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0일부터 21일까지 뉴욕에서 개최하고 5월 22일에 우승자를 가린 2023 AI 패션 위크(‘AFW’)는 패션 디자인 영역에서 AI의 잠재력을 보여준 성공적인 실험이었다. 메종 메타의 창립자 시릴 푸아레(Cyril Foiret)는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행사가 “현재 온라인에 존재하는 디지털 패션 커뮤니티를 모아 잠재적으로 (실제) 패션 디자이너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 하는 자리라고 밝혔다. 앞서 그는 생성형 AI를 사용함으로써 “미학과 아이디어를 표현할 수 있다면 누구든지 패션계에 진입할 수 있는 세상”이 될 거라 기대하기도 했다.
기존 패션 위크의 경우 주관사로부터 시간대별로 지정된 브랜드가 런웨이에 배정되고, 바이어들과 유명인들을 초청한 뒤 실물 모델들의 패션쇼로 진행된다. 그렇다면 AI와 온라인을 통해 진행한 AI 패션 위크는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먼저 지원자가 갖가지 이미지 생성 AI 도구(참여자의 70%가 ‘미드저니’활용)를 이용해 의상 컬렉션 이미지를 생성해 제출했고, 주최 측은 이를 수합해 온라인에 전시함과 동시에 투표를 통해 먼저 상위 10명의 결선 진출 디자이너를 선정했다. 마지막으로 업계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상위 세 명의 우승자를 가려 선정 컬렉션의 제품 제작 및 온라인 판매 계획까지 수립했다.
AI 패션 위크 이전에 AI를 활용한 패션쇼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부터 조금씩 있었던 몇몇 비슷한 해외 행사의 경우 실제 디자이너들이 초안 스케치와 옷감, 색상표 등을 프로그램에 상세하게 입력한 뒤 이를 바탕으로 AI가 특정 패션 스타일을 생성하거나 검색해 주는 방식으로 AI 디자인 작업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작업 형태에서 AI는 디자이너나 인간의 협업 파트너보다 조수에 가까웠다. 반면에 AI 패션 위크는 온전히 AI가 핵심적인 디자이너가 된 패션쇼라는 점에서 다른 의미가 있었다. 이를 위해 참여자들은 AI에게 명령하는 프롬프트를 사용할 때 기존 디자이너의 작업이나 레퍼런스에 의존하는 프롬프트를 절대 사용할 수 없었다. 메종 메타는 더불어 제출작과 관련해 14가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사용하는 모델에 대한 권한을 갖고 이에 관한 비전을 자유롭게 표현할 것”과 “디자인의 다양성을 보여주기 위해 연령, 크기 및 인종 등 다양한 모델을 사용할 것”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행사에는 총 400개 이상의 출품작이 접수되었다. 전위성과 정교함이 돋보이는 오트쿠튀르 풍의 컬렉션부터 오로지 AI로만 구현할 수 있을 것 같은 컬렉션, 실제 패션 위크에는 어울리지 않는 세련되고 사실적인 컬렉션의 디자인 등 다양한 비주얼의 컬렉션이 등장했다. 우승을 거둔 파아티프(Paatiff)는 포르투갈 출신의 28세 디자이너다. 그의 디자인 컬렉션 〈Futuristic Old Soul〉은 제목 안에 ‘future’와 ‘old’가 한데 있는 모순처럼, 미래 지향적 이미지와 과도하지 않은 분위기의 익숙한 멋이 공존한다. 투명하고 광택 있는 겉감과 이와 대조되는 따뜻한 색의 속감이나 피부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두 번째로 높은 순위를 기록한 27세의 마틸데 마리아노(Matilde Mariano)는 공교롭게 파아티프와 마찬가지로 포르투갈 출신이다. 연둣빛 녹지와 마치 햇살과 같은 노란 꽃 디자인, 화사한 색감에서 영감을 받은 자연 친화적 디자인 컬렉션을 선보였다. 모델들이 가볍게 걸친 오가닉 소재와 가벼운 패브릭 질감의 옷 뒤로 실제 햇볕 좋은 야외 런웨이에서 촬영한 듯한 배경이 펼쳐져 있다.
미국의 오페 스타일스타(Opé Stylestar)는 가장 현대적인 디자인을 선보였다. 하늘과 구름, 깊은 바다와 바다 거품 등을 두루 떠오르게 하는 독특하고 미묘한 색과 질감을 미래 지향의 디자인으로 소화했다. 시폰과 실크, 나일론 튈 등을 소재로 대칭적인 디자인 속에 비대칭이 미묘하게 맞물려 있어 차분하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밖에 상위 3인에는 들지 못했지만 해파리나 심해어 등 신비로운 바대 생물의 발광성에 영감을 받아 바다를 배경에 둔 동화나 판타지의 한 장면을 연상하게 하는 추(Chu)의 컬렉션이나 대리석 조각과 같은 질감과 상세한 털 디자인의 디테일이 살아있는 가비 로지스(Gaby Roses)의 컬렉션 등 홈페이지에 공개된 상위 10개의 디자인을 하나하나 살펴볼 수 있다. 각 컬렉션은 다채로운 디자인과 모델들의 표정만이 아니라 실제 패션쇼처럼 구현한 무대, 프런트-로를 채운 사람들의 모습, 백스테이지의 찰나까지 실제 사진처럼 구현하고 있어 AI 기술의 현재를 가늠하며 재미와 놀라움을 모두 느끼게 된다.
결과적으로 AI 패션 위크는 단순한 도구가 아닌 크리에이터로서 AI의 역량을 패션 산업계에 증명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행사에는 패션 업계 종사자나 학도가 아닌 변호사, 엔지니어, AI 개발자 등 다양한 출신과 배경의 일반인들이 두루 참여했다. 참여자의 연령도 18세부터 68세까지 다양했다. 이는 바꿔 말해, 아이디어만 있다면 제도권 교육을 받지 못하거나 옷을 만드는 기술이 없어도 패션 창작을 희망하는 누구에게나 기회가 공평하게 열려 있다는 뜻이다. 디자이너가 수많은 샘플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자원과 노력, 그 과정을 수련하기까지의 시간을 획기적으로 절약할 수 있기도 하다.
한계와 우려도 존재한다. 시릴 푸아레가 직접 언급했듯 일반적인 의류 생산 절차는 디자이너가 옷을 직접 생산해 본 후 대중에게 공개하지만 AI 패션은 그 절차가 뒤바뀐 만큼 디자인을 실제로 구현하는 단계에서 어려움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생성 AI의 활용이 패션 산업 전반의 여러 일자리를 줄일 것이라는 고민도 나온다. AI가 만드는 패션계의 미래는 어떨지 당장 내일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