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25

고정관념을 벗어난 사물들

잭슨홍 개인전 Burn Baby Burn.
잭슨홍의 작품 세계를 돌아보는 개인전 'Burn Baby Burn'이 일우스페이스에서 7월 27일까지 열린다. 온통 하얀색으로 칠해진 갤러리에 알록달록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색의 대비로 인하여 가득이나 강렬한 색상이 더 강하게 다가오고 시선과 발길을 이끈다. 전시는 작가의 대표작을 한 공간에 모아 지나온 궤적을 연소 전과 연소 후라는 단계로 나눠서 바라본다.
BR-15, 2021

 

한국과 미국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했던 잭슨홍의 작품의 첫인상은 강렬하다. 디자인을 전공했던 이력 덕분인지 예술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공산품의 키치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형태는 원래의 모습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은 채, 내용과 기능만이 비틀어져 있다. 알기 쉽게 다가오는 작품의 외형은 시선을 끄는 힘이 있지만, 반대로 작가의 메시지가 가려진다는 단점도 있다.

 

하나 구입하시면 하나 더 Buy One Get One Free, 2010

 

전시 ‘Burn Baby Burn’은 지난 16년간의 잭슨홍의 작품 세계를 4단계로 나눈 후, 다시 두 개씩 묶어 연소 전과 연소 후로 나눈다. 연소 전은 현실 세계의 부조리에 대한 분노를 작품에 담던 시기이며, 연소 후는 비판적 시선이 사라지고 작품과 현상에 집중하던 시기다.

 

잘 먹고 열심히 일하자 Eat Right, Work Hard, 2010

 

초창기 잭슨홍은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아내고 기업의 이윤 추구, 기술 만능주의에 잠식된 디자이너의 위상을 반성하는 ‘비평적 디자인’을 실천하고자 했다. 이러한 작가의 태도는 전자제품이라는 사물과 만나 기괴한 기계를 만들어 냈다.

 

오토파일럿 Autopilot, 2016

 

칼이 달린 안전모, 표정을 숨겨주는 가면 등을 제작했던 잭슨홍은 심리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면서 일상에서 사용하는 소도구와 가구를 변형시키기 시작한다. 특히 인간의 몸과 가장 밀접하게 닿은 가구인 의자를 빈번하게 사용했다. 앉으면 칼이 튀어나오는 의자를 만들거나, 의자에 바퀴를 달아 이동열차를 만들기도 했다.

 

슬래쉬 의자 SLASH Chair, 2013

 

전시가 명명한 ‘연소 전’ 시기의 잭슨홍은 사회에 대한 분노를 작품 활동을 통해서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였다. 하지만 작가는 결과에 대해 스스로 비관하며 무기력함을 느낀다. 아이러니하게도 작품의 발랄한 색상과 형태는 작가의 우울한 감정이 표출된 결과였다.

 

사회에 대한 목소리를 한껏 높였던 잭슨홍은 어느 순간부터 반항적인 태도를 버리고 은둔자처럼 작품과 그에 따른 현상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동시에 데뷔 이후 계속 따라다녔던 이분법적 시각 – 디자인과 예술을 나누려는 태도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전시는 이전의 분노를 반성하는 이 시기를 ‘연소 후’라고 명명한다.

 

도끼 A와 B Axe A & B, 2008

 

‘연소 후’의 첫 번째 단계는 사물과 맥락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야구 배트와 도끼를 액자에 넣어 갤러리에 전시를 하고, 이랑에서 사용하는 도구의 형태를 변형시키기도 했다. 이를 통해 잭슨홍은 사물이 맥락에 따라 어떻게 해석되는지를 보여준다.

 

점화 Ignition, 2021

 

전시의 맥락과 관객과의 관계 속에서 사물을 바라보기 시작한 잭슨홍은 공간에 초점을 맞추고 이를 작업의 재료로 활용한다. 갤러리를 실내 운동장처럼 꾸며 관객들이 게임을 하도록 유도하고, 조각상을 전시장에 배치하여 전시를 한 편의 연극처럼 연출하기도 했다. 덕분에 관객들은 작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거나 공간 안에 자유롭게 설치된 작품을 해석하는 등 적극적으로 작품에 관여하게 된다.

 

Say Hello to My Little Friend, 2019

 

지난 16년간, 잭슨홍은 여러 표현 기법을 통해 외부요인에 따라 위치와 의미가 달라지는 사물의 가변성과 사물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탐구했다. 개인전 ‘Burn Baby Burn’은 잭슨홍의 작품 세계를 대표작으로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작가의 지난 작업을 한자리에서 마주하니 당시에는 읽지 못했던 숨겨진 의미가 보이기도 하고, 새로운 의미와 이미지가 발견되기도 한다. 잭슨홍의 작품을 다시 보고 싶은 사람 혹은 보지 못했던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전시다.

 

 

허영은

자료 제공 일우스페이스

장소
일우스페이스 (서울시 중구 서소문로117 대한항공 빌딩 1F)
일자
2021.06.09 - 2021.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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