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15

영감을 찾아다니는 모션 그래픽 디자이너

브라질 디자이너, 세사르 뻴리제르

최근 들어, 영상디자인 분야에서 재능 있는 여러 디자이너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라틴아메리카와 유럽 각국, 그리고 일본에서 알려지기 시작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브라질의 세사르 뻴리제르(César Pelizer)이다. 세사르는 브라질 출신의 젊은 영상 디자이너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최근 10년간 런던에서 활동 중이며 곧 일본에서의 레지던시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그의 동글동글한 그림체는 마치 떠오르는 태양처럼 2013년부터 미국, 브라질, 오스트레일리아, 포르투갈, 그리스, 독일, 영국, 터키, 프랑스의 주요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선정되어 상영되어왔다. 그 중에서도 특히 런던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London International Animation Festival)이나 2020년 맨체스터 애니메이션 페스티벌(Manchester Animation Festival)에서 그의 작품이 두드러졌으며, MTv와 미국 대형마트 브랜드 크로거(Kroger Company)의 디자인을 맡게 되면서 더욱더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조용하고 생각이 많은 그의 성격은 작품 세계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데, 직설적인 메세지를 전하기 보다는 방청객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편이라고 한다. 이 인터뷰를 통해 신비한 세사르 뻴리제르를 소개한다.

Interview with 세사르 뻴리제르

― 런던에서 생활하신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혹시 가게 된 동기가 있는지요?

 

저는 2013년에 영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당시 모션 그래픽 전문 에이전시 ‘위아세븐틴(Weareseventeen)‘에서 오퍼를 받아 운 좋게도 5년간 유럽의 최고의 모션 그래픽 디자이너들과 함께 일을 할 기회를 얻기도 했고, 정말 뜻깊은 경험을 하며 모션 그래픽 세계에 대해 배우기도 많이 배웠습니다. 그리고 타지 생활에 주제로 인터뷰가 시작됐는데, 이야기가 나온 김에 말씀드리자면 저는 런던에서 생활한 지 10년 만에 일본으로 가서 2개월 동안 아트 레지던시 활동을 한 이후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이주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왼쪽부터) "곤 (Gone)”, 일러스트레이션, 바르셀로나, 2023. ©César Pelizer. "창조 과정(Creative Process)”, 일러스트레이션, 런던, 2022. ©César Pelizer. "멀리서 보다(What it looks like from afar)” 일러스트, 런던, 2023. ©César Pelizer.

― 그런데 제가 알기로는 디자이너님은 영국에 정착하기 전에 아르헨티나 모션 그래픽과 브랜딩 전문 스튜디오 ‘푼가(Punga animation)‘에서 작업 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네, 아주 정확하게 알고 계시네요. 사실 저는 2007년에 아르헨티나에서 매년 열리는 그래픽 디자인 페스티벌 트리마르치Trimarchi를 방문하고 아르헨티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영상 디자인 산업을 탐색하고자 18살 되던 해에 브라질 국경을 넘어 아르헨티나로 떠났습니다. 트리마르치는 저로 하여금 다양한 예술가들과 재능 있는 디자이너들을 만나게 해 준 자리가 되었습니다. 이런 좋은 경험들과 기억은 이벤트가 끝나고 브라질로 돌아와서도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그래서 귀국한지 불과 몇 달도 지나지 않아 다시 한 번 아르헨티나로 돌아가게 되었지요. 두 번째 방문을 통해 6년간 푼가 스튜디오에서 일을 하면서 디자인 세계에 대해 유익한 지식도 얻고 애니메이션 기초를 다지는 등 알차고 보람 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손에 쥔 거울 (Mirror in a hand)” 일러스트레이션. ©César Pelizer.

― 브라질, 아르헨티나, 그리고 영국 이라는 세 개의 국가가 디자이너님의 애니메이션 디자인 정체성에 영향을 주었다고 보십니까?

