로움을 느끼며 일을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자연스럽게 고향인 공주에 자리 잡게 됐어요. 사업을 준비하며 오랜 시간 탐구해볼 만한 주제이자, 사회적으로 지속 가능한 영리를 시도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했어요. 시장 현황이나 성장 가능성을 우선시했다면 아마 다른 방향으로 결정했을 거예요. 그러다 보니 농부들의 생산물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우리 사회에서 토종 곡물이 계속 소비되고 순환되는 생태계가 필요하다고 느꼈죠. 우리 것이 무조건 맛있고 몸에 좋다는 주장은 오히려 잘못된 오해를 전달하거나 거부감을 줄 수 있기에 토종의 진정한 가치를 ‘생물다양성Biodiversity‘에 두고 있어요.

곡물집은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을 기반으로, 곡물 하나하나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활동 자체에 의미를 둡니다. 토종 작물들은 일제강점기와 빠른 산업화를 거치며 ‘생산량’이라는 물리적인 조건 때문에 외면받았죠. 정형화, 규격화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이제 이러한 특성이 오히려 장점으로 부각될 수 있는 시대입니다. 개인의 취향과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기에 다양성이 본질인 토종을 주목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토종 씨앗을 지켜온 농부들을 만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농사를 각자의 환경에서 자신만의 관점으로 분석하는 전문성이었어요. 이들의 노고가 담긴 토종 작물을 소비자들과 연결하며 우리가 추구하는 진정한 디자인을 실현하고 싶었어요.

 

©곡물집

 

지역 농부들을 통해 곡물을 조달 받고 있다고 들었어요. 지역 생산자와 거래할 경우 지역 생태계 활성화는 물론, 환경이나 경제적인 면에서 이점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현재 글로벌 식품체계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법의 하나는 지역의 농산물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로컬푸드는 물리적인 거리뿐 아니라 ‘관계의 거리’가 본질입니다. 곡물집은 올해 ‘전국씨앗도서관사회적협동조합’과의 협력을 통해 토종 씨앗을 보존하고 보급하는 활동을 해온 농부들과 인접한 지역에서 이력을 관리해 오신 농부들의 곡물을 공급받을 계획입니다.

 

이러한 공급 방식이 검증되면, 곡물집처럼 토종 곡물을 필요로 하는 다른 기업 및 단체들의 수요도 합산해서 함께 주문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토종 농사 경작지를 확장해 지역 커뮤니티에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이나 특정 브랜드만 이익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캠페인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곡물집

 

곡물집에서 다루는 토종 곡물의 종류가 무척 다양한데, 특별한 선별 기준이 있나요?

농사를 짓는 농부님들과 전문가분들께 자문하고 의논하여 선별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버들벼’부터 ‘금도메벼’에 포함된 쌀 5종, 그리고 ‘선비잡이콩’부터 ‘등틔기콩’까지 콩 5종, 그리고 팥, 보리, 수수, 녹두, 밀, 조, 기장, 율무, 옥수수, 땅콩 등 총 23종을 공급받을 예정입니다.

 

곡물 패키지 용량은 200g으로 소포장해서 판매하더라고요. 밝고 다채로운 색감의 패키지 디자인도 눈에 띕니다.

사람들에게 낯선 곡물인 만큼 각자의 취향에 맞게 고를 수 있도록 소량으로 포장했습니다. 다양한 선택지를 마련하는 것은 곧 다양한 삶을 제안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기에 자신만의 취향을 찾는 사람에게 적합하다고 생각했어요. 패키지는 곡물집의 장인선 그래픽디자이너가 각 곡물의 특징을 재해석해 디자인했습니다. 토종 곡물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이나 사명감을 막중히 전하기보다는, 경쾌하고 산뜻한 이미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곡물크림커피 ©곡물집
시그니처커피블렌드 ©곡물집
빈라떼 ©곡물집

 

곡물집에서만 맛볼 수 있는 메뉴도 궁금합니다.

