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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3

눈 앞에서 마주하는 거작의 향연

명품 중의 명품, 이건희 컬렉션.
“비록 문화유산을 모으고 보존하는 일에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들어갈지라도 이는 인류 문화의 미래를 위한 것이다. 우리 모두의 시대적 의무라고 생각한다.” 故 이건희 회장이 2004년 10월 리움 개관식 축사 때 했던 말이다. 2021년 4월 삼성그룹이 밝힌 이건희 컬렉션 규모는 총 2만 3천여 점. 국립중앙박물관에 2만 1천여 점, 국립현대미술관에 천5백여 점 기증됐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지난 4월 28일 '이건희 컬렉션'의 세부를 공개한 후, 7월 21일 특별전 개막을 알렸다. ⓒ 명이식

 

이른바 세기의 기증이다. 어느 때보다 이건희 컬렉션을 향한 국민적 관심과 열기가 뜨겁다. 아무런 조건 없는 ‘수준급 미술품’ 대거 기증이 국내 미술계에서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쾌거인 까닭이다. 지난 7월 21일부터 열린 서울 국립중앙박물관·국립현대미술관의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은 전국 각지의 아트투어족들을 불러모은다. 전시는 모두 무료. 시간당 20-30명씩만 전시실에 입장 가능하다. 사전 예약은 관람일 2주 전부터 가능한데 백신 접종만큼이나 경쟁이 치열하다. 예약 사이트를 개시하기가 무섭게 매진 사례가 이어지는 상황. 수장고에 있던 명품들, 교과서에서만 보던 희귀작들이 한자리에 모인 그 자체로 새로운 풍경이다.

 

이 열리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 명이식

 

특히 국립현대미술관은 이건희 컬렉션 1,488점으로 꿈만 같았던 ‘소장품 1만 점 시대’를 열었다. 미술관 측은 “구입 예산 관계로 연간 200점 정도 작품을 수집할 수 있었다. 김환기 대표작 한 점을 구입하려면 2-3년 예산을 모아야 겨우 가능한 정도였다. 우리는 언제 1만 점대에 진입할 수 있을까, 하며 소장품 숫자에 안타까워했다. 이번 기증은 미술관의 숙원을 단숨에 해결해주었다.”라며 감격의 소회를 전했다. 미술사적·역사적 맥락에서 누락된 소장품 영역을 이건희 컬렉션이 채워주며 국가 미술관으로서의 면모를 일신하게 해준 것.

<MMCA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은 소장품 등록 작업과 보전 처리, 그리고 연구 과정을 거친 결과를 대중에게 공개하는 첫 전시다. 이상범의 10폭 비단 병풍 <무릉도원>에서 출발하여 근현대 대표작 58점 사이를 거니는 아름다움의 향연. 코로나로 인해 침체되었던 미술관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김환기, 산울림 19-II-73#307, 1973, 264x213cm. ⓒ 환기재단·환기미술관
김환기, 3-X-69#120, 1969, 160x129cm. ⓒ 환기재단·환기미술관

 

Interview

박미화 학예연구관 | 국립현대미술관

Q. 이번 이건희 컬렉션이 뜻하는 미술사적 가치와 의의가 궁금하다.

 

국립현대미술관은 1969년 개관 이래 한국 미술사 정립을 위해 국내외 우수작품을 수집해왔다. 다만 구입 예산이 제한적이다 보니 많은 뜻있는 분들의 기증으로 소장품 규모를 점차 확대했다. 이건희 컬렉션은 총 1,488점이다. 이를 통해 국립현대미술관은 소장품 일만 점 시대를 열게 되었다. 7월 현재 소장품은 10,621점, 이 중 약 55%가 기증으로 수집되었다. 故 이건희 회장 유족들이 기증한 컬렉션은 미술사적 가치는 물론 규모 면에서도 역사상 최대 기록이다. 근‧현대미술사를 아우르는 20세기 초 국내외 주요 작품들로 소장품의 질과 양을 비약적으로 보강했다. 특히 근대미술 희귀작이 여러 점 기증되었다. 나혜석의 진작으로 확실하여 진위평가의 기준이 되는 <화녕전작약>(1930년대), 여성 화가이자 이중섭의 스승이기도 했던 백남순의 유일한 1930년대 작품 <낙원>(1937), 총 4점밖에 전해지지 않는 김종태의 유화 중 1점인 <사내아이>(1929) 등이 이에 해당한다.

 

나혜석, 화녕전작약, 1930년대, 33x23.5cm.
김종태, 사내아이, 1929, 캔버스에 유채, 43.7x36cm.

 

Q. <MMCA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은 소장품 1,488점 중 58점을 먼저 선보이는 전시다. 어떠한 기준으로 작품을 선별했나?

이건희 컬렉션을 향한 국민적 관심사가 뜨거운 만큼 이를 처음 공개하는 전시에서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34명 작가들의 주요작을 선별하게 되었다.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장욱진, 유영국, 변관식, 이응노 등 거장들의 대표작을 192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제작된 작품 주축으로 소개한다.

