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렌치 시크
자유분방한, 낭만적인, 무심한 듯 시크한 등등 정확한 단어로 형언하기는 어렵지만 근사한 수식어를 장황하게 늘어놓게 만드는 스타일과 멋. 그 예측불허한 감성을 ‘프렌치 시크(French Chic)’라고 명명하게 만든 상징적인 인물이 바로 제인 버킨이다. 영국 태생이지만 프랑스로 건너와 1960~70년대 프렌치 팝을 주름잡았던 그는 가수이자 배우, 모델 그리고 패션 아이콘으로 누구보다 눈부신 리즈 시절을 보냈다. 헝클어진 뱅 헤어, 청바지, 컨버스, 샹송, 희뿌연 담배 연기… 정형을 깨는 멋과 애티튜드로 프렌치 룩의 태동기를 일깨운 그였다. 덕분에 프렌치 시크는 순수와 관능이라는 극적인 매력을 오가는 독보적인 패션 사조로 지금까지도 추앙받을 수 있었다. 프랑스 문화부는 제인 버킨의 별세 소식을 알리며 ‘프랑스어권의 영원한 아이콘’, ‘한 번도 유행을 타지 않은 모든 세대의 상징’이라고 추모했다.
2. 에르메스 ‘버킨백’
그 유명한 에르메스 버킨백의 ‘버킨’은 제인 버킨의 이름에서 따왔다. 에르메스와 그의 인연은 19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에르메스의 5대 회장인 장 루이 뒤마와 제인 버킨은 우연히 파리행 비행기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항상 많은 짐을 가방에 넣고 다녔던 버킨은 기내 선반에 가방을 올리다 떨어뜨렸고, 안에 있던 물건들이 와르르 쏟아졌다. 그때 ‘주머니가 달린 큰 가방이 필요하다’는 버킨의 토로를 들은 장 루이 뒤마는 아이디어가 번쩍 떠올랐다. 그렇게 탄생한 가방이 ‘버킨백’이며, 약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꿈의 가방’으로 자리하고 있다. 한편 버킨백을 만드는데 악어가 잔인하게 살해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버킨은 2015년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제작 방식이 나올 때까지 자신의 이름을 딴 버킨백의 명칭을 사용하지 말아달라는 서한을 에르메스 측에 보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3. 청바지
제인 버킨은 청바지의 대명사다. 히피와 낭만, 젊음, 열정이 어우러진 1970년대 패션의 상징인 청바지는 그 덕분에 불멸의 아이템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두가 화려한 프린트 의상을 즐길 때 흰 티셔츠에 청바지라는 단순하고 새로운 공식으로 단번에 시선을 끌었다. 몸에 적당히 붙는 셔츠, 대충 말아 올린 소매, 밑단에서 퍼지는 부츠컷 진, 그리고 편안한 ‘노 브래지어’ 패션까지, 제인 버킨은 누구보다 자유로웠고, 청바지는 그렇게 청춘의 것이 되었다.
4. 미니드레스
1960년대 패션계의 혁명이라 불리며 엄청난 유행을 일으켰던 미니 드레스도 제인 버킨이 입으면 남달랐다. 당대 최고의 모델이었던 트위기의 것이 미래적인 스페이스 룩 느낌이었다면 제인 버킨의 룩에는 낭만이 흘렀다. 손뜨개 느낌을 강조한 크로셰 드레스부터 골반에 벨트를 두른 티셔츠 드레스, 유연한 재즈풍 시퀸 드레스까지, 탄탄한 몸과 긴 팔다리를 부각한 미니드레스를 입고 머리를 풀어 내린 그는 새로운 모던 히피 같았다. 또 다른 비밀병기는 신발이었다. 남들 다 신는 도톰한 하이힐 대신 발레 플랫슈즈와 메리제인 슈즈, 하이 부츠로 쿨함을 잃지 않았던 그의 남다름은 지금 봐도 감탄을 부른다.
5. 라탄 백
한낱 바구니도 그가 들면 힙했다. 라탄 백을 패션 아이템으로 신분 상승시킨 것도 제인 버킨이다. 청바지에도 드레스에도 아이를 안을 때도 심지어 칸 영화제 레드 카펫을 밟을 때도 라탄 백을 들었다. 안에는 도대체 뭐가 들었을까 호기심을 부르는 크고 둥근 라탄 백은 오랜 시간 제인 버킨의 최애 가방이자 무심한 듯 시크한 멋을 찍는 스타일의 방점이었다.
6. 화이트 룩
제인 버킨의 프렌치 시크가 한층 극적인 멋을 품을 수 있었던 이유는 화이트 컬러 때문이다. 셔츠, 니트 크롭 톱, 진, 블루종, 슬립 드레스 등으로 간결한 화이트 룩을 즐겼던 그는 브래지어를 하지 않아도, 가슴골을 깊게 노출해도 크게 야해 보이지 않았다. 시대를 풍미했던 글래머 배우들과는 다른 가늘고 매끈한 몸, 앞머리를 내린 헝클어진 긴 머리, 큰 키와 아우라에서 나오는 그만의 중성적인 분위기가 그렇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그저 로맨틱하기 일쑤였던 화이트 룩은 제인 버킨을 거치면서 순수한 동시에 관능적인, 오묘한 빛으로 반짝이기 시작했다.
7. 샤를로뜨 갱스부르
제인 버킨과 세르쥬 갱스부르는 연인이자 서로의 뮤즈였고, 프렌치 시크의 시작과 끝이었다. 프랑스 대중문화의 상징이자 뮤지션, 현대 프렌치 팝의 선구자, 시대의 총아, 천재 아티스트 등등 수많은 수식어를 가진 세르쥬 갱스부르는 제인 버킨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이다. 그리고 둘 사이에는 소중한 유산이자 딸인 샤를로뜨 갱스부르가 있다. 어릴 적부터 엄마, 아빠를 꼭 빼닮은 감성으로 차세대 프렌치 아이콘으로 주목받았으며, 엄마처럼 배우와 뮤지션의 길을 동시에 걷는 매혹적인 여인으로 성장했다.
제인 버킨에겐 세 딸이 있다. 첫째는 ‘007’ 메인 테마 작곡가 존 배리와 결혼해 낳은 케이트 배리(안타깝게도 2013년 아파트 난관에서 추락사했다), 둘째는 앞서 말한 샤를로뜨 갱스부르, 셋째는 세르쥬 갱스부르와 헤어지고 만난 영화감독 자크 드와이옹 사이에서 낳은 루 드와이옹. 엄마의 리즈 시절 미모를 꼭 닮은 루 드와이옹 역시 가수 겸 배우, 모델로 활동하며 유전자의 힘을 보여준다. 엄마는 떠났지만 두 딸이 이어갈 프렌치 시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엄마의 이름, 제인 버킨과 함께.
지난 7월 16일, 제인 버킨은 프랑스 자택에서 눈을 감았다.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의심 정황이 없어 다른 조사는 없을 거라고. 2021년 뇌졸중을 겪으면서 컨디션이 급격히 나빠졌고, 최근에는 심장 질환을 앓았다는 얘기도 있다. 수많은 클래식 패션 기사를 쓰면서 그를 떠올리고, 그의 이름을 적었다. 동시대를 살면서 그의 아름다움을 논할 수 있어 행복했다. 정말이지 제인 버킨 같은 자유롭고 담대한 패션 아이콘은 다시없을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글 박선영 객원 필자
자료 출처 Getty Images