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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인
2022-08-31

마음껏 와인을 누리기 위한 태도, 캅셀

와인 리브랜딩 & 큐레이션 프로젝트

와인을 ‘좋아한다’는 말은 과연 와인에 대해 ‘잘 안다’는 뜻일까? 갑자기 뚱딴지같은 소리냐 한다면 다소 민망하지만 꽤 오래도록 가져온 고민이다. 실제로 와인을 좋아하냐는 물음을 종종 받는데, 그럴 때마다 쭈뼛대며 “와인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좋아한다”라고 말하곤 한다. 상대방은 그저 ‘호’를 물었을 뿐인데 말이다. 다행히도 ‘캅셀(Kapsel)’을 만난 후로는 당당하게 와인 애호가임을 밝힐 수 있게 됐다. 아무렴 어떤가. 와인을 즐기는 방식은 전 세계 약 80억 인구만큼이나 제각각인 것을.

캅셀 로고 ⓒ Kapsel
캅셀의 세 번째 컬렉션 ‘678’ ⓒ Kapsel

“와인은 평생 마셔도 다 못 먹고 죽을 수밖에 없다. 와인마다 가지고 있는 스토리와 특성이 우리에게는 캔버스처럼 느껴진다.” 와인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소개해 보고 싶다는 와인 리브랜딩 & 큐레이션 프로젝트 ‘캅셀’과의 대화는 와인 애호가의 ‘입덕’을 부르기에 충분했다. 좋아하는 것을 나름의 방식으로 소개하며 ‘창작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캅셀’을 만났다.

Interview with 캅셀

재진(기획), 대환(기획/에디팅), 철민(사진), 재순(와인 셀렉팅), 경환(디자인) *공통 답변

와인 리브랜딩 & 큐레이션 프로젝트라니 흥미롭다. ‘캅셀(Kapsel)’의 시작점은 무엇이었나.

멤버 모두가 메인 잡(job) 외에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찾고 있었다. 기획 초반, 재순이 합류하기 이전에는 멤버 모두가 가구 관련 일과 브랜딩 및 마케팅을 하다 보니 가구 제작 관련 프로젝트를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초기 투자 비용이 만만치 않더라. 이후 우연히 와인 소믈리에 자격증을 지닌 재순이 합류하게 됐다. 마침 이 친구도 사이드 프로젝트를 도모하던 차라 우리와 니즈가 맞았다.

왜 ‘리브랜딩’과 ‘큐레이션’이어야 했는지도 궁금한데.

와인을 소개하는 기존 사업자 또는 플랫폼의 방식이 어렵게 느껴졌다. 와인을 좋아하지만 어떻게 즐겨야 할지 잘 모르는 이들에게 우리의 방식대로 와인을 조금씩 묶어 소개하면 좋을 것 같았다. 어떤 방식으로 와인을 제안할까 고민하던 중 패션 산업에서 아이템을 작은 단위로 드롭하는 ‘캡슐 컬렉션(capsule collection)’이 떠올랐다. 테마를 정해 그에 맞는 와인 3~5종을 큐레이션 하고 드롭하는 방식이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과도 알맞아 보였다. ‘캡슐(capsule)’이라는 뜻을 지닌 독일어 ‘캅셀(kapsel)’이 프로젝트명이 된 것도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정규 컬렉션에 비해 더 컨셉추얼하고 빠른 캡슐 컬렉션처럼 캅셀도 다양한 분야에서 특정한 경계 없이 우리만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캅셀의 첫 번째 컬렉션 ‘JOB’. 좌측부터 디자이너, 마케터, 목수 ⓒ Kapsel
캅셀의 첫 번째 컬렉션 ‘JOB’. 좌측부터 에디터, 세일즈 퍼슨 ⓒ Kapsel

캅셀의 첫 번째 컬렉션은 ‘JOB’이다. 와인을 직업에 빗대어 소개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

‘JOB’ 컬렉션은 우리가 처음 모였을 당시 기획한 컬렉션이다. 컬렉션을 구성하는 ‘디자이너(Designer)’, ‘마케터(Marketer)’, ‘목수(Moksu)’, ‘에디터(Editor)’, ‘세일즈 퍼슨(Salesperson)’은 실제 캅셀 멤버들이 거쳐온 직업들이다. 매번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이더라도 브랜드가 가진 뿌리를 잃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한데,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뿌리 즉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지닌 멤버들의 직업을 녹여내고 싶었다. 와인을 신선한 방식으로 소개하는 프로젝트가 보여줄 만한 부분들을 끊임없이 고민했던 것 같다.