 

어려운 질문이네요. 제 생각에는 어떠한 디자인 작업이든 국가와 사회, 그리고 일상적으로 어울리는 주변 사람들과 같은 직접적인 배경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그 배경에서 일어나는 변화도 디자이너의 창조 과정과 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봅니다. 특히 주변에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의 언어가 내 모국어가 아닐 때, 이미지와 함께 사용해야 하는 문구나 은유가 달라지고, 이로 인해 프로젝트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지요. 그래서 저는 가끔씩 익숙해진 곳을 떠나는 것도 창조진화에 정말 많은 도움을 준다고 믿습니다. 어떤 자리에 익숙해지고 일에 적응이 되어 아늑함을 느낄 때, 디자인은 단조로워지기 마련이지요. 이 때가 바로 그 자리를 떠야 할 시점이라고 봅니다.

“Looking For Something”, '위아세벤틴(Weareseventeen)' 애니메이션 디자인, 런던, 2018. ©César Pelizer.

― 대부분의 사람들이 쉽고 편하게 일을 하려고 하는데, 디자이너님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서 세상을 떠도는 “창조 잡이” 같네요.(웃음) 이번에는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에 대해 알 수 있을까요?

 

애니메이션과 디지털 아트에 대한 열정은 정말 어릴 때부터 가졌다고 할 수 있어요. 어린시절, 할아버지께서 브라질에 가장 큰 출판사에서 일을 하고 계셔서 저희 집에는 여러가지 이미지가 사방 팔방으로 널려 있었어요. 당시 난독증 진단을 받았던 저는, 그 이미지들 중에서도 잡지나 그림책, 만화책과 같이 특히 이미지가 더 많은 출판물들에 매료되었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여러 책을 보다가, 당시 TV에서 방송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메이킹 오프(making off)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봤습니다. 그리고 용기를 얻어 연필로 종이 조각 위에 나만의 그림, 나만의 스토리를 그리기 시작했죠. 그래서 어릴 때부터 정지된 그림을 움직이게 하는 데에는 정말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런 힘들지만 재미있는 일을 평생 하고 싶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셈이지요.

“영감을 찾아서 오게 된 한국” 일러스트레이션, 서울, 2022. ©César Pelizer.
“Holding it together”, 53개의 개인 작품, 2021. ©César Pelizer. ​

― 유년시절부터 애니메이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확신이 있었다고 하시는 데, 본인만의 스타일을 정립하기 위해 즐겨 보던 애니메이션이 있을까요?

 

영국 클레이 애니메이션 <월레스와 그로밋(Wallace & Gromit)>은 저에게 정말 큰 영감을 줬습니다. 그리고 1989년 닉 파크(Nick Park) 감독이 제작한 단편영화 <동물원 인터뷰(Creature Comforts)>는 저에게 기존의 그 어떤 애니메이션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특별한 인상을 심어주었던 영화로, 제 작품 세계에 있어서 아주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리고 시각적인 스타일에서는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나 한스 아르프(Hans Arp),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 타이거 테테이시(Tiger Teteishi)와 같은 유명 화가들을 참고하는 편입니다.

― 그렇다면, 세사르 뻴리제르 세계관의 특성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정말 어려운 질문인데 그래도 한번 정의해 보겠습니다. 제 작품의 특징 중 하나는 관객들마다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웃음) 누구나 다 동일한 메시지를 받게 하는 일방적인 전달이 아니라, 제 작품을 본 관객들의 다양한 해석과 생각이 담긴 피드백을 읽을 때가 가장 즐겁습니다. 특히 제 마지막 작품, 단편영화 “어떤 것을 찾아서Looking for Something”은 제목부터 두루뭉술 합니다. 일부러 관객들에게 약간의 의문을 품게 하지요.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스케일의 대립, 상상의 사물과 요소, 그리고 신비로운 캐릭터들이 웅장한 공간 디자인이 단 하나의 영상에서 나타나 상호작용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마지막으로 사운드의 중요성에 대해 아주 짧게 언급하자면, 사운드 디자인은 제 작품에서 이미지 만큼이나 중요한 요소로 나타나는데 중요한 광고나 애니메이션 영화를 촬영할 때 사운드 전문가 토마스 윌리엄스(Thomas Williams)와 톰 피셔(Tom Fisher)와 함께 일을 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왼) “한국 은평구 공구상가 앞에서” 일러스트레이션, 서울, 2022. ©César Pelizer. (오) 연남동 회집에서” 일러스트레이션, 서울, 2022. ©César Pelizer.

