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18

데이비드 호크니가 그린 해리 스타일스의 모습은?

영국 런던 국립 초상화 미술관에서 열릴 호크니의 새 전시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예술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는 다양한 분야에서 탐구를 멈추지 않는 인물이다. 덕분에 그의 직업은 사진작가, 판화가, 삽화가, 무대 디자이너 등 다양하다. 그는 또한 다양한 매체를 실험하는 데에도 지치지 않고 도전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수채화, 유화, 판화, 사진은 물론이고 팩시밀리, 종이 펄프까지 사용하며 작업을 했다.
사진 출처: dailymail.co.uk

아이패드의 드로잉 앱도 그의 작업 도구 중 하나였다. 아이패드로 그린 그림으로만 전시회를 열었을 정도이니, 그의 탐험 정신과 노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1937년 출생으로 현재 86세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의 작업 열정은 그야말로 놀랍기 그지없다.

사진 출처: tate.org.uk

다채로운 매체를 통해 다양한 작품 활동을 펼쳐온 작가지만, 그는 초상화 작업을 하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의뢰를 받아 그리기도 했지만 대부분 그는 주변에 있는 친구, 연인, 친척들을 모델로 삼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그와 더불어 본인을 모델로 한 자화상 작업도 즐겨 했다. 초상화와 자화상 작업을 위해 작가는 과거 예술가들이 사용했던 광학 장치인 ‘카메라 루시다(Camera lucida)‘를 사용하기도 했다.

‘클라크 부부와 고양이 퍼시의 초상’(1970-1971) 사진 출처: tate.org.uk

현재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답게 호크니는 수많은 초상화 작품을 만들어냈다. 그중 유명한 작품은 1970년에서 1971년 사이에 그린 ‘클라크 부부와 고양이 퍼시의 초상(Mr. and Mrs. Clark and Percy)‘이다. 남녀가 함께 있는 초상화에서는 여성이 앉아 있고 남성이 서 있는 구도를 흔히 찾아볼 수 있지만, 호크니는 부부의 자세를 반대로 바꿔 신선한 시도를 했다.

‘클라크 부부와 고양이 퍼시의 초상’ 습작 과정 사진 출처: tate.org.uk

결혼한 지 얼마 안된 젊은 부부를 묘사한 이 그림은 고요하다 못해 왠지 모를 듯한 싸늘함이 느껴진다. 미묘하게 둘 사이가 권태기에 들어선 것 같은 분위기도 느낄 수 있다. 호크니는 그림을 그리면서 이 둘의 상황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소문으로는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이 순탄치 않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림으로 이 둘의 관계를 표현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문제였을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둘의 사이를 암시하는 듯한 분위기를 그림 속에 녹여냈고, 결국 이 작품은 작가의 대표작이 된다.

이렇게 호크니는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그림 속 사람들의 관계를 은근하게 드러내는 작품을 남겼다. 그리고 이는 ‘이중 초상화(Double Portraits)‘라고 불리고 있다.

'조지 로슨과 웨인 슬립'(1972-1975) 사진 출처: tate.org.uk

이중 초상화에서는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시선의 방향, 물건이 놓인 방향이나 공간감을 통해 그림에 있는 사람들의 인간 관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사물의 모든 것을 날카롭게 관찰하는 – 작가의 말에 따르면, ‘노려보기(Eyeballing)‘라 부르는 – 것을 좋아하고 이를 본인의 무기로 삼고 있는 이의 특성이 작품에서 빛을 발하는 듯하다.

'나의 부모님'(1977) 사진 출처: tate.org.uk

작가의 장점은 자신의 부모님을 그린 ‘나의 부모님(My Parents)(1977년)’에서도 도드라진다. 2014년 영국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그림으로 선정된 이 작품은 두 사람의 모습에서 작가와의 관계를 단박에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어머니는 꼿꼿한 자세로 정면을 바로 보고 있으며, 아버지는 구부정한 자세로 책을 보고 있다. 호크니의 여러 작품 속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비교적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작가의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모델로 자주 섰고 그래서 모델로 서는 일에 두려움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작품을 통해 호크니와 어머니의 관계가 무척 돈독했음을 알 수 있다.

사진 출처: artandobject.com / tate.org.uk

사랑이 담긴 눈빛으로 정면을 바라보는(사실은 그림을 그리는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모습과 달리 아버지는 호크니를 그다지 신경 쓰고 있지 않는 모습이다. 세상 무심하게 독서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아버지는 사실은 모델로 앉아 있는 동안 안절부절 못했다고 한다. 모델로 서 본 경험도 적고, 몸이 좋지 않았던 것도 문제였던 듯하다. 불안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초조함과 불안감은 살며시 들린 뒤꿈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시선을 회피하고 있는 모습을 통해 아버지와 작가의 관계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이는 ‘부모님과 나’에서 더욱 명확하게 느낄 수 있다.

'부모님과 나'(1975) ‘나의 부모님’보다 먼저 그려졌지만, 작가의 변심으로 한동안 버려졌던 그림이다 사진 출처: theguardian.com

스스로 실패작이라 여기고 작가가 방치했던 작품 ‘부모님과 나’를 보면, 작가가 부모님과 자신의 사이를 드러내는 작품을 만드는 데 얼마나 어려움을 겪었는지를 알 수 있다. 작가도 힘들었겠지만, 작업을 진행할 때마다 몇 시간 동안 똑같은 자세를 취해야 한 부모님 또한 힘들기는 매한가지였을 것이다. 이런 노력이 있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작품이 탄생하지 않았나 싶다.