Q. 전시는 20세기 초반부터 중반까지 미술계의 흐름에 따라 세 개의 주제로 나뉜다. 전시 구성과 연출에서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

이번 전시 연출에서 신경 쓴 부분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대표작들이 별개의 작품으로 흩어지지 않고 이야기로 연결되도록 하였다. 작품 각각으로만 초점이 맞춰지면 효과적인 감상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도입 부분은 동서양의 무릉도원을 서로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도록 백남순의 <낙원>(1936년경)과 이상범의<무릉도원>(1922)을 마주 배치하였고, 동시에 멀리 변관식의 <무창춘색>(1955)이 보이도록 하였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작가들의 변화를 감지하도록 한 것이다.

또한 이야기가 연결되면서도 ‘이건희 컬렉션’이 빛날 수 있도록 구성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이미 보도되었거나 대중이 쉽게 알 수 있는 대가의 작품들을 한 공간에 집중 배치하였다. 마지막으로 관람객의 이해를 돕고자 했다. 전시 개최에 맞춰 도록을 제작하였으며 작품 옆에 설명문을 부착하여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도록 연출했다.

 

유영국, 작품, 1972, 캔버스에 유채, 133x133cm.
유영국, 작품, 1974, 캔버스에 유채, 136x136.5cm.
장욱진, 공기놀이, 1938, 캔버스에 유채, 65x80.5cm.
천경자, 노오란 산책길, 1983, 종이에 채색, 96.7x76cm.
장욱진, 마을, 1951, 종이에 유채, 25x35cm.

 

Q. 인터넷 사전 예약으로만 관람할 수 있다. 온라인이 생소한 중장년층은 전시 관람이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거리두기 4단계 조치에 따라 한 회당(1시간) 관람 인원 30명으로 운영 중이다. 향후 거리두기가 1단계로 완화되면 시간당 관람 인원은 100명으로 늘어난다. 전시가 진행되는 내년 3월 13일까지는 보다 많은 분들이 전시를 보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또한 국립현대미술관 유튜브 채널에 전시 투어 영상 등을 게재하였다. 미술관 방문이 어려운 분들도 작품을 보실 수 있도록 다양한 경로를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Q.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번 전시 이후에도 이건희 컬렉션을 지속해서 소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대략적인 계획에 대해 전해준다면?

2022년에는 과천관, 청주관에서 이건희 컬렉션을 선보일 계획이다. 모네, 르누아르, 피카소 등 해외 거장들의 작품을 공개하는 전시와 함께 이중섭의 회화, 드로잉, 엽서화 등에 집중하는 전시를 준비 중이다. 또한 지역의 공‧시립미술관과 연계한 순회전을 개최하여 더욱 많은 이들이 소중한 미술 자산을 관람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Q. 미술 입문자들은 이건희 컬렉션을 어떻게 감상하면 좋을까?

이번 전시에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거장 34명의 대표작을 모았다. 친숙한 이름의 작가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는 만큼 작품 자체를 즐기시면 된다. 전시장에 부착된 설명문이나 도록을 함께 본다면 작품을 좀 더 오래 기억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박수근, 유동, 1963, 캔버스에 유채, 96.6x130.5cm.
이중섭, 흰 소, 1950년대, 종이에 유채, 30.5x41.5cm
이응노, 구성, 1971, 천에 채색, 230x145cm.
이응노, 작품, 1974, 천에 채색, 204x126cm. ⓒ Ungno Lee ADAGP, Paris SACK, Seoul, 2021

 

박미화 학예연구관이 말하는

꼭 살펴봐야 할 작품

 

1. 김환기 <여인들과 항아리> (1950년대)

1950년대 김환기의 모든 도상이 포함된 대작

 

김환기, 여인들과 항아리, 1950년대, 캔버스에 유채, 281.5x567cm. ⓒ 환기재단·환기미술관

 

김환기는 가장 한국적인 서양화를 그렸다. 일제강점기에는 도쿄에서 유학하며 전위적인 미술 양식을 흡수했고, 해방 후에는 파리와 뉴욕에서 활동하며 서구의 화풍을 섭렵했다. <여인들과 항아리>는 그가 한국전쟁 시기부터 즐겨 그렸던 소재다. 그가 평생 지극히 아끼고 사랑했던 조선백자를 머리에 이고 있는 여인들이 등장한다. 광화문으로 상징되는 조선 건축, 길거리의 노점상, 꽃과 새… 그가 즐겨 그린 1950년대 소재들도 총출동한다. 특히 화면 한가운데 의기양양한 자세로 당당하게 서 있는 사슴은 화가 자신의 모습을 표상하는 듯하다. 주문자의 의뢰에 의해 제작한 벽화 크기의 대작으로, 한때 중앙일보사에 걸려 있었다. 1980년대 이후 실견이 불가능했으나 이번에 미술관에 기증되어 다 함께 감상할 기회가 마련되었다.

