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28

북촌 한옥에서 즐기는 공예 전시

지우헌, 정관·김혜주 작가의 <미해결의 장>
북촌 한옥마을에 위치한 지우헌은 한옥을 개조한 갤러리다. 동시대 미술을 고찰하는 전시가 주로 열린다. 지우헌에서 8월 16일부터 9월 9일까지 열리는 정관, 김혜주 작가의 2인전 <미해결의 장(Unresolved Chapter)>도 그렇다. 전통적인 공예 장르의 경계 허무는 두 작가의 작업에 초점이 맞춰졌다.
전시 전경 사진 제공 지우헌 ⓒ 디자인하우스

정관은 국민대학교 도예과와 뉴욕 시라큐스 대학 도예과 석사 과정을 마친 뒤 팝아트적 색감과 문자를 접목한 도자 작업을 해왔다. 전통과 현대의 공예와 예술에 주목하며 공예의 정체성에 관해 묻는 작업이다.

김혜주는 서울여자대학교 공예과 석사 과정 중인 신예로 유약을 바르고 굽는 도자 제작 공정의 마지막 단계를 사운드와 영상으로 대체하는 실험을 통해 도자의 또 다른 완결성에 도전하고 있다. 두 작가 모두 도자의 미완결성에서 비롯된 난제에 집중한다.

Interview with 정관, 김혜주 작가

(왼쪽부터) 김혜주, 정관 작가 사진 제공 지우헌 ⓒ 디자인하우스

전시 제목이 <미해결의 장>입니다. 본인의 작품에서 ‘미해결’의 키워드는 무엇인가요.

 

정관 작가(이하 정). 공예와 예술이 지향하는 서로 다른 가치관과 둘 사이의 균형을 추구하는 ‘태도’ 안에서 발견할 수 있어요. 현대 도예 1세대인 부모님과 국내 공예 교육의 영향, 미국 유학 생활에서 접한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서구 예술의 가치관이 제 안에 복잡하게 공존해요. 각각의 본질을 탐구하려는 태도의 계기이죠. 그리고 저는 사람의 취향과 배경에 따라 공예와 예술을 동등하게 여기거나 극단적으로 한쪽에 치우치기도 한다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개인적으로는 둘 사이의 균형을 추구하지만 현실의 공예와 예술은 그렇지 못해요. 미해결의 지점이죠. 그 사이의 균형을 끊임없이 찾고 제시하는 게 제 작업입니다.

 

김혜주 작가(이하 김). 제 작업은 기능성이나 완결성, 심미성 등의 재료로 구성된 도예의 제작 과정에서 나타나는 우연성에 기인해요. 불규칙하고 불확정적인 부분을 공예가 아닌 비디오나 사운드의 접목을 통해 기존 도예가 가졌던 표현의 한계를 넘어서려 노력하죠. 이러한 시도에 관한 논의가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어요.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여야 하는 역동적인 상황이죠. 결국 현시대 공예의 관점 자체가 ‘미해결’의 의미를 띠고 있어요.

사진 제공 지우헌 ⓒ 디자인하우스

─ 정관 작가가 도예가 가진 경직성에 대한 저항적 언어를 구사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정. 한국의 도예는 긴 역사와 문화적 배경 때문에 상당히 경직되어 있어요. 예컨대 전통적 미감이나 기술자들로부터 전해진 과정과 재료상의 정답, 기물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엄격한 기준이 정해져 있죠. 뿐만 아니라 국내 도예 교육 또한 오랜 시간 교수 개인이 지향하는 형태나 디자인, 미감, 완성도 같은 특정 가치관을 기준으로 학생의 작업이 평가됐어요. 예술은 기존의 예술에 저항하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발전해 왔잖아요. 도예도 기존 관습에 자유롭게 저항하며 이야기를 펼쳐야 해요. 제가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나 패턴, 유약 등의 도자 도상을 왜곡하는 방향으로 작업하는 이유죠.

 

─ 물성을 교차한 ‘Transition’이나 도자의 형태만 박제한 ‘Preserved’의 출발점이 궁금합니다.

