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7

우고 론디노네가 작품에 담은 자연의 의미

삶의 순환에 대해 이야기하다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소음과 잠시 멀어지는 곳. 자연에 둘러싸여 오롯이 작품에 집중할 수 있는 뮤지엄 산에서 일기 쓰듯 살아있는 우주를 기록하는 작가, 우고 론디노네의 《BURN TO SHINE》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봄에 시작해 가을에 막을 내리는 이 전시를 요모조모 살펴볼까?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우고 론디노네 ⓒdesignpress

이번 전시는 작가의 국내 최대 규모 전시로 뮤지엄 산 곳곳에서 그의 작품 40여 점을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안내된 길을 따라 들어가면 야외 스톤가든에 전시된 우고 론디노네의 대표작 중 하나인 <수녀와 수도승> 여섯 점을 마주하게 된다. 3m 높이의 돌로 만들어진 해당 작품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앞을 보고 있는 건지, 어느 방향을 향해 서 있는지 모호한 돌덩이를 바라보고 있으면 한 인간이 얼굴을 감춘 채 세계를 응시하는 듯한 고독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 고독감은 백남준관에 설치된 높이 4m의 <노란색과 빨간색 수도승>으로 이어진다. ‘자연’이라는 거대한 존재를 작품에 담아내는 우고 론디노네는 8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자연과 조화가 잘 어우러진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에서 작품을 전시하는 것 자체가 도전”이라는 말을 전하며 작품과 건축이 잘 융화되길 바라는 마음을 비추었다.

스톤가든에 놓인 〈수녀와 수도승〉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작가가 뮤지엄 산 내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라고 꼽은 백남준관은 벽면이 돌로 되어 있다.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이 함께 존재하는 이 관에 우두커니 서있는 <노란색과 빨간색 수도승>은 천장에 뚫린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을 받는다. 작가는 수도승이라는 인물을 “명상하는 사람의 상징”으로 보았다. 빨간 돌로 표현된 작품 속 수도승은 전시장에 난 창을 통해 자연과 관계를 형성한다. 작가는 이런 연결을 통해 인간이 자연에 어떻게 스며들어 있는지, 자연 속에 살고 있는 인간의 삶은 어떻게 지속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남긴다. 이 물음에 대해 그는 “우리가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은 결국 미래와 아이들이 아니겠는가?”라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백남준관에 들어선 〈노란색과 빨간색 수도승〉

아이들이 함께하는 미술관

우고 론디노네의 이런 생각은 미술관이 있는 원주 지역 3~12세 아이들 약 1,000명과 함께한 <너의 나이, 나의 나이, 그리고 태양의 나이>와 <너의 나이, 나의 나이, 그리고 달의 나이> 작품에도 담겨있다. 해당 작품이 걸린 전시장에는 우고 론디노네가 지향하는 미술관이라는 공간의 성질이 묻어난다. 그는 미술관이라는 공간이 “아이들이 올 때까지 마냥 기다리는 곳으로 남아서는 안 된다”며 “편하게 올 수 있고 이 작품처럼 과정에 함께할 수 있도록 조성되어야”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곧 미래라 생각하는 그는 해당 작품의 작업 과정 자체를 즐겼다.

〈너의 나이, 나의 나이, 그리고 태양의 나이〉, 〈너의 나이, 나의 나이, 그리고 달의 나이〉 외관
〈너의 나이, 나의 나이, 그리고 태양의 나이〉 내부

두 작품이 있는 각각의 전시장 앞에 서면 내부에 네 개의 벽으로 큐브 형태를 만든 구조를 만나게 된다. 허리를 숙여 밑으로 난 틈 사이로 들어가지 않으면 아이들의 작품을 볼 수 없는 독특한 구조다. <너의 나이, 나의 나이, 그리고 태양의 나이>에는 아이들이 그린 해 그림이 <너의 나이, 나의 나이, 그리고 달의 나이>에는 달 그림이 가득 차 있다. 작가는 아이들의 눈높이로 전시관을 만들고자 이런 구성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외부를 볼 수 없는 고립된 공간이지만 아이들의 해와 달 그림 속에 둘러싸여 자연을 느껴봐도 좋겠다. 전시 기간 내내 더 많은 아이들의 그림이 걸릴 예정이니 계속해서 증식하는 이 작품을 주목해 보는 건 어떨까.

