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포스터가 담긴 엽서, 뮤지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 공연의 이름이 프린트된 슬로건…. 평범해 보이는 사물이지만, 누군가는 이 물건을 보며 좋았던 날을, 부풀었던 마음을 떠올린다. 사람들이 굿즈를 사는 이유는 이와 닿아 있을지 모른다.
‘딴짓의 세상’은 영화를 중심으로 한 콘텐츠의 굿즈를 만드는 1인 디자인 스튜디오다. 오세범 대표가 딴짓의 세상을 시작한 지 올해로 11년째. 애정 어린 눈으로, 섬세한 손길로 만드는 그의 굿즈는 여러 영화 팬의 보물상자 속에 간직되거나, 가방에 매달려 있기도 할 것이다.
많은 것이 가볍고 빨라지는 시대, ‘물성을 갖는 무언가’를 만드는 이유를 물었다. 그는 대답했다. “디지털의 세계에 저장해두는 것으로는 해소되지 못하는 애정이 있고, 그 마음이 소중하다는 생각도 합니다.” 뭔가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물건을, 10년이 넘도록 성실히 만들어온 그와 인터뷰했다.
덕후 탄성 자아내는 작업, 어떻게 탄생할까
— 딴짓의 세상이라는 이름이 독특합니다. 이름에는 어떤 뜻을 담았나요?
저는 전공 공부보다 영화를 보러 전국의 영화제를 다니고, 영화 워크숍을 듣고, 단편영화를 만드느라 바쁜 학생이었어요. 학교 수업 중에 자기 자신을 브랜딩하는 과제가 있었는데, 당시 ‘끊임없는 딴짓’이라는 제목을 붙여 작업했죠. ‘딴짓’으로 뭉뚱그릴 수 있는, 이력에는 포함되지 않는 활동과 관심사가 전공이나 소속보다 나를 잘 설명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몇 년 후 개인 작업물에 붙일 활동명이 급하게 필요하던 차에 그 과제가 떠올라서 ‘딴짓의 세상’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어요. 그 시절에는 중요한 키워드였는데 지금은 약간 서먹한 거리감을 느끼기도 하는 이름입니다.
— 딴짓의 세상은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초반부터 지금까지, 일의 영역을 어떻게 확장해 왔는지 그 과정도 궁금합니다.
딴짓의 세상이라는 이름 아래에서는 전공 수업으로 채워지지 않는 일, 배우거나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하자고 생각했어요. 말 그대로 ‘딴짓이라 불리는 세상’ 속이니까 괜찮다고 생각하면서요. 좋아하는 성장영화에 관해 이야기하는 팬진(Fanzine)*을 기획하고 독립 출판하는 프로젝트도 진행했는데, 이 작업을 보신 프로파간다의 최지웅 디자이너가 영화 굿즈 디자인이 필요했던 영화사를 소개해주셨어요. 하나의 작업이 포트폴리오가 되어 다음 작품의 의뢰가 오는 식으로 일이 이어지면서 점차 영화 굿즈를 기획하고 디자인하는 스튜디오의 성격을 갖추게 되었어요.
* 마니아가 자발적으로 만드는 잡지 혹은 간행물
— 독립영화부터 블록버스터, 넷플릭스 작품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두루 작업했습니다. 작업할 작품을 고르는 기준은 뭐예요?
일을 고른다기보다 여건이 맞는 일을 한다는 게 맞는 표현인 것 같아요. 1인 사업자로서 쓸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의 한계가 너무나 분명하고, 프리랜서로서 언제 어떤 일이 올지 모르기 때문에 지금 받은 일의 일정을 최우선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이름만 들어도 두근거리는, 오래 기다렸던 작품으로부터 연락이 오면 이런 기준이 다 무너지곤 합니다. 내가 조금 무리하면 되지, 이 작품에 참여할 기회를 놓칠 순 없지, 하면서요.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영리한 태도는 아니지만 한 명의 팬이자 관객으로서 보고 싶었던 작품의 일은 가능하면 하려고 해요.
— 배지부터 작품 속 소품을 실물로 구현한 박스 등 여러 굿즈를 만들지요. 만들어온 굿즈의 분류 혹은 종류를 소개해 준다면요.