 

정. ‘Transition’ 시리즈는 도자에서 실패로 여겨지는 유약의 과도한 흐름과 이를 통한 전통 문양의 왜곡을 적극적으로 의도한 작업이죠. 여기에 과도한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스팸 문자’나 ‘스미싱 문자’를 빌려 재해석함으로써 생기는 예술의 전달과 수용 과정에 초점을 맞췄어요. ‘Preserved’ 시리즈는 도자와 수공예적 가치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재료와 제작 수단을 의도적으로 찾아 탐구하며 역설적으로 전통을 보존하는 작업입니다. 버려진 분청 파편을 아크릴 레이어 안에 보존하거나 ‘디지털 제조(Digital Fabrication)’ 기법을 활용해 석고나 플라스틱, 아크릴 등의 소재를 다루죠.

(왼쪽부터) 정관 'Preserved_G#1', 'What to Value_B#2' 사진 제공 지우헌 ⓒ 디자인하우스

─ 텍스트나 패턴은 정관 작가의 작업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요소겠네요.

 

정. 스팸 문자나 스미싱 문자처럼 제 작업에 등장하는 텍스트는 동시대의 양상을 이야기해요. 물론 공예나 예술에 관한 이야기를 직접 풀어내기도 합니다. 예컨대 분야 내에서 관습적으로 통용되는 언어들인 기술, 기능, 숙련, 완성도, 조형성, 균형, 조화, 재해석, 개념, 정신성, 도상 등 주로 ‘작품 해석’과 관련된 용어를 여러 문자로 표현해요.

오스트리아 태생의 철학자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은 초기 저서인 <논리철학 논고(Tractatus logicophilosophicus)>(1921)에서 “언어로 그릴 수 있는 세계는 정확히 그리고, 그릴 수 없는 세계에 대해서는 침묵하라”라고 말했어요. 그의 말처럼 예술은 언어로 설명하기가 어려운 세계입니다. 예술에서 관습적으로 사용되는 언어도 마찬가지예요. 사회적 소통의 수단일 뿐이죠. 예술과 공예에서 관습적으로 통용되는 문자를 활용하는 작업은 이러한 언어와 ‘나’라는 창작 주체 사이에 형성되는 관계에 대한 역설이자 언어가 전통적인 도자의 질료를 통해 단순한 시각적 표현물로서 재해석되는 과정이죠. 언어로 설명하고 정의해야만 하는 것 또한 관습이에요. 텍스트를 채우는 문양과 패턴을 공예의 상징물인 청화자기나 서구의 찻잔에서 차용한 것도 역시 같은 의미예요.

정관, 김혜주 '미해결의 장' 사진 제공 지우헌 ⓒ 디자인하우스

전시장 초입에는 두 작가의 협업 작품인 ‘미해결의 장’이 놓여 있다. 백자를 스크린으로 활용한 설치 작품이다. 정관 작가는 백자의 형태를, 김혜주 작가는 백자에 투사하는 영상을 맡았다. 각자의 작업과 기법을 발휘해 서로가 가진 미해결의 키워드를 보완하고 넘어서는 시도다.

─ 전시 제목과 동명의 작품 ‘미해결의 장’은 여러 부분에서 흥미로웠는데요. 두 작가의 공동작업으로 알고 있어요.

 

정. ‘미해결의 장’은 저에게 아주 의미 있고 흥미로운 경험이었어요. 제가 물레 성형으로 제작한 매병 항아리 위에 김혜주 작가가 영상을 매핑했죠. 둘 다 도자를 작업하지만 저는 도자의 도상으로 김 작가는 영상과 설치, 사운드로 작업하기에 더 다채로운 시도를 할 수 있었어요. 미분음을 통해 완전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김혜주 작가와 공예의 완결성을 종종 비틀고자 하는 제 작업 모두 기존 통념과 경직을 거부하는 공통분모가 있으니까요. 어찌 보면 동시대 예술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이라고도 할 수 있는 영상매체와 공예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도자의 도상이 만나는 것이기도 해요. 그 만남 속에서 일어나는 미해결의 질문을 다시 고민할 수도 있죠.

