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29

창고를 개조해 지은 집의 모습은?

과거의 창고, 아늑한 보금자리로
도시에도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수용하는 집들이 필요하다. 창고를 개조해 지은, 세계의 집 세 곳을 소개한다.

창고 안 빈 공간에 만든 주말주택

일본 이스미

이미지|Arii Irie Architects 인스타그램

일본 보소반도 이스미시에는 이름 그대로의 공간인 ‘창고별장(倉庫別莊)’이 있다. 건축주는 가족 사업을 물려받으면서 해안 도시의 창고도 함께 물려받았다. 건축주는 항상 꽉 차는 법이 없는 이 공간을 창고로 쓰는 동시에 사람들을 초대할 수도 있는 주말주택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건축스튜디오 아리 이리에 아키텍츠(Arii Irie Architects)는 이곳을 목적에 따라 유연하게 구조를 변경할 수 있는 창고 겸 별장으로 변신시켰다.

이미지|Arii Irie Architects 인스타그램

‘창고별장’은 ‘더욱 창고다운’ 디자인을 콘셉트로 삼았다. 이곳에 보관해야 하는 물건들은 대부분 조리기기 및 관련 물품들로, 온도와 습도를 민감하게 조절할 필요가 없었다. 창고로서는 비와 바람을 막아주는 정도면 충분했다. 이에 따라 넓은 2층 높이의 건물의 절반은 반투명한 폴리카보네이트 패널로 반을 둘렀다. 폴리카보네이트 벽은 자연광을 실내로 받아들이고 바깥 날씨의 변화를 안에서도 느낄 수 있어, 바깥의 자연 환경과 더 연결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내부 철골 구조물도 노출했다.

이미지|Arii Irie Architects 인스타그램

1층의 3분의 1은 창고로 전용하기 위해 벽을 세워 분리했다. 중앙에는 철제 싱크대로 작은 주방 유닛을 설치했다. 2층은 수면 공간이다. 비용을 들여 단열재를 덧대거나 에어컨을 설치하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대신 거대한 미닫이문과 창문을 여럿 만들어 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최대한 이용하도록 했다. 대형 미닫이문은 개방감을 주고 환기를 원활하게 한다. 2층에도 환기를 위한 큰 창문이 설치되어 있다. 문과 창문들 모두 벨크로로 개폐할 수 있는 모기장 커튼이 달려 있다. 창문 바깥 쪽에도 폴리카보네이트 외창이 있어 강풍과 폭우로부터 내부를 보호한다.

도시의 역사를 보여주는 옛 건물의 특별함

스페인 마드리드

이미지|BURR Studio 인스타그램

한때 공장과 창고로 쓰이던 산업 시설들은 마드리드가 점점 더 큰 도시가 되면서 철거되는 운명을 맞았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고, 교통이 복잡해지고, 소음과 환경 기준이 까다로워지면서 산업체들은 마드리드 외곽으로 이주했다. 시는 남은 건물들을 주거용으로 바꾸도록 권장하고 있다. 동시에 이런 흐름 가운데서 사라지는 건물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다. 건축 스튜디오 버(Burr)는 한 시대의 역사를 담은 건물들이 최대한 옛 모습을 간직해 도시의 문화적 유산으로 남도록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미지|BURR Studio 인스타그램

이 오래된 창고는 겉모습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내부를 개조해 작가의 생활 공간 겸 업무 공간으로 만들었다. 천장 일부가 개방된 오픈 플랜 복층 구조로, 작업실과 침실이 반대쪽에 위치해 서로 영역을 구분한다. 가운데에는 거실과 주방 등 공공 공간이 위치해 생활 공간과 업무 공간 양쪽을 모두 확장한다. 1층에는 주방, 거실, 욕실, 침실이 있다. 2층에는 게스트 침실과 작업실이 있다. 작업실인 2층으로 향하는 계단과 난간은 시각적으로 생활 공간과 업무 공간을 구분한다. 창고였기 때문에 비교적 연약했던 삼각 지붕은 형태를 유지하는 대신 강철로 튼튼하게 보완했다.

