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유튜브가 레드 오션을 맞이하기 전, 4분가량의 영상 하나가 업로드된다. 부서진 벽돌을 초록색 필라멘트로 채우는 모습이다. 현란한 편집 기술이 들어간 것도, 근사한 풍경을 찍은 것도 아니다. 단지 3D 펜으로 낡은 벽돌을 수리했을 뿐. 놀랍게도 이 영상은 현재 조회수 3000만 회가 넘는다. (2024.04.03 기준) 이를 기점으로 국내 시청자뿐만 아니라 해외 시청자들이 유입되며 사나고는 빠르게 성장했다. 10일이 채 안되는 기간 동안 구독자 수가 50만 명에서 100만 명이 되는 놀라운 수치를 달성하며 말이다.
3D 펜은 본래 3D 프린터가 오작동해 깨진 결과물을 접붙일 목적으로 사용하던 툴이다. 3D 프린터는 재료를 녹인 뒤 노즐로 겹겹이 면을 쌓으며 물건을 완성하는데, 3D 펜으로 작품을 제작하려면 기계와 동일한 과정을 사람이 직접 수작업으로 진행해야 한다. 이 과정은 상당한 노력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용어로 보는 IT 3D 펜’ 참고
사나고는 3D 펜을 사용해 작품을 만든다. 그의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움직이고, 빛이 나며 제각각 쓰임이 있다는 것이다. <톰과 제리>에 등장하는 ‘제리’는 휴대폰 무선 충전기로, 마블 코믹스 <토르> 영화 속 ‘묠니르’는 전기 파리채로 쓰인다. 포르쉐를 모티프로 한 장난감 스포츠카는 도보를 빠르게 내달린다. 이러한 작품은 수십 일에 걸쳐 만들어지고, 그 과정을 기록한 제작기는 15분 내외 길이로 압축되어 유튜브에 업로드된다.
사나고는 2020년 카페를 오픈한 데 이어 2020년 작년 10월, ‘사나고 워크룸’을 대중에게 선보였다. 같은 해 〈SANAGO SITE〉 팝업스토어를 운영한 후 석 달만이다. 만들기를 좋아하고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이들이라면 귀 기울일 소식일 터. 가오픈을 끝마치고 안정기를 찾아가는 공간에 에디터가 직접 방문해 그의 작업방식, 운영하고 있는 공간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Interview with 사나고
3D 펜 아티스트 사나고(권원진)
– 언제 처음 3D 펜을 접하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대학 시절 전공이 예술문화였어요. 원시 미술부터 현대 미술까지 전반적인 미술사와 전시 기획을 함께 배웠죠. 큐레이터를 목표로 하는 전공이라 다양한 미술 지식을 많이 접해야 했는데요. 평소 만들기에도 관심이 많다 보니 자연스레 3D 펜을 알게 되었고 구매하게 됐어요.
– 3D 펜 아티스트로서 이름을 알리기 전에 종합 게임 스트리머 ‘우왁굳’의 팬으로 유명했어요.
네 맞아요. 대학생 때는 학교 수업을 듣는 것 외엔 거의 집에만 있었어요. 대외 활동 열심히 하는 친구들을 보면 ‘어떻게 저렇게 열심히 하지’하며 부러워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집에만 혼자 있으니 계속 가라앉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걸 이겨내려고 보기 시작한 게 우왁굳 님 방송이에요. 방송을 시청하면서 관심 끌려고 노력도 많이 했죠. 제가 잘하는 것 중 하나가 영상 편집이어서 유쾌한 팬 영상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팬들 사이에서 먼저 이름을 알렸어요.
원래 주목받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라 유튜브를 시작할 생각은 없었는데요. 우왁굳 님이 연말마다 팬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연말 공모전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반응이 좋더라고요. 3D펜이라는 것 자체를 신기해 하는 것 같았어요. 그 당시엔 처음 보는 분들도 많았을 거예요. 그때 가능성을 봤죠. 3D펜으로 작업하는 영상을 올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2018년 1월, 그렇게 처음 유튜브를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당시 제작 중이었던 치이카와 캐릭터.