아무래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작업은 금속 배지인데요. 영화와 관련된 장면이나 인물을 작고 반짝이는 금속으로 가공해 간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아하는 관객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영화 스틸을 활용해 다양한 지류 굿즈를 만들기도 합니다. 일반적인 형태로 인쇄해서 엽서나 미니 포스터를 만들 수도 있겠지만 영화 속 소품이나 모티프를 발전시키기도 해요. 파일 폴더에 수록된 증거 사진이나(<서스페리아> 케이스 파일), 90년대 바이브의 카세트테이프 속지(<핫 썸머 나이츠> 카세트카드집), 혹은 70년대 담뱃갑에 넣은 스냅사진(<우리의 20세기> Salem 포토카드집)이 그렇게 탄생했어요.
— 색감과 선이 섬세합니다. 종이나 디지털 화면이 아니라, 금속 배지라는 물체 위에 색감과 선을 정교하게 표현하는 일에는 또 다른 어려움이 따를 듯합니다.
영화는 주로 배우를 통해 표현되는 매체이다 보니 인물이 포함된 도안이 많아서 얼굴 표현에 주의를 기울이며 많은 시간을 할애해요. 기계로 깎아 잉크를 주사하는 배지의 특성상 선의 두께나 최소 면적의 제약이라는 분명한 한계가 있거든요. ‘입술을 다 표현할 수 없다면 입술의 어떤 부분을 표현해야 전체의 입 모양을 연상하게 될까?’ 같은 질문들을 하면서 선을 그리고 조정합니다. 컬러 역시 지정한 팬톤(Pantone) 컬러와 실제 공장에서 조색된 컬러가 조금 다를 수 있어서 같은 색을 몇 가지로 다르게 지정해 샘플을 내서 가장 조화로운 컬러를 고릅니다.
배지로 표현한 장면을 돋보이게 하는 동시에, 배지로는 표현하지 못한 이야기까지 담을 수 있는 배경지 디자인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요. <썸머 필름을 타고!>는 영화감독을 꿈꾸는 주인공의 이야기예요. 이 영화를 작업할 때, 배지에는 세 명의 주인공이 진지하게 촬영에 임하는 영화의 순간을 담았어요. 하지만 배경지는 먼 미래에 이들이 만든 영화를 상영하는 가상의 행사 인쇄물로 디자인했어요. 영화가 끝난 뒤에도 이어질 인물의 미래를 상상해 배경지 위에 펼친 셈이죠. 배경지로 배지에 담은 장면의 의미를 확장하고 싶었어요. <썸머 필름을 타고!> 역시 영화를 통해 지금과 미래를 연결하는 이야기거든요.
다채로운 굿즈의 세계
— 배지 외에도 기억에 남는 작업이 많아요. <애프터 양> 티백, <리틀 드러머 걸>의 스파이 파일 폴더 등이요. 한계를 두지 않고 각 영화에 알맞은 굿즈를 어떻게 떠올리나요? 아이디어를 내는 순간부터 그 생각을 구체화해 나가는 과정을 듣고 싶어요.
작품을 감상하면 자연스럽게 영화 속 소품이나 상징을 실물로 구현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원래 영화 속 세계의 미술과 소품을 보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일하다 보니 습관이 되었어요. 그리고 저에게 주어졌거나 활용할 수 있는 소스를 살펴보며 의미를 연결해서 굿즈로 만들어요.
예를 들어 <애프터 양>은 영화를 보자마자 차(茶)라는 소재를 실물로 담아 전달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영화에서 차를 우리는 행위가 일상의 아름다움을 기억하고 음미한다는 주제와 공명하거든요. ‘그렇다면 굿즈에도 이런 의미를 담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이어져서, 찻잎과 영화 속 스틸을 작게 인쇄한 미니 카드가 같이 들어있는 티백이 그에 대한 답변처럼 구체화되곤 해요.
<리틀 드러머 걸>은 작업을 시작하면서 방대한 프리 프로덕션 시각 자료를 전달받은 아주 드문 경우였어요. 이 좋은 자료들을 어떤 맥락으로 엮어서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본편에 잠깐 등장하는 파일을 떠올렸죠. 주인공 찰리의 사진과 정보를 담은 작은 소품이 등장하거든요. ‘만약 이런 스파이 파일이 몇 개 더 있다면?’ ‘찰리뿐만 아니라 다른 등장인물에 대한 파일이라면?’ 하는 상상으로 이어졌어요. 이 아이디어는 콘셉트가 좋더라도 뒷받침할 자료가 없었다면 시도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특수한 여건의 덕을 본 경우입니다.