― 디자이너님의 애니메이션은 MTv와 같은 다양한 미국 브랜드 광고에서 사용이 되었지요. 이런 기회는 어떻게 얻게되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요즘은 아티스트나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활동하기에 매우 좋은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SNS의 발전으로 정말 손쉽고 빠르게 본인의 작품을 전세계 대중에게 소개할 수 있으며, 마음만 먹으면 본인을 브랜드화 시킬 수도 있습니다. 물론 기술과 정보유통망의 부당하고 어두운 이면도 있으나, 인터넷을 통해 스타 디자이너들이나 게이트키퍼(gate keeper) 같은 개인의 발전을 가로막는 사람으로부터 해방되어 디자인 시장의 밸런스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 또한 몇 년 전에 개인 인스타그램을 개설하고 관리하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광고사를 통해 애니메이션 의뢰를 받았습니다. 그 중에서 미국 대형마트 라인 크로거(Kroger Company)가 의뢰한 광고 캠페인이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규모도 크고 복잡했습니다. 광고 애니메이션 뿐만 아니라 대형마트 내부에서 사용될 그래픽 시스템까지 모두 담당했는데, 이 프로젝트를 통해 저와 제 작품을 알고 있던 소수의 디자인계 전문가들 외에 일반 사람들에게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제 애니메이션이 마음에 들었는지 SNS 팔로워가 늘기도 했습니다.

"지루함(Boredom)", UK MtV 광고 에니메이션, 영상 디자인: 세사르 펠리제르, 음악: 토마스 윌리엄스, 런던, 2019. ©César Pelizer.

― 대중에게 작품을 알리는 데에 유튜브 활동보다 좋은 플랫폼이 없을 것 같은데요, 혹시 개인 콘텐츠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해 유튜브로 공유할 생각은 없으신지요?

아직까지는 고려해 본 적이 없지만 가까운 미래에 계획하기 좋은 프로젝트네요. 제 작품이 광고나 영화가 아니라 다른 플랫폼에 소개되었을 때 관객들의 반응과 제 작품이 가지게 되는 의미와 용도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재밌네요. 언젠가는 도전 해 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일본 이토시마에서 수행할 아트 레지던시 준비와 “꿈”을 주제로 한 일러스트레이션 시리즈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레지던시를 할 곳이 일본 동북쪽, 규슈에 있는데 2달 동안 새로운 문화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어 보다 좋은 작품을 진행하고 싶습니다. 저에게는 개인 프로젝트도 세계적인 대기업 광고 프로젝트 만큼 소중하고 중요합니다. 그 어떤 프로젝트라도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지 않으면 작품은 의미 없는 진부한 결과물이 되기 때문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현 프로젝트에 몰입 할 예정입니다.

― 한국의 독자들을 위해 남기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저는 2022년 4월부터 2달동안 노트북과 자전거를 가지고 여행을 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한국을 처음 방문해 봤는데, 정말 환상적인 나라였습니다. 그때도 마침 광고 캠페인과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다 돌았습니다. 안동과 같은 아주 작은 지역도 돌아보고 월악산 국립공원도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디자인에 있어서는 서울을 돌아봤을 때 굿디자인에 대한 열정과 규모를 보고 놀랐습니다. 저에게 아주 각별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정말 많은 것을 보고 배웠습니다. 혹시라도 독자분들 중에서 자전거 라이딩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 모두에게 꼭 한번 전국 투어를 해 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알고 있는 공간을 차가 아닌 다른 교통 수단을 이용해서 돌아보면,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실 수 있을겁니다. 감사합니다.

디자인프레스 해외통신원 김엘리아나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세사르 뻴리제르

헤이팝
공간 큐레이션 플랫폼, 헤이팝은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과 그 공간을 채우는 콘텐츠와 브랜드에 주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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