발행일 기준 인기 급상승 동영상 40위에 안착했다.
– 10일이 채 안되는 기간 동안 구독자 수가 50만 명에서 100만 명까지 오르더라고요. 당시에는 100만 명의 구독자를 가진 유튜버가 몇 안 됐던 때라 더 신기했어요.
초기에는 우왁굳 님의 팬 분들이 많이 봐주셔서 팬 콘텐츠를 주로 제작했는데 구독자 수 3만 명을 기점으로 제가 만들고 싶은 작품을 더 많이 만들었어요. 그 뒤로 쭉쭉 성장하더라고요. 당시 국내에서 제일 빨랐던 걸로 알아요.
– 이미지를 구상하고 만드는 데 많이 능숙해졌을 것 같은데요. 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인상적이에요.
작품 하나를 끝내면 3일 정도 쉬어요. 쉬는 동안 다음 작품을 고민하는데 어떤 것을 만들지 떠오르지 않을 땐 일주일도 생각하는 것 같아요. 평소 좋아했던 것을 제작하기도 하지만 최근 이슈가 되는 것들을 주로 만들죠. 지금은 요즘 핫한 캐릭터 치이카와를 만들고 있어요.
– 유튜브 영상 업로드 주기가 1개월 정도 돼요. 업로드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나요?
정해진 방식은 없어요. 업로드 주기는 제가 얼마나 게으르냐에 따라 달라지기도···(웃음) 농담이고요. 옛날에는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업로드 했는데 채널을 오래 운영하다 보니 작업하는 스케일이 커져서 좀 더뎌졌습니다. 과거엔 단순한 작품 여러개를 만들었다면 이젠 더 세밀하고 재미있는 작품 하나를 만드는데에 시간을 들이는거죠.
– 맞아요. 채널 운영 초기에 3D 펜으로 모형을 만들기만 했다면 이젠 작품마다 후가공 처리를 하잖아요. 하나의 작품을 만들고 영상을 제작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도 궁금하네요.
4주 이상 걸리는 것 같아요. [그 펭귄 피규어 만들기]처럼 작은 작품도 3일은 걸렸어요. 한번 앉아서 작업 시 길면 7~8시간, 짧으면 3~4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본래 3D 펜은 3D 프린터의 보조 역할을 하는 도구인데, 보조 도구로 작품을 완성하려 하니 작업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더라고요. 3D 펜으로 면을 채우고, 다듬고, 표면을 사포로 깔끔하게 마감하는 모든 게 수작업입니다.
– 3D 펜만으로 질감을 표현하기엔 한계가 있죠. 퀄리티 높은 작품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연구하는 것 같아요.
작품 퀄리티 향상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다 배우는 편이에요. 3D 펜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투명한 부분은 레진을 쓰고, 울퉁불퉁한 표면을 다듬을 땐 우드 버닝 도구를 사용합니다. 우드 버닝 작업을 할 땐 유의할 점이 있는데요. 필라멘트는 온도 300도에 노출되면 연소합니다. 때문에 230도에서 240도 사이로 값을 맞추고 작업하는 것이 좋아요.
– 사나고만의 작업 루틴이 있나요?
루틴이랄 게 없어요. 작업을 위한 계획을 철저히 세우기보단, 어떤 날엔 모닝커피 한 잔을, 또 다른 날엔 기분에 따라 작업을 시작해요.
– 작업 시간이 길어서 영상 원본 파일 용량이 정말 크겠어요.
영상 하나 당 300~400GB 정도 됩니다. 옛날에는 1TB 영상도 있었어요. 지금은 많이 준 거죠.
– 영상 편집도 직접 하나요?