 

김. 도자기에 영상을 입히는 작업을 했지만 기존에는 평면이 주를 이뤘어요. 이번 공동작업은 매병의 형태에 영상을 입힌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죠. 영상에는 영어로 번역된 ‘불확정성’, ‘통제’, ‘매체융합’, ‘미해결된‘ 등의 단어가 해체되고 다시 재조합되는 과정을 담았어요. 불완전하고 해결되지 않은 공예의 현 상황을 은유적으로 표현했죠.

(왼쪽부터) 김혜주, 'Indeterminacy of Note; A', '1/x, 1/xx, 1/xxx.....B' 사진 제공 지우헌 ⓒ 디자인하우스

─ 김혜주 작가에게는 영상이나 사운드라는 매체도 중요하지만 그 속에서 교차하는 도예와 음악의 물성도 중요하게 보입니다. 그리고 원이 주는 의미도요.

 

김. 기능성, 완성도 등을 추구하는 도예와 화성적 음렬, 조성 등을 중심으로 하는 음악의 흐름에선 각자가 지닌 영역을 벗어나려는 시도가 존재해요. 이러한 흐름은 음악에서 ‘미분음’이라는 재료와 도예에서 기능성, 조형성 등을 벗어나려는 시도가 맞물려 작품으로 표현돼요.

 

원은 균형이 있는 형태로 어느 방향으로도 기울지 않는 중심대칭을 지닙니다. 이러한 특징은 언제나 안정적이어야 하는 표준음과 비슷합니다. 원이 뒤틀려 대칭을 이루지 않는다면 이는 미분음의 특성을 표현한다고 할 수 있죠.

 

─ ‘1/x, 1/xx, 1/xxx…..B’는 불친절하기는 하지만 배경을 알게 되면 그제야 작품이 눈에 들어옵니다. 불완전한 소리를 물성을 가진 형태로 시각화하는 방향을 현재의 형태로 잡은 이유가 있을까요.

 

김. 어릴 적 배웠던 바이올린을 성인이 된 후에도 다뤘어요. 연주할 때 기보記譜되어 있는 정확한 음정으로만 소리를 낼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이따금 무작위적인 음들이 나타났죠. 이런 음을 미분음이라 불렀고 미분음의 위치는 불확정적이에요. 우연과 계획이 뒤섞여서요. 도예에서도 가마의 상황을 통제하는 건 어렵죠. 제작 과정에서의 우연성이 미분음과 비슷한 성질을 띠어요. 여기서 착안해 사운드를 물성과 연결 지어 작업하기 시작했어요.

김혜주 '음의 조각들_미분음 B' 사진 제공 지우헌 ⓒ 디자인하우스

원형 도자기가 경기장의 조명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나열해 있다. 그 위로 도자기와 똑같은 크기의 원이 투사되면서 도자기와 영상의 원이 교집합을 이룬다. 교집합을 이루는 또 하나의 요소가 있다. 동일해 보이지만 동일하지 않은 도자기에 프로젝터의 영상이 쏘아지면 벽면에 드리워지는 원형의 짙은 그림자다.

─ ‘음의 조각들_미분음 BPieces of note; Microtone B’에서 원형과 교집합이 반복되는 이유가 있을까요?

 

김. 도예의 제작 과정에서 나타나는 우연성과 무작위성은 미분음을 의미하죠. 그 위에 투사되는, 완벽한 통제가 가능해 오차가 존재하지 않는 영상 속의 원은 표준음을 뜻합니다. 표준음이 이동하면서 도자기 위에 투사되면 표준음과 미분음이 동시에 맞물렸을 때의 차이가 미분음의 그림자와 그 형태에 의해 선명하게 보입니다. 영상이 반복되기 때문에 두 관계가 서로 겹쳐질 때의 차이가 더욱 와닿게 되죠.

안상호 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지우헌

프로젝트
<미해결의 장>
장소
지우헌
주소
서울 종로구 북촌로11라길 13
일자
2023.08.16 - 2023.09.09
헤이팝
공간 큐레이션 플랫폼, 헤이팝은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과 그 공간을 채우는 콘텐츠와 브랜드에 주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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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 20~30 명 갤러리 지우헌 (Gallery Jiwooh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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