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근한 바람과 함께 꽃비가 내리는 4월, 생명의 기운이 햇볕과 뒤섞여 차곡차곡 쌓이다 보니 어느새 줄기마다 꽃망울이 탐스럽게 맺혔다. 이 견고하고도 따스한 생명력의 짜임에 놀랄 일 가득한 봄날, 서울 서촌에서 계절을 닮은 안온한 작업물이 편안한 전시 공간 속에 움텄다.
쌓을 온 [蘊], 맺을 결 [結]. ‘온결’이라는 제목의 전시는 최보경 작가가 운영하는 태피스트리 위빙 공간 ‘서유작업실’과 함께하는 ‘메이크폴리오(makefolio)’의 7번째 전시로, 서촌에 위치한 메이크폴리오의 오프라인 플랫폼 ‘메이크폴리오 도감’에서 펼쳐지고 있다. 메이크폴리오는 지속 가능한 가치와 이야기를 담은 숙소를 큐레이션하는 파인 스테이(fine stay) 예약 플랫폼 ‘스테이폴리오(stayfolio)’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공간에서 경험하는 머무름 이상의 가치를 일상으로 가져와 만끽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작가와 브랜드 작품을 소개하는 편집숍과 전시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4월을 맞아 메이크폴리오 도감과 함께한 서유작업실은 산뜻하고 자연스러운 감각을 품은 직물과 다양한 소재를 활용해 짜낸 위빙 작업으로 소통하는 공간이다. 태피스트리라고도 하는 이 작업은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된 세로실(날실)과 가로실(씨실)을 교차해가며 직물을 짜는 공예로, 실의 색, 두깨, 질감 등에 따라 천차만별의 모습을 연출할 수 있고 한 올 한 올 정성스럽게 쌓아 올리는 과정에서 겹겹이 쌓이는 시간을 느낄 수 있어 매력적인 작업이다. 최보경 작가가 주목하는 것은 화려한 테크닉보다 각기 다른 재료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아름다움과, 실을 쌓아 올리는 과정에서 발견하게 되는 우연한 짜임의 순간이다. 살랑살랑 기분 좋게 유영하는 손길에 쌓이고 맺힌 모든 작업물엔 잔잔하고도 경이로운 기쁨이 촘촘히 새겨져 있다. 마치 자연이 본연의 속도로 몸을 포개며 자라다가 반가운 싹을 터뜨리는 4월의 지금 이 순간처럼!
Interview with 최보경 작가
서유작업실
서유작업실의 ‘서유‘는 지향하는 어감을 가진 단어를 조합한 단어라고 들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공간인가요?
저는 갤러리, 책방, 복합문화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는 동시에 차분함 속에서 휴식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인데요. 저의 작업실도 누군가에게 집중과 배움이 있는 공간이자 휴식이 함께하는 공간이 되길 바랐어요. 작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음악이 늘 흐르고 공간 한 켠에는 방문하는 분들이 자유롭게 보실 수 있는 인테리어/예술 서적들이 쌓여 있어요. 서유작업실로 활동하게 된 기간은 약 1년 4개월 정도 되었는데, 꾸준히 취향이 가득 담긴 공간을 만들어 나가고 싶습니다.
작업물에서 차분하고 자연이 깃든 멋이 느껴져요. 따뜻한 색감 덕분인지 왠지 모를 그리운 느낌도 들고요. 이러한 분위기를 쌓게 된 건 언제부터였나요?
대학 졸업 후 서울에서 디자이너로 직장 생활을 할 때, 주말에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석촌호수, 선유도공원 등 자연이 함께하는 장소에서 산책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특히 노을빛으로 물든 아름다운 한강을 영상으로 남기기도 하고, 공원을 걸으며 나뭇잎 사이로 들이치는 빛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을 즐겼는데요. 이때부터 일상 속에 깃든 자연스러운 것들을 좋아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이러한 취향이 지금의 작업에 자연스럽게 영향을 주고 있어요.
실 외에도 마른 잎 등 자연을 품은 다양한 재료를 탐구하고 있어요. 새로 도전하고 싶은 재료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최근 흥미를 자극하는 재료는 한지입니다. 서울 북촌에 위치한 한지문화산업센터를 방문했을 때, 다채로운 색으로 가득 채워진 다양한 종류의 한지들을 보고 매료되었어요. 다양한 질감과 결을 가진 한지를 가까이 들여다보면서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닮고 싶기도 하고, 작업의 재료로 사용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학부 시절 전공 수업으로 처음 위빙을 접했다고요. 위빙을 처음 다루게 되었을 때를 기억하나요?
3학년 전공 수업에서 제 키보다 큰 위빙 틀에 실을 걸어 직물을 짠 적이 있어요. 자유 주제로 큰 크기의 태피스트리 한 점을 완성하는 것이 과제였는데요. 직접 찍은 꽃 사진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싶어 얇은 실을 사용한 탓에 정성을 쏟은 만큼 고생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전공실에서 친구들과 함께 웃고 떠들며 각자의 작업에 집중했던 시간,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갔던 그때가 여전히 기억에 남네요.
지금의 서유작업실을 있게 한, 좋아하는 것을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여행을 가장 좋아하고, 많은 자극과 영감을 얻어요. 마지막 여행지가 베를린인데, 두 번째 방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오래 지내고 싶을 정도로 매력을 느낀 도시예요. 지하철 역마다 내부 타일 색이 다른데, 그 점이 흥미로워 찍어 둔 사진들도 있고요. 특히 여행 중 오래된 책방을 구경하는 걸 좋아하는데, 누군가의 사적인 취향이 가득 담긴 공간들을 보며 저만의 작업실을 꿈꿨던 것 같아요.