와인과 함께 제공되는 큐레이션 노트에는 큐레이션 기준, 와인과 잘 어울리는 페어링, 와인의 히든 테이스트 등 다양한 포인트가 담겨 있다. ⓒ Kapsel

기획 코멘트를 담은 ‘큐레이션 노트’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다고 들었다.

큐레이션 노트는 와인을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장치다. 우리가 컬렉션 콘셉트를 기획하며 나눈 이야기를 비롯해 와인을 표현한 문구 등을 종이 한 장에 담아낸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산뜻하고 높은 산미와 시트러스 계열의 과실 향이 인상적인 화이트 와인, 카탈리나 소비뇽블랑은 에디터로 리브랜딩 했습니다. 마감과의 싸움을 마친 후, 늦여름 해가 잘 드는 테라스에서 이 와인을 마시는 모습을 그려보았습니다.” 비슷한 직업군에 종사하는 지인들이 이 노트를 읽고 정말 그런 느낌을 받았다며 후기를 들려줬다. ‘JOB’ 자체가 일상적인 소재이다 보니 공감대가 잘 형성된 것 같다.

캅셀의 두 번째 컬렉션 ‘Syndrome’. 상단부터 상사병, 향수병, 번아웃 ⓒ Kapsel

두 번째 컬렉션 ‘Syndrome’을 기획할 때는 다소 조심스러웠다고.

실제로 누군가가 겪고 있는 병을 와인으로 표현한다면 가볍고 배려 없는 접근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현대인의 처방전’이라는 느낌으로 컬렉션을 기획했다. ‘상사병(Lovesickness)’, ‘향수병(Nostalgia)’, ‘번아웃(Burn-out)’ 등 우리가 겪었거나, 겪고 있거나, 앞으로 겪을 수 있는 증상들에 일종의 캅셀 표 처방전을 준비한 셈이다. 

이쯤 되니 궁금하다. 컬렉션 콘셉트와 와인의 맛을 연결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와인을 고르나.

컬렉션 콘셉트가 정해지면 내부적으로 시음회를 가지고 있다. 콘셉트를 풀어내는 텍스트를 재순에게 건네면 그 친구가 텍스트에 맞는 몇 가지 옵션들을 골라온다. 그럼 함께 모여 선별된 와인을 마시면서 의도했던 심상이 느껴지는지 점검하고 콘셉트와 와인을 연결 짓는다.

캅셀은 내부 시음회를 통해 컬렉션 기획 의도와 선별한 와인의 합을 맞춰본다. ⓒ Kimjaeha

형제와 친구로 멤버가 구성됐기 때문인지 의견을 자유롭게 나누는 분위기인 것 같다.

한 번 모이면 다음 컬렉션에 대한 아이디어도 무궁무진하다. 기획 프로세스도 비교적 자유롭다. 앞서 소개한 두 번째 컬렉션 ‘Syndrome’ 같은 경우는 ‘처방전’이라는 키워드가 먼저 나왔고, 여기에 살을 붙여가며 뾰족해졌다. 가장 최근 출시한 세 번째 컬렉션 ‘678’은 반대라고 볼 수 있다. ‘Syndrome’ 컬렉션이 레드 와인으로 구성됐기 때문에 ‘678’ 컬렉션은 여름에 마시기 좋은 화이트 와인으로 채우고 싶었다. 프로덕트를 먼저 정하고 콘셉트를 이후에 구상했다. 정해진 틀에 맞춰 진행하기 보다 여러 의견을 넓게 뿌리고 조금씩 좁혀가는 과정을 선호한다.