네 맞습니다. 왜냐하면 300GB 영상··· 다른 사람이 보기에 정말 막막할 것 같지 않나요? (웃음) 그래도 제가 촬영한 영상이기 때문에 어떤 부분을 어떻게 편집해야 할지 제가 제일 잘 알아요. 이제는 익숙합니다.
– 오랜 시간 앉아서 작업하려면 체력과 정신력이 받쳐줘야 하잖아요. 힘들진 않으세요?
힘들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좋아하는 일이고 만드는 행위 자체가 저에겐 즐거움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게임할 때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잖아요. 그거랑 같아요.
– 3D 펜으로 작품을 손쉽게 만들어내는 쾌감에 시청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사나고의 더빙에 매료되어 팬이 된 분들도 있어요. 틈새 개그도 하시던데 내재된 개그 욕심이 있는 걸까요. (웃음)
평소 개그 욕심은 없는 것 같습니다. 가끔 실제로 뵙는 분들이 그러세요. 영상이랑 목소리가 너무 다르다고요. 영상에서는 목소리 톤이 평소보다 낮은데, 이유가 있어요. 과거에 제가 워낙 내성적이다 보니 집에서 더빙할 때 가족들이 듣는 게 부끄러웠거든요. 그래서 차 안에서 휴대폰으로 혼자 녹음을 했었어요. 그 톤이 아직까지 남아있나 봐요.
– 10cm 앨범 커버 디자인, 쿠키런킹덤 마들렌맛 쿠키 제작같이 재미있는 협업도 진행하셨죠. 앞으로 다른 브랜드와 함께할 기회가 생긴다면 어떤 걸 만들어보고 싶나요?
평소 차에 관심이 많아서 자동차를 만들어서 주행해 보고 싶네요.
– 뮤지션 실리카겔, 선우정아가 속해 있는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에 2022년 합류하셨어요. 소속사가 생기기 전후 크리에이터 활동에 달라진 점이 있나요?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가 첫 소속사인데요. 10cm 앨범 디자인 작업을 함께하며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외부에서 제안주는 일이나 스케줄을 관리해 주셔서 이전과 달리 정말 편해졌죠. 오프라인 팝업스토어도 먼저 제안해 주셔서 작년 6월엔 현대백화점 판교에서 〈SANAGO SITE〉 팝업을 운영했었습니다. 자체 제작 굿즈와 공간 구성을 도맡아 해 주셨는데 혼자였다면 생각도 못 했을 것 같아요. 팝업 현장에서 팬분들이 3D 펜으로 남겨 주신 방명록은 사나고 워크룸에 그대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 사나고 카페를 운영하고 있어요. 유튜브 채널을 벗어나 오프라인 공간을 만든 이유가 궁금해요.
원래 1~2년 정도 단기적으로 운영하려 했던 곳인데 벌써 3년 넘게 하고 있네요. 카페는 제가 만든 작품을 직접 팬들께 보여드리고 소통할 공간이 필요해서 시작했어요. 제 유튜브 채널은 타 채널과 달리 작품을 만들고 그 과정을 지켜볼 수 있는 채널이라 완성된 작품을 직접 보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았거든요. 팝업스토어나 전시처럼 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고, 장기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어요.
– 작년 10월에는 카페에 이어 ‘사나고 워크룸’을 오픈했죠. 워크룸은 어떤 공간인가요?
작품을 보러 카페에 오셨던 분들이 직접 3D 펜을 사용해 뭔가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운영하는 쇼핑몰에서 3D 펜을 구매해도 되겠지만, 어린 친구들에게는 여의치 않잖아요. 실제로 한 번도 3D 펜을 접하지 못한 친구들도 있고요. 그래서 가볍게 체험하고 갈 수 있는 공방을 만들었습니다.
–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하나요?
모든 게 자유예요. 이용권 구매 후 정해진 시간 내 만들고 싶은 모형을 만들면 됩니다. 필라멘트는 색상, 종류 상관없이 모두 사용 가능합니다. 학교 체험 학습처럼 인원이 많은 경우엔 단체 룸을 이용할 수도 있어요
– 방문하는 분 중 사나고님의 팬이 많겠는데요. 주로 어떤 분이 오시나요?