빛을 품은 작품

〈시계〉 ⓒ헤이팝

다른 작품에서도 자연을 느낄 수 있다. 시침과 분침이 없는 작품 <시계>는 옆에 난 창으로 드리우는 빛을 받아 시간성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그 어떤 시간도 숫자로 보여주지 않지만, 빛만으로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창에다 색을 입혀, 이곳에 있으면 무지갯빛 안에 갇힌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작가는 이 공간에서 창은 밖을 보는 역할로써 존재하지 않고 창문에 비친 사람의 모습을 반사하는 역할을 한다고 전했다. 어찌 보면 새 창살에 갇혀 있는 듯한 고립감을 풍겨 쓸쓸한 잔상을 남기는 작품인 듯싶지만, 창에 들어오는 빛으로 딱딱했던 마음을 일렁이게 하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자아’와 ‘무지갯빛’ 그리고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없는 시계’라는 전시 공간 내의 키워드를 통해 작가의 삶과 성 지향성을 이곳에 담아내고자 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화이트 큐브관에 들어선 말과 〈매티턱〉

빛은 <에게해>, <황해>, <켈트해>와 같이 바다의 이름을 지닌 11마리의 말 작품에도 관통한다. 주조를 통해 만들어진 말은 투명한 수평선을 아로새긴 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는다. 실제로 말이 서로의 얼굴을 응시하지 않도록 구성하기 위해 이 공간 설치에만 약 5일이 소요되기도 했다고 뮤지엄 산 관계자는 전했다.

 

수평선을 기점으로 말의 상부와 하부 색감이 다른데 상부는 물과 공기가 맞닿는 곳으로, 빛이 퍼져나가는 환영을 만들어내며 밝은색을 띠고 하부는 빛이 통과하지 못해 어둡게 표현되었다. 작가는 말 안에 우리 삶에 필요한 네 가지 원소를 상징적으로 담았다고 설명했다. 수평선 사이 ‘물’과 ‘공기’, 말의 형태로 표현되어 이 요소를 담고 있는 ‘흙’, 주조 방식으로 만들어져 ‘불’의 성질까지 담아내며 작품은 자연의 의미를 다시금 환기한다. 말 작품이 있는 화이트 큐브관 벽면에는 해와 달 회화 작업인 <매티턱(mattituck)> 시리즈가 걸려있다. 작가는 팬데믹 기간 자신의 주요 작업 공간인 멘해튼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서 4개월간 머물렀다. <매티턱>은 그곳의 일몰과 월출을 보고 그린 작품이다. 단순한 방식의 작업을 선호하는 탓에 작품의 이름이 그림이 완성된 날짜로 정해지기도 했다. 작가는 이 그림에는 시간과 공간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작품 제목이 시간을 뜻하고 작품 이미지 자체로 공간을 그려내어, 작업물이 곧 자신의 일기가 된다고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매티턱> 시리즈에는 자아에 대한 성찰, 명상의 의미가 담겨있는 셈이다.

삶과 죽음이라는 순환

〈번 투 샤인〉

이번 개인전의 제목이기도 한 <번 투 샤인>은 영상 작품이다. 보름달이 뜨는 여름날 모로코 사막에서 찍은 이 작품은 모로코 태생 파리 안무가 ‘푸아드 부수프(Fouad Boussouf)’와 함께한 협업물이다. 영상에 등장하는 이들은 일몰과 일출을 기다리며 춤을 춘다. 일몰과 일출을 기다리는 것은 서로 맞물려 있어 결국 무한으로 반복된다. 일몰은 죽음을 일출은 삶을 상징한다. 작가는 이런 현상을 영상으로 담아 ‘순환’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유도한다. 원형의 모닥불과 불을 둘러싸고 있는 17명의 무용수, 무용수를 둘러싼 12명의 드러머까지 총 3개의 원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부분에 집중해 보자. 해가 지는 일몰의 순간에 시작되어 해가 뜨는 일출의 시각까지 이어지는 <번 투 샤인>. 어둠이 내린 전시장 벽면 가득 재생되는 작품을 통해 작가가 전하는 삶의 순환을 느껴보길.

김지민 인턴 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뮤지엄 산

프로젝트
〈BURN TO SHINE〉
장소
뮤지엄 산
주소
강원 원주시 지정면 오크밸리2길 260 뮤지엄산
일자
2024.04.06 - 2024.09.18
시간
화요일 - 일요일 10:00 - 18:00

*매표 및 입장 마감 | 17:00
*매주 월요일 휴관
주최
뮤지엄 산
주관
뮤지엄 산
참여작가
우고 론디노네(Ugo Rondinone)
Art
헤이팝
공간 큐레이션 플랫폼, 헤이팝은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과 그 공간을 채우는 콘텐츠와 브랜드에 주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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