캅셀의 세 번째 컬렉션 ‘678’. 상단부터 6, 7, 8. ⓒ Kapsel

세 번째 컬렉션 ‘678’의 프리오더가 종료됐다. 컬렉션 중 ‘7’을 직접 맛보니 여름의 절정을 지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번 컬렉션의 주제는 여름이었다.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보고 즐길 수 있는, 가장 대중적인 주제를 떠올렸다.‘678’은 초여름부터 한여름, 늦여름에 이르기까지 여름의 달 3개를 뜻한다. 각 와인에서 느껴지는 심상을 모두 다르게 설정했다. 특히 ‘6’에서 ‘8’로 갈수록 라벨 속 땀방울이 하나씩 늘어나는 게 재미있는 부분이다. 

그런 숨겨진 포인트가 있다니 미처 몰랐다. 컬렉션과 함께 공개한 플레이리스트 역시 흥미로웠는데.

와인과 음악은 오히려 떼어 생각하기가 어려운 조합이지 않나. 그렇다고 우리가 와인을 마시는 장소나 와인과 페어링할 음식까지 제안하긴 어려울 것 같고, 함께 즐기면 좋을 음악을 제안하고 싶었다. 플레이리스트는 가상실재서점 ‘모이(moi)’의 콘텐츠 마케터이자 기획자인 예은님이 제작했다. ‘모이’의 오프라인 행사나 전시에서도 직접 플레이리스트를 제작하는 방식이 신선해서 눈여겨보고 있다가 ‘678’ 컬렉션을 위한 플레이리스트를 부탁했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함께 와인을 마시고 이야기를 많이 나눠서 훌륭한 조합이 완성됐다. 

첫 번째 컬렉션부터 세 번째 컬렉션까지 라벨링 방식이 모두 다른 점이 독특하다. 

첫 번째 컬렉션은 와인의 기존 라벨을 떼어낸 후 우리가 만든 라벨을 새로 붙이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어느 정도 예상이 가겠지만 라벨을 떼어낼 때 정말 많은 시간과 노동력이 필요하다.(웃음) 기존 와인을 블라인드 상태로 만드는 게 큐레이션의 취지에 적합한가 고민도 됐다.

두 번째 컬렉션 ‘Syndrome’ 라벨 디자인 ⓒ Kapsel
세 번째 컬렉션 ‘678’ 라벨은 점선을 따라 뜯을 수 있도록 제작했다. ⓒ Kapsel

그래서 두 번째 컬렉션은 띠지를 두른 책처럼 진행해 봤다. 라벨을 조금 더 길게 제작해 끈으로 묶었는데 최선이라고 생각되진 않더라. 라벨을 수집하고 싶다는 고객의 의견을 반영해 세 번째 컬렉션 라벨은 점선을 따라 뜯어 보관할 수 있는 형태로 제작했다.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빠르게 반영하려고 했던 것 같다.

크게는 컬렉션 콘셉트부터 작게는 라벨링 방식까지. 캅셀의 모토가 ‘항상 바뀌는 것’이라는 점이 느껴진다. 이를 브랜딩으로 시각화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는지.

캅셀이라는 브랜드를 만드는 과정과 첫 번째 컬렉션을 만드는 과정을 동시에 진행하다 보니 경환에게는 어려웠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두 번째 컬렉션을 기획하며 브랜드 느낌을 어디까지 유지할 것인지 고민이 많았다. 아무래도 첫 번째 컬렉션에서 브랜드 색이 함께 인지되는 경우가 많아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했다.

 

— 경환 사실 크게 어려운 부분은 없었다. 내 취향만 반영하면 캅셀의 정체성과 동떨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아 브랜딩에 더 무게를 두긴 했지만 그렇다고 내 취향과 완전히 다르지도 않다. 핸드 드로잉과 다소 거친 느낌이 취향이라 브랜딩 면면에 비슷한 색이 묻어난 듯하다. 내추럴 와인 라벨을 보면 컨벤션 와인 라벨에 비해 특이하고 상투적이지 않은 디자인이 많다. 캅셀도 개성 강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리고 멤버들에게 고마운 건 디자인 시안을 보여줄 때 다들 흡족해 한다는 것.