이미지|BURR Studio 인스타그램

이 집의 하이라이트는 하얀 콘크리트 벽 안에 있는 세모꼴의 작은 안뜰이다. 안뜰은 1층 바닥면과 거의 같은 높이로, 문을 열면 내부 공간이 확장된다. 콘크리트 벽 위에 거친 모르타르로 만든 독특한 질감이 재미있는 풍경을 연출한다. 한쪽 모서리에 2층 작업실에서 연결된 파란 발코니가 시각적으로 경쾌한 포인트가 된다. 세로로 긴 형태의 집인 점을 감안하여 안뜰 쪽 문은 최대한 크게 열어 채광과 환기가 원활하도록 했다.

거대한 와인 창고가 임대주택으로 변신하다

스위스 바젤

이미지|Esch Sintzel Architekten 인스타그램

스위스에서는 오래된 와인 창고가 주상복합 건물로 변했다. 건물은 1955년 처음 지어져 1973년 한 차례 증축 및 리노베이션을 한 바 있다. 한동안 무역 협동조합에서 와인 보관용으로 사용해왔으나, 해비타트 바젤 재단이 다시 한 번 증축하고 개조해 총 1만 1100제곱미터의 내부 면적을 가진 주상복합 건물로 만들었다. 2023년 여름 완공된 건물에는 임대 아파트 64개 세대, 공동 세탁실, 옥상의 카페 겸 바, 옥상 테라스, 단기 임대용 아파트 세대, 상가, 방음시설이 갖춰진 음악 연습실 7개, 주차장, 자전거 주차장 등이 들어섰다.

기존에 건축된 버섯 모양 기둥 형태를 그대로 살려 고유의 미감을 창조했다. 이미지|Esch Sintzel Architekten 인스타그램

새 건물은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재건축하는 대신 기존 건물의 기본 구조를 최대한 살리는 방식을 택했다. 스위스의 친환경 건축 인증 단계 중 가장 엄격한 ‘미네르기 P 에코(Minergie-P-Eco)’ 기준에 맞춰 짓기 위해서였다. 외벽은 허물고, 콘크리트 바닥을 완전히 노출시켰다. 대신 기존 건물의 튼튼한 기둥을 기능적으로, 또 미학적으로 살렸다. 전체적으로는 두 개 층을 추가로 올리고 구조를 안전하게 보강했다.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를 담당한 에슈 신첼 아키텍츠(Esch Sintzel Architecten)는 그 덕분에 건축 과정, 즉 생산 및 운송에 드는 재생 불가능한 에너지인 회색 에너지(grey energy)를 철거 후 새 건물을 짓는 것에 비해 42% 줄일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건물은 사용 과정에서도 태양광 패널과 지하수 펌프 시스템으로 에너지 소비량의 3분의 2를 자급자족하도록 설계됐다.

테라스는 바 테이블과 전망이 있는 커뮤니티 공간이다. 이미지|Esch Sintzel Architekten 인스타그램

하지만 새 건물의 가장 큰 매력은 이곳의 임대 세대들이 공동주택임에도 불구하고 임차인들의 다양한 니즈를 반영한 다양한 형태의 세대들로 구성됐다는 것이다. 작게는 1.5룸에서 크게는 7.5룸까지, 여러 크기와 구조로 여러 세대와 라이프스타일을 위한 플랜을 제공한다. 이 64개 세대와 계단실, 공동 세탁실 등 주거시설들은 마치 도시의 거리처럼 건물 안을 가로지르는 ‘거리’를 통해 작은 마을처럼 연결된다. ‘거리’의 끝에 휴게 및 커뮤니티 공간인 옥상 테라스가 있다. 상업시설들은 도심을 마주한 건물의 반대편에 모았다. 건물은 2018년 리노베이션 계획을 발표했으며 2023년 완공됐다.

박수진 객원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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