— <마이 네임> 향수, <지금 우리 학교는> 윷놀이 세트 등 넷플릭스와 함께한 작업도 신기했어요. <오징어 게임> 인형과 트레이닝 복이 담긴 스페셜 굿즈는 ‘더 투나잇 쇼’에서도 소개됐죠. 모두 장르적 개성이 확실한 작품들이고, 만들어낸 결과물도 일반적인 굿즈 형태가 아니잖아요. 넷플릭스와의 작업은 어때요?
넷플릭스는 작품마다 분명한 콘셉트가 있고, 그것을 ‘새로운 방식, 새로운 품목’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와 요청이 언제나 명확해요. 많이 제작해 배포하는 용도가 아니라 적게 만들더라도 특별하고 아름답기를 바라고, 그래서 굿즈로 제작되는 흔한 품목은 사전에 제외하고 이야기가 시작되는 편입니다.
넷플릭스에서 먼저 품목을 지정해주시면 작품의 개성을 가장 잘 표현할 방법을 찾아 제시하기도 하고, 아예 백지에서 출발하기도 해요. 이런 경우엔 작품을 본 뒤 어떤 걸 만들지 함께 고민하죠. 새로운 소재와 구현에 도전하는 부담과 스트레스가 있어 모든 프로젝트가 어렵지만, 한편 예산에서 높은 자유도가 주어지기 때문에 창작의 관점에서는 해방감을 느껴요. 작품을 끝내고 나면 개인적으로도 많이 배우고 성장하는 프로젝트로 남아요.
— 얼마 전 열린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굿즈 프로젝트를 선보였어요. 어떤 프로젝트였는지 소개해 주세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단순한 굿즈샵을 넘어 새로운 상상을 시작하는 p!tt 프로젝트를 론칭했습니다. (p!tt는 biff를 상하 반전시킨 문자입니다.) p!tt의 브랜드를 디자인한 디자인 스튜디오 브루더(Bruder)를 포함, 여러 회사가 p!tt 프로젝트에 참여했어요. 딴짓의 세상은 영화제에서 사랑받는 배지 품목을 단독 이벤트존으로 확장한 #내가만든부국제뱃지 와,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수상해 내한한 배우 양조위를 기념하는 <양조위의 화양연화> 스페셜 굿즈 패키지를 맡아 작업했습니다.
— 배지를 고르고 조합하는 사람들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어떤 기분이었는지 듣고 싶습니다.
#내가만든부국제뱃지 는 배지라는 소재로 예전부터 구현해보고 싶었던 아이디어였어요. 여러 종의 배지 중 원하는 것을 골라 배경지에 자유롭게 배치함으로써 관객 각자가 자신만의 작은 배지 컬렉션을 가지길 바랐습니다. 배지마다 매진되는 속도가 다르고 반응도 달라서 SNS 반응을 체크하거나 옆자리에 앉은 사람의 가방에 달린 배지를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어요. 사용자 경험 측면에서 예상과 달랐던 지점도 있어서 축제라는 현장의 특수성을 실감하기도 했습니다.
영화를 통해 책으로
— frame/page라는 이름으로 출판사를 운영하죠. 책을 펴내게 된 이유가 있나요?
에릭 로메르의 <녹색 광선>을 좋아해서 영화에 언급이 되는 동명의 소설을 읽어보고 싶었어요. 쥘 베른이라는 유명한 작가가 썼지만, SF 장르가 아니다 보니 국내에 번역 출판되기 어려웠던 것 같아요. 어느 출판사에서든 이 책을 내주셨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SNS에 여러 번 하다가, 불현듯 ‘아무도 안 하면 내가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어 실행에 옮겼어요. ‘딴짓의 세상’이라는 이름으로 독립 출판하기에는 무게감이 있는 책이었고 번역가, 교정자, 디자이너 등 전문가의 공이 들어가기 때문에 ISBN을 받아 정식으로 유통하기 위해 출판사를 등록했어요.
— <녹색 광선>, <구니스와 함께한 3주>, <헵타메론: 열 번째 이야기>까지, 모두 영화 속에 등장한 책이거나, 영화 이야기를 다루는 책이에요.