 

— 대환 함께 의견을 나누고 발전시켜가는 과정을 지속하면 앞으로 어떤 디자인이 나올지 머리속에 그려진다. 세 번째 컬렉션을 막 드롭한 거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지향하는 바와 결과물에 대한 기준치가 모이는 느낌이 들었다. 조직에 속한 디자이너는 모두의 취향을 맞추기 위해 본래 의도가 깎여 나가는 경험을 하기 쉬운데, 경환은 본인이 하고싶은 바를 끝까지 완수하게끔 해주고 싶었다. 대신 콘셉트를 디자인적으로 풀기 쉽도록 기획 부분을 탄탄히 하는 게 다른 멤버들의 몫이다.

ⓒ Kapsel

네 번째 컬렉션을 기다리는 이들이 많을 것 같은데.

여기서 충격 고백을 해야 할 것 같다. 잠시 휴식기를 가질 예정이다. 아주 오래 걸리진 않을 것 같고 두 달 이내의 기간을 예상하고 있다. 실제로 와인 숍의 기능과 형태를 갖추고 싶어서 현재 작업실로 이용 중인 공간을 프리오더 없이 상시 픽업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하려 한다. 굿즈처럼 조금 더 재미를 줄 수 있는 콘텐츠도 필요할 것 같고. 아이디어가 넘쳐나는 중이라 절대 소재 고갈 때문은 아닌 점 기억해 달라.(웃음)

숍을 열게 된다면 지난 컬렉션도 만날 수 있을까. 

그렇다. 아직 자세한 이야기는 할 수 없지만 곧 반가운 소식을 전할 수 있을 것 같다.

ⓒ Kapsel

캅셀을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면.

— 재진 캡슐 안 무수한 가능성

대환 와인을 큐레이션 하는 새로운 시선

철민 캅셀은 아직 목이 마르다.

재순 시음회 하고 싶네요.

경환 와인이지만 와인 같지 않은 와인

앞으로 캅셀이 내디딜 걸음이 궁금하다.

누군가 소개해 준 와인이 불만족스러웠던 적은 없는 것 같다. 미각이나 후각 같은 감각의 영역에 있어서는 ‘어떻게’ 소개해 주는지가 중요함을 느낀다. 주관적인 경험과 만족의 문제임에도 마치 공식이 있는 것처럼 답을 내려는 방식은 우리와 맞지 않다. 쉽게 구할 수 있으면서 흥미로운 디자인과 스토리를 입은 와인으로 만족감을 주고 싶다. 와인 외에도 주체적인 디렉팅으로 다양한 시도를 한다면 더 넓은 영역으로 뻗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캅셀이 더 많은 이들에게 닿을 날이 기다려진다.

캅셀의 PICK!

정답 없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와인

재진

‘6’으로 리브랜딩된 ‘떼레 디 까린 모스카토(Terre di Carin Moscato)’를 추천한다. 부드러운 탄산과 자연스러운 당도에 깔끔한 목 넘김까지. 가볍게 마시기 좋은 와인이다.

대환

‘번아웃(Burn-out)’으로 리브랜딩된 ‘아센시오 까르셀렌 100X100 쉬라(Asensio Carcelen, 100X100 Syrah)’를 권하고 싶다. 콘셉트도 재미있고, 훌륭한 디자인을 갖춘 새로운 와인이다. 캅셀이 큐레이션한 와인을 좋아하는 이들의 취향을 잘 맞춘 사례라고 생각한다.

철민

‘목수(Moksu)’로 소개한 ‘타우니 포트(Tawny Port)’는 도수가 꽤 높은 편이지만 끝 맛이 달아 계속 마시게 되는 위험한(?) 와인이다. 투박하고 강렬하지만 달달하고 섬세한 우리와 많이 닮은 것 같아 추천한다. 숙취는….

재순

와인을 어느 정도 즐기고 있다면 엔트리급 샴페인이 어떨까. 라벨에 ‘샴페인’이 표기돼 있으면서 적당한 가격대로 분위기 내기에 훌륭하다. 저렴한 가격대의 스파클링 와인과는 또다른 차원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경환

내추럴 화이트 와인 ‘술로그라피(Soulographie)’가 좋겠다. 개인적으로 술이 잘 받지 않는 체질인데 낮은 도수에 산도가 높아 만족스러웠다. 어떤 음식과 곁들여도 잘 어울리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피자와 함께 먹어보길 추천한다. 아, 라벨도 아주 예쁘다.

에디터
CURATED BY 김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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