 

2. 박수근 <절구질하는 여인> (1954)

한국 여인들의 일상, 화강암 재질을 보여주는 완성도 높은 명작

 

박수근, 절구질하는 여인, 1954, 캔버스에 유채, 130x97cm.

 

그의 대표작 중에서도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1954년 한국전쟁 직후에 대단히 야심 차게 그렸고,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출품하여 입선했다. 박수근은 유학 생활을 하지 않은 국내파 화가다. 해방 후 상대적으로 늦은 나이에 국전을 통해 이름을 알렸다. <절구질하는 여인>은 박수근이 화풍을 정립하고 화가로서 입지를 굳힌 계기가 되었던 특별한 작품이다. 한국인의 단순한 일상에서 소재를 취하되 마치 화강암의 재질을 연상시키는 두터운 질감으로 ‘견고한 물질성’을 지닌 것이 특징이다. 외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형식의 서양화로, 해방 후 서울에 거주하던 미국인들에게 인기를 얻으며 명성을 갖게 되었다.

 

3. 이중섭 <황소>(1950년대)

황소의 강인함, 힘찬 필치와 뛰어난 표현력으로…

 

이중섭, 황소, 1953-54, 32.3x49.5cm.

 

한국인이 사랑하는 국민작가 이중섭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1954년 통영시절 제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그림만 열심히 그려 팔면 일본에 있는 가족을 만날 것이라는 희망에 가득 차 있던 시기다. 황소의 힘찬 울부짖음이 용맹스럽고 열정적이면서도, 실제로는 들리지 않는 소리 효과로 인해 왠지 먹먹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4. 이상범 <무릉도원> (1922)

20세기 초반, 안중식 청록산수의 뒤를 잇는 이상범의 대표작

 

이상범, 무릉도원, 1922, 비단에 채색; 10폭 병풍, (이미지) 159x39x(2), 159x41x(8)cm, (병풍) 202x413cm.

 

청전 이상범이 불과 25세에 그린 청록산수화다. 안중식과 조석진의 문하에서 미술을 공부한 후 이미 창덕궁 대조전에 벽화를 그린 이력을 가진 이상범이 후원자 이상필의 요청으로 완성한 작품이다. 의뢰받은 작품인 만큼 최고급 재료를 썼고, 최상의 기량을 발휘했다. 안중식의 <도원문진도>에 견줄 만큼 과감하고 아름다운 색채와 구성이다. 존재만이 알려진 작품이었는데 이건희 컬렉션 중 하나로 기증되어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

 

5. 백남순 <낙원> (1936년경)

미술사적 가치가 높은 시기의 유일한 현존작

 

백남순, 낙원, 1936년경, 캔버스에 유채; 8폭 병풍, 173x372cm.

 

백남순은 나혜석과 마찬가지로 도쿄여자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한 1세대 서양화가다. 1920년대에 파리 유학을 가서 미국 유학 출신의 임용련을 만나 결혼한 후 1930년에 귀국했다. 당시 이들이 함께 열었던 부부양화전은 엄청난 사회적 이슈였다. 그러나 고급 교육을 받았던 1세대 유화가들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은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임용련과 백남순은 평안북도 정주의 오산고보에서 영어 및 미술 교사로 재직하였고, 그곳에서 이중섭, 문학수 등 다음 세대 서양화가들을 가르쳤다. 현존하는 사진 자료를 보면 백남순의 <낙원>이 오산고보 미술반에 펼쳐져 있다. 이와 같은 작품을 보며 후배 화가들이 성장했던 것이다. 한국의 무릉도원 전통과 서양의 아르카디아 전통이 묘하게 결합한 독창적인 작품이다. 1930년대 백남순 작품으로는 유일하게 전해지는 만큼 역사적으로도 각별하다.

 

Project info

 

<MMCA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

주최 국립현대미술관

참여작가 권옥연, 권진규, 김경, 김기창, 김은호, 김종영, 김종태, 김중현, 김환기, 김흥수, 나혜석, 남관, 류경채, 문신, 박래현, 박상옥, 박생광, 박수근, 박항섭, 백남순, 변관식, 유영국, 윤효중, 이대원, 이도영, 이상범, 이성자, 이응노, 이인성, 이종우, 이중섭, 장욱진, 채용신, 천경자 (가나다 순)

 

<위대한 문화유산을 함께 누리다-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

기획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

기간 2021. 7. 21 – 2021. 9. 26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2층 서화실

 

 

정인호

자료 협조 국립현대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전시실 (서울 종로구 삼청로 30)
일자
2021.07.21 - 2022.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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