'예술가의 초상'(1972) 사진 출처: christies.com

‘예술가의 초상(Portrait of an Artist)(Pool with Two Figures)(1972년)’ 또한 초상화 작품 중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2019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9,031만 달러 (약 1,019억 원)에 판매되며 당시 생존 작가 중 최고가를 기록했다. 이 그림이 높은 가치를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 것은 작가를 대표하는 ‘수영장’과 ‘이중 초상화’가 함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가의 사연이 담겨 있어 더 의미가 있다.

더 큰 첨벙(1967) 사진 출처: tate.org.uk

동성애자인 작가는 당시 성에 보수적이었던 영국에서 벗어나 미국으로 이주하게 되었고, 자신의 성향을 마음껏 드러내는 그림을 그려냈다. 영국에서는 어두운 분위기였던 그의 그림이 미국에 오면서 밝고 환해진 것도 이에 기반한다.

‘예술가의 초상’에서 물 밖에 서 있는 사람은 당시 작가의 애인이었던 피터 슐레진저(Peter Schlesinger)이며, 물 속에 있는 이는 호크니 자신이다. 두 사람은 같은 곳에 있지만 물이라는 존재에 의해 소통이 단절되어 있다. 연인이지만 서로 소통할 수 없는 상황이라니. 호크니는 이 그림을 그리기 1년 전에 모델이 된 슐레진저와 결별했다. 밝은 분위기의 그림에서 어딘가 모를 슬픔이 느껴진다면, 이런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hockney.com/works/paintings

호크니는 60년대부터 현재까지 계속해서 초상화를 그려왔다. 그림 스타일에 변화는 있었지만, 호크니는 항상 사람들을 날카롭게 관찰하고, 그 사람이 가진 분위기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하는 데 집중해 왔다. 그래서인지 그의 초상화 작품에서는 모델이 된 사람들에 따라 분위기가 명확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진솔하게 모델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옮기는 작가의 성향을 느낄 수 있기에, 그의 초상화 작품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사진 출처: npg.org.uk

이런 그의 작품을 모아, 영국 런던의 국립 초상화 미술관(National Portrait Gallery)에서 전시를 진행할 예정이다. 올해 11월 2일부터 내년 1월 21일까지 열릴 이 전시는 2020년 코로나로 인해 미술관이 폐쇄되기 20일 전에 열렸던 전시회, ‘인생에서 그리기(Drawing from Life)‘의 연장선상에 있는 전시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 이 전시에서는 작가가 60년 동안 그렸던 초상화와 더불어 그동안 선보이지 않았던 초상화 30점을 공개할 예정이라고 알려져 호크니 팬들을 설레게 만들고 있다.

사진 출처: npg.org.uk

공개되지 않은 초상화 중에서는 현재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가수 겸 배우인 해리 스타일스(Harry Styles)의 초상화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은 전시를 홍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 작품은 작년에 노르망디에 있는 호크니의 작업실에서 그려진 작품이다. 미술관 측은 초상화와 함께 호크니와 스타일스가 함께 작업을 진행하는 사진을 공개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사진 출처: npg.org.uk

사진에는 화려한 줄무늬 카디건과 청바지, 진주 목걸이를 한 스타일스가 의자에 앉아 편하게 포즈를 취하는 모습을 호크니가 열심히 캔버스에 그리는 장면이 담겼다. 세기의 아이콘이 만나 작업을 진행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 충분했다. 이 모든 일은 호크니가 음악 프로듀서 클라이브 데이비스(Clive Davis)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이 프로듀서가 호크니에게 스타일스를 초상화 모델로 소개하지 않았더라면, 이 운명적인 만남은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호크니가 초상화를 그릴 당시 모델이 된 인물이 유명인인 줄 전혀 몰랐다는 점이다. 유명인인 줄 모른 채 화가는 오로지 작품에 몰두했고, 이틀이라는 시간이 걸려서야 완성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호크니는 모델의 모든 것들을 완벽하게 캔버스에 옮기려 노력했던 것이다. 작품을 완성하고 나서야 그가 유명인인 줄 알았고, 그제야 작가는 가수의 뮤직 비디오를 열심히 찾아봤다고 한다.

사진 출처: vogue.com

그와는 반대로 스타일스는 호크니의 열렬한 팬이었다. 심지어 그는 화보 촬영을 위해 호크니의 얼굴이 그려진 바지를 입으며 팬임을 인증했었다. 하지만 좋아하는 화가가 자신을 몰라봐도 그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준다는 것만으로 영광으로 여긴다고 소감을 밝혔다. 주로 친분이 있는 사람들을 모델로 삼아 작업하는 작가의 성향을 잘 알고 있기에 행운아로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세계적인 작가가 평생 그려 왔던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경험은 흔치 않다. 그와 더불어 작가의 최신작을 함께 둘러볼 수 있다는 점은 전 세계 미술 애호가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 충분하다. 그와 더불어 팬데믹으로 중단되었던 전시회가 다시 개시된다는 사실도 충분히 흥미로운 일이다. 전시회가 문을 열기까지 아직 몇 개월의 시간이 남아 있지만, 벌써부터 전시회에 쏟아지는 열기가 뜨겁다.

장소
런던 국립 초상화 미술관
일자
2023.11.02 - 2024.01.21
Art
헤이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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