음료와 디저트는 곡물을 오롯이 경험할 수 있도록 최대한 각 재료의 고유한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도록 고안했습니다. 토종콩을 볶고 거칠게 분쇄하여 우유나 두유에 섞어 먹는 ‘빈 라떼’는 선비잡이콩, 베틀콩, 대추밤콩, 아주까리밤콩 4종류가 있습니다. 빵과 함께 맛보기 좋은 아주까리밤콩, 재팟, 율무, 방비수수를 사용한 음료도 만나보실 수 있고요. 특히 커피는 수입산 커피콩과 국산 토종인 ‘등틔기콩’을 블렌딩해 선보이고 있습니다. 원두의 종류와 특성에 따라 여러 가지 곡물을 적용해보며 다양한 맛을 내는 시도를 하고 있는데, 현재는 공정무역 커피에 적합한 곡물을 찾아보고 실험하는 중입니다. 더 좋은 결과물을 위해 앞으로는 요리사분들과 적극적으로 협업해 결과물을 낼 계획입니다.

 

베틀콩파운드케잌 ©곡물집
돼지찹쌀와플 ©곡물집
깜빠뉴와제철식재료페스토 ©곡물집

 

곡물집은 토종 곡물을 넘어 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경험을 제공합니다. 이현배 옹기장과 협업해 ‘토종 곡물 경험 워크숍’을 열기도 했고요. 최근엔 2박 3일간의 식경험 디자인캠프도 진행했습니다.

‘식경험디자인Food Experience Design’은 음식을 포함한 식사, 즉 먹는 경험을 기획하고 디자인하는 과정 전체를 다루는 분야로 네덜란드의 이팅 디자이너eating designer ‘마리예 보헬장Marije Vohelzang’의 프로젝트가 대표적입니다. 디자인이 시대 현상을 읽어내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주목받는 현대 흐름 속에서 ‘식’ 경험을 구체적으로 다루는 분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간장 유니버스 ©곡물집

 

어프로젝트가 작년 진행했던 ‘간장 유니버스The Ganjang Universe’ 프로젝트 또한 ‘간장’을 주제로 한 테이스팅 키트·상품 패키징·워크숍·전시·도서 발간 등의 연속된 활동을 통해 간장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을 자신들의 경험으로 확대하고자 했던 것도 식경험디자인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식경험디자인캠프 ©곡물집

 

음식을 만들고 먹는 행위는 인류가 존재한 모든 순간에 있었습니다. ‘식경험디자인’은 이러한 경험을 디자인적인 사고로 재해석하고 표현하는 일련의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곡물집의 브랜딩 전략은 ‘디자인’을 핵심으로 삼았는데요. 식경험디자인 분야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스몰바치스튜디오Small Batch studio의 강은경 디자이너와 함께 2020년 <곡물 경험 워크숍>을 기획했습니다.

2021 식경험디자인캠프 ©곡물집

 

<곡물 경험 워크숍> 은 토종 곡물을 맛보며 농부의 곡물 이야기, 옹기장의 솥 이야기를 통해 자신만의 ‘밥’에 대한 의미를 찾아보는 시간인데요. 작년에 총 5회를 진행하였고, 올해 7월에는 2박 3일 간 ‘식경험디자인캠프-멜팅아이스크림’을 열어 공주의 지역 자원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현재 사회적거리두기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더 많은 분이 참여해 보실 수 있게 ‘비대면 키트’로도 제작 중입니다.

 

2021 식경험디자인캠프 ©곡물집

 

로컬 브랜드를 꿈꾸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이나 이야기가 있다면요?

상대적으로 한적한 비수도권에 수도권에서나 있을 법한 무언가가 생기면, 그 자체로 높은 관심을 받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죠. 로컬이 지닌 경쟁력을 잘 활용한 브랜드가 점차 빠른 속도로 늘고 있는데, 한편으로 산업화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기도 합니다. ‘로컬’이라는 딱지를 떼고도 경쟁력을 가지려면 역설적이게도 더 ‘로컬’을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언가를 시도하는 자세를 넘어, 자기 일을 통해 발생할 크고 작은 영향까지 세심하게 고려하는 성숙한 태도가 필요한 것이죠.

 

곡물집은 앞으로 어떻게 운영하며 확장하실 계획인가요?

곡물집을 제조업 브랜드가 아닌, 콘텐츠 브랜드로 만들어나가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저희가 추구하는 제품의 가능성을 직접 점검해 봐야 한다고 절실히 느낍니다. 제품 제작의 첫 단계부터 마지막까지 전부 겪으며 경험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죠. 올해 하반기에는 농부와의 이상적인 협업 관계를 실험하는 ‘토종쌀 과자’와 ‘공평한 전통주 – 공주(公酒)’ 개발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추후 많은 식품제조회사 및 라이프스타일 회사들과 협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김세음

자료 협조 곡물집

장소
곡물집 (충청남도 공주시 효심1길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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