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에 어두운 레드를 더하다
파리 시내에 있는 이 오래된 아파트에는 젊은 부부와 어린 두 자녀가 산다. 집주인들은 집 안이 전반적으로는 편안한 뉴트럴 톤이면서도 가족들의 일상의 중심인 주방만큼은 집의 중심으로서 강렬한 인상을 갖기를 원했다. 인테리어 디자인 스튜디오 오베뜨 앤 마다니(Hauvette & Madani)는 주방에는 와인 레드 컬러로 포인트를 주고, 이에 맞춰 나머지 집 전체를 레드에 어울리는 베이지와 브라운, 화이트로 디자인했다. 장엄하면서도 극적이고, 어두우면서도 경쾌한 컬러라는 것이 이들이 와인 레드를 선택한 이유다. 아일랜드와 상부장 및 하부장, 천장이 모두 와인 레드 컬러이며, 천장은 광택이 있는 소재로 마감해 공간감을 준다.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기둥과 브론즈와 골드로 빛나는 조명이, 좁은 주방에 우아함과 고급스러움을 더한다.
주얼리 디자이너들이 사는 집 ‘보석함’
프랑스 파리의 인테리어 디자인 스튜디오 유크로니아(Uchronia)가 두 명의 주얼리 디자이너들을 위한 집, ‘보석함’을 만들었다. 아파트는 19세기 중반, 오스만 시장의 파리 재건 시기에 지어진 오래된 건물에 있다. 스튜디오는 당시 건축물들의 특징인 높은 천장과 섬세한 몰딩은 남겨두고 그 위에 현대적인 색채를 얹었다. 이 집의 고전적인 형태는 ‘보석함’이라는 콘셉트의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됐다. 자칫 무겁거나 지나치게 양식적으로 보일 수 있는 구조와 디테일을 선명한 컬러와 조합해 중화시켰다.
이 곳은 각 공간마다 고유한 컬러와 그에 기반한 정체성을 가지도록 꾸몄다. 다이닝룸은 그린, 침실은 브라운, 주방은 파스텔 캔디 컬러 등 공간을 오갈 때마다 다른 빛깔에 몸을 맡길 수 있다. 특히 주방에서는 기존에 있던 옛스러운 곡선형 창문에 색색깔의 유리를 맞춤으로 제작해 특별함을 더했다. 한편 거실은 모든 컬러가 모이는 공간이다. 기하학적인 형태의 가구와 패브릭들이 자기 색깔을 강하게 주장하는 곳이다. 다만 바닥에서 진하게 시작해 위로 올라갈 수록 옅어지는 그라데이션으로 색을 입힌 벽이 이 모든 컬러를 수용하고 지휘한다. 가벼운 소재의 커튼 역시 그라데이션으로 산뜻한 분위기를 만든다.
어부의 집을 지중해 휴양 별장으로 만들기
지중해에 닿은 스페인 발렌시아의 어촌 마을 엘 까바냘. 전통적으로 어민들이 대를 이어 살아온 이 작은 마을의 평범한 가정집이, 독특한 휴양 주택으로 변신했다. 1946년에 지어진 이 아담한 건물은 총 두 개 층이며 전체 면적은 85제곱미터다. 스페인의 인테리어 스튜디오 비르투라 랩(Viruta Lab)은 조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시골집다운 정취를 간직한 동시에 여름 휴가의 기분이 느껴지는 집을 만들고자 했다. 집이 가진 가족들의 정서적 유산을 보존하고 표현하기 위해, 스튜디오는 벽의 벗겨진 페인트 너머 오래된 파벽돌을 남겼다. 조부모가 어망을 보관하던 옥외 공간은 그 도구들을 그대로 오브제로 남겨둔 채로 가족들의 휴식 공간인 테라스가 되었다.
익숙한 풍경에 지중해의 분위기를 더한 것은 푸른색과 흰색이 교차하는 체커보드 패턴 타일이다. 주방이나 욕실, 베란다와 같은 ‘차가운’ 공간 뿐 아니라, ‘따뜻한’ 공간인 거실과 침실까지 모든 방에 타일을 적용했다. 세월감이 느껴지는 기존의 공간에 모던하고 장난기 있는 체커보드 패턴이 곳곳에 배치된 원목의 도움을 받아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가구들은 좁은 구조에 맞게 단순한 스툴 형태로 만들었다.
천장부터 빌트인 가구까지 모두 나무로 만든 집
집주인은 차분하면서도 영혼이 느껴지는 집을 주문했다. 이에 디자이너는 원목의 따뜻함을 극대화한 집을 만들었다. 네덜란드의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 DAB 스튜디오는 천장과 바닥, 벽과 빌트인 가구들을 모두 나무로 덮었다. 사용한 원목 자재의 종류는 오직 두 가지다. 천장과 바닥의 목재가 같고, 벽과 빌트인 가구들의 목재가 같다. 두 목재 모두 장식적인 나무결을 가진 것으로 골라, 전체적으로 어두운 톤을 상쇄하고 공간이 활기를 띌 수 있도록 했다. 온통 나무로 덮인 공간은 숲 속 같기도, 동굴 속 같기도 하다. 막힌 벽 너머의 더 넓은 공간에 대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스튜디오는 이런 분위기 가운데 곳곳에 대리석을 배치했다. 사람들이 모이는 식탁과 주방 조리대는 베이지와 그레이톤의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각 공간의 무게 중심을 잡는다.
시끄럽고 아름다운 예술가의 방
벨기에 앤트워프에 있는 스튜디오 욥(Studio Job)의 사무실. 이곳은 감각적인 인테리어와 작품들을 선보이는 디자이너 욥 스메이츠(Job Smeets)의 개인 주거 공간이기도 하다. 스메이츠는 개성 강한 이 공간의 콘셉트를 “시각적인 공격”이라고 말한다. 그는 단순한 선과 여백 뒤에 숨을 수 있는 미니멀리즘과 달리,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있어야만 표현 가능한 것이 맥시멀리즘의 매력이라고 설명한다.
이 집 겸 사무실을 완성하는 데는 ‘느긋한 10년’이 걸렸다. 2007년 오래된 유대인 학교 건물을 구입해 10여 년에 걸쳐 천천히 개조하고, 가구를 들이면서 2018년에 들어서야 완성한 것. 이 곳의 중심 공간으로서 가장 세게 “시각적인 공격”을 쏟아붓는 곳은 거실이자 응접실로 기능하는 갤러리다. 스메이츠가 20년 동안 직접 만들었거나 수집해 온 독특한 패턴의 러그와 쨍한 색감의 가구, 소품과 그림들이 마찬가지로 눈에 띄는 벽지와 함께 강력한 기운을 뿜어낸다. 그의 개인 생활 공간 역시 타협은 없다. 밝은 다홍색 타일에 공개된 구조인 욕실은 예술가의 작업실 같기도, 어린 아이의 놀이방 같기도 한 모습의 침실과 연결된다. 벽에 페인트가 흩뿌려진 듯한 침실은, 스메이츠의 말에 의하면 그의 복잡한 머릿 속을, 다만 조금 더 신중하고 차분한 버전으로 반영한 결과다.
글 박수진 객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