대부분 초등학생이긴 한데 커플이나 가족 단위의 성인도 꽤 있어요.
– 대전에 거주한 지 13년이 넘으셨는데, 사나고가 꼽는 대전의 매력은요?
저는 식당에 가더라도 여러 곳을 가기보단 좋았던 한 군데를 계속 가는 편이에요. 대전도 그렇더라고요. 적당히 조용하면서 혼잡하지 않고, 편의시설도 잘 갖춰져 있어서 살기 좋아요. 또 부동산 시장에 거품이 없어서 좋습니다. (웃음) 그렇게 느껴지니 다른 도시는 별로 궁금하지 않네요.
– 사나고가 추천하는 대전 공간은?
- 한밭수목원 (대전 서구 둔산대로 169)
- 대동하늘공원 (대전 동구 동대전로110번길 182)
- 성심당 (대전 중구 대종로480번길 15)
한밭수목원은 주차 요금이 4시간 무료입니다. 드라이브를 좋아하는 분들께는 아주 큰 장점이죠. 큰돈 들이지 않아도 자연과 함께 힐링하기 좋은 곳이에요. 하지만 저는 수목원보다는 인라인이나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엑스포 시민 광장에 자주 갑니다. 수목원 중심에 위치하고 있어요. 대동하늘공원은 노을이 예쁜 곳이에요. 해 질 녘쯤 카페 갈 일 있으면 여기를 찾아요. 대전 도심을 훤히 내려다볼 수 있어 추천합니다. 성심당은 대전 여행 오시면 다들 가시겠지만 본점 외에도 지점이 다양한 거 알고 계시나요? 한국적인 디저트를 파는 ‘옛맛솜씨’, 케이크와 타르트를 전문으로 파는 ‘케익부띠끄’ 그리고 성심당에서 운영하는 우동집 ‘우동야’도 있습니다.
– 요즘 빠진 취미를 여쭤보려 했는데 클라이밍에 빠져 있더라고요.
맞아요. 그동안 운동을 해본 적이 없어서 턱걸이 한 개도 어려웠는데 우연히 친구가 클라이밍을 권한 이후로 지금까지 클라이밍에 푹 빠져 삽니다. 한번 시작하면 4시간은 해요. 처음엔 손 다치는 게 싫고 힘들었지만 묘한 성취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운동을 시작하니 작업 능률도 오르는 것 같아 좋습니다.
– 사나고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있다면요? 창작자를 꿈꾸는 이들에게도 한마디 덧붙여 주세요.
만드는 행위 자체가 원동력이죠. 자아실현을 위해서, 가족들을 위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와 같은 본질적인 이유도 원동력이 될 수 있지만 ‘만들기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라는 점이 제게는 가장 중요해요. 즐겁지 않으면 오래 일할 수 없고 제 영상에도 그게 드러나겠죠? 무언가 달성하기 위해 아직 눈앞에 오지 않은 꿈을 좇아가는 분들이 많아요.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원하는 목표를 이루지 못했을 땐 무력감이 크죠. 워크룸에 방문한 학생들이 저처럼 유튜버가 되고 싶다고 말하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하라고 말해요. 여러분도 왜 자신이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은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즐거운지 한 번쯤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사나고 워크룸&카페에서 살펴보면 좋은 작품
사나고가 그린 고양이
‘나고’의 모습.
제작하는데 가장 긴 시간이
소요된 디아블로 피규어.
디즈니 영화 <겨울왕국2>에
등장한 ‘브루니’를 재구성했다.
2016년 3D 펜을 사서
처음으로 만든 작품.
〈SANAGO SITE〉팝업에 방문했던 팬들이
3D 펜으로 남긴 방명록을 그대로 보존해 가져왔다.
글 이신영 콘텐츠 매니저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사나고,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