<녹색 광선> 한 편의 책을 출간하기 위해 등록한 출판사이기 때문에 어떤 책을 라인업으로 두고 운영하겠다는 계획은 없었어요. (사실 다른 책을 출간할 계획 자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출판사를 등록하고 나니, 그 이전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규모의 책 출간도 고려해볼 수 있게 되면서 책을 몇 권 더 만들게 되었어요. 제 출판사를 통해 나온 책들은 성격도 디자인도 너무나 달라요. 공통점이라면 좋아하는 영화를 통해 발견했고, 각기 다른 이유로 기성 출판사에서 출간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일 거예요. 앞으로 frame/page에서 책이 나온다면 사랑에 빠진 어떤 영화를 통해 알게 된, 어디서도 출판해 줄 것 같지 않은 책이면 좋겠어요.
— 책의 디자인이 특히 인상적이에요. 폰트, 재질, 양장 등이 책마다 다르되 아름다운데요, 어떤 ‘모양새’를 한 책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해요?
<녹색 광선> 책을 만들고 이런 디자인의 시리즈로 출간되는지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하지만 출판사의 특성상 책을 발견하게 된 경로로서의 영화가 다 다르고, 그만큼 책의 성격도 다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개별 책의 맥락만을 생각하며 디자인한 결과물이 나왔어요. 저는 인하우스 디자이너로서 책 디자인을 배운 것이 아니라서 부족하거나 무지한 부분이 많고, 그만큼 전문가의 시선에서 책을 디자인하는 과정이 무척 궁금해요. 여건이 된다면 북디자이너와 작업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늘 있어요.
깊게 매혹되는 종류의 사람들을 위해
— 지난해 딴짓의 세상은 10주년을 맞았습니다. 1인 창작자로서 긴 시간 꾸준히 일해왔다는 점은 정말 존경스러워요. 10년 이상 창작과 사업 운영을 함께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 것 같아요?
10년의 절반 정도는 대학원에서 공부하며 취미생활로서 ‘딴짓의 세상’을 이어왔어요. 그래서 일상의 스트레스로부터 도피할 수 있었죠. 스튜디오 덕분에 학업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말이 오히려 적당할 것 같습니다. 이 일이 정식으로 업이 된 뒤로는, 단지 앞에 주어진 일을 마감하는 일을 반복했을 뿐인데 뒤돌아보니 시간이 이렇게 쌓여있더군요. 이게 가능했던 것은 우선 스튜디오의 작업을 좋아해 주시고 일을 의뢰하시는 분들이 있었기 때문이고, 각각의 일이 매번 다른 영화의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반복’된다는 느낌을 덜 받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 너무 많은 것이 가볍고 빨라지는 시대에 ‘물성을 갖는 무언가’가 갖는 가치, 그리고 그걸 만드는 일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환경 보호에 대한 노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 시기에, 영화 굿즈는 ‘무용하며 예쁘지만, 쓰레기’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어느 정도 사실이라고 생각해요. 매달 몇 개의 작업을 내놓으며 얼마나 많은 오염에 기여했을까, 라는 생각에 힘이 조금 빠지기도 하고요. 하지만 모든 것을 디지털의 세계에 저장해두는 것으로는 해소되지 못하는 애정이 있고, 그 마음이 소중하다는 생각도 합니다. 굳이 만들어야 한다면, 목표가 쓸모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 마음에 잘 가닿는 작업이 되면 좋겠습니다.
— 딴짓의 세상 작업을 쭉 따라가다 보면, 결국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이 모든 일의 씨앗이 된 것 같다고 느껴요. 대표님에게 영화는 어떤 의미를 품나요.
어두운 극장에 앉아, 매번 다른 세계와 이야기가 펼쳐지는 걸 지켜보는 즐거움과 경이를 좋아해요. 영화는 내 감정을 잘 설명해 주기도 하고, 겪어본 적 없었던 상황에 이입하게 하기도 해요. 영화 덕분에 더 많이 배우고 느낍니다. 에드워드 양 감독의 <하나 그리고 둘>에 나오는 말, ‘영화를 통해 우리는 세 배의 삶을 살게 되었다’ 처럼요.
저는 영화라는 매체와 극장이라는 공간에 유독 깊게 매혹되는 종류의 사람들이 따로 있는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그리고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한’ 사랑이 아니기 때문에 이유를 서술할 수 있는 명확한 말이 없을 것도 같아요.
— 예정된 계획과 미래의 바람을 물을게요.
