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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8

사진 전문 서점 ‘이라선’의 새로운 보금자리

서촌에서 북촌으로
3호선 안국역 1번 출구에서 도보로 5분 남짓한 거리. 이곳에 사진 전문 책방 이라선이 자리한다. 골목길 안에 자리 잡은 덕분에 마치 주변과 단절된 것처럼 고요한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2016년 서촌 통의동에 처음 문을 연 이라선은 올해 8월 약 7년 간의 서촌 시절을 뒤로하고 이곳 북촌에 새로이 자리 잡았다.
북촌 이라선 실내 공간 모습 (사진 제공. 이라선)
북촌 이라선 실내 공간 모습 (사진 제공. 이라선)

서촌에서 북촌으로 자리를 옮긴 데에는 다분히 현실적인 이유가 배경에 자리했다. “계약 연장이 성사되지 않았어요. 결국 이사 날짜를 합의하고, 새로운 공간을 찾기 시작했죠.” 이라선을 이끄는 김진영 대표가 말했다. 처음에는 그래도 익숙한 서촌 안에서 새 보금자리를 물색했다. 공간에 들어섰을 때 ‘서점’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질 수 있는 곳이 또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발품을 팔았다고. 하지만 마음에 쏙 드는 곳을 찾지 못했다. 결국 서촌을 벗어나 북촌까지 범위를 넓혀 공간을 찾아야 했다. “북촌에 있는 공간들까지 살펴봐야겠다고 결심한 날, 지금의 이라선 공간을 둘러봤어요. 단번에 마음에 들더군요. 구획되어 있지 않은 직사각형의 공간, 통창 유리 너머로 보이는 한옥 지붕 풍경. 모던함과 클래식함의 중간에 자리한 공간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북촌 이라선 실내 공간 모습 (사진 제공. 이라선)

서촌에서 북촌으로 자리를 옮긴 이라선은 마치 복사와 붙여넣기를 한 모습이다. 여기에는 과거 서촌 시절에서부터 유지해 온 ‘집 안 서재’와 같은 특유의 공간 콘셉트와 분위기를 이어가고자 했던 김진영 대표의 의지가 담겨 있다. 서촌에서도 볼 수 있었던 계산대를 겸한 작업 책상, 초록색 시그니처 의자, 황동 소재의 오브제와 월넛으로 제작한 책장 가구들이 대표적이다.

서촌에서 눈길을 끌었던 초록 의자를 떠올리게 하는 북촌 공간의 의자 모습 (사진 제공. 이라선)

“장소와 공간 크기는 달라졌지만 이질감이 느껴지는 곳으로 짠하고 나타나고 싶진 않았어요. 예를 들어 단골 식당이 장사가 잘 되어서 어느 날 확장한다고 했을 때 과거의 분위기를 없애버리면 어색하게 느껴지잖아요. 이라선도 마찬가지예요. 과거와 단절되기보다는 연속성이 있는 공간으로 느껴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대신 김진영 대표는 공간 운영면에서 전보다 여유를 갖고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에는 휴대폰 카메라로 내지 촬영을 금지했어요. 그때는 그게 안된다고 생각했죠. 지금은 소리 나지 않는 카메라로 촬영하는 건 괜찮지 않나 싶어요. 멋진 사진을 레퍼런스로 삼고 싶거나, 소장하고 싶은 분들에게 미약하나마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북촌 이라선 실내 공간 모습 (사진 제공. 이라선)

이라선을 찾는 이유는 결국 사진 책을 보기 위해서다. 우리가 언제부터 사진 책을 살펴보고, 구매하고, 또 소장하는 게 자연스러워졌는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라선이 처음 문을 연 2010년대 중반과 비교하면 보다 자연스러워진 것은 사실이다. “과거에 사진 책이라고 하면 소위 ‘커피 테이블 북’이라는 인식이 강했죠. 이라선에서는 두꺼운 양장 제본의 책이 아닌 개성 있는 책을 주로 소개했어요.” 개성 있는 사진 책에 대한 수요를 예견했던 걸까, 그녀가 사진 책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공간을 열게 된 이유가 궁금해졌다.

북촌 이라선 실내 공간 모습 (사진 제공. 이라선)

“팔리지 않으면 내가 소장한다는 생각으로 문을 열었어요.” 사진 책을 몰라서 오히려 용감하게 서점을 열 수 있었다는 김진영 대표의 말과 달리 그녀의 이력에는 사진에 대한 관심과 경험이 이미 자리 잡고 있다. “책방을 열기 전에 사진과 관련한 다양한 일을 했어요. 대학에서 사진 이론과 사진사를 공부했고, 이후로 사진 촬영 일도 해봤죠. 촬영은 저랑 잘 맞진 않더라고요. 사진을 공부하면 할 수 있는 일이 ‘사진가’ 밖에 없다고 처음엔 생각했어요. 하지만 찾아보니 큐레이터, 출판인, 편집자, 비평가 등 사진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더라고요. 그중에서 저에게 맞는 일이 바로 사진 책을 소개하는 것이었어요.”

그녀는 이라선을 열었을 때만 해도 사진 책이 지금처럼 다양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진사를 공부한 배경 탓에 처음에는 사진의 역사에 중요하게 부각된 인물들을 중심으로 한 고전적 큐레이션을 주로 선보였다. 이후 프랑스, 일본, 미국에서 열리는 사진 북 페어를 다양하게 경험하고 배우면서 이라선만의 큐레이션을 하나씩 갖춰갔다. “이라선을 찾아주시는 분들이 간혹 ‘이라선에 가면 이상한 책이 되게 많다’라고 말해주시는데 저는 이 말이 너무 듣기 좋아요.” 이처럼 이라선이 어디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개성 넘치는 책이 있는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게 된 건 김진영 대표의 용기와 겸손한 배움의 자세에서 기인했다고 말할 수 있다.

북촌 이라선 실내 공간 모습 (사진 제공. 이라선)

한편 이라선은 다양한 방식으로 사진 책을 소개하는 곳으로도 소문이 자자하다. “저는 책 소개를 위한 글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우리가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친절하게 설명을 잘 해주는 것에 이끌리듯이 사진 책도 마찬가지죠.” 이라선의 공식 SNS에 올라오는 책 소개뿐만 아니라 사진작가와 함께하는 북토크도 ‘사진 서점’, ‘사진 책’을 생각했을 때 이라선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한 이유 중 하나다. 북촌에서는 실내 공간이 넓어진 만큼 전보다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행사를 준비 중이라고.

이러한 활동들 덕분에 이라선은 지난 9월 22일부터 11월 5일까지 진행된 <대구 사진 비엔날레>의 ‘포토북 페스티벌’ 섹션 큐레이터를 맡아 진행하기도 했다. 사진 작품이 아닌 사진 책을 전시하는 공간을 기획했다. 국내외 큐레이터, 비평가, 작가들로부터 코멘트를 받아 꾸민 전시실은 모든 것이 디지털로 통하는 시대 속에서 사진 책의 가치를 돌이켜보기에 충분했다. “‘디지털로 이미지를 볼 수 있는 세상이라서 종이책이 더 이상 필요 없다?’라는 질문에 저는 아니라고 답하고 싶어요. 오히려 새로운 활로를 개척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디지털에서는 느끼지 못한 걸 종이책에서 감상할 수 있죠. 분명 또 다른 기회로 작동할 것이라고 봅니다.”

이정훈 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이라선

장소
이라선
주소
서울 종로구 북촌로 1길 30-11 1층
이정훈
독일 베를린에서 20대를 보냈다. 낯선 것에 강한 호기심을 느끼며 쉽게 감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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