발리의 ‘누사페니다‘를 여행하며 기록한 사진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작업도 있었어요. 이렇듯 작품으로 또 만들어 보고 싶은, 가고 싶은 여행지를 한 곳 꼽자면 어디인가요?
이탈리아 남부 해안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 동화 속 풍경처럼 아름다워요. 골목을 다니며 그곳만의 색을 직접 감상하고 사진으로도 많이 기록해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행은 가기 전 기대했던 것보다 그 이상의 것들을 얻게 되는 것 같은데, 이탈리아도 아직 가본 적 없기에 어떠한 요소들이 영감을 가져다 줄지 기대가 됩니다.
실을 한 올 한 올 묵묵히 엮어나가면서 머리 속에 맴돌고 있을 생각들이 궁금해요!
손을 반복적으로 움직이다 보면 머릿속 잡다한 생각들이 비워져요. 작업에 임하면서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은 ‘아름다움과 서유스러움’인데요, 항상 시각적으로 아름다운지 그리고 새로움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클래스를 운영할 때는 수강생의 입장이 되어 지금 이 작업이 어렵거나 지겹지 않을까… 걱정을 하기도 해요(웃음).
하루하루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는 대신, 위빙으로 기록한다는 이야기가 궁금해요.
완성된 위빙 작업을 보고 있자면 저의 일상을 담은 기록물처럼 느껴져요. 그 중에서도 그날의 기분이 가장 잘 기억나는 것 같습니다. 고민이 많고 어려웠던 작업은 그 고생스러움이 물씬 느껴지고, 쉽고 유독 마음에 드는 작업엔 기분 좋은 여운이 남아있거든요.
일상 속에도 위빙 작품처럼 따뜻한 시간들이 녹아있을 것 같아요. 작가님만의 소소한 루틴 몇 가지를 소개한다면?
저만의 소소한 루틴은 자기 전 차 마시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차를 마시면서 평소 사 놓은 인테리어 잡지를 보는 편인데, 잡지에 소개된 예쁜 공간들을 보다 보면 힐링이 돼요. 이외에 꾸준하게 이어나가고 싶은 루틴은 전시를 관람하고 블로그에 사진으로 기록하는 거예요. 좋았던 전시 기록하면서 다시 한 번 감상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고, 쌓여가는 포스팅을 보며 성취감도 얻어요.
작업을 할 때 내 공간에 함께하는 물건들과 곁에 두고 싶은 물건들과 어울리는 색감을 고른다고요. 작가님이 애정하는 ‘내 공간에 함께하는 물건’과 ‘곁에 두고 싶은 물건’은 무엇인가요?
‘내 공간에 함께하는 물건’은 여행지 플리마켓에서 구매한 귀여운 사이드 테이블이고, 곁에 두고 싶은 물건은 즐겨 보는 인테리어 잡지예요.
공간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국내에서 작가님이 특별하게 애정하는 공간을 꼽자면요?
갈 때마다 좋고 계속해서 생각나는 공간은 PKM 갤러리(서울), 의정부 미술 도서관(경기), 오가닉모가 카페(대구), 운곡서원(경주)입니다.
대구에서 작업하고 있는데, 수도권과는 또 다른 이야기와 매력을 품은 도시에서 꾸준히 작업을 해 온다는 건 어떤가요?
서울에 있었을 때 갤러리, 숍, 복합문화공간 등 공간에서 보낸 경험들이 정말 좋았는데요. 아직까지 대구는 다양한 공예를 접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한 것 같아요. 대구에서 보낸 시간이 긴 만큼 애정도 큰데, 공예/예술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서유작업실을 통해 위빙 체험도 하고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습니다.
태피스트리는 씨실과 날실을 연마하듯 반복해서 쌓아 올리는 작업이에요. 일상 속에서 또는 창작자로서 서로 끈끈하게 엮으며 쌓아 가고자 하는 ‘씨실‘과 ‘날실‘은 각각 무엇인가요?
위빙 작업을 할 때에도 씨실과 날실이 잘 어우러져야 그 조화로움이 빛을 발하는데요. 이 작업을 꾸준히 이어나가기 위해, 일상에서도 ‘일’과 ‘쉼’의 시간을 조화롭고 균형 있게 맞추어 나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위빙에 점차 관심 갖는 분들이 늘어가고 있어요. 초심자도 자신의 개성을 살려 작품을 만들어 볼 수 있는 팁을 말씀해 주신다면요?
평소 좋아하는 것들에 집중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좋았던 여행지나 공간, 사물들이 갖고 있는 고유한 색과 분위기를 작업에 접목시킬 수도 있고요. 국내/외 다른 분야의 개성 있는 작가들의 작업들을 보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서유작업실의 올해 꿈이나 새로운 소식이 있다면? 앞으로 도전하고 픈 방향도 궁금합니다.
올해의 목표는 작업실을 이사하는 거예요. 지금은 약 6평 정도의 아담한 크기인데, 더 넓은 공간에서 다양한 작업들을 기획해 보고자 합니다. 또한 공간 한 켠에는 책장을 마련해 예술 서적들을 더 많이 쌓아 지금의 작업실과는 또다른 분위기로 꾸며보고 싶어요.
또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방향은 ‘사진’입니다. 사진도 직물처럼 평면적인 결과물이지만 시간과 경험이 만나 특유의 감성과 분위기를 전달하는 점이 위빙과 닮았다고 생각해요. 위빙과 사진이 만났을 때의 시너지를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