10월 28일부터 30일까지 열리는 ‘언리미티드 에디션’에 참여해요. 큰 행사이다 보니 걸맞은 작업을 가져가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하려 합니다. 굿즈 만드는 일을 다룬 작고 얇은 책을 가지고 나갈 예정이에요. 그리고 나면 영화, 드라마, 공연 분야 작업이 2022년 가을과 겨울을 채울 것 같아요. 코로나 시기 동안 영화 굿즈의 산업적인 경향도 여러 번 바뀌었다고 느껴요. 몇 년 안에 영화 IP(지식재산권)를 활용한 부가 사업도 새로운 챕터로 넘어가지 않을까 생각하고, 그때에도 딴짓의 세상이 계속 영화 굿즈를 만들 수 있기를 바라요. 좋아하는 국내외 감독, 배우, 제작사가 자신의 프로젝트와 함께할 파트너로서 바로 떠올리는 스튜디오가 되고 싶습니다.
오세범 대표가 꼽은 ‘소개하고 싶은 작업 5’
<녹색 광선>
도서, 2017
“스튜디오에서 출간한 책 중에 가장 큰 규모의 프로젝트. 원서가 오래되기도 했고, 제작비가 높기 때문에 판매가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리스크가 있었지만 ‘이 책을 읽고 싶다’는 이유로 선택했어요. 결과적으로 출판사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 되었고요. 외부 디자이너에게 작업을 의뢰한 첫 번째 작업이기도 했는데, 최지웅 디자이너의 의도를 100% 살리기 위해 책에서 당연시 여겨지는 많은 요소를 과감히 생략한 결과 더 많은 사랑을 받는 것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패터슨> 블루레이 굿즈
시 노트, 아트 카드, 핀 배지
“플레인아카이브로부터 함께 작업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고 너무나 짜릿했습니다. 학교를 졸업할 무렵, 동기와 앞으로의 일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스튜디오를 계속할 수도 있고 좋은 회사에 들어갈 수도 있지. 플레인아카이브라는 데 알아? 그런 곳에서 일하면 정말 좋겠지.’라고 말했을 만큼 좋아하는 회사였거든요. 여러 작업을 플레인아카이브와 함께했고 지금도 진행 중이지만, 처음으로 함께한 <패터슨> 블루레이 굿즈 작업은 더욱 각별하게 남아있습니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배지 4종
“아마도 딴짓의 세상이 영화 배지 제작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작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영화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잘하고 싶다는 마음가짐이 남달랐어요. 이 작품에 쏟아지는 영화 팬들의 기대치도 높았고요. 굿즈가 아쉽다는 반응이 있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좋은 피드백을 많이 받았습니다. 특히 셀린 시아마(Céline Sciamma) 감독과 영화 속 그림을 그린 엘렌 델마르(Hélène Delmaire) 작가의 반응에 행복했어요.”
<보건교사 안은영> 굿즈
젤리 콜라주 캔들, 패브릭 파우치, 마스크 스트랩, 마그넷 등
“넷플릭스와 함께한 첫 번째 작업. ‘젤리’라는 안은영의 매력적인 세계관을 어떻게 어필할까 고민하다가, 오래전부터 작업을 좋아해 팔로우하고 있었던 에어슬랜드(airsland)와 협업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젤리 몬스터를 쌓아 만들 수 있는 캔들이 탄생했어요. 기성품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몰드부터 전부 새롭게 기획해 맞춤 제작하는 큰 도전이었어요(에어슬랜드에서 정말 수고해주셨습니다). 작업을 끝내면 좋았던 점보다 아쉬운 점들을 곱씹는 편인데, <보건교사 안은영> 작업은 개인적으로도 만족스러워 행복한 기억으로 자주 떠올립니다.”
<듄> 배지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와 함께 만든 배지. 글로벌 영화사가 신작 IP를 어떻게 관리하고 승인하는지 배우는 작업이었어요. 많은 배지를 만들어왔는데도, 이전의 작업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을 했습니다. 생산량이 무척 많았어요. 스튜디오가 지금까지 만든 배지 중 단일 디자인으로는 가장 많은 수량을 제작해야 했거든요. 이 생산량을 고려하면 단순한 배경지를 채택해 외주로 포장하는 방식이 옳았을 거예요. 그런데 영화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제작 사양과 디테일을 신나게 더해버렸습니다. 최종품의 퀄리티를 위해 모든 배지를 하나씩 검수하고 포장하며 고생한 